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8화 〉148화 (148/370)



〈 148화 〉148화
“에네스타,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어째 날 보호해줘야 하는 에네스타에게 신변의 위협을 느꼈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한 대처법도 늘어난 내가 그렇게 말했다.

덕분에 실망한 기색이 엿보이는 에네스타가 보였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서. 나는 에네스타에게 완전히 제압되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아리스."

이름을 부르자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올린 아리스가 나를 노려봤다.

시선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나는 아마  세번 정도는 난도질당해서 죽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매서운 눈빛을 쏘아 보내는 아리스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얌전히 대화에 응한다면, 풀어줄 생각이 있는데. 넌 어때?"


그런 내 말에 아리스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당신하고 나눌 대화 같은 게 있을 것 같나요?"

응.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의 너에게는 그런 선택지를  기억이 없었다.


아리스, 네가 나와 대화를 하기 싫더라도.

"미안. 나는 너랑 나누고 싶은 대화가 많거든."

내가 그걸 원하고 있으니.


조금 강압적인 방법이라서 되도록이면 쓰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그런건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걸 크리샤한테 걸리면 안되거든.

꼭 아내 몰래 외도라도 하는 남편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건 아니었지만, 중요한 부분에서는 같았다.


시간이 없다는 것.

그러니까. 조금 강압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주시자의 눈... 은 아직 비활성화중이라서 사용할 수 없지만, 그것 말고도 쓸 만한 기능들이 여럿 있었다.

우선...

매혹안을 활성화시켰다.


띠링띠링, 귀에 울려대는 알림소리와 함께, 눈을 마주하게  아리스가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에네스타."

하지만 그렇게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이름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에네스타가 아리스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고정했다.

"읏! 또... 이런 비겁한 방법을...!"

결국 강제로 눈이 마주치게 된 아리스가 그런 말을 해왔다.


"또?"

"시치미 떼지 마세요! 마왕! 이, 외도 같으니…!"


나를 외도라고 외치는 아리스의 말끝이 떨려왔다.

매혹안에 저항하기 위해 다소 힘이 부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언제 또 이랬던 적이 있었나? 아무리 기억 속을 뒤져봐도, 기억에 없었다. 기억에는 없었지만, 아리스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하나뿐이었다.


마왕으로 각성한 뒤에, 그대로 폭주해서 의식이 날아갔을 때. 아마, 그때의 내가 아리스에게 뭔가 했던 모양이었다.

당시의 기억이 전혀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지만.

뭐,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그녀의 말대로, 내가 마왕인 것은 사실이었다. 외도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하는 짓을 보자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싫다는 것을 억지로 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니까.


그러니까.


 더 마왕다운 일을 해볼까.

“읏...”

아리스의 턱을 집어올리고서, 그녀와 눈을 마주한 채로.

카마수트라를 활성화시켰다.


“흡♥ 읏...♥ 흣...♥♥”


 손으로 입을 가로막은 채, 얼굴이 시뻘게진 아리스가 보였다.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저러고 있는 아리스를 보니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입 사이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삼키고 있는 소녀를 본다면 누구나 마음이 약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좀 더 빨리, 솔직하게 되고서 편해지라고.


“에네스타.”


“네, 나의 주♥”

이름을 부르자, 아리스의 허리 위에서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던 에네스타가, 잔뜩 흥분한 듯 헐떡이며 대답했다.


나는 아무리 봐도 흥분할 요소가 없어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음마라는 종족의 특성 때문인지, 에네스타는 아리스를 괴롭히는 일로 잔뜩 흥분해하고 있었다.

지금도 나에게 대답하는 와중에 에네스타의 꼬리가, 아리스의 목덜미를 스쳐지나갔다.

“흐으읍?!”

