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8화 〉168화 (168/370)



〈 168화 〉168화

갑자기 나타난 아르카를 보고 내가 놀라고 있는 사이에, 크리샤가 그런 아르카를. 정확히는 나를 끌어안은 아르카를 보고서 역정을 내며 손을 휘둘렀다.


“당장 떨어지지 못해?!”

물론 단순히 손만 휘두른  아니었다. 순식간에 치솟은 그림자들이 그런 아르카를 향해 뻗쳐나갔다.


나도 있는데... 그야 당연했다. 아르카가 있는 곳은, 정확히 매달려 있는 곳은 내 등이였다. 아르카한테 그림자를 보낸다는 건, 나한테 그림자를 보냈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잠...”

크리샤?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나와 아르카에게 쏘아졌던 그림자들이 그대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림자들이 아르카에게 닿기 직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정작 아르카는 여전히 내게 매달린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림자들이 눈 깜짝하는 사이에 전부 소멸한 것이었다.


“살... 은건 아직 아닌 것 같네.”

그렇게 그림자들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샤의 그림자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며 계속해서 아르카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단지, 그 때마다 아르카에게 닿기도 전에 그림자들은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아르카가 뭔가 하긴 한 모양이었다. 이래서야 몇 번이고 그림자를 낸다하더라도, 아르카에게 닿을 리가 없다는 것도  수 있었다.


더욱 많은 그림자의 손들을 뽑아내더라도 같은 결과, 아니... 오히려 상황이 안 좋아질 뿐이란 것도. 그야, 가루가 되어 흩어졌던 그림자들의 위로, 초록빛의 넝쿨들이 자라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손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것도 기이한 광경인데 그렇게 바닥으로 흩뿌려진 가루 위에서 자라난 새싹이 순식간에 성장해서 사람 하나쯤은 가볍게 휘어감을 정도로 자라난 것을 실시간으로 보게  나는 어안이 벙해졌지만, 이내 납득했다.

크리샤가 대지와 공간 마법, 그리고 그림자 마법을 다루듯이 아르카 역시 마법의 종주, 드래곤이었다. 크리샤와는 다른 속성의 마법을 다루기는 하지만, 그 힘의 차이는 엇비슷하다는 거였다. 아르카의 경우에는... 대지와 물 마법의 복합, 지금과 같이 식물을 다루는 것에 능통한 모양이었고.

물론 개인의 힘은 최강의 용이라는 칭호가 있는 만큼 크리샤가 우위에 있긴 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곳은 아르카의 영지인 브란시아였다. 자신의 영역, 영지 안에서라면. 보옥으로부터 끊임없이 마력을 충당 받을 수 있는만큼 아르카가 당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단순히 마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크리샤야 워낙에 그림자의 손을 자주 다룬 만큼, 영창이 필요 없을 수준까지 이른 것이지만 사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최소한의 영창은 필요했다. 자신의 영지 안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이 아르카의 영지라는 것은... 지금처럼. 크리샤의 그림자 손들을 영창도 없이 지워 없앨  있다는 것이었다.

마력도 마력이지만, 다룰  있는 마법의 숫자에서부터 차이가  수 밖에 없었다. 능력적인 면에서는 몰라도 환경이 너무 안 좋았다.

그 사실을 크리샤에게 알려주듯이, 끊임없이 그림자들을 휘둘러오는 크리샤에게 아르카가 말했다.


“흐으응? 크리샤, 아무리 너라도 내 영지 안에선 날 이기지 못한다는 걸 까먹은  아니지?”

아르카의 사실적시에 뿌득하고 이를 간 크리샤가 여전히 그림자들을 아르카에게 쏘아 보내며 외쳤다.


“됐으니까, 빨리 떨어져! 지금, 당장!”


“왜애? 뭔가 문제라도 있어? 응?”

쿡쿡, 입가에 미소를 띄고 그런 그림자들을 지워없애며 말하는 아르카를 본 크리샤의 하얀 피부 위로, 꿈틀하고 혈관이 도드라지는 게 보였다.

