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5화 〉185화 (185/370)



〈 185화 〉185화

“...금방 구해 줄 테니까!”


결국 내가  수 있는 거라곤, 그렇게 위로하는 말밖에 없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는 슈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귓가에 알림이 들려왔다.


[가신 ‘슈슈’를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영지 ‘베헤모아’의 소속으로 편입했습니다.]


[‘슈슈’의 기능 ‘회계’로 인해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영지 ‘베헤모아’의 내정이 상승합니다.]


[‘슈슈’의 특성 '집사장'에 따라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영지 ‘베헤모아’의 정치가 상승합니다.]


일정 수준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 소위 말해서 ‘네임드’라 불릴 수 있는 슈슈를 영지에 편입시키자 그 영향을 영지가 받은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특성 ‘군주’가 발동합니다. 영지 ‘베헤모아’의 성장으로 일부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영지를 얻은 덕분에 생겨난 특성, 군주 덕분에 내 능력치 역시 상승했다는 알림이 귀에 들려왔다.

특성 '군주'는 특성 '마왕'과 비슷한 부류의 특성이었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인해 능력치가 상승하는 부류의 특성. 마왕이  휘하의 가신들, 부하들에 따라서 능력치를 얻는다면 군주는 내게 속한 영지가 발전함에 따라 능력치를 얻었다.


덕분에 방금 전의 걸로도 조금은 더 강해졌다는 거였다. 물론 슈슈 개인이 미치는 영향은 적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이었다.


내 영지. 물경 20만에 달하는 ‘도시’급의 영지를 통해 얻고 있는 능력치가  상당한 수준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영지를 말아먹으면 순식간에 약해진다는 거지만.

어쨌거나 능력치가 올라서 나쁠  없었다. 그렇게 슈슈를 다시 지옥의 일터로 떨군 내가 말을 이었다.


“다음은... 바록, 바쿠. 너희에게는 예전처럼 영지의 순회 및 치안 유지를 맡기마.”

슈슈와 마찬가지로. 잠들기 전에도 영지 관리... 까지는 아니더라도 순찰 같은 간단한 일거리를 했던 바록과 바쿠에게도. 그때와 같은 역할을 부여했다.

단지,

[가신 ‘바록’을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영지 ‘베헤모아’의 소속으로 편입했습니다.]

[‘바록’의 기능 ‘광투사’로 인해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영지 ‘베헤모아’의 군사력이 상승합니다.]

[‘슈슈’의 특성 '기사'에 따라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영지 ‘베헤모아’의 군사력이 상승합니다.]


[가신 ‘바쿠’를...]

그때는, 어디까지나 각성 전의 일이었다. 각성 이후, 반거인족이 되는 것과 동시에 마찬가지로 ‘네임드’가 된 바록과 바쿠에게 역할을 부여하자, 슈슈와 마찬가지의 알림이 들려왔다.


슈슈와는 달리 바록과 바쿠는 둘 다 군사력 수치만 엄청나게 올라갔을 뿐이지만 말이다.

이어서 마야에게도 역할을 부여했다. 다만, 마야의 경우에는 영지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마야에게 부여한 역할이라고 해봤자, 에루나가 했던 일. 슈슈에게 맡긴 ‘영지 내’의 일이 아닌, 천공성 자체의 일. 즉 가사일을 맡겼을 뿐이니 당연했다.


영지랑 관련 없는 일이니 말이다.

“저는요? 주인님!”

그렇게 바록과 바쿠에 이어서 마야에게도 역할을 부여하자 니아가 무척이나 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니아는...”


초롱초롱 빛나는 니아의 눈동자가 오롯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니아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냐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우리 니아는,  하고 싶니?”


니아는 좀 애매했다. 가진 힘에 비해서 지나치게 어린 아이 같은 성격이라 곤란했다. 좋게 말하면 귀엽고 쾌활했지만 나쁘게 말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아직 훈련이 덜 된 사냥개와 같았다.

평소에는 말을 잘듣는가 싶다가도, 갑작스런 상황에서는 돌발행동이 튀어나왔다.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 불안하다는 소리였다.


차라리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두는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묻자  말에 곰곰이 고민하던 니아가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주인님, 저 전에 본 그 아이들을 놀고 싶어요!”


“...아이들?”

전에 봤던 아이들이라니. 적어도 니아에게 아이 소리를 들을 만한 녀석을 본적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니아가 내게 말했다.