퍼뜩하고, 아리스의 몸이 발작하듯이 흔들렸다. 목덜미를 자극당한 아리스의 귀가 새빨갛게 변하는 것도 보였다. 끝끝내, 입을 틀어막은 손을 떼어내지 않았지만.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내가 만약 아리스였다면 진작 포기했을 게 분명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음마의 공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당해본 내가 더욱  알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의 아리스는 나때랑은 비교도 할  없었다. 그런데도 여태껏 버텨내고 있는 아리스에게 존경심마저 느끼며, 내가 말했다.


“아까 발바닥 건드렸더니 반응 좋던데, 다시 해볼래?”

아리스가 아닌 에네스타에게.


“알겠습니다♥”

내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서. 몸을 돌리는 에네스타가 보였다. 그런 에네스타의 행동에 아리스가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저항은 무력했다. 같은 검주라고 하더라도, 에네스타가 훨씬 강했고 제압까지 당한 상태에서 아리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어렵지 않게 아리스의 다리를 붙잡은 에네스타가 입을 열었다.


“후후...♥ 이번에는, 무슨 글자를 써볼까...”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되지, 아까도 그랬지만 발바닥만 보면 거기다가 뭔가 적어대는 에네스타에게 말했다.

“너무 장난치지는 말고, 적당히 해 적당히.”


“알겠습니다, 나의 주♥”


정말로 알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답만큼은  하는 에네스타를 보고서, 이번에는 아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슬슬 포기하고 나랑 대화하는 건 어때?”

그런 내 말에 아리스가 옆에 앉아있던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강렬한 거절을 표현하듯, 고개만을 세차게 내젓는 아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거절조차, 입도 뻥끗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에네스타가 본격적으로, 아리스의 발가락을 건드리기 시작한 뒤에도, 입을 틀어막고서 저항할  도무지 포기할  같지 않았다.

대체 뭘하나 에네스타 쪽을 바라보면, 꼬리의 끝으로 아리스의 발바닥에 무언가 적어대고 있었다.

물감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맨발에 그러는 거라 뭐라고 적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다시 아리스 쪽을 보면, 에네스타의 발바닥에 닿을 때마다 움찔움찔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으려하는 아리스가 보였다.

그렇게까지 나랑 대화하는  싫다는 건가...


조금 슬픈데.

“...그럼  올려 볼까나.”

"흐읏♥♥♥"

그렇게 말하자, 입을 틀어막은 아리스가 흐느끼듯 신음을 토하며 날 바라봤다.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눈물이 맺힌 아리스의 회색빛의 눈동자를 보며, 내가 말했다.


“왜? 갑자기 대화가 하고 싶어진  아니지?”


혹시나 싶어서 그렇게 묻는 내 말에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하는 아리스를 보였다. 아무래도 괜한 기대를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으니, 눈앞에 떠오른 창을 바라봤다.

기능 ‘카마수트라’에 포함된 여러 효과 중의 하나가 활성화되면서 떠오른 창이었다. 그렇게 떠오른 창에서 보이는  가지를 건드리자, 귓가에 익숙한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카마수트라’의 특수효과 ‘조교’를 발동중입니다.]


[현재 대상에게 적용된 설정은 ‘애태우기’ ‘감도 500%’ ‘절정불가’입니다.]

[‘아리스 라 브란데냐 블론드 데 드네아’에게 적용된 설정을 변경하시겠습니까?]


변경.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이내 알림이 들려왔다.

[대상에게 적용된 설정을 변경합니다. 변경할 설정 값을 정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알림과 함께, 눈앞에 떠오르는 수많은 설정들이 있었다. 흥분도 증가부터 시작해서 강제 절정, 발정, 음란 같은, 상대에게 강제로 상태효과를 부여하는 것이나.  밖에도 대상의 움직임을 강제하게   있는 것도 있었다.


처음에는 별 거 없었던 설정들이었지만, 그동안 아리스에게 한 게 있어서 그런지 점점 늘어나더니, 대충 살펴봐도 100가지는 훌쩍 넘게 잔뜩 늘어나 있는 걸 보며, 옆에 있는 아리스를 바라봤다.