제대로 빡친 크리샤가 사고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런 아르카에게, 여전히 내게 매달린 채 있는 아르카에게 말했다.

“아르카? 이쯤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뭐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데에?"


그건 그렇지.


무언가 하고 있는 것은, 엄밀히 따지자면 크리샤 쪽이 맞긴 했다. 아르카는 어디까지나 자기보호 차원에서 마법을 사용하고 있고, 이미 수십 개로 불어난 넝쿨들 역시, 아무 짓도 안하고 꾸물거리며 움직이고만 있을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르카인 것도 맞았다. 크리샤를 도발하듯이 내게 더욱 몸을 붙여오는 아르카와 마찬가지로 꾸물거리며  올리듯이 춤추며 움직이는 넝쿨들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그런 나를 본 크리샤가 외쳤다.

“넌 뭐가 좋다고 헤벌레하고 있는 건데?!”

헤벌레 안했다.

정말로.


지금 이 표정은 난감해하는 표정이지 절대 헤벌레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니, 뭐...

그냥 나를 껴안고 있는 아르카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좋다고는 생각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이고 정말로 헤벌레하지는 않았다.

마치  한 가운데에 나있는 꽃밭에 앉아있는 것처럼, 아르카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좋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생각만 했을 뿐이니 절대로 헤벌레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크리샤를 보던 아르카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목을 간지럽히듯 쓸어내리며 말했다.

“크리샤아. 그렇게 화만 내면 싫어할거라구? 봐아, 지금도... 이마에 주름까지 생겨서 말이지이?”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설마아, 나 때문에 그런 거라고는 하지 않겠지? 크리샤아? 아니지, 말은 똑바로하는 게 좋다구? 나 때문이 아니라... 이 남자 때문이잖아?”


나는 아무것도 안했는데요.


맹세코.

나는 아무것도 안했다. 터무니없는 모함이었다. 변호사를 불러줬으면 좋겠다. 문제는 그런 터무니없는 모함이나 마찬가지인 아르카의 발언에 크리샤의 기세가 움츠러들었다는 거였다.

“으...!”


“헤에...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거얼? 다른 누구도 아니고 크리샤가 이런 인간 때문에 쩔쩔 매는  보는 날이 올 줄이야아.”

“쩔, 쩔쩔매지 않았거든?!”

일단 크리샤의 편을 들어주고는 싶었지만, 저렇게 말을 더듬어가며 말해봤자 신빙성이라고는 전혀 없을 뿐이었다.


아르카의 입가에 띤 미소가 더더욱 짙어지는 것을 보니 확실했다. 할짝, 하고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포식자가, 모처럼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입가를 혀로 핥은 아르카가 입을 열었다.


“그래, 크리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이? 뭐어... 우리 중에서, 가장 인간을 혐오하던 크리샤가아. 그런 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인간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니. 정말이지 놀랐지만 말이야?”


“읏…! 그, 그래서 뭐! 불만이라도 있어?!”

그런 아르카의 말에 화악하고 얼굴이 붉어진 크리샤가 버럭하고 소리를 지르자 아르카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설마아, 불만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단지 궁금했을 뿐인거얼.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애... 크리샤, 네가 이 남자에게 빠진 건지 정말로 궁금했을 뿐이야아. 아니, 너뿐만이 아니라아... 루시아도 홀딱 넘어갔었지? 흐으응~? 너, 정말로 마법이라도 부리는 거 아냐? 아니지... 드래곤에게 마법이 통할 리가 없으니까 다른 거려나...”

