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159화 [4차 통곡의 벽]
꾸드득, 그림자들이 카울의 몸을 조여들었다. 더욱 강하게. 영창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내 의지를 따라 그림자의 손들이 제멋대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렇게 조여든 그림자에, 뿌득뿌득하고 카울의 몸 곳곳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소리만 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온몸에 둘러싸인 그림자의 손은, 하나같이 중급 마법에 준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근력 80상당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림자들의 손들이 사방에서 붙들은 카울의 몸을 쥐어짜내고 있었다.
"끄으으윽...!"
카울은 근력과 체력, 민첩 모두 80대 이상의, 그리고 다양한 전투와 관련된 기능과 특성을 보유한 강자였지만, 무저항의 상태인 채로 느닷없이 공격해오는 그림자의 손에 저항하지 못하고서. 그대로 들어 올려졌다.
조금만 더 흥분했더라면, 아마 그대로 카울의 사지를 뜯어버렸을지도 몰랐다.
니아와 마야 때의 일로, 사자심을 활성화중이던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그랬을지도 몰랐다.
사자심이 가지고 있는 효과 중 하나인 정신안정으로 순식간에 냉정해진 내가 카울을 보며 말했다.
"설명해봐."
"무, 무엇을..."
꽈아악, 하고. 입을 열던 카울의 목을 그림자의 손이 죄이는 것이 보였다.
“끅, 끄윽...!”
숨이 막히는 것이 한계에 이르렀는지, 카울이 필사적으로 그림자들을 손톱으로 긁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지간한 힘으로는 끊어지기는커녕 흠집도 나지 않는 것이 그림자의 손이었다. 하물며 끊어지더라도 금세 되돌아가는 그림자의 손은 그런 카울의 손톱에도 멀쩡했다.
내가 사용하는 그림자의 손은 크리샤의 것에 비한다면 약했지만, 일단은 같은 마법이었다. 크리샤의 그림자의 손과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걸 베어내려면 적어도 광휘나, 상당한 수준의 검주가 뿌리는 투기에 의해서만 베어질 뿐이었다.
카울처럼 단순히 힘이 세다고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거였다.
허옇게, 눈을 뒤집으며 기절하려던 카울을 풀어주고서. 나는 털썩 엎어진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카울을 내려보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설명해라, 카울.”
그런 내 말에, 그리고 그와 함께 주위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의 손에, 카울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주인님...”
그런 내 옆에 있던 에루나가, 들어 올리려던 내 팔을 붙잡았다.
“주인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진정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나를 말리려는 에루나를 바라봤다.
다름이 아니라, 그 에루나였다.
내가 노예란 존재를, 그리고... 그런 노예를 부리는 존재를.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에루나와, 루시아뿐이었다.
머릿속에 몰렸던 피가, 순식간에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들끓었던 충동을 억누르고서, 아마도 아까와 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을 마력을 다시 갈무리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하고서.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에루나에게 물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니, 무슨 말인지 말해봐."
그런 내 말에 에루나가 대답했다.
"...카울의 종족인 웨어울프는, 본래 놀 종족을 노예로 부리는 종족입니다. 놀 종족이 태생적으로 그러한 종족이기 때문이죠."
"태생적으로 노예라는 건 대체 무슨 소리야?"
"...인간도 비슷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에루나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었다. 하물며, 노예가 없다고만 알려진 시대에서도. 현대에서도 노예나 다름없는 사람들은 줄곧 존재해왔었다.
그리고 노예가 존재하던 시대에서는.
에루나가 말한 대로였다.
인간은 인간을. 무척이나 다양한 이유로. 정당화해서 노예로 부려왔었다.
에루나가 지금 한 말처럼. 태생적으로 이 자는 노예이다, 이렇게 주장하며. 인간을 노예로 다뤘던 것도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인 나는 에루나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에루나가 말했다.
"물론, 놀의 경우에는 인간이 그렇게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과거, 웨어울프들은 자신들에게 물린 이들에게 자신과 같은 특성을 부여하는 힘이 있었죠. 그렇게 웨어울프의 특성이 생긴 이들. 그들의 후예들은 지금의 놀 종족의 뿌리입니다. 그중에는 웨어울프와 같이, 힘을 위해서 스스로 자처해서 물린 자들도 존재했으니, 지금과 같은 관계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웨어울프는 놀들을 노예로 부릴 수 있었다는 건가.
같은 인간인데도,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이유로. 신께서 그렇게 만들었다느니 뭐니 하고 주장했던 과거의 인류에 비한다면 확실히, 좀 더 그럴듯한 이유였다.
