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249화
“과연 주인님...”
부르고 얼마 있지 않아 도착한 에루나가 흘긋, 뻗어 있던 아리스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평범한 섹스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걱정마십시오, 주인님. 저도, 아가씨들도 주인님을 이해...”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라.”
이상한 오해를 하기 전에 에루나의 말을 자르고서, 셔츠의 단추를 끼우면서 말했다.
“그래서, 반성은 좀 했어? 에루나.”
“네, 다음부터는 주인님께 결코 비밀로 무언가를 꾸미거나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네가 항상 나를 위해서 그런다는 건 알겠는데. 최소한 나도 뭘 좀 알아야 하잖아? 안 그래?”
“죄송합니다, 주인님.”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에루나를 보고서 손짓하자 내 곁으로 다가온 에루나에게 말했다.
“좋아, 반성했다니까... 이번은 이쯤 할까. 치마 걷어, 에루나.”
“네, 주인님.”
그런 내 말에 에루나가 그대로 시녀복의 끝단을 잡고 들어올렸다. 그러자 검은 가터벨트 끈이 연결된 팬티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팬티 밑에서 우우웅, 하고 진통하고 있는... 그림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로터도.
주르륵, 하고 그런 에루나의 새하얀 살결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애액이 보였다. 검은 팬티를 애액으로 적신 것도 모자라서, 흘러 넘치고 있는 애액이 꿀처럼 계속해서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일단 벌이랍시고 하긴 했는데 이게 에루나한테 소용이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포상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기까지 했다. 나중에 일부러 벌을 받으려고 이상한 짓을 꾸미는게 아닐까 싶은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에루나를 어떻게 처벌하기도 뭐했다. 일단, 에루나가 그런 짓을 꾸민 이유부터가...
나와 떨어져버린 드래곤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겸, 아리스에 대한 문제, 엘리시스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는 이걸로 봐주기로 하고.
“다음에도 또 그러면... 한 한달은 눈도 안마주칠거니까 각오해.”
“......!”
내 말에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에루나를 보고서, 손을 뻗자, 스르르륵 에루나의 속옷 밑에서 진동하고 있던 로터가 녹아내리듯 흐물흐물해져서는, 팬티 옆으로 빠져나와서 내 손 끝에 맺혔다.
꾸물꾸물, 그림자의 손이 되어 일렁이는 그것을 그대로 움켜쥐고 역소환하고서 입을 열었다.
.
“그보다, 연락은 해뒀지?”
그렇게 묻자 고개를 끄덕인 에루나가 잡고 있던 시녀복의 끝단을 다시 내리고서는 방금 전의 굳은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아가씨들에게 주인님께서 아티펙트를 사용하여 아가씨들을 소환할 거라고 얘기해두었습니다.”
“그래... 그럼, 자리를 옮길까.”
“식당에 준비를 해뒀습니다.”
“좋아. 마침 나도 배고팠으니까 잘됐네.”
에루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아리스를 뒤로 한 채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루나와 함께 식당으로 온 나는 자리에 앉고서는 콜 오브 드래곤을 풀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허공으로 떠오른 콜 오브 드래곤이 빙그르 돌더니, 장식되어 있던 보석들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파캉파캉파캉...!
제각각의 색깔을 띤, 드래곤들을 상징하는 저마다의 색상의 보석들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알이 굵고 정밀하게 세공된 아름다운 보석들이었지만, 얄짤없이 죄다 터져서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루가 된 보석들이 휘몰아치더니, 한알한알, 잘게 부스러진 가루들이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쩌저적, 하고. 그렇게 생겨난 마법진 위로 공간 전이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녀들이 걸어나왔다.
제일로 먼저 공간을 넘어온 것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금발에, 여전히 훌륭한 가슴을 붉은 드레스로 감추고 있는, 내 첫 연인이자, 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황색용, 루시아였다.
그리고 루시아를 시작으로 차례대로 다른 드래곤들도 넘어왔다.
칠흑처럼 검고, 길다란 머리카락에 예전에 자주 입던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가 아닌, 상당히 폼이 넓고 편해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 내 두 번째 연인이자, 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흑색용, 크리샤와 숲의 푸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은 녹빛의 머리카락을 뒤로 땋고, 크리샤랑은 다른 방향으로 무척이나 편해보이는... 톡까놓고 말해서 잠옷으로 밖에는 안보이는 옷차림의 아르카가.
거의 동시에 열려진 공간 전이문을 통해 걸어나와서는, 곧장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랜만이야, 루시아. 크리샤, 그리고 일주일만이네, 아르카.”
세 명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말을 건네자 내게 인사를 받은 셋이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이지경님.”
“...왜 내가 첫 번째가 아니야?”
“하암~ 그러게에, 이렇게 빨리 볼 줄은 몰랐는 거얼.”
처음으로 부른 이름이 자신이 아니란 것에 불만스러운 듯이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 크리샤와 생글생글 미소 짓는 루시아, 그리고 잠옷차림인 것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자다가 온 것이 맞는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아르카를 보고서.
어째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 안심이 됐다.
아니, 아주 변한 게 없는 건 아닌가...
