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1화 〉161화 (161/370)



〈 161화 〉161화

두통이 몰려와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이, 계속해서 떠올라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리고 그런 나를, 아리스가 바라보고 있었다.


한나의 얼굴을, 그녀의 얼굴을 빼닮은 소녀가.

한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피로 얼굴을 더럽힌 소녀가.

그런 그녀가 보내오는 싸늘한 표정이, 나를  괴롭게만 했다.

그녀가, 한나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보내오는 경멸을 견디기가 괴로웠다.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라!”


도대체 어째서.

그런 눈으로.


어째서 그녀와 똑같은 얼굴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마.

꾸드득, 하고. 내 의지와 함께 움직인 그림자의 손들이 그런 아리스의  팔을 묶어 올렸다. 그림자의 손들에게 묶여 올려진 아리스가, 여전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림자들 중 하나가, 그런 아리스의 턱을 집어, 억지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아리스는 그런 그림자에게 저항하며. 여전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한나가 아님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타고 나은 재와 같이 회색빛이 감도는 눈으로.

나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그저 한참을 나를 바라보던 아리스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는 것이 보였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한숨처럼. 그렇게 내뱉은 아리스의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당신은 항상 그런 눈으로 절 보는군요.”


내가 그녀를 보며 한나를 떠올린 것을,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오는 아리스의 말이 내 심장에 쑤셔졌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지경님은 항상...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젠가, 그와 비슷한 말을 내게 해왔던 이가 한사람 더 있었다. 루시아였다. 이세계에서의, 내 첫 번째 연인. 루시아와 아리스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며 쓴웃음을 짓던 루시아의 모습이.

그녀가 그때 내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었는지, 나는 듣지 못했지만.   있었다.

알면서 모른 체 했다.


서로에게 상처만을 줄 뿐이니까.


루시아에게, 널 만나기 전에 사랑했던 여자를. 아직까지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령, 그 사실을 눈치 챘더라도. 밝힐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랬다.


그리고 그걸, 루시아 역시 용납해주었다.

‘그 여자를 그렇게 시녀로 두려는 이유...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거지?’

불안한 눈으로, 나와 밤을 보낸 뒤에도. 내게 그렇게 묻던 크리샤의 얼굴 또한,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그녀에게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저, 누군가가 나로 인해서 죽는 것이 싫다고만 대답했을 뿐이었다.

사실은 그런 이유가 아님을 스스로도 알고 있으면서.


그리고... 크리샤 역시, 사실은 그런 것이 이유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말을 믿을게. 그러니까... 날 사랑해줘’

끝에 가서는, 나에게 애정을 갈구하듯이.

그렇게 말해왔다.

사실은...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였다.

이미, 이곳에 와서... 나로 인해 죽은 이들이 열 손가락을 넘었다. 이제와서, 그런 것을 꺼려할 정도로 어수룩한 병신은 아니었다.


그저, 한나를 닮은 아리스가 죽는 것이 보기 싫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사실은 전부 알고 있으면서, 내가 모른 척하고 넘어갔던 것들의 진실은 실로 그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희들은... 그걸로 괜찮은 거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아이를 만든다니, 그걸로... 정말로 괜찮은 거야?’

그녀들에게 했던 거짓말들의 연장선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내 거짓말이.


그녀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

그것을, 그녀들을 위한 척. 계속해서 포장해왔다.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며.


아리스가, 그런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대체 누굴 떠올리면서, 나를 보고 있는지는 저는 몰라요. 하지만 확실한 건... 전,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거예요.”

나지막하게.


이미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을.


차갑고 싸늘한 목소리로.

“그러니까, 그만두세요. 당신이 나를 통해서, 마왕인 당신이 나로 인해서 누군가를 추억하고... 괴로워한다니, 그 사실이... 정말로 역겨우니까요.”


그녀의  밖으로 나온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들어 올렸던 팔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에루나였다.


“주인님.”

꾸욱, 하고. 팔에서 느껴지는 놀랄 만치 가벼운 무게에 고개를 돌리자,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에루나가 거기에 있었다. 나로 인해서 작아진 몸으로. 매달리듯이 내 팔을 붙잡고 있는 에루나가.


그런 그녀를 보고서.

들어 올렸던 팔을 천천히 내리며, 아리스를 바라봤다.

마치 죽음을 각오한 것처럼. 그런 내게서 여전히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나를 보고 있는 아리스가, 그런  눈에 비쳐보였다.


그 모습조차도, 한나를 닮았다.


그녀 역시, 한번 결정한 것은 죽더라도 고집하는 성격이었으니 말이다.

아리스 역시 그랬을 것이다. 실제로도,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이, 아리스의 표정만 봐도 알  있었다.

그리고, 에루나가 아니었더라면. 내 손은 정말로 아리스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아니, 손이 아니라... 내가 조금만 더 늦게 정신을 차렸더라면, 내 주위에서,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수십 개의 그림자들이 그녀의 몸을 꿰뚫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뒤늦게 후회했으리라.

“...고맙다, 에루나.”

내가 또 바보 같은 짓거리를 저지르기 전에 나를 말려준 에루나에게 그렇게 말하자.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 에루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의아해하고 있을 찰나, 에루나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로로에게도 칭찬의 말을 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로로?”

