〈 139화 〉139화
"변명이라니, 무슨 변명?"
꽉, 하고. 그렇게 말하며 크리샤의 안아들었다. 그런 내 행동에 놀란 듯, 크리샤가 버둥거렸다. 그런 크리샤를 무시한 채로, 나는 내 밑에서 여전히 드래곤 슬레이어를 물고 있는 모네를 보며 말했다.
"모네, 그만. 이제 충분하다."
이런 식으로 써본 적은 없었지만.
아마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서. 장악력을. 마왕의 힘을 사용했다.
내게 속해 있는 모든 존재들을 조종하는 힘.
복속과... 심신장악.
우뚝, 하고. 드래곤 슬레이어를 애무하던 모네가 멈춰섰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서는,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모네뿐만이 아니라.
방금까지 내 말은 콧등으로도 듣지 않던 다른 음마들. 에네스타와 나타, 에샤마저 멍한 눈을 하고서 물러나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진작 이럴걸, 하는 마음보다도 결국 해버렸다는 마음이 앞섰다.
심신장악...
그건 일종의 강제력이었다. 정신지배와 같은, 상대방의 마음을 일절 무시한 채로. 강제로 명령하는 힘이었다. 결국 그것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속이 씁쓸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지금 내가 우선해야할 것이 있었다.
나는 뻔뻔한 얼굴로 내게 안긴 채 잔뜩 굳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크리샤에게 말했다.
"변명할 필요가 있어야지 변명을 하지. 크리샤."
"이... 지금 나를 바보로 아는 거야?!"
결국 그 말에 폭발한 듯. 쩌억, 갈라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크리샤 덕분에 오금이 저려왔지만, 어떻게든 견뎌냈다.
그러고서 말을 이었다.
"아니, 널 바보로 아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말한 거야. 변명할 필요가 없다고. 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이게 보통이니까."
"...뭐?"
그런 내 말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크리샤가 보였다.
"보통이라고."
재차 강조하듯이. 그렇게 말하자 결국 크리샤가 발끈하며 말했다.
"방금까지 저 녀석이 네 그걸 물고 빨고 있었는데 그게 보통이라고?! 나랑 장난치자는 거야?!"
음.
차마 할 말이 없는 소리였다. 양심이 남아있었던 나라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을 게 분명했다.
근데 지금의 나는 살기 위해 그 양심을 갖다버린 참이었다.
"응. 보통이지. 내가 쟤랑 섹스를 한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고서.
모네의 타액으로 번들거리고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크리샤의 균열에 맞췄다.
"그냥 조금 도와줬을 뿐이야. 보다시피... 덕분에 이렇게, 커졌고"
"읏...♥ 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균열에 드래곤 슬레이어가 닿자 주춤하며,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에게 쐐기를 박듯이. 마법의 말을 꺼내들었다.
"이게 보통이야. 루시아 때도 이랬는걸."
크리샤 한정의 마법의 말.
루시아도 그랬었다는 말을 꺼내들자, 크리샤가 나를 바라봤다.
이게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닌지, 살펴보는 눈이었다. 내심 불안했지만, 이미 양심을 갖다버리기로 한 내게 찔리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런 크리샤를 마주봤다. 한참이나, 시선을 교환한 끝에, 크리샤의 입이 열렸다.
"...그러니까, 네 말은. 원래 이런 거라는 거지?"
"그래."
"저 녀석들이, 알몸으로 여기에 있는 것도. 저 년이 내껄 멋대로 물고 빨고 있던 것도, 보통으로 있는 일이고...?"
내 드래곤 슬레이어는 누가 개인으로 소장할 수 있는 게 아닌데.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서 말을 끊긴 그랬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크리샤. 너도 잠들어 있었고 하니까. 이 녀석을 세우려면 어쩔 수 없었거든. 네가 말했잖아, 내 아이를 갖고 싶다고. 그러려면 이게 서야하니까. 그러니까 별 수 없지."
개소리의 향연이었지만 점점 누그러지는 크리샤의 표정을 보고서 쐐기를 박을 겸 내가 말했다.
"정 믿지 못하겠으면, 저기 에루나한테 물어보던가."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날 귀축 그 자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에루나와 로로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에루나는 그렇다 치고 로로마저 저런 표정으로 짓고 있다는게 놀라웠다. 둘 다 평소에는 포커페이스다시피한 주제에 이때만큼은 죽을 맞춰서 저러고 있으니까 무척이나 슬픈 기분이 들었다.
"...에루나, 너도 있었네."
내 말에 고개를 돌렸던 크리샤가 에루나를 보고서 그렇게 말했다.
"네, 크리샤 아가씨."
그 말에 에루나가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한숨을 내쉰 크리샤가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이 하는 말 진짜야?"
입에 침도 안바르고 펼친 내 개소리에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를 보고서. 에루나가 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인간들 사이에서 시녀들이나 하인들을 상대하던 도중에 본처를 안는 풍습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라는 식의 말이었지만 에루나의 말은 일단 긍정이었다.
결국, 크리샤가 다시 나를 보고서는 말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왜 나한테 숨기려고 한 거야?"
"......"
"당연한 일이라면, 보통으로 있는 일이라면 숨길 필요 없는 거 아냐?"
두 번째 고비가 찾아왔지만, 넘어갈 방법이 곧 떠올랐다.
"...지금처럼, 네가 화낼까봐 그랬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꼭 바람이라도 핀 것 같아 보이잖아?"
"흐응..."