크리샤의 혈압이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 빤히 보이고 있으니, 그 궁금증은 나중에 해결해 줄테니 부탁이니 지금은 조금 떨어줘졌으면 좋겠다. 나중가면 어련히 알게 될 것을 굳이 지금, 여기에서 해소하려고 하지 좀 말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소망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아르카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는지 장난치듯이, 그런 내 몸을 만지고 있었다. 콕콕 찌르거나, 어딘가에 스위치라도 달려있다고 생각하는지 꾸욱 눌러보거나 하면서 나를 만지작만지작 거리면서, 크리샤의 약을 올릴 대로 올리던 아르카가 후우, 하고 달콤한 숨결을 내게 내뱉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뭐어... 상관없나아. 어차피 나중에 가면 어련히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이? 루시아도, 크리샤 너도 그랬던 것처러엄, 나도  남자의 마법에 홀랑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아?”


스윽, 하고. 그렇게 말하는 아르카의 손이 옷 밑으로 파고들어서, 내 가슴팍을 만지며 순간이었다.


“ㅡㅡㅡㅡ!”

폭발하듯이, 크리샤의 주위로 공간이 일렁거리며 바람 하나 불지 못하는 방 안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아직까지도 주시자의 눈의 힘이 돌아오지 않아서, 마력을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크리샤의 주위로 얼마나 많은 마력이 모여들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모여든 마력은 갖가지 수식과 영창으로 엮어낸 마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물리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소재가 약한 것들은 그저 그것만으로 바스라질 정도로. 다행히 주변에 있는 것들은 나름대로 튼튼한 것 뿐이라 떨리는 정도에서 그치긴 했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였다.

가구들이, 벽들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이 흔들거렸다.

아니, 대단하다고   취소. 무시무시했다.

방금까지는, 드래곤들의 기준으로는 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이번 건 그런 범주를 가볍게 넘겼다는 것을 눈치가 없는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음...

아무래도 여기까지가 허용선인가보다.


이 이상은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나는 둘째 치고, 크리샤와 그녀의 뱃속 안에 있는 아이에게도 좋지 않았다.


옷 밑으로 넘어온 아르카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나를 보던 아르카가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지 크리샤를 놀리고 있는 와중에도 졸린 듯 반쯤 감겨 있던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이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그런 아르카를 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장난은 그쯤 해둬.”


“...흐으응, 확실히 바뀌긴 했구나아. 누구 솜씨일까나, 루시아? 크리샤?”


아마도 둘 모두일걸.


이렇게까지 된 건, 크리샤의 퀘스트를 클리어한 보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속으로만 그렇게 대답하고서. 가만히 아르카를 바라보자니,

나를, 정확히는... 아르카의 팔을 붙잡고 있는 내 손등을 시작으로 팔을 둘러싼 비늘을 보던 그녀가 김이 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떨어졌다.


“뭐어, 나도 크리샤랑 싸울 생각은 없고오, 피곤하니까 말이지이.”


보란 듯이 하품을 하며, 뒷정리도 귀찮거드은~하고 중얼거리는 아르카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드래곤 두 마리가 진심으로 맞붙는다면  뒤의 처리를 단순히 뒷정리라고  수 있을까 싶어서 저절로 나온 쓴웃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싸움을 걸어오면 피할 생각인 것도 아니었잖아?”

걸어오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던게 훤히 보여서 나온 쓴웃음이기도 했다. 뭐어, 크리샤의 성격이나... 이전의 모습을 보아할 때  사이좋게 지낸 것은 아니란  알  있었지만, 이렇게 보여주지 않아도 좋았다.

아무튼 그런 내 말에 의뭉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아르카가 말했다.

“글쎄에? 그보다 빨리 크리샤부터 말리지 그래? 아무래도 눈이 돌아간  같은데에?”

그 점이라면 괜찮았다. 이럴 경우의 크리샤를 단번에 정신이 들게 하는 마법의 주문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만큼 폭주하면 폭주했지 덜하지도 않았던 때에도 들어먹었던 마법의 주문이니 효과는 의심할 필요 없었다.

나는 입을 열어, 마법의 주문을 읊었다.


“크리샤, 너무 짜증부리면 태교에 안좋아.”

뚝, 하고.


한마디에 크리샤의 폭주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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