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212화
“아니 그거...”
갑자기 마룡화라고, 이제껏 여러 번 들어봤던 말이 튀어나오자 당황한 나에게 에루나가 대뜸 말했다.
“주인님께서, 용화말고도 이미 자신이 다른 종족이 될 뻔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있었다.
아니, 있었다기보다는 한 20%쯤은 이미 되어 있었다.
흡정귀라고, 버젓하게 상태창에 나와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나를 보고서,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본래 대마법진... 주인님께서 소환된 마법진에 걸려있던 마법은 단순히 주인님을 소환하기 위한 마법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였습니다.”
“어...? 그럼 뭔데?”
“만약 마법진을 통해서 넘어온 존재가 드래곤이 아닌 경우라면... 강제로 흡정귀라는 종족이 되는 마법이, 아뇨. 저주가 걸려있었습니다.”
“...저주?”
“네, 저주. 기본적인 원리는 마법과 같지만 조금 다른 이치로 희생이란 대가를 더해서 좀 더 고등의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아마, 주인님도 아실겁니다.”
마법에 대해서 배울 때 잠깐 봤던 거긴 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에루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에루나의 말이 이어졌다.
“그것을 제가 대마법진에서 분리했습니다만. 제 힘이 부족해서인지, 여전히 저주의 잔재가 남아있었고. 그것을 루시아 아가씨께서 봉인하셨었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고 묻는 에루나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었지.”
벌써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일이었지지만. 아직도 기억이 나긴 했다.
그 때 들려왔던 알림도, 루시아가 내게 해줬던 말도...
‘...우선 사과드릴게요, 제 어머님께서 이지경님께 심한 장난을 부리셨던 모양이에요.’
당시, 루시아가 그렇게 말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네모네스, 라고 했던가.’
아마, 처음으로 들어봤던. 루시아의, 부모의 이름이자, 이전 세대의 드래곤의 이름. 여지껏 잊고 지내왔던 일이, 기억의 심해로 가라앉혔던 것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내가 말했다.
“그런데 흡정귀가 되면 그렇게 안 좋은 거야? 그거랑 드래곤... 용화랑은 무슨 상관이 있는 거고?”
중간에 중단되서, 일단 5분의 1만 흡정귀였지만. 다르게 말하면 5분의 1이나 흡정귀인 상태라서 걱정됐다.
그런 내 말에 에루나가 대답했다.
“흡정귀는... 본래 고대 종족 중 하나인 어떤 종족이 몰락한 결과중 하나입니다만, 한때는 드래곤에 버금가는 존재였었던 것 답게, 한 가지 능력만큼은 여전히 강력한 종족입니다.”
고대의 종족이란 말에, 문득 슈슈가 떠올랐다.
낙스, 버림받은 대지... 한때, 드래곤과 겨루었던 종족들이 유폐된 대지에서 넘어온 슈슈가 흡정마라는 종족으로 각성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뭐, 그럴 일은 없고 해서 이내 머릿속에 지워버리고서 말했다.
“혹시 그거. 흡정 말하는 거야?”
지금은 카마수트라애 흡수되긴 했지만, 에루나의 말에 떠오른 기능이 있었다.
바로 흡정이었다.
“네, 그런 이름의 권능이 맞습니다. 상대와 살을 겹칠수록, 대상의 힘을 흡수해서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능력이죠. 몰락한 종족이 가지고 있기엔 너무 강력한 권능이기에, 정작 흡정귀들은 이성이 잃고 날뛰어... 결국 몬스터취급을 받고 있고, 거의 멸종한 상태기는 합니다만...”
“......”
내 5분의 1정도를 차지한 종족이 멸종위기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좀 묘했다.
“저를 제작한 드래곤들... 그러니까, 아가씨들의 부모이기도 한 드래곤들은 그런 흡정귀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 대마법진에 그런 저주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하고. 에루나가 말했다.
“흡정귀가 되어 이성을 잃고 아가씨들과 살을 섞은 결과. 아가씨들의 마력을 흡수해서, 일정량이 모이게 되면... 그걸 대가로 주인님을 용, 마룡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 에루나의 말에 나는 내 상태창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떡하니 있는, 흡정귀와 용인인지 뭐시긴지하는 이제는 곱게 보이지 않는 종족명이 여전히 내 눈에 보이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효율면에선 그쪽이 좋기 때문일겁니다. 마룡이 된다고 해도, 그 육체만큼은 드래곤인만큼. 또 이성이 없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주인님처럼 인간... 혹은 다른 종족이었던 간에, 마룡인 쪽이 더 많은 자식을 원하는 드래곤들의 입장에서는 적합했을 테니 말입니다.”
“...루시아, 아니지. 다른 드래곤들도 알고 있는 거야?”
“아뇨. 아가씨들은 모릅니다. 그런 것까지 드래곤들이 아가씨들에게 남겨놓은 지식에는 그런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할 말을 잃었던 내가, 옆에서 자고 있는 아르카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들조차, 이런 사실을 모른다는 건... 그녀들도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란 소리였으니까.