나도 나였지만, 얘도 얘였다.

이렇게 될 때까지, 용케도 버텨냈다 싶었다.


그런 내 눈에 띠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의 조교? 로 새롭게 추가된 모양인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설정 중 하나였다.


강제 성교.


그것도 기승위였다.


아무래도 이걸 고르면, 그동안 쌓아왔던 조교 포인트? 같은게 전부 소모되는 모양이었지만. 여태까지 행동을 강제하는 설정들… 수음이나, 구강성교, 자위와는 달리 직접적으로 나와 성교를 강제하게 하는 설정이었다.

음...

만약, 여기서 이걸 고르면 어찌 될지 궁금했다.


할 생각은 없었지만.

괜한 생각은 버리고서, 본래 하기로 했던 거나 수정하기로 했다. 괜히 눈앞에 떠올라있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한번쯤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래도, 슬슬 마냥 기다리는 것도 귀찮고 하니...

현재 500%로 설정되어 있던 민감도를 단번에   배로. 1000%으로 맞춘 나는 눈앞에 떠올라 있던 창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대상에게 적용되는 설정 값이 변경됩니다.]

[현재 대상에게 적용된 설정은 ‘애태우기’ ‘감도 1000%’ ‘절정불가’입니다.]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을 들으며. 에네스타에게 말했다.


“다시 시작해.”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나의 주?”


발쪽이  잘먹혔지만, 그런데도 잘만 버티고 있는 아리스를 보며 내가 말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돌아가볼까. 허리부터 시작해보자, 에네스타.”


원래 이런 건 결국 순정이, 기본이 중요한 법이었다. 새롭게 설정한 만큼,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네스타가 천천히 아리스의 허리에 손을 뻗었다.


아리스의 허리를 간지럼 태우기 위해서.


그리고 그때.


머릿속에 웅웅하는 소리와 함께, 에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느 때와 같은 목소리로. 알림과 비슷하게, 머릿속에 울리는 에루나의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큰일났습니다. 주인님.]

큰일이라니, 대체 무슨 큰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아니, 애초에 이런 게 가능한지도 몰랐다. 마법의 일종인  같기는 한데...


그리고 그런 나에게, 에루나의 목소리가 말했다.

[걸렸습니다.]

딱 한마디.


주어도 뭣도 없이, 걸렸다는 그 말과 함께.

우우웅, 하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공간 너머에서 누군가가 넘어오는 것도.


주시자의 눈이 없어서, 지금 공간을 넘어오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누가 오고 있는 건지  수 있을  같았다.

이미 지금의 상황을 숨길 시간도, 방법도 없는 내가 무심코, 옆을 바라봤다.

그런 내 눈에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는, 땀으로 젖은 옷 너머로 몸매의 윤곽이 훤히 드러난 아리스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서, 등을 돌리고 있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로, 그런 아리스를 간지럼 태우는데 열중하고 있는 에네스타도 보였다.

에네스타도, 움직이기 불편한 갑옷은 옆에다가 벗어던진 채였다. 그리고, 그동안 아리스를 괴롭히면서 혼자 멋대로 흥분해서.

그런 에네스타도 땀으로 젖어서, 딱 달라붙은 옷 너머로 단련된, 육감적인 몸매가 훤히 드러나고 있었다.

둘 다 알몸은 아니었지만, 알몸만큼이나 위험한 모습이라는 거였다.


“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란 건 확실했다.

“조졌군.”

나지막하게.

현실을 받아들인 나는 무척이나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공간을 넘어온 크리샤의 모습이.

잔뜩 화가  크리샤의 모습이.

 눈에 비쳐보였다.


"정말로 조졌군."


단단히 화가 났는지, 검게 일렁거리는 그림자들을 달고 온 크리샤를 보며, 나는 다시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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