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8화 〉188화 (188/370)



〈 188화 〉188화

“...실수라니? 저 인간이랑 관련된 거라면 기억에 없는데?”

원경의 거울에 비쳐 보이는, 괜히 불쾌한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회색빛 머리카락의 인간 여자를 보고서 눈살을 찌푸린 크리샤네아가 말했다.

그런 크리샤네아를 보고서 루시아네아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아리스 드네아, 라고 했던가요. 최근 이지경님의 시녀가 된 여자의 이름이.”

“......”

어째서 그 이름을 알고 있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이미 루시아네아는 대답했으니까.


‘그 주변까지 보지 않았던 건 아니니까요.’

분명히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 말이 말 그대로의 의미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지금.  이름이 이곳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아니, 정확히는 찝찝했다.


끈덕지게 몸에 달라붙어오는 기분 나쁜 꺼림칙함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루시아네아였다. 자신과 동등한 격. 거의 같은 정도의 힘. 그리고 드래곤의 로드라는 위치를 이해하고, 자신보다도 의무를 우선하는 그녀의 성격까지.


솔직히 말해서, 크리샤네아는 그런 루시아네아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문제로 자주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녀의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있다는 거였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루시아네아가 허튼 소리를 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생각을 전환해서.


다시 한 번 기억을 되짚어본다.  번 정도라면, 그녀의 말이라면 한 번 정도라면 더 고민해줄 정도의 가치는 있었다.

 여자랑 관련된 기억을, 굳이 들춰내서.

짜증나는 기억뿐이었지만, 드래곤의 기억능력은 구태여 필요 없는 기억까지도 상세하게 기억해낼 정도로 뛰어나서, 그 짜증이 배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기억해냈다.

‘내가 실수를 했다고?’


그나마 떠올릴  있던 것은 그 여자와 함께 왔던 인간들을 조금 손봐준 정도일까.

하지만 그들의 기억은 확실히 지웠다. 지형에 남아있을 기억까지도. 깨끗하게 정리해뒀을 터였다. 거기에 혹시라도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몬스터들에게 습격을 당한 것으로 기억을 약간 꾸며두기까지 했다.


조금 다친 인간은 있었지만, 죽은 이는 없었다.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아닌 작은 사고.

그들은 분명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인간 여자 하나쯤 실종한 것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사소한 사고로.


그러니까 이것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이 가정이라면 지금 루시아네아가 원경의 거울로 비쳐 보이는 여자에 대한 것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실수라는 걸까?


“확실히. 당신은 모르는 것이 당연해요. 그녀도, 당신이 했다는 실수도. 사실 본래라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요. 운이 나쁘게도. 정말로 여러 가지가 우연히 겹쳤을 뿐인 일이니까요”

그런 크리샤네아를 보고서 루시아네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로 우연인가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지만요.”

“...대체 무슨 일인데, 좀 제대로 설명해봐.”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낌새에 크리샤네아가 그렇게 묻자, 루시아네아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ㅡ푸웁!”


루시아네아의 이야기가 끝나자, 결국 참지 못했다는 듯이 카르네오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 정말이네, 루시아. 네 말대로 정말로 엄청난 우연인걸~”


그리고 탁자를 두들기며 웃던 카르네오스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빠직...!


무언가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듯한 소리. 그 소리에 움찔한 카르네오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수 있었다.

빠지직...!


갈라지고 있는 탁자와ㅡ,  원인으로 보이는 크리샤네아가.


“...아니~ 정말로, 진짜 굉장한 우연이잖아~? 그치~?”


괜히 웃었다가 튀어버린 불똥에 그렇게 말하며 다른 자매들을 바라봤지만.


“으으응? 잘 모르겠는데.”

“어려운 이야기는 재미없으니까 안 들었어!”

이런 이야기를 좋아라하던 아샤와 아냐는 진즉에 발을 빼고서, 아무것도 모른 체하고 있었다. 아니, 한쪽은 정말로 듣지 않았던 모양이었지만. 이 둘은 안된다, 그렇게 판단한 카르네오스가 휙, 하고 고개를 돌려 샤르비오나를 바라봐도.

“...전혀, 웃을 요소가 없어.”

힐끔, 하고 그런 카르네오스의 시선을 받은 샤르비오나의 얼음처럼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아하~ 아하하~”


결국 멋쩍게 웃던 카르네오스가 힐끔하고, 크리샤네아의 눈치를 살펴봤다.

뿌드득, 하고.

그리고 끝내 손에 쥐고 있던 탁자의 일부를 바스러뜨린 크리샤네아를 보고서 입을 다물었다.

카르네오스와 크리샤네아의 힘의 역학은, 원래부터 카르네오스가 크리샤네아에게 상대가 되질 않았다. 심지어 이곳은 크리샤네아의 영지였다.


그런데 그런 크리샤네아의 심기가 매우 좋지 않아보였다. 아마, 자기가 웃은 탓은 아니겠지만. 아주 영향이 없다고도 할  없을 것이다.


평소처럼 놀리고, 평소처럼 짜증을 좀 낼 뿐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이거… 괜히 놀린 거려나~’


아하하, 하고 웃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 카르네오스였지만. 이미 좀 많이, 늦은  같았다.


뿌드득, 하고. 부서지다 못해 손아귀에서 가루가 되어가고 있는 탁자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까의 일 때문인지, 마력이 피어오르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에 물리로 부서지고 있는 탁자를 보고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모습이라는 착각이 일었다.