“전에 다쳤던 아이들이요. 괜찮아졌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코볼트를 말하는 거였나. 아니, 아이들이라고 하길래 한참 생각했네. 생긴 건 그래도 일단 다 성체였을 텐데. 특히 그때 다쳤던 녀석은 자식도 있는 엄연한 가장이었다.

뭐, 상관없나.

니아가 보기엔 아이라면, 아이라고 치면 되지 뭐.

“좋아, 그럼 니아. 너도 바록과 바쿠를 도와주렴. 그럼  수 있을 테니까.”

결국 니아도 바록과 바쿠와 마찬가지의 역할을 주었다. 바록과 바쿠라면 니아가 날뛰더라도 별 일은 없을 거다. 최악에라도 둘이 좀 다치고 말겠지. 니아가 잘못되는 거랑 비교한다면 그쪽이 싼 편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로로.”


이름을 부르자 로로가 빤히 올려다봤다.


저주받은 아이.

내가 운명을 거둬들인 아이.


내 허리춤에나 겨우 왔던 아이는, 어느 샌가 내 가슴팍에 닿을 만큼 자라있었다. 어리기만 했던 외모도 이제는 소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져서, 이제 곧 아가씨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아이의 성장이 빠르다고는 했지만, 이렇게나 빠를 줄은...

그야 하루만에 왕창 자라버린 거니까 빠르기야 빨랐지만. 아무튼 이렇게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봤자 어려 보이는 건 매한가지지만. 각성을 통해서  성장한 마야와 니아에 비하면야 아직 어린 태를 완전히 벗지는 못한 로로를 한참을 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로로에게 맡길 역할.


그건 어차피 정해져 있었다.

“너는  옆에 있으렴. 언제나처럼.”

내가 거둔 운명이었다.

그러니 내 곁에 두기로 했다. 그녀가 본래 겪어야할 운명으로부터. 이 아이가 몇 번이나 끌려갈 뻔한 것을.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보아왔었다.

그러니까 끝까지. 내가 지키기로 했다.

불운하게 태어나서, 저주받고.

끝내 마왕의 제물이  뻔했던 소녀는. 이제 마왕이 되어버린 내가 지켜야할 자식이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나의 자식이었다.

그녀는 리리스.


나로 인해 새롭게 태어난 종족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 그리고 나는 리리스의 아버지. 유일한 리리스. 로로의 아비였다.

실제로 그녀를 낳은 아비가 그녀를 버렸으니. 버려진 그녀를 거둔 내가 아버지가 되야만 했다.

그런 내 말에.

내가 거두고, 나로 인해 다시 태어난 소녀가 말했다.


“응.”


꾸욱, 하고. 붙잡고 있던 손을 움켜쥐고서.

“그럴게, 나의 아버지.”.

다른 한 손으로 로로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뭉툭하게, 손에 닿는 세 개의 뿔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간지러운 듯,  손길을 피하듯 고개를 돌리는 로로를 보자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제 싫은 건 싫다고 제대로 표현하는 게 보기 좋았다.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자, 그럼.”

로로에게서 손을 떼고서. 내가 입을 열었다.

나의 가신들.

그들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아마 가짜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그리고, 그런 내 가신 들 중에서도.


내 자식들과도 같은 아이들이,  말을 기다리듯. 나를 바라봤다.

그런 아이들에게 말했다.

“ㅡ일단 밥부터 먹자.”

식사는 언제나 중요한 법이었다.






“앉으실 때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크리샤 아가씨.”


“으음... 영 익숙해지지 않는데.”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잘라서 그렇게 말하는, 무척이나 딱딱한 어조의 에루나를 보고서. 크리샤네아는 입술을 달짝이려다 이내 다물었다.

조금 섭섭하지만. 에루나가 우선시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에루나의 마음을 이해할  있기까지 했다.


설령 자기 자신보다도, 훨씬  소중한 무언가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생긴 그녀는 에루나가 느끼는 감정을 일부나마  수 있었다.

오직 그를 위한 400년을. 한없이 기다려온 골렘의 심정이 어떨지 까지는, 몰랐지만.


“으응...”

자리에 앉고서, 뒤척이고.

뒤척이고.

또 다시 뒤척인다.

이윽고 편한 자세를 찾았을 때. 크리샤네아는 지금의 자세와 감각을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 에루나의 말대로 익숙해져야할 일이었으니까.

에루나가 곁에 있어주는 것도 아주 잠깐뿐이었다. 그 이후에는 자신이 홀로 해내가야만 하는 일이었다.

빠르게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은 쓸쓸해졌다.