그것도, 자신의 부모들로부터.
그녀들과, 부모라는 드래곤들의 관계가. 사실 분신이나, 동일한 존재라고도 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동시에 그런 걸로 따질 수도 없는, 아예 별개의 존재란 것도 알고 있었다.
기억을, 힘을 물려받았더라고 해도. 그들이 아주 같아야한다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 사실을, 선대 드래곤들인 녀석들도 알고 있었을 텐데... 분명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런 짓을 벌였다는 거였다.
뿌득, 하고. 이가 갈렸다.
너무한 일이었다. 드래곤들이 이성으로 똘똘 뭉친 괴물이란 것은, 사랑이나... 애정이란 감정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이기적인 괴물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건 너무했다.
자식조차도 도구로 사용하는 꼴...
‘만약, 내가 에루나의 말대로 곧이곧대로 받아서, 그런 몸이 됐더라면...’
만약, 아주 만약의 일이었지만. 그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처음 루시아를 만났을 때를, 다른 드래곤들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던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만약의, 가정의 일이였다. 지금은, 지금이 중요했다.
나는 에루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럼 됐고. 그래서? 이제 와서 이런 걸 알려주는 이유가 뭐야?”
이미 절반 이상이 인간에서 벗어난 글러먹은 몸 상태인 지금, 어쩌면 그 사실도 알고 있었을 에루나가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에루나가 말을 꺼내온만큼... 해결책을 가져왔을지도 모르고. 그런 기대를 담아 물은 내 질문에 에루나가 말했다.
“이대로라면 선대의 드래곤들의 뜻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좀 더 준비가 된 다음, 주인님께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만.”
말을 잇던 에루나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내 손에 올리며 말했다.
“...주인님이라면, 그런 준비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에루나가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에루나의 기대가 너무 높아서 마음이 괴로웠다. 대체 내가 뭐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루나가 내 손에 올려놓은 것을 바라봤다.
“뭐야 이거?”
별로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장신구... 그렇게 밖에는 보이지 않는 귀걸이를 보며 내가 묻자 에루나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편린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러실 겁니다. 이미 주인님께서는 한 개나, 두 개를 가지고 계신 것이니 말입니다.”
한 개나, 두 개를 가지고 있다, 라는 말에 거의 확정되어버렸다. 나는 손에 든 귀걸이를 보면서 말했다.
“...정말로? 진짜 그거야?”
“네, 정말로 편린입니다. 대마법진의... 주인님을 소환하고, 또 주인님께 저주를 걸기 위한 마력을 메꾸기 위해 준비되었던, 드래곤의 안배 중의 하나.”
에루나가 꾹, 하고. 내 손에 올려진 귀걸이를 내게 쥐어주며 말을 이었다.
“본래부터 주인님께 속할 예정이었던 물건. 이제야 돌려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본래부터 내게 속할 예정이었던 물건.
그러니까, 이 녀석이 빠져버려서 내가 아주 흡정귀가 되버려서, 결과적으로 용화, 마룡이 되지 않았다는 건가.
“...그거 엄청 위험하지 않아?”
“제 몸속에서 충분히 모든 마법에 대한 것을 제거한 상태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럼, 믿어야지 뭐.”
에루나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레 그런 귀걸이를 그러쥐어봤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귀걸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이거, 그래서 어떻게 사용해야하는 건데?”
요리조리 만져봤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귀걸이를, 편린을 보고서 그렇게 묻자 에루나가 그런 내 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에루나?”
“...저도 모릅니다. 단지, 편린 자체는 신의 힘이 깃들어 있을 뿐이고, 그 자체만으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고개를 돌리고서, 그렇게 말하는 에루나가 보였다.
처음으로 내게서 시선을 피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에루나를 보자 뭔가 감회가 새롭... 지는 않고 엄청 불안해졌다.
“아니, 그래도 사용법은 어떻게 알아야...”
사용법도 모르는 물건, 그것도 어마어마한 힘이 깃들어있을지도 모르는 물건을 손에 들고 있으니까 무척 불안했다.
그런 나를 보며 에루나가 말했다.
“여태껏 주인님을 제외하면 편린을 사용했다고 알려진 전례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수준에 불과할 뿐인, 그런 옛 이야기에 가까운 정보입니다. 따라서, 제가 조사한 바로는... 편린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모른다, 라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하고 에루나가 말했다.
“그렇게 옛 이야기로 전승되어온 바로는, 편린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깃들어 있다는 얘기가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습니다.”
“...소원이라.”
너무 두루뭉술한 이야기여서 뺨을 긁적이고 있자니, 그런 나에게 에루나가 태연한 얼굴로 말해왔다.
“...주인님께선, 이미 사용하신 전례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실겁니다.”
“어떻게든 될 거라니, 무슨 말이 그래?”
내 말에 에루나가 내 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것이 제 주인님, 이지경님이시니 말입니다.”
그런 에루나의 말에, 할 말을 잃고서 멍하니 있던 내가, 말했다.
“...그래, 뭐. 어떻게든 해볼게. 에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