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7화 〉217화 (217/370)



〈 217화 〉217화

“그, 그르믄 안대오!”

이빨이 빠져서, 발음이 줄줄 새었지만. 황제는 앨리시스의 말에 기겁해서 그렇게 외쳤다.

“드어프들을 무시하믄, 제국이 을마나 손…”


“…뭐라는 거야?”

너 때문이잖아!

그렇게 외치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서, 황제가 더듬더듬 품을 뒤졌다.


그리고 피처럼 붉은 액체가 담긴 병, 팔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더라도 재생이 가능한 수준의 힐 포션인 엘릭서를 입에 퍼부었다.

황제인 자신조차도 사용하는 것이 꺼려질만큼 고가의 물건이었지만, 지금 아꼈다가는 똥이 되는 수가 있었다.


그렇게 포션을 마시자, 상처가 아물고. 뽑혔던 치아나, 뽑히려던 치아들이 새로 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전히 멀쩡해진 황제가 말했다.


“나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란 소리요! 누님한테는 딸이지만, 내게도 조카인 셈이고. 더군다나 천신교의 성녀인 아리스를 나라고 찾고 싶지 않겠소? 나도, 기사단을 파견해서 조사를 명령 해뒀었단 말이오. 누님도 알고 있지 않소!”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기사단을 파견해서 조사하려던 찰나, 이를 그곳에서 살고 있던 드워프들.

테 베르나의 드워프들이 그런 기사단을 걸고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기사단을 파견한 이유가 자신들을 업박하고, 협박하는 게 아니냐고.


드워프들과 매년 막대한 양의 거래를 하고 있는 제국의 기사들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사정을 얘기했지만 도리어 자신들을 의심하는 거냐며 빈축을 사고 내쫓겨졌다.


거기에 지금도, 다른 기사단이나 인간들이 오지 못하도록 수백의 드워프들이 경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해를 풀지 않고서, 제멋대로  누군가를 파견했다가는 그대로 사이가 틀어지고 말것이 분명했다.


수만에 불과한 드워프들과, 반대로 수만의 병력과 수천의 기사를 보유하고 있는 제국. 싸움조차 되지 않고, 오히려 몇몇의 대신들은  기회에 드워프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노예로 부리자는 헛소리까지 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 새끼들이 탁상 앞에서만 숫자놀음하는 치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개소리였다.

드워프들은 하나를 단순히 하나로 생각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막말로 드워프제의 무구로 무장한 병사는 그렇지 않은 병사 세 사람 몫을 한다는 소리가 있었다.

헌데, 상대는 그런 물건을 만들어내는 드워프였다. 당연히 무장도 드워프제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온갖 무구며, 기관장치 등, 드워프들과의 전쟁은 제국으로써도 쉽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문제는 또 있었다.

“더군다나 북쪽의 엘프들, 요정향의 엘프들까지 사절단을 파견해왔소. 자신들의 땅을 침범한 노예사냥꾼들의 여죄를 묻겠노라고… 확인한 결과, 정말로 제국 출신의 노예사냥꾼들이었던 모양이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거기까진 간건지 모르겠지만, 하고 단서를 다는 황제를 보고서.

“…그래서?”

 어쩌라는 듯한 표정을 지은 앨리시스가 말했다.

“그거랑 나랑 뭔 상관인데.”

“…또, 란자카에서도 도움을 청하는 사신이 찾아왔소. 갑자기 파도가 거칠어지고, 마물들이 날뛰어대는 통에 어업이 위태롭다고하오. 거기에 수백년간 보이지 않았던 인어들마저 바다에 버린 쓰레기들을 문제 삼아서 따지고 있다고…”

“…그래서 요즘 물고기가 비쌌구나? 근데 뭐?”

“근데 뭐라니…!”

드워프와의 긴장 상황도, 제국으로써는 막대한 손해였다.

검과 갑옷을 비롯해서, 막대한 군수물자들과 그 밖에도 다양한 물품들.


인간과 거래하는 드워프들은 매우 드물었다. 아니, 인간들에게 발견되는 드워프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대부분은 산이나, 지하에 틀어박혀서 지내는 종족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규모도 규모인데다가. 인간과 거래하는  베르나의 드워프들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욕심이라고는, 술과 더 좋은  정도 밖에 없는 드워프들과의 거래는 제국이 제국으로써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경제적인 이익을 주고 있었다.


드워프들과의 거래로 얻은 물자들을, 제국에 속한 왕국이나, 그 밖에 다른 나라에 가져다가 팔면… 드워프에게 샀던 것의 수십 배가 넘는 가격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또 엘프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이 엘프들과 거래하는 물품들은 비교적 적었지만… 이는 거의 마법사들이 환장해 마지 않는 것들이였다.


희귀한 약초를 비롯해서, 정령석 등, 마법 연구와 마법수련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 말이다. 더군다나… 전설 속의 생물인 드래곤을 제외한다면, 아니 드래곤은 단지 전설인만큼 마법의 종주라고 부를 수 있는 종족은 엘프들이였다.

오랜 세월을 영구하는 수명과, 빼어난 오성. 더군다나 종족 자체부터 정령으로부터 사랑받아서, 뛰어난 정령사이기 까지한 엘프들은 마법사들의 무수한 존경을 받았다.

그런 엘프들과의 갈등도 제국으로써는 문제가 많았다. 엘프들과의 노예 문제로 인한 갈등이야 평소에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야 아무리 제국이 금지한다고 하더라도, 엘프들은 마법이니 정령, 그것말고도 엄청난 미인으로도 유명한 종족이기 때문이였다.

매년 한 두명의 엘프들이 노예로 잡혀들어가는 문제 때문에 여간 고생하는 게 아니었다.