정말로 곁에 없는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레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손을 뻗으면, 분명히 닿을 위치에 항상 있을 것만 같았던 녀석이 없어졌다는 것을.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없다. 그 사실이 무척이나 뼈저리게 다가왔다. 손끝에서, 허공에 닿은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평소와 같은 감각. 그것이 무척이나 차갑게 느껴져서. 크리샤네아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서.


한숨을 토하듯이 중얼거렸다.


“아... 이거...  익숙해지지 않는 걸.”


그런 크리샤네아를 보고서, 에루나가 대답했다.


“익숙해지실 겁니다.”

자신이 한 생각이 무엇이였는지도 몰랐을 텐데. 아마도 투정에 대한 대답으로만 했을 뿐인 에루나의 말에 크리샤네아는 작게 웃었다.


익숙해질 거다.


알고 있었다. 결국은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익숙해질 쯤이면. 어차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있었던 것이 없어졌다. 냉정하게 따지고 들자면 고작 그것뿐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상실감은 이제까지 그녀가 겪어왔던 것과는 다른 범주의 것일지라도.


어차피 그와 관련된 것들이 항상 그래왔었다.

그리고 결국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그가 내 옆자리에 있다는 것이 익숙해졌던 것처럼.

“흐음...”


괜히 뒤척이며, 다시 한 번 자세를 고쳐 잡는다.

그리고 조심스레, 차갑디 차가웠던 빈자리를 더듬던 손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혹시 모르니까 벌써부터 준비해둔 품이 넓은 드레스 위로.

느릿하게.


아직 태동이랄 것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달도 채 되지 않은 것이다.

그 대신에, 아직 없는 태동을 대신할 것은 있었다.


조금만 집중하면, 분명 느껴졌다.

자신의 품속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자신이 뱃속에 품어낸,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마력이.

자기가 들여다보는 것을 눈치 챈 것일까. 작지만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마력의 움직임을 보자니 괜스레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그래, 그만 훔쳐볼 테니까 그렇게 화내지 마.”

멋대로 자신을 봤다는 사실에 화가 난건지 아니면 본능적인 방어기제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력을 이용해서 인식 장애의 장막을 펼치기 시작한 아이를 보자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기도 전이였지만 벌써부터 마력을 다루는 모습을 보아하니 자식이라는 것을 제쳐두고서 상당한 재능이었다.

“내 자식이니까 당연한 거지만!”

결국 제쳐두지 못한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에, 그렇게 중얼거렸다가. 괜히 부끄러워졌다.

내 자식.

 말에 담긴 의미가. 괜스레 가슴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한건 방금까지 느껴졌던 쓸쓸함은 어느 새인가 사라지고 그 대신에 가슴 깊숙이 충족감이 느껴졌다.

자식에 대한 애정, 연인에 대한 애정.


그리고.

우월감.

ㅡ오직 나만이.

그에게 있어서도, 분명히 특별할 터인. 자식을 갖게 되었다는 우월감이 가슴 깊숙이서 꿈틀거렸다.


아무리 다른 녀석들이. 루시아던 아르카던. 아무리 아이를 갖게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가장 처음은 자신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첫 아이는, 자신이 품고 있는 이 아이였다.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이 고작 그런 순서로, 차별을 하는 바보는 아니란 것쯤은.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그녀를. 루시아를 이긴 셈이니까.

“우후후... 그래서, 에루나. 걔네들은 언제쯤 온다고 했었지?”

작게 웃으며. 그렇게 말한 크리샤네아의 말에. 에루나가 품속에서 작은 시계를 꺼내들고는 들여다봤다. 그리고 대답했다.

“약속했던 시간... 지금 됐습니다.”

그런 에루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웅...!

공기가 떨렸다.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면서. 모두 합쳐서  개의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자신이 뱃속에 품은, 작은 마력과 비교하자면. 터무니없이 거대한 마력의 준동.


혹시 몰라서,  주위에 보호마법을 펼친 크리샤네아는 가만히 그를 지켜봤다.

이윽고.


또각, 하고. 발소리를 내며. 자신의 영지에 열린 네 개의 공간 전이마법을 넘어.


다섯의 인형이 나타났다.

“ㅡ오랜만이야. 루시아.”


그리고 가장 먼저 넘어온 이를 보며. 크리샤네아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자매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일어나기 조금 그래서, 앉은 상태로 말하는 건... 미안?”


히죽, 하고. 자랑스레 배를 만지며.


“......오랜만이네요, 크리샤.”


뿌득, 하고. 이마를 구기고서. 그런 크리샤네아에게 루시아네아는 그렇게 대답하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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