‘루시아아아~!’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루시아네아를 본 카르네오스의 귀에 크리샤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무척 짜증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저 여자, 엘리시스 어쩌고라는 여자가... 그, 아리스 어쩌고 하는 여자의 어미라는 거지?”


“어쩌고가 아니라 드네아 블론... 기니까 그냥 그렇다고 치죠.”

어차피 이지경 외의 인간의 이름을 루시아네아도 딱히 기억에 남기고 싶진 않았다. 쓸데도 없을 뿐더러, 의미도 없이 주렁주렁 길게만 늘여놓았을 뿐인 이름은 더더욱.

그런 루시아네아의 대답에 크리샤네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어미인 엘리시스 어쩌고가 초월자고?”


“네, 현존하는 세 명의 초월자 중에 하나죠. 다른 둘과는 달리...”

“‘목줄’이 없는 초월자고.”

그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아네아를 보고서, 크리샤네아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사실은 이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걸 모른 척했다. 그래서 꺼림칙했던 것이다.

그 여자랑 같은 머리카락의 색을 봤을 때부터, 어쩐지 이런 예감이 들었던 걸지도 몰랐다.


 여자랑 관계된 일은 하나같이 귀찮고, 짜증나는 일뿐이었다. 루시아네아가 성격적으로 맞지 않아서, 그랬다면.  인간 여자와는 생리적으로 무리라는 느낌으로.


물론, 그 바보 녀석이 관계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관계된 이상 그런 가정은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일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던 걸지도 몰랐다.

기분 나쁘게 비슷한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 라고 억지로 생각했던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들은 이상, 그렇게 부정할 수도 없었다.


루시아네아의 이야기를 듣고서 여태 혼잡했던 것들이, 이해할 수 없던 짜증과 찝찝함이, 이해할 수 없었던 루시아네아의 말이 짜 맞춰져서, 연결된다. 연결되고, 연결된 끝에 상황을 이해했다.

그렇게 이해한 결과.


어이가 없었다.


루시아네아가 실수라고는 했지만 정말이지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도 어이가 없는 결과였다.


그것이 그렇게 연결될 줄은 몰랐다.

도저히 섞이지 않을 것만 같은 것이 섞였다, 그런 느낌이었다.

 수많은 인간 중의 단  명. 그 중  명이였을 뿐이라고,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우연히 단순한 한 명이 아니었고. 그 우연히 아닌 결과가 연결되어서, 이런 식으로 자신과 관련된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그때... 차라리 그때, 죽이지 않을 거라면 아주 먼 곳으로 전이시킬걸 그랬어.’


그랬더라면 이번일도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만이 아니라 그 바보 녀석의 곁에 굳이 그 여자가 있을 일도 없었을 지도 몰랐다.


루시아네아가 말한 실수라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절실히 실수로 여겨지는 것은 착각일까. 우연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어서. 짜증을 낼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한껏 보내고 있는 크리샤네아를 보고서. 루시아네아가 입을 열었다.

“심정은 이해해요.”


그렇게 말하는 루시아네아조차도 정말로 우연인가, 하고 다시   살펴봤던 일이었으니까 크리샤네아의 기분이 어떤지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 이번 일에 대해서 알게 되고, 조사했을 때는. 누군가가 뒤에서 꾸민 일이 아닌가 그렇게 여겼을 정도였다. 그만큼 무척이나  짜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금세 결론이 내려졌다.

단순한 우연이다.

드래곤의 눈을 피해서, 무슨 짓을 꾸밀  있는 존재는 드래곤, 혹은 그 이상의 존재뿐이었다. 그러니까 단순한 우연.


이 세상에 남아있는 모든 종족을 통틀어서. 드래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일도 단순히 우연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렇게 우연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그 원인이 크리샤네아인 것은 틀림없었다.

크리샤네아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이지경에게 주었던 인간 시녀가.

아리스라는 이름의 소녀의 어머니가 초월자였고. 그런 그녀가 딸의 실종 사실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것뿐만이라도 귀찮은데, 인간들의 나라까지 덕분에 움직일 징조까지 보였으니 더더욱 귀찮은 일이었다.

덕분에 어째서 그토록. 선대를 포함한 선조들이 초월자들의 목에 목줄을 채웠는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귀찮음을 무릎쓰고 관리해왔는지 절실히 느꼈을 정도였다.

내버려두면 더 크게 귀찮아지니까.


하지만 그렇게, 드래곤들이 관리했어야할 초월자에게 ‘목줄’이 없는지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였다.


그녀가 있는 위치는, 라이어스 제국.

인간들의 제국이고, 그와 인접한 곳을 영지로 둔 크리샤네아는 인간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녀에게 맡겨봤자 아무리 의무라고 해도 초월자의 관리를 맡겨봤자 관리할 턱이 없었다.

거기에 크리샤네아의 영지에는, 안타깝게도 목줄로 쓰기에 적합한 종족들이 없었다.

또...


“인간의 수명은 짧으니까요. 거기에 그녀가 초월한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재능, 세계에 미치는 영향도 미비하다고 판단했었죠. 비교적 활동이 없었기도 하고요.”

그래서 구태여 목줄을 채워놓지 않았다.

목줄이라고 해봤자 그 역할은 초월자의 활동을 억제하고 행동을 파악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인간들의 서사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항상 영웅의 옆을 지키던 엘프라던가, 미녀, 미남의 파트너라는 식으로. 곁에서 지켜보는 존재를 티나지 않게 심어둘 뿐이다.

그렇게 심어둔 ‘목줄’의 역할도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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