밖에서는 엘프들이 쪼아대고 안에서는 마법사들이 엘프한테 뭔짓거리냐고 쪼아대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이 좀 심각했다. 하필이면 엘프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 '요정향'. 그곳에서 온 엘프들의 사절단이였기 때문이었다.


뛰어나지만, 숲에 틀어박혀 살고… 무척이나 배타적인 그 엘프들이, 사절단이라는 형식의, 인간들의 수단을 사용해서 제국에 접촉해왔다.

이번의 노예문제뿐만이 아니라, 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종족 노예를 비롯한 모든 노예들.  노예제도 자체의 반대를 해오면서.

제국은…

노예가 필요했다.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꾸어 나가기 위해선, 많은 노동력이. 값싼 노동력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따라서 제국은 인간들을 노예로 사용하는 노예 제도를 인정하고 있었다.

물론, 제국과 거래하고… 또 건드리면 피 보는게 당연하다시피한 엘프들과 드워프들은 노예로 만드는 건 불법이지만… 다들 알다시피 불법이라고 안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 쉬쉬하며 넘어가는 실정이기도 했다. 엘프나 드워프를 노예로 삼을 만한 자들은 대부분 고위의, 권력과 힘을 지닌 이들이었으니까.

일반적인 엘프들조차도… 분노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제국으로부터 보상을 받고 떠나가는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일반적인 엘프'가 아니었다.

요정향의 엘프들은 고대의 엘프들, 하이 엘프들의 적통으로도 알려져 있는 존재들이었다.


개개인이 뛰어난 정령사이자 마법사여서, 홀로 수백명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단순한 전력으로 따지자면... 고위 마법사들이 자그마치 수백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는 어마무시한 전력이었다. 제국으로도 뒤에서 얻어터지면 무척이나 아플 정도의.


당연히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거기에… 해상 왕국, 란자카.

이들과의 거래는, 제국 자체의 생사의 문제까지 걸려있다고 할 수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제국의 산하에 있는 왕국이었지만,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해상 왕국인 란자카는, 그저 가장 가깝게 맞닿아있는 라이어스 제국을 거래 상대로 하고 있을 뿐이어서 협력, 거래 관계에 가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서로가 목적으로 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니 상부상조하는 셈이라고 해야 할까.

제국은 란자카 왕국에서 잡아들이는 막대한 양의 물고기,  어물을 식량으로서 사들이고 란자카 왕국은 그 반대로 섬에서 구하기 힘든 향신료를 비롯한 물건들을 거래하는 것이었다.


헌데 그것이 여러 재해로 인해 위태롭게 됐다.  말은, 제국에게도 식량 문제가 찾아왔다는 소리였다.


라이어스 제국은 동쪽으로는, 화산지대와 산악지대로. 거기에 드워프들이 살고 있었다. 드워프들과의 거래로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는 제국이었지만… 돈이 식량이 되는 것은 아니였다.


라이어스 제국 또한, 방대한 토지로부터 생산되는 식량들이 존재했지만. 이는 제국의 모든 국민들이 자급자족할 수준은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땅이 넓은만큼, 사람도 많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개간할 땅을 늘릴 수도 없었다. 동쪽으로는 드워프, 북쪽으로는 엘프, 서쪽으로는 제국에 속하거나, 그렇지 않는 왕국들. 남쪽은 바다였다.


따라서 드워프들과의 거래로 얻는 이익 중의 일부는, 제국에 속해있는 왕국. 제국보다는 좀 더 광활한 평야를 지니고 있는 라칸 왕국과, 바다와 맞닿은 데다가 매년 어마무시한 어획량을 자랑하는 란자카 왕국에서 수입해오는 곡물과 어물이, 제국의 근간되는 식자원 공급처인 셈이었다.


 중 하나가, 그것도 란자카 왕국으로서도 감당이 안되는 수준의 어획량이라 매우 싼값에 들여올 수 있었던. 값싸고 많고, 식자원의 상황이 위태로워진 거였다.


물고기는 금방 썩는다.

건어물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란자카 왕국의 문제가 계속된다면… 빠르면  년안에 식량난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따지고 본다면, 드워프들과 엘프들 문제보다도 우선해서 란자카 왕국에 찾아온 이상 사태를 확인하고 해결해야만 했다.

당장 해결하지 못하면… 1년 내로 식량난정도가 아니라, 라이어스 제국의 가장 밑바닥부터 무너져내리기 시작할 테니까.

이미 국가적 문제인 셈이었다.


“아시겠소? 문제가 산더미란 소리오. 단지 아리스를 찾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게 아니라, 그보다 빨리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산더미란 말…”

말을 잇던 황제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나즈막하게.

초월자, 앨리시스가 인간들의 황제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넘실거리는 푸른 빛의 투기가, 그런 그녀의  밖으로 삐죽빼죽 솟구쳐오르는 것이, 황제의 눈에 비쳐보였다.

“그게, 내가 내 딸을 찾으러 가지 못하게 막을 이유가 되는 거야?”


이제까지의 설명을 통째로 무시하는 발언이었지만, 그 말에 황제는 입을 열  없었다.


그녀는 초월자였다.


'상식'에, '국가'에, '문화'에, 모든 속박으로부터 초월한 존재. 제국이 제국이라할지라도, 그 사정에 그녀를 얽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단지 바람일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 동생, 누님이라고 불렀던 인정에, 드네아 가와 라이어스 가라는 혈족으로써의 애정에, 묶어둘 수만 있다면… 그러한 바람.

하지만…

“응?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살기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는 앨리시스의 모습에는, 그러한 굴레조차 초월한 초월자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번엔… 이빨로는 안 끝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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