내 말에 무언가 납득한 듯한 표정을 짓는 크리샤를 보고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아,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시녀와 관계를 맺는 경우도 종종, 아니. 보통으로는 시녀와 관계를 맺다가... 사정만은 본처에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떠올랐다는 것처럼. 그렇게 덧붙이며 말하는 에루나가 있었다.
저기요?
에루나?
그런 에루나의 말에, 크리샤의 눈을 찌푸렸다.
"그건 조금 이상한데? 에루나. 지금 거짓말 하는 거 아냐?"
거짓말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거짓말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크리샤가 그렇게 말하고서, 에루나를 바라봤다.
다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오는 크리샤에게 에루나가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크리샤 아가씨께서도 겪었다시피. 주인님의 정력은 혼자서 감당하기엔 여러모로 힘에 부칩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 말에 움찔하고, 몸을 떠는 크리샤가 보였다.
"으음..."
에루나의 말에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크리샤가 보였다.
저기요?
크리샤...?
무언가 불안한 낌새에 크리샤를 바라보자,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리는 크리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 확실히...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으니까..."
그런 크리샤에게 에루나가 말했다.
"어디까지나 도중까지 돕는다는 겁니다. 아직 크리샤 아가씨께서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으니까요. 주인님의 정력이 워낙 유별난 터라. 루시아 아가씨께서도 고초를 겪으셨죠."
"그, 그래? 루시아도...?"
"네. 루시아 아가씨도."
에루나 마저도 마법의 단어인 루시아를 들먹이면서 그렇게 말했다.
사실은 반대였지만.
넘쳐나는 정력으로 고초를 겪은 건 루시아가 오히려 나였다. 루시아가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된 이후부터의 일이기는 했지만.
하지만 루시아도 그랬다는 말에, 크리샤는 자신의 밑에 서있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서 그럴 만도 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 그러면 내가 이상해지잖아...
그런 크리샤에게 에루나가 말했다.
"거기에 과거, 인간들의 왕이었던 영웅왕 제임스도 그랬었다고 합니다. 한사람의 정력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여러 공주들이 번갈아가며 영웅왕을 만족시켜줬다고... 인간들 사이에서는 전례가 있다는 이야기겠죠. 그리고, 주인님께서는 인간이십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덧붙이듯이 에루나가 말했다.
"또... 인간 남성들은, 한 여자만을 상대하다보면 곧잘 질려버린다는 얘기도 있었죠. 주인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됩니다만."
그 말을 끝으로.
내 위에 있던 크리샤가 돌연 나를 밀치듯이, 침대에 눕히고서, 내 위에 걸터앉고서는 말했다.
"...나한테, 질린다고?"
굉장히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내,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 크리샤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했었지만, 내 드래곤 슬레이어를 붙잡으며 크리샤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처음 때랑 달리 나중으로 갈수록 점점 힘이 없어지기는 했었지?"
그건 그냥 지쳐서 그런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네가 점점 익숙해져서 그랬다던가. 어쨌거나 그 일에 대해서는 지금 에루나가 한 헛소리랑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이야기로, 스스로의 안에서 조각들을 맞춰가며 납득한 듯한 크리샤에게 그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건 아니라고 말하려면, 지금 있었던 일도 거짓말이라고 사실대로 고백해야만 했다.
이게 자승자박이란 건가...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사이에.
"...좋아, 넌 내꺼야. 나한테 질린다던가,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어야지. 나야말로, 네 첫 번째니까."
결국, 그렇게 말한 크리샤가 멍한 눈으로 시립해있던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을 보더니, 모네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너."
크리샤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네가 보였다. 그런 모네를 보고서. 크리샤가 눈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내 말 안 들려?"
서슬 퍼런 그 목소리에 퍼뜩, 하고. 정신을 차린 듯한 모네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써본 심신장악이였지만, 크리샤의 한마디에 바로 풀려버릴 줄은 몰랐다.
"저, 저요...?"
심신장악이 풀린 영향인지, 아니면 크리샤에게 바짝 쫄은 것인지. 그런 크리샤가 있는 곳에서 겁도 없이 내 드래곤 슬레이어를 물고 빨았던 모네가 잔뜩 주눅이 든 채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 너. 이쪽으로 와."
"네, 네..."
우물쭈물, 모네가 다가오자. 그런 모네의 몸이 둥실 뜨기 시작했다.
크리샤의 그림자들에 의해서.
촉수처럼.
사지가 묶인 모네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나와 크리샤를 바라봤다.
그런 모네에게, 크리샤가 말했다.
"...흐응, 너. 엘프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다른 종족이였나 봐? 아무래도 좋긴 한데..."
꾸욱, 하고 겁에 질린 채로 부들부들 떠는 모네의 꼬리를 크리샤가 움켜쥐었다.
"하응♥"
"...헤에, 꽤 재밌는 몸을 하고 있네. 뭐, 됐어. 너, 아까처럼... 그 몸으로 이 녀석을 기분 좋게 해봐."
"네, 네...?"
"내 말 못 들었어?"
"그, 그게 아니라... 이런 상태면, 우, 움직일 수가 없는데요...?"
그림자에 사지가 꽁꽁 믂인 모네가 그렇게 말하자, 크리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야, 네가 움직일 필요 없으니까. 경고하는데... 끝까지 해버리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각오해둬."
그렇게, 진심으로 말했다는 듯이. 흉포하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모네를 노려본 크리샤가 손짓하자.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네의 몸을 결박한 그림자가.
그대로.
눕혀져 있던 내 위로 모네를 움직이더니. 꼿꼿하게 서있던 드래곤 슬레이어 밑으로 모네의 몸을 내려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