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0화 〉150화 (150/370)



〈 150화 〉150화

"정말로..."

푸스스...


머리 위에서 지지직하고 흐르는 전류와 함께, 검은 연기를 피어올랐다.

마지막으로 맞은 전격마법... 아니, 마지막은 전격마법이 아니라 화염마법이었던가? 아무튼 마지막으로 맞은 마법에 의해 타오른 옷가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였다.

어쨌거나, 온갖 마법으로 두드려 맞은 내가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안했다니까..."

아프지는 않았다. 다행히 가끔씩 일을 하지 않는 특성, 차원을 넘은 자가 이번에는 제대로  해줘서, 내가 미처 베지 못한 마법들에 두들겨 맞아도, 데미지는 없었다.

거의 대부분 베지 못하고 맞기는 했지만 데미지는 없었다는 거다.

문제는 데미지만 없었을 뿐이지, 불타오르고, 전기로 지져지고, 찔리고, 얻어터지고, 날아간 끝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거기에, 안 그래도 불멸자의 심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지금의 나로서는, 아무리 개변자로 능력치를 몰아줄 수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최대 500%까지 능력치를 뻥튀기해주는 불멸자의 심장에 비해 투기는 고작 200%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력을  수 있는 주시자의 눈으로 어디서 마법이 날아올  미리 볼  있던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즉,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버텨볼만하기는 커녕 그냥 인간 모양의 과녁에 불과했다는 거였다.

그나마 투기로 뻥튀기 한 능력치를, 개변자로 체력에 능력치를 몰빵하고, 마법에 맞을 때마다 호신의 방패로 일차적으로 충격을 줄여주고 투신으로도 한차례 더 피해를 막기까지 해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결국은 전부 헛수고였다.

크리샤가 쏘아 보내는 마법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많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데미지는 없었는데 마법에 얻어맞고 이리치고 저리치고, 마치 채집통에 갇힌 벌레가 된 것 마냥 이리저리 튕기고 다닌 끝에 지구력이 바닥을 쳤다.

육체적인 데미지는 둘째 치고 정신적으로 피로해져서 지쳐버린 거였다.


날아다니던 도중에 어지러워서 구역질까지 했을 정도였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어떻게든 목을 넘어오려던 것을 삼키기도 했고. 나에게는 다재다능한 특성, 개변자가 있었다. 지구력이 바닥나더라도 생명력을 소모해가며 한계를 넘어서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지구력이 바닥났음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크리샤의 마법을 피하거나, 받아내는 것이 가능했다는 소리였다.

근데 그게 끝이었다.

바닥난 지구력을 시작으로 생명력까지 소모하게 됐지만 처맞는건 변하지 않았다. 멀쩡할 때도 처맞기만 했는데 한계를 넘어서서 움직인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좀  오래 맞게 됐을 뿐이다.

결국 생명력마저 바닥을 기게 되자 나는 항복의 표시로 주저앉고서 양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상태창을 펼쳐보자 마력까지, 그림자의 손이나 그림자 광휘를 사용한 탓에 아슬아슬한 정도로 떨어진 상태였다.


겨우 의식만 붙들어 잡을 정도의 마력과, 생명력밖에 남지 않게 됐다는 거다.

항복하는게 당연했다.


이이상은 목숨이 위험했다.


 이상 꼼짝도  수 없어진 나는, 크리샤의 처분을 기다렸다. 정말로 억울했지만. 결백을 주장하는 것도 이제 힘들어서 못해먹겠다.

그런 나에게 크리샤가 다가왔다.


날 때리면서 화가  풀렸는지, 조금은 진정한 듯한 크리샤가 엉망진창이 된 내게 물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안했다는 거지?"


"그렇다니까..."


어느정도 이성이 돌아온 크리샤가 묻는 말에, 겨우 숨을 돌리며 그렇게 대답하자, 눈살을 찡그린 크리샤가 말했다.


"근데 왜 여기에 온건데? 아니, 그전에...  년이 여기에 있는  어떻게 안건데?"


아무래도 에루나가 걸렸다고 말한건 내가 여기에 있다는걸 걸렸다는거지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들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건 다행인...가?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아리스를 부르는 호칭도 바뀌어 있었다. 인간에서 여자로 바뀌더니 이제는 저 년이었다.


험악해진 아리스에 대한 호칭과는 달리 아까보다는 조금은 진정한 듯한 지금의 크리샤가 더 안전해보였지만.

어쨌거나 지쳐서 더 이상은 생각하기도 귀찮았다.

"그냥... 대화 좀 하려고..."

솔직하게, 크리샤에게 사실을 밝히자 크리샤의 표정이 의혹으로 가득 차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언뜩 엿보이는 질투심도.