다만, 그럴 듯하다는 거였지 납득이 된다는 건 아니었다.
"...다른 종족 중에도 그런 종족들이 있나?"
"적어도 주인님에게 복속한 자들 중에서는, 웨어울프말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려다가. 도대체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발치에서 엎드린 채, 갑작스런 내 분노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카울을 내려다봤다.
그림자의 손에, 이곳저곳 뒤틀린 뼈를 채 맞추지도 못한 채. 고통으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삼키고 있는 카울을.
"...에루나, 카울을 치료해줘."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루나가 나에 의해 온몸이 성한 곳이 없어진 카울을 치료하는 것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에클레나, 아모메슈.”
“네, 네!”
“말씀하소서!”
카울이 당한 험한 꼴에 겁에 질려있다가, 내 말에 화들짝 놀라서 대답하는 둘에게 명령했다.
“...한창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주거지역에 사고가 났었다. 너희는 너희 동족들을 이끌고, 그들을 구하라.”
내 명령에 고개를 푹 숙이며 부복한 에클레나가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나는 에클레나와, 나를 흘끔 바라보며 눈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떠나는 아모메슈가 보였다.
나는 이어서, 아직 남아있던 세 종족. 엔트와 하피, 슬라임... 그리고 놀의 대표에게도 둘을 도와서 부상자를 돕거나, 무너진 건물들을 치울 것을 명령했다.
놀의 대표만이 흘끔하고, 카울을 바라봤지만, 그것도 잠시. 네 종족은 내 명령에 가타부타 말없이 복종했다.
결국.
나를 따라온 에루나와 에네스타, 아리스. 그리고 카울 밖에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에클레나와 카울, 둘 중 누군가의 자리로 추정되는 의자에 대충 몸을 눕히듯이 주저앉았다.
“하아.”
무척이나 피곤했다.
이대로 그냥 잠이나 자버리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갑자기 피곤해진 것과 달리, 몸은 쌩쌩했다. 내 몸의, 단점 아닌 단점이었다. 지구력이 넘쳐나는 이상, 아무리 정신적으로 피곤하더라도 영 졸리지 않다는 것이 말이다.
결국 그저 의자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아버렸다. 새까맣게, 눈에 비치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피곤한 것이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 귀에, 에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울의 치료를 마쳤습니다. 주인님.”
“그래, 잘했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렇게 대답하자 조금 뜸을 들인 후에, 에루나가 내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단지 무척이나 피곤할 뿐이었다.
무척이나.
알고는 있었다. 에루나의 말대로. 카울의 종족인 웨어울프와 놀의 종족이 본래부터 그러한 종족이었다면, 나는 카울에게 화를 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쯤은. 애시당초 그러했다는데, 거기에... 아까 나와 눈을 마주쳤던 놀의 정보창에서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카울을 진심으로 걱정했다는 사실뿐이었다.
단순히 노예와 주인, 그런 관계였다면 그런 걱정을 할리도 없었다. 그것이, 저 두 종족의 관계일 뿐이라는 것을,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이 이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그렇게, 머리로는 이해했다.
웨어울프와 놀.
놀이라는 종족 자체가. 그 근원이 웨어울프에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사실을 당사자들끼리 납득하고 있다면. 노예로 부리던, 부려지던 간에 내가 관여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가슴 깊숙한 곳에서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마, 이미 발동중인 사자심이 없었더라면 진작 폭발했을 만큼. 속에서 부글부글하고,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이유 역시, 나는 알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단순히 내가 그걸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싫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시간동안 노예와 주인, 그런 관계였던 웨어울프와 놀에 관해서. 내가 분노할 이유가, 권리가 있는 걸까.
…아니, 권리는 있었다.
나는 저들의 주인이었다.
저들은, 내가 그렇게 하라고 말만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아주 조금, 강제력을 담아서. 노예로 부리는 것을 관두라고 명령만 한다면. 아마 저들은 오랜 세월동안 당연하게만 생각해왔던, 종과 주인의 관계를 단숨에 끊어버릴 게 분명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단 몇 마디.
명령만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단지, 그렇게 한다면... 내가 하려는 짓과, 같은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망할 놈의 인간들과 다른 점이 뭐가 있다는 걸까.
"......"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에 눈을 떴다.
“뭘 그렇게 쳐다보지?”
그리고 그 시선의 주인을, 아리스를 보며 물었다.
