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157화
레무르가 그런 나를 겁도 없이 맹수의 갈기에 손을 대는 사육사를 보는 듯한 눈으로 보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조금 위협받았다 쳐도 이렇게 귀여운 니아를 그런 눈으로 보다니 너무한 녀석이었다.
“마야, 너도 그만 진정하고.”
니아도 어느 정도 진정했다 싶어서. 그 다음으로 니아와 마찬가지로, 내 감정에 의해 흥분했는지 레무르를 공격할 준비를 하던 마야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무는 게 아니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니까. 특히 네가 힘을 사용할 때는 니아보다 조심해야하는 걸 잊은 건 아니지?”
“네, 주인님. 명심하고 있어요.”
내 말에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며 가볍게 숨을 토하는 마야가 보였다. 그저 그 뿐이었다. 보다시피 별 다를 바 없이, 그저 한숨을 내쉰 듯 보이기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야의 주변으로 우웅하고, 미약하게 떨리는 공기가 보였다.
대체 뭔 짓을 하려고 했던 거니, 마야야?
아무튼, 잘 해결된 것 같으니 다행이긴 한데... 그런 생각을 하며 마야를 보고 있자니 니아 때와 마찬가지로 마야의 정보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정보창」
「이름 : 마야」
「칭호 : 판의 후예, 타락한 신수」
「성별 : 여성」
「나이 : 13세」
「직업 : 악사, 음유시인, 시녀」
「종족 : 하프 판」
「근력 : 79(B)」
「민첩 : 83(B)」
「체력 : 88(B)」
「지력 : 62(B)」
「마력 : 52(C)」
「매력 : 81(B)」
「행운 : 41(D)」
「생명력 : 880/880」
「마나력 : 520/520」
「지구력 : 89%」
「고유 특성 : 천상의 목소리(B), 지옥의 목소리(B)」
「보유 특성 : 이면의 짐승(A), 가희(B), 시녀(C), 마력 의존(D)」
「보유 기능 : 가창(A), 연주(B), (C), 초음파(C), 요리(D) 가사(E)」
「상태 : 흥분 (아차... 조금 실수했네요...)」
「호감도 : 100」
「충성도 : 100」
니아와 비교해서, 상당히 빈약하다 싶은 마야의 능력치가 정보창을 통해 보였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마야의 힘은 단순하게 능력치로 표기되는 걸로 판단하면 안되는 범주의 것이라는 걸 말이다. 당장 니아와 마야가 붙는다면... 마야가 지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뭐... 마야의 힘은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으니 그런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니아가 루갈이라는 종족이 그 신체자체만으로 흉기였다면 마야는 그런 니아와는 조금 다른 타입이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야의 공격수단은 음파였다. 정확히는, 입을 통해 토해내는 소리 자체가 무기였다.
단순한 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물리력이 담긴 소리를 발산하는 마야는 어찌 보면 니아보다도 위험했다. 여기서 레무르를 공격한답시고 그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아마, 이 주변에 있는 약한 종족들의 태반이 싹 다 마야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어 죽어버릴 테니 말이다.
하프 판의 목소리에 깃든 힘이 단순히 물리력만이었다면 레무르에게만 데미지를 주고, 그 외에는 조금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했을 테지만...
그런 것이 아니니 문제였다. 마야는, 정확히는 하프 판은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상대의 감정을 멋대로 바꾸거나, 이상한 환각을 보이게 해서 공포에 질리게 하거나, 상처를 치유하거나, 오히려 상처를 벌리거나 하는 등 다양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레무르를 공격하려던 것만큼,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나 식물들이 잘 자라게 한다거나 하는 이로운 효과는 없었을 테니, 마야의 목소리가 닿는 범위 안에 있는 대상 모두에게 광역으로 피해를 줬으리라.
그리고 그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니아와 마야가 붙는다면 니아가 이길 거라고는 했지만 상황이 달라진다면 힘의 역학관계가 단숨에 뒤집혀버리는 것이 니아와 마야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경우라면, 피할 수도 없는 공격이 가능한 마야의 승리, 붙어 있는 경우라면 니아의 승리라는 거였다.
즉, 마야도 만만치 않게 강하다는 거였다. 비록, 한정된 공간... 연병장에서만 싸웠으니 마야가 니아에 비해서 힘을 못썼을 뿐이지.
대련이 아닌 상황이라면...
물론, 둘이 싸울 일 자체가 일어나면 안되겠지만.
응,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됐다.
그런데 마야의 생각을 읽었을 때,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실수라니 무슨 실수...? 뭐, 별다른 일은 없었으니 아무 일도 아닐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른 손으로, 니아와 마찬가지로 마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진정시키다가 어느 정도 둘이 진정했다 싶었을 때 레무르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레무르. 다른 종족들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레무르를 보며 그렇게 묻자.
그런 내 말에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를 보고 있던 레무르가 다급하게 말했다.