에루나의 말에 중얼거린 말에, 에루나와 반대편에서 로로의 대답이 들려왔다.


“...응, 나 불렀어?”


“......”

이쪽은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았는데. 로로 역시 나를 말리기 위해서, 내 팔에 매달려있는 것이 보였다.

“...너도 고맙다, 로로.”


그렇게 말하자, 로로의 표정이 드물게 펴지는 것이 보였다.

 모습에,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덕분에 정말로, 조금 편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에루나와 로로.


나와 영혼으로 결속된 두 존재.

나보다도 먼저, 내 감정을 읽고서 움직여준 둘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해하며. 아까보다는 피가 돌기 시작한 머리로, 천천히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아리스.”


우선은, 가장 먼저 사과해야할 이에게.

아리스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네 말이 맞다.  말대로... 너를 보며, 다른 이를 떠올린 것이 맞다. 너를... 너라는 존재로 보지 않았던 것 역시 맞다. 그 점을 사과하마.”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한나와 아리스가 같지 않다는 것을, 그저 우연히 닮았을 뿐임을.


그러니까 같을 리가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그녀가 이해할 수도 없고, 그녀의 이해를 바라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불합리하게, 그녀에게 분노를 터트렸던 것을. 그런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을 사과했다.

“...사과, 라고요?”

“그래.”

“마왕인, 당신이 사과를 한다고요?”

“...그래, 마왕인 내가 너에게, 아리스 드네아... 이름이 길군, 어쨌거나, 너한테 사과하는 것이 맞다.”

그런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아리스가, 이내 코웃음치며 말했다.

“역시 마왕, 당신네들은 사과할 때... 이렇게 사람을 묶어놓고서 하는가 보군... 읏...!”


“...그래, 그것도 내 실수다. 사과하마. 그리고... 이해는 하지만, 너무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게 좋을 거다. 괴로운 건 결국 너니까.”


나에게 적의를 보내며, 말하던 아리스의 목에 다시금 나타난 복종의 사슬을 보며. 나는 아리스를 묶고 있던 그림자의 손들을 치웠다. 그림자의 손에서 풀려나, 땅에 내려온 아리스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제 됐으니  모두 내려와 주겠어?”

여전히 내 팔뚝에 매달려있는 에루나와 로로에게.

“그렇습니까?”

그런 내 말에 폴짝하고 내려온 에루나가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주인님.”

“...로로, 너한테도 말한 거야.”

“...응.”

에루나에 이어서, 로로마저 내 팔뚝에서 내려온 뒤에야, 나는 아리스에게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미안하다. 아리스.”

아무래도, 카울까지 있는 곳에서 연이어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할 수는 없었지만.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내 말에, 아리스가 대답했다.

“마왕의 사과 같은걸, 받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 그렇겠지.”

복종의 사슬로 인해서, 내게 적의조차도 제대로 표출하지도 못하며, 그렇게 대답하는 아리스의 말을 들으며 그저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아리스가 알고 있는 나란 존재는, 마왕인 베헤노스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인간인 이지경이라고는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아리스의 입장에서는 나는 그저 마왕일 뿐이었다. 잔혹하고, 무도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마왕.


심지어 나는 그 마왕 중에서도 훨씬 규격 외의 것이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최강의 생물인 드래곤마저 홀리고서, 밑에 깔아뭉갠 마왕이었으니 말이다.


그것이, 그녀가 알고 있는 나였다.


설령 진실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아리스는 나를 그렇게만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검이, 내 심장을 찌른 것으로. 내 심장이 그녀의 검에 찢어발겨진 것을 계기로 내가 마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아리스가 알고 있는 진실이란. 내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며, 드래곤마저 속이고 연인으로 삼은 마왕이라는 것이었다. 나에게도 가물가물하기만  지난 일도, 그녀의 검에 찔렸던 내가 마왕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고 말이다.


당사자인 나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적어도 아리스에게는 그것이 진실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아리스에게 진실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자신이 본 것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본 것이란, 그녀의 검에 찔리고서... 마왕이 된 나였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것을 굳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두 눈으로  것을 진실로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솔직히 평범한 사람이 칼에 찔렸다고 마왕이 되는 것이 말도 안되긴 했다. 오히려 마왕이었던 존재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다가, 칼을 찔리고서 본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는 편이 훨씬 타당하기는 했다.


억울했지만, 그쪽이 좀 더 현실적인  맞았다.

물론, 그녀에게 진실을 밝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준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결코 그걸 믿지 않을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선한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녀는 선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왕인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서 동요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모습을 보고서 당혹해했다.

마왕인 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그녀는 이해할  없었음에도, 그런 나를 동정하고, 그 사실에 당혹해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혐오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내겐 부덕의 군주라는 칭호가 있었다. 로로에게 정해져있던 운명을 거둬들이면서 얻게  칭호가,  상태창에는 여전히 떡하니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칭호의 효과 중 하나는 선 성향을 가진 자들에게 혐오와 미움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내게 보내오는 적의는, 내가 마왕이란 사실 외에도, 내가 갖고 있는 칭호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가 선인이기에, 그녀는 나를 혐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걸려있는 복종의 사슬은, 끊임없이 그런 그녀를 괴롭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미안하다.”


다시 한 번, 그런 그녀에게 사과하며. 아리스를 바라봤다.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돌리는 아리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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