표정에서 엿보인 크리샤가 말했다.

"대화는 왜? 역시... 너,  년이 마음에 든거지?"

자꾸 년,  하지마라.

고개를 돌리자 듣는 년, 아니. 아리스가 크리샤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봐, 쟤도 기분 나쁘다잖아.

그냥 내가 쳐다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딜 봐?"

뿌드득, 하고. 아리스의 표정을 살펴보던 내 얼굴을 그림자의 손으로 꺾어 돌린 크리샤가 그렇게 말했다.

목이 빠질 뻔했다.

조금이라도 버텨볼 작정으로 체력으로 몰빵한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정말로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목에서 나면 안 될 것 같은 굉장한 소리가 났다.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서슬퍼런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크리샤 때문에 확인도 못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크리샤가 말했다.

"나랑 말하는 중이었잖아.  자꾸 딴데 봐?"

"볼 수도 있지..."


"닥쳐."


넵...


"내가 하는 말에 대답이나 해. 그게... 너랑, 저 년이랑 앞으로 어떻게 될지 결정할 거니까."


서슬 퍼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를 보고서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너,  년이랑 대체 무슨 관계야?"


"관계라... 복잡하지."


그 말과 함께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는 크리샤를 보고서 곧장 말을 고쳤다.


"칼빵 맞은 사람이랑 칼빵 놓은 사람이지. 암, 복잡하게 얽힌 사이라고 해야 하나."


잘못 말했다가는 그대로 이승과 작별할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진작에 죽었겠지만. 그만큼 크리샤의 마법에는 가감이 없었다. 쏘아 보내는 마법들은 하나같이 중급마법 이상의 마법들이었다.

내가 하도 맞는데 도가 터서 그렇지 자칫 잘못했으면 하나라도 제대로 적중한게 있었더라면 지금 남아있는 생명력도 바닥이 났을지도 몰랐다.

죽을  했다는 소리였다.

...아마 진심으로 죽이려 들었을 던 걸지도 몰랐다.


아리스와 에네스타를 보호한답시고 일부로 맞은 것들을 제외하더라도, 크리샤의 마법 하나하나에 살기로 가득 찼었으니까.

만약, 크리샤의 이성이 돌아오기 전까지. 내가 버텨내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마도...

그 뒤에, 크리샤도 미쳐 날뛰었을 거다.

마룡.


언젠가 에루나를 통해 들었던 드래곤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사랑하게  존재를, 억지로 바꾸려고 시도했다가... 결국에는 이지를 상실해버린 연인을, 한낱 아룡이, 짐승이 되어버린 연인들을 보면서, 미쳐버린 드래곤.


자신이 연인을 위해 해줬던 것들로 인해 파멸해버린 것을 지켜보다가, 미쳐버린 드래곤.

수명의 차이로 먼저 죽어버린 연인을 보며, 슬퍼하다가 결국에는 미쳐버린 드래곤.


유구한 드래곤의 역사 중에서 손으로 꼽을 만큼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의 일들이었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사실들.

마룡이라 불리었던 광룡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리석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의 크리샤를 보자 그런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더 바보 같다고 여겨졌다.


아무것도 몰랐던 것은, 바보였던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내가 어리석다고 여겼다는 것은, 인간들도, 나도, 그 누구나에게도 가능성이 있는 일들이었다.


그들도, 우리랑 똑같았다.


최강의 생명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은 똑같은 거다.


그들은, 순수하게.

그저 사랑했을 뿐이었다.

사랑을 했을 뿐이었다.

연인에 대한 강한 집착.

질투심.

독점욕...

그 모두가.

그저 사랑에 대한 것에는 전혀 무지할 뿐인 드래곤들의 애정표현의  방식일 뿐이었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저 무지하기에 그렇게밖에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사랑하니까 곁에 있고 싶다.


사랑하니까, 연인이 다른 누군가와 같이 있는  보고 싶지 않다.


사랑하니까, 계속해서 함께 있고 싶다.


모두가 당연하게 느끼는 감정을, 그들 또한 느꼈을 꺼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연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해줬을 뿐이었다.

근데 그게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스케일이 커서 그럴 뿐이었지.


문제는 그 사실을 드래곤들이 전혀 몰랐다는 거였다.

적당이라는 걸 모른다는 거였다.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알 필요가 없으니까.  생각이 없었으니까. 사랑이란 것을 그들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여겼으니까.

자신들의 자식들조차도.


일개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드래곤들이라는 종족이었다. 자신들의 목숨이나, 동족의 목숨조차도. 필요하다면 소모품처럼 여길  있는 것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감정보다도, 이세계의 안위를 우선시했다.


질서자들.