“마, 말씀드릴 테니 부,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크리샤 클레오시여...! 그러니까 제발, 제 주변에서 떠도는 유령 좀... 히익!”
말하다 말고, 무언가 몸에 닿았다는 듯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빠지는 레무르가 보였다.
유령이라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대체 뭔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
음...
나는 마야를 바라봤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마야가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 보였다.
마야.
하프 판.
소리를 통해서, 상대에게 환각을 보여주거나, 공포에 질리게 할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진 종족...
“...마야야?”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런 마야를 부르자 내게 꾸벅하고 다시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마야가 저렇게 사과하는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착각한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지금 마야의 행동으로 레무르가 이상한 것을 본 것 마냥 휙휙 팔을 휘젓고 있는 것이 마야의 탓이라고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흐갸아아! 유, 유령이...!”
그리고 그런 마야의 듣고 싶지 않았던 사과와 함께, 상황이 심각해지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레무르와 마찬가지로 마야가 토해낸 한숨에 깃든 힘에 의해 환각을 보는 마물들이 혼란해빠져 날뛰는 소리가 말이다.
이윽고 우당탕탕, 하고. 그렇게 생긴 혼란에 지어지고 있던 건물들이 무너지는 소리도.
그런 내 귀에 익숙한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하고.
[뜻밖의 사고로 영지의 개발도가 3%만큼 저하되었습니다!]
[영지민들이 갑작스러운 환각증세에 불안해합니다. 영지의 치안이 감소합니다.]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영 달갑지 않는 알림의 소리가.
“......”
그런 내 눈에 마야의 고개가 더욱 깊이 숙여지는 것을 보였다.
한숨을 내쉬고서, 그런 마야의 머리를 어루만져줬다.
"별 거 아니니 상심하지 말아라. 건물이 좀 무너진거야 어차피 하루도 안되서 복구될 거고."
"하지만..."
차마 면목이 없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마야에게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야한다. 알겠지, 마야?"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야를 보고서, 숨을 들이켰다.
이것도 오랜만에 써보는 기분인데...
마야가 소리를 통해 힘을 사용한다고는 했지만, 나에게도 그런 유형의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있다는 것도 하나뿐이긴 한데.
마침 지금 같은 상황에 딱 좋은 능력이 있었다.
"조용ㅡ!"
굉음에 가까울 정도로 커다란 포효가 내 입 밖에서 튀어나왔다.
사자후.
여러 가지 복합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는 기능이었지만, 그 중 하나가 소리를 들은 아군에게 걸려있는 정신계 간섭을 해제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확률적으로 그런 것이긴 한데, 꽤 높은 편이니 상관없었다. 뭣하면 두어 번 더 사용하면 되고.
"모두 진정하라!"
연이은 사자후에 소란은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그런 내 귓가에 띠링띠링, 누가 상태이상 공포에서 해제됐다느니 뭐니 하는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그런 알림들을 무시하고서 말했다.
지금은 우선할 게 있었다. 먼저, 알림을 통해 들었던 것부터... 건물이야 방금 마야에게 말했던 것처럼 금방 복구가 가능하니, 중요한 것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알림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자후를 사용하며 외쳤다.
"정신이 든 자들은 부상자가 없는 지 확인하라, 무너진 건물에 깔린 자가 없는지 살피고, 중상인 자들이 있다면 서둘러 치료하라!"
내 명령에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내가 내린 명령대로 부상자나, 무너진 건물 밑에 깔린 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알림대로, 상당한 부상자들이 있었다. 아무리 소형마물이라고 하더라도, 어지간한 인간보다는 튼튼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탓에 대부분이 생채기나 가벼운 골절 같은 부상 이였지만...
그렇지 않는 것도 존재하는 법이었다.
"이쪽에 부상자가 있습니다!"
"그럼 빨리 치료해!"
"그, 근데 부상이 너무 커서..."
귀에 들려온 어수선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 탓으로 누군가가 크게 다쳤다는 소리에 서둘러 걸음을 옮기자 복부에 부러진 기둥이 박혀있는 코볼트가 보였다.
무너진 건물과 함께, 나가떨어진 기둥이 재수 없게도 그 코볼트에 배에 꽂힌 것이었다.
하필이면 부러져서 날카롭게 변한 기둥에 배가 관통당한 코볼트가 피로 얼룩진 손으로 그런 기둥을 부여잡은 채 끅, 끅하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이 헐떡이는 것이 보였다.
그때마다 움직이는 배로부터, 피가, 끊어진 창자가 울컥거리며 흘러나와서, 그 손을 더더욱 붉게 물들이는 것도.
"베, 베헤노스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코볼트를 보고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고블린이 다가온 나를 불렀다. 그런 고블린에 머리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내게 속한 마물. 이름 모를 고블린이 그 말에 눈에 띄게 안정되는 것을 보며.
"...치유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뒤늦게 허겁지겁 나를 따라온 레무르를 보고서 그렇게 묻자, 레무르가 비질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이정도의 상처를 치유할 정도의 실력자는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그래.