내 말에 움찔, 하고 뒷걸음질 쳤던 아리스가 이내 입술을 짓씹으며, 수치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여전히 그녀에 대한 정보창은 보이지 않아서 대체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따름이었지만. 그녀가 지금 분해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대체 뭘 분해하는 건지는 모르겠어도.
가만히. 나는 그런 아리스를 바라봤다. 여태껏 그녀가 내게 말을 먼저 걸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전까진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만, 복종의 쇠사슬에 의해서 강제로 대답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었다.
대체 아리스가 나한테 무슨 소리를 하려하는지 궁금해서, 혹은... 아리스가 지금의 날 보고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서 그녀의 말하기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자, 꾸욱 하고 다짐하듯이 주먹을 움켜쥔 아리스가 내게 물었다.
“대체,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죠? 저 몬스터가, 같은 몬스터를 노예로 부린다는 사실이. 당신이 그렇게까지 분노할 만한 이유가 되는 건가요?”
“......”
한나와 똑닮은 얼굴로.
그녀가 떠올리게 하는 얼굴로.
“그게 왜 궁금하지?”
“...언젠가,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 당신의 약점으로 보이는 것을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요.”
그런 아리스의 말에. 스르릉하고. 투기로 둘러싸인 에네스타의 검이 아리스의 목에 겨누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만둬, 에네스타.”
“하지만, 나의 주.”
“나는 그만하라고 했어.”
내 말에, 에네스타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도로 검을 거둬들였다. 여전히 아리스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에네스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명령한 이상 다시 검을 겨누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나는 가느다랗게, 에네스타의 검에 베인 목덜미로부터 피가 흘러내리는 아리스를 보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그런 아리스의 목에 타고 흐르는 피를 훑어내며 말했다.
“날 도발해서, 뭘 얻을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아리스. 지금 네 상황이, 여전히 이해가 안가는 건가?”
아리스의 피가 묻은 손끝으로. 그런 그녀의 뺨을 만지며 묻자. 그런 나를 노려보며. 아리스가 대답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냐. 난 또, 네가 목숨이 9개라도 되는가 싶었지. 시도 때도 없이 자살시도를 하려드는 것을 막으려니 점점 귀찮아지는데.”
“그럼 그냥 내버려두면 되지 않나요? 그렇다면... 이런 귀찮은 일은 없어질 텐데요?”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리스가 한나와 같지 않다는 것쯤은. 둘이 전혀 별개의 인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아리스가 나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면.
그녀와 똑같이 생긴 얼굴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아리스가 정말로 그 한나가 아닐까, 그런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아리스와 한나는 외모만큼. 성격도 무척이나 똑 닮아있었다.
알고 있었다.
아리스와 한나가 같은 사람이 아니란 것쯤은.
하지만.
그녀를 떠올리게만 하는 얼굴로, 그녀를 똑닮은 그 모습으로, 그녀를 추억하게 만드는 행동이나, 몸짓이나, 말로.
나에게 적의를 보내오는 아리스를 보고 있자니,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것이 폭발했다.
"왜? 너를 노예처럼 묶어놓고 기르고 있는 내가. 다른 이가 노예라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 그렇게도 놀랍나?"
싸늘하게.
스스로도 불합리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끼는 분노가 엉터리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데도...
사자심으로조차 누그러지지 않는 분노를 터트리며 내가 말했다.
"사람을, 사람이 노예로 부리는 것을. 목숨을, 삶을, 감정을. 돈으로, 폭력으로, 강제로 눌러서. 그대로 짓밟는 것에 내가, 네가 마왕이라 부르는 존재인 내가 분노하면 안되는 일인가?"
아리스를...
아니, 한나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가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다.
내게 웃으면서, 가이드를 자처했던 소녀를. 그 미소를 처음으로 봤을 때.
나는 그녀가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조금 돈을 밝힐 뿐인 소녀라고만 생각했었다.
지나치게 친화력이 좋아서, 난감한,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소녀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였다.
그녀는 조금 돈을 밝힐 뿐인, 여행객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며 돈을 모으는, 활기차고 쾌활할 뿐인 소녀가, 평범한 소녀가 아니었다.
한나.
그녀는...
내 첫사랑이었던 소녀는.
몸을 파는 소녀였다.
나와 같이, 여행 온 여행객을 상대로, 혹은... 어린 소녀의 몸에 성욕을 느끼는 쓰레기같은 작자들을 상대로.
몸을 팔아서, 빚 대신 팔려온 자신의 몸값을 갚아가고 있던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