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219화
레무르의 안내를 받아서 공간 마법을 통해 테 베르나로 전이해온 크리샤네아의 눈에 한 가운데에 있는 서른이 채 되지 않는 우리들이 보였다.
숲거인이라고도 불릴 정도인 만큼, 거대한 오우거를 가두기 위한 커다란 우리들이. 그리고 그 안에 갇힌 채, 흉성을 드러내며 우리를 붙잡고 시끄럽게 구는 오우거들이 보였다.
그 밖에도, 수천 개가 넘는 작은 우리들이 보였다. 오우거를 제외한 다른 괴물들.
고블린과 오크를 가둔 우리들이었다. 단지 오우거가 잡혀있는 우리가 바로 옆에 있어 숨죽이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크리샤네아는 쾅쾅거리며 우리 밖으로 나가기 위해 날뛰는 오우거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쌩쌩한 걸?”
“사로잡고나서 며칠 째 먹이를 주지 않아서 그런가봅니다.”
“흐응, 배가 고픈데도 더 날뛰는 생물이라니. 괴물들은 참 이상하네. 뭐 아무래도 좋지만.”
“……”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네아를 레무르가 묘한 표정을 바라봤지만, 이내 고개를 숙였다.
배가 고픈데 더 날뛰는 생물은 바로 옆에도 있지 않냐고 말했다가는 수염이 죄다 뽑혀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런 레무르의 마음을 알 길이 없는 크리샤네아는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크르르르... 배, 고프다. 인간! 고기...! 먹는 다아!”
다가오는 크리샤네아를 눈치챘는지 오우거를 가둔 우리들이 요동쳤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서, 침을 뚝뚝 흘리는 오우거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크리샤네아가 말했다.
“입 닫아. 냄새나니까.”
그리고.
그런 오우거에게 크리샤네아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콰드드득!!
오우거의 발밑에서 솟구쳐 나온 수백의 그림자의 손들이, 문자 그대로 오우거의 몸을 접어버렸다.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찢어졌다. 순식간에 거대한 구형으로 접혀진 오우거가 비명을 내질렀다.
쿠아아아악, 하고. 거대한 괴물의 비명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닥치라니까? 머리가 안좋으니까... 내 말을 못 알아듣나본데.”
그런 오우거를 바라보던 크리샤네아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잡아 먹어버리기 전에 주둥이 닥쳐.”
쩌적...
크리샤네아의 눈이, 동공이 마치 짐승처럼 세로로 갈라졌다. 비명을 내지르던 오우거도, 그 옆에서 날뛰던 오우거들도. 돌연 조용해져서. 그런 크리샤네아를 바라봤다.
드디어, 뇌가 주먹만한 오우거들조차 이해한 것이었다.
눈앞에 있는 인간이, 아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무언가가...
자신들보다도 훨씬 위에 있는, 최상위의 포식자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본능으로 이해했다.
자신들을, 한 숲의 지배자이기도 했던 자신들을 가볍게 잡아먹을 수 있는, 무지로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거대하고 흉폭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어어어...”
두려움에 떨며, 오줌까지 지리기 시작한 오우거를 바라보면서. 크리샤네아가 말했다.
“좋아, 조용하니까 좀 귀엽게 보이기도 하네.”
툭, 툭하고. 공처럼 접혀서 엄청나게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크리샤네아를 두려워하며 비명조차 삼키고 있는 오우거를 손바닥으로 치며 그렇게 말한 크리샤네아가 말을 이었다.
“너희에게 한가지 명령을 내릴 거야. 그 작은 뇌로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명령이니까 안심해. 하지만... 뭐, 이대로라면 그런 쉬운 명령도 금방 까먹겠지.”
그러니까 조금 힘을 나눠줄게, 하고. 크리샤네아가 말하는 순간이었다.
우둑, 우두둑, 공처럼 접혔던 오우거의 몸이 다시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손에 주물럭거리면서. 마치 점토처럼 다뤄지며 이리저리 비틀어지던 오우거의 모습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뒤틀려서 부러졌던 뼈가 다시 붙었다. 찢겨나긴 근육이 재생과 함께 부풀었다.
그리고, 그런 오우거의 머리를 관통하듯이 그림자의 손이 파고들었다.
주물주물...
오우거의 머리를 관통한 그림자의 손이 꾸물거리자, 붉게 충혈된, 흉성만이 담겨져있던 오우거의 눈이 점점 맑아져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크리샤네아 슈페리아. 이 땅의 지배자이자 대지의 보옥을 지배하는 자. 그리고, 이제부터 너희의 주인이 된 자. 어디, 내 이름을 말해봐.”
“그, 어...”
쿵...!
크리샤네아의 앞에 있던 오우거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서, 이젠 언뜻이나마 지성이 엿보이는 눈으로.
감히 내려다보는 것도 송구하다는 듯한 눈으로. 크리샤네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쯔붓, 그런 오우거의 머리를 관통하고 있던 그림자의 손이 빠져나오자, 오우거가 입을 벌렸다.
“나, 의 주인... 크리샤네아 슈페리아... 시여.”