여기에 있는 녀석들 중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 녀석이라고는 기껏 해봐야 좀 뜨거운 불꽃을 내는 정도에 불과한 임프뿐이었으니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는 수 없었다. 나는 옆에 있던 에루나에게 말했다.
"에루나, 이 자를 치료해라."
"이 정도의 중상이라면 대치유를 사용해야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로써는 다섯 번 정도가 한계입니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어."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루나가 천천히 코볼트에게 다가갔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서, 코볼트에 배에 박혀있던 기둥을 손으로 붙잡아 뽑고는 곧바로 대치유를 영창하기 시작했다.
고위의 치유마법인 대치유는 팔 한 짝이 날아간 중상도 간단하게 회복시키는 마법이었다. 코볼트가 입은 부상은 꽤 심각한 것이었지만, 대치유라면 치료할 수 있을 거였다.
이걸로 저 코볼트는 살았다는 거였다.
다만.
이 코볼트처럼 재수가 없었던 이가 아직 몇이나 더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에루나의 말대로, 이 정도의 중상을 입은 것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고작 네 번이 다였다.
쏟아져 나온 코볼트의 피로 이루어진 웅덩이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마야, 저들이 다친 것에 네 책임은 없으니, 떨고 있지 마라. 그 대신... 네 능력으로 치유가 가능한 자들을 도와라."
우선 자신의 실수로, 누군가가 죽을 뻔 했다는 사실에 안색이 허옇게 질린 마야를 달래며 그렇게 말하고서 곧바로 에네스타에게 명령했다.
"에네스타, 에오시스 자매들을 소환해라. 간단한 치유마법은 아직도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마야를 도와 부상자를 치료하도록 해."
"네, 나의 주."
음마가 되어버린 탓에 본래 에오시스 자매들이 갖고 있던 능력이 꽤나 바뀌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간단한 치유마법은 사용할 수 있었다.
마야와 함께라면 어느 정도 큰 상처라도 죽지 않을 정도의 응급처치는 가능할 것이었다.
"니아, 너는 다른 이들과 함께 부상자들을 수색해라."
"네, 주인님!"
내 명령에 곧바로 움직여서, 무너진 건물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가는 니아를 보고서 시선을 돌렸다.
"......"
흘긋, 하고 나와 마주친 시선에 고개를 돌리는 아리스를 바라봤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레무르를 보고서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 꽤 있는 걸로 아는데... 재수 없게도 그런 자들이 마침 여기에 없는 모양이군."
대다수가 정령술에 능통한 엘프들과는 달리 마법에 능통한 산악 엘프나, 드리아데스, 그 밖에도 치유 능력을 갖고 있는 종족은 꽤 됐었지만, 마침 그런 녀석들은 이곳에 단 하나도 없는 종족들이었다.
그리고 그걸 운이 나빴다, 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닌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거였다.
물론, 지금의 사고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긴 한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굳이 내가 여기에 없었더라도, 사고는 언젠가 났을 지도 몰랐다. 그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고가 났을 때, 지금처럼 내가 근처에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면, 만약 비슷한 일이... 이보다는 작더라도, 누군가가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이 코볼트만해도 발견하는 것이, 치유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대로 과다출혈로 죽어버렸을 텐데.
그때 산악 엘프나 드리아데스 등, 치유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종족들이 옆에 있다면 금방 치료받고 살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꼬라지를 보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또 다시 사고가 나면, 누군가가 크게 다치거나 죽어버릴 것이었다.
그러니까...
대체 지들은 얼마나 바쁜 일을 하기에,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지 궁금해서라도 알아야겠다.
"레무르.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
"제, 제가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크리샤 클..."
"됐다. 내가 갈 꺼니까."
엉덩이가 무거워서, 차마 일하지도 못하고 있는 녀석들을 굳이 여기까지 달려오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간다면 비교적 건강한 내가 가야하는 게 맞겠지.
나야 건강한 거 빼면 시체인 몸이니 말이다.
"아, 그리고... 여태까지 그냥 넘어갔지만. 이곳에서는 나를 크리샤 클레오라고 부르지 마라."
"하, 하지만... 그러면..."
"레무르, 네 앞에 있는 건 나다. 크리샤의 반려도, 드래곤들의 반려도 아닌, 나."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나였다.
크리샤의 반려.
드래곤의 남편이 아닌, 나. 인간인 이지경이었다.
아니... 아니지.
이들에게 있어서, 나는 인간인 이지경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나는, 이 세계에서의 나는 인간인 이지경이 아니었다.
"베헤노스. 너도 알고 있다시피, 내 이름은 베헤노스다. 크리샤 클레오같은 것이 아닌, 이곳에 있는 이들의 주인인 베헤노스. 크리샤의 영지 안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이곳에서는 앞으로 그렇게 불러라."
나는 이 땅의 지배자이자, 마왕인 베헤노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