그들에게 사랑이란 것은 불필요한 것.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드래곤들은 자신 스스로조차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혼란스러워한다.

지금의 크리샤가 그런 것처럼.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니까 혼란스러워할만 했다.

즉, 가중이란 게 없다는 소리였다.


선물이랍시고 10만이 넘는 사람들을 통째로 넘겨준다던가, 하늘에 떠다니는 성을, 섬으로 마개조한다던가...


더욱이, 방금 크리샤의 질투심에 황천을 구경할 뻔한 내가 가장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드래곤들마저 그들 스스로도 엄중하게 따지고 들었던, 그들 종족의 본능 때문에. 그들은 사랑이란  해본 적이 없었다.


지나치게 강해서,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도 모르는 서로간의 싸움을 처음부터 배제해버렸기에, 그들은 사랑에 대한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다.

덕분에 이번에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새삼스레  수 있었지만.


내가 얼마나 살얼음판에 서있는 지도.


하나의 드래곤에게 사랑받는 것도 이렇게 목숨이 위태로운 일인데, 나는 무려 일곱이나 되는 드래곤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선대의 드래곤들이 고작 여섯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혹시라도 있을 지도 모르는 사태 때문에 번식의 의무를 뒤로 미루고만 있다가, 마왕의 저주로 멸종할 처지에 놓였던 것이 이해가  정도였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자기네끼리 싸우다가 멸족할 판이였으리라. 하필이면 남자 셋, 여자 셋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가 누굴 좋아하는지도, 드래곤들의 성격상 표현할리도 없었을 테고 서로 누가 누굴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을 테니까.

만에 하나라도,  사람을 두 사람이, 혹은 세 사람이 동시에 좋아했더라면.

그것이 아니더라도, 서로가 다른 상대를 좋아하고 있던 거라면.


그 사실을 들키는 순간 전쟁이었다.

지뢰 찾기도 그런 지뢰 찾기가 없었을 것이다.

음...

나라도 평생 동정, 처녀로 살지언정 연애라도 할 생각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을 것 같았다.


죽는 것보단  편이 나을 테니까.

생명으로써 당연한 본능인, 연애감정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던 드래곤들은 사실 이런 사실 때문에 일부로 관심이 없는 척이 한 게 아닐까...?


한번 섹스에 맛들인 루시아나 크리샤가 지나치게 쾌락에 충실한걸 보면 그것도 맞는 것 같았다.

“딴 생각 말고,  말에 대답해. 그래서... 저 년이랑 무슨 사이냐니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내 앞가림부터 해야 했지만.

이럴 때,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봤다.

도무지 좋은 생각이 나질 않았지만. 일단 생각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 걸려도 좋지 않았다. 내가 고민을 오래할수록, 크리샤의 오해가 깊어질  분명했다.


우선...

“그런데, 크리샤.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뭔데?”


내 물음에 다행히 대답해주는 크리샤를 보며 내가 말했다.


“나랑 저...”

왠지 아리스라고 말했다가는 뭔 일 날 것 같아서, 크리샤를 따라 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년이라고 하는  조금 그래서, 순화해서.

“여자랑 무슨 사이인지, 뭔지가 그렇게 중요한 거야?”

“뭐...?”


우선 시간을 끌어볼 작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말문이 막히는 크리샤가 보였다.

으응...?

뭔가, 먹힌 것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말에 혼란스러워하는 크리샤가 보였다. 그런 크리샤의 상태창을 열어서, 이제는 훤히 알 수 있는, 크리샤의 감정을 읽어봤다.


‘그야, 싫으니까. 네가,  몰래 다른 여자랑 있는 게 싫으니까...’


귀여워.

크리샤가 어째서 말문이 막혔는지 알 수 있었다. 차마 자기 입으로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도저히 입을 열수가 없었던 게 분명했다.


다른 드래곤들, 내가 알고 있는 드래곤은 루시아뿐이긴 하지만, 아무튼 루시아에 비하면 자존심이 강한 크리샤였으니까. 그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크리샤의 감정을, 생각을 읽어낸 덕분에.


중요한 키워드를 얻었다.


크리샤가 단순히 내가 아리스와 같이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보다는, 자신 몰래 이런 짓을 저질러버린 사실에 더욱 분노했다는 것을 알  있었으니까.


사실, 단순히 내가 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것이 싫었던 거라면...

에네스타나 에오시스 자매들과도 몸을 섞었을 때 이미 나가리였을 테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 생각을 해보자.

아니지.

생각을  때가 아니라.

지금은 행동을 할 때였다.


“크리샤.”

이름을 부르며, 벌떡 몸을 일으키자 움찔하고 놀라는 크리샤를 잡아당겨서, 그대로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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