더듬더듬, 이성에 담겨져 내뱉는 오우거의 말에 크리샤네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조금은 쓸 만해졌는걸.”
뇌라는 것은, 결국 정보의 저장소. 지식을 담아두는 ‘공간’에 불과했다. 그것을 마법으로 억지로 잡아 벌리고, 용량을 늘리고, 수용량을 늘렸다. 거기에 대략적인 지식을 쑤셔넣는, 폭거에 가까운 짓을 오우거에게 벌인 크리샤네아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서 ‘쓸만하다’고 말하고서는, 말을 이었다.
“내 명령은 단 하나, 곧 이곳으로 올 한 인간 여자를 막아라. 죽일 수 있다면 죽여도 상관없어. 어떻게든... 이곳 너머로 들어오는 것만 막으면 되니까.”
“인, 간을... 말이십니까?”
“그래, 인간. 그 녀석을 막아낸다면... 음, 적어도 일주일보다 많이 발을 묶어둔다면... 상으로 내가 너희들을 거둬주마. 너희는 오우거가 아닌, 다른 종족으로써 내 영지에서 살아갈 거야.”
“하지만...”
크리샤네아의 개조로 이성을 갖추고, 지성을 주입받은 오우거가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의 동족.
아니, 동족이었던 오우거들이 여전히 두려움에 떨며 크리샤네아를 보고 있었다.
자신 혼자서 홀로 이성과 지성을 지녀봤자, 그건 돌연변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종족, 이라고 일컬을 수도 없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오우거의 시선에. 크리샤네아가 씨익, 하고 웃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퍼퍼퍽!
남아있던 스물이 넘는 오우거의 머리를, 그림자의 손이 관통했다.
“말했잖아, 종족이라고. 너희는 이제부터 새로운 종이 되는 거야. 내 명령을... 충실히 이뤄낸다면 말이지만.”
“그, 어어어어!!!”
크리샤네아에게 지성을 주입받은 오우거가 포효했다.
이성을 갖추고, 지성마저 갖추게 된 오우거는, 아니 오우거였던 존재는... 오우거가 어떤 취급을 받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괴물 중의 괴물, 그렇게 불리는 오우거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인간의 기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조직을 이룬 인간이라면, 군대라면, 국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오우거는... 작은 숲에 하나나 둘 정도가 고작인 존재였다. 그런 오우거는 군대를 이룬 인간에게 있어서는 좋은 소재를 뱉어내는, 거대하고 멍청한 괴물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자신, 그리고 동족의 취급에 대해서 이해한 오우거가 크리샤네아의 말에 감동하여 포효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냄새난다고. 입 닫아, 태교에 안 좋잖아.”
퍽, 하고. 그런 오우거의 다리를 크리샤네아가 걷어차자 이내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 오우거를 보고서, 크리샤네아가 말했다.
“자, 그럼... 이걸로 준비는 대충 끝났으니까.”
우두두둑...!
그림자의 손들이, 오우거를 가둔 우리들을 뜯어내자. 그 안에서 미간에 작은 구멍이 난 채로, 피를 흘리는 오우거들이 몸을 일으켜서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크리샤에게 구겨지듯 몸이 접혀서 다쳤던 오우거는 하나, 그마저도 전부 나았지만. 하나같이 낮게 몸을 낮추고서 기듯이 우리 밖으로 나왔다.
이유는 한가지였다.
자신들이 몸을 세우면, 눈앞에 있는 작은 주인을 내려다보게 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괴물들은 자신의 몸들을 한층 더 낮췄다.
그런 괴물들을, 오우거들을 바라보던 크리샤네아가 입을 열었다.
“일할 시간이야. 괴물 중의 괴물, 그 이름에 아깝지 않게. 어디 한 번 날뛰어봐.”
기어 나온 오우거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옆에 있던 작은 우리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이미 오우거를 복종시킨 크리샤네아를 지켜봤던 고블린들과 오크들이 두려움에 떨며 우리에서 기어나오더니 그대로 엎드렸다.
모두가 우리 밖에서 나온 채로, 엎드리자. 이윽고 오우거들이 포효했다.
“그아아아아아아아ㅡㅡ!!!”
고블린 이만.
오크 오천.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오우거 스물 여덟.
오우거들의 포효를 따르듯이, 고블린들이, 오크들이 따라 포효했다.
괴물의 군대가 포효했다.
자신보다도 압도적인 괴물에게 복종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포효를.
“가서, 그 인간을 잡아와.”
재수없는 여자의 어미이기도 한, 조금 힘이 세다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를.
비릿하게,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한 크리샤네아의 말에,
자신들에게 내려진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괴물들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홀로 수백을 상대하는 오우거가, 그것도 지성을 갖춘 오우거가 스물여덟. 개개인이 인간보다도 뛰어난 신체능력을 지닌 오크가 오천.
그리고 인간보다는 다소 부족하지만 각종 독을 다루고 몸집이 작은 데다가, 밤눈이 밝아 까다로운 고블린들이 이만.
잘 양성된 군대를 보유한 도시라도 가볍게 멸망시키고, 작은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괴물의 군대가.
쿵!
서쪽으로 진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