흘긋, 나는 크리샤의 아랫배를 보고서 아주 조금, 시간이 흘렀다는 걸 체감했다. 한 달 사이에 꽤나 크리샤의 배가 부풀어 오른 것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한 달 만에 저 정도로 눈에 띨만큼 배가 부푸는 것이 맞나 싶긴 했지만... 적어도 크리샤에겐 별 문제는 없어보여 다행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아직 안 온거야?”
아직 열려져 있는 네 개의 공간 전이문을 보고서, 크리샤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들이 아직 안온게 아니라 네가 너무 빨리 온거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에, 이윽고 다른 드래곤들도 공간 너머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붉은 머리카락을 흐트러지게 허리춤에 늘여놓고, 다른 드래곤들과 달리 여러 화려한 장신구들을 달고 있는 카르네와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을 허리춤에 늘여놓고, 하얀 원피스 같은 옷을 입고서. 여전히 무표정한 샤르가.
그리고.
폴짝, 하고 벌어진 공간 전이문을 뛰어넘어온 아샤와 아냐가, 푸른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외출했을 때 당시의 옷 그대로 입고서 식당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으로 모든 드래곤들이 한 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다녀왔어~ 오빠!”
“재밌었어!”
히히덕거리며 나를 보고 손을 좌우로 흔드는 아샤와 아냐를 본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외출복에 약간 흙이 묻어 있는 게 한바탕 뒹굴고 온 모양이었다. 대체 어떻게 놀면 흙이 머리 위에도 묻나 싶긴 하지만...
“안녕, 카르네. 예쁘게 꾸미고 왔는걸. 보기 좋아. 샤르는 여전해 보이고... 아샤, 아냐. 너희는 이리로 와봐.”
“응? 알겠어, 오빠.”
다가온 아샤와 아냐의 옷을 청결 마법으로 깔끔하게 해주고서는, 둘의 머리에 묻은 보푸라기 따위를 떼어내며 말했다.
“잘 놀다 왔어?”
“응, 오빠 동상 잔뜩 보고 왔어! 근데, 조금 다른 부분이 있더라?”
“응, 동상 쪽이 좀 작았지?”
뭐가 작았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헤에, 사이가 좋아 보이네?”
아샤와 아냐, 그리고 그런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는 나를 보고서 크리샤가 샐쭉하니 묻는 것을 보고서 내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럼, 사이좋지. 그치, 아샤? 아냐?”
“응, 오빠랑 아샤는 무지 사이좋다구?”
“아냐도 오빠랑 사이 좋아~”
“...흐으으응? 그으래애?”
크리샤가 많이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으니 이쯤 하기로 했다. 냉큼 아샤와 아냐의 머리에서 손을 떼어내고서, 내 연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다들 자리에 앉을래? 특히 크리샤랑 아르카는 오래 서있으면 좋지 않잖아.”
“이제 와서 챙겨줘도 하나도 안 기쁘거든?”
“기뻐 보이는 데에 거짓말 하기느은?”
“아, 아니거든?!”
틱틱대며 크리샤와 아르카가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보란 듯이, 내 좌우에 있는 한자리씩을 차지해서.
“......”
움찔, 하고 그런 둘을 본 루시아의 고운 이마에 힘줄이 돋는 것을 나는 분명 보지 못했다. 그래, 정말로 못봤다. 진짜다.
“...루시아는 내 맞은편에 앉는 건 어때?”
“알겠어요, 이지경님.”
내 말에 한숨을 폭 내쉰 루시아가 나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서, 내심 안도하고 있자니...
“오빠, 나는? 나는?”
“아냐는 어디에 앉으면 돼?”
이러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전부 정해줘야할 판이었다. 흘깃, 에루나에게 눈치를 주자 에루나가 다른 드래곤들을 향해 말했다.
“아샤 아가씨와 아냐 아가씨는 함께 이쪽으로... 카르네 아가씨와 샤르 아가씨는 그 반대편에 앉으면 되실 것 같습니다.”
에루나의 깔끔한 자리배분에 아무도 불만을 품지 않고서, 자리에 앉고 나서야 조금 조용해졌다.
그런 나를 보던 카르네가 빙글빙글, 머리카락을 꼬며 말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이렇게 다 부른 거야~?”
원래는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던 루시아가 아무런 말도 없고 크리샤 역시 뭐가 불만인지 툭툭, 식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기만 할 뿐이고, 아르카는 하품만 하고 있자니 카르네가 내게 말을 건 거였다.
그런 카르네에게 고개를 돌리고서, 내가 말했다.
“얘기할 거랑, 부탁할 거랑, 제안할 게 있어서.”
“흐으응~?”
내 말에 빙글빙글, 머리카락을 꼬는 카르네가 보였다.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괜히 뭔가 있어보이게 머리카락을 빙그르르 감고 있었지만, 저게 전부 그냥 그럴 듯해보일 뿐인 행위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야...
「상태 : 기쁨 (흐흥. 나도 꾸미면 다른 녀석들보다 더 대단하긴 하지~ 루시아는 가슴만 클 뿐이고, 크리샤는 성격이 나쁘고...)」
훤히 카르네의 정보창이 내 눈앞에 떠오른 채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카르네만이 아니였다.
시선을 돌려, 크리샤를 바라보자 눈이 마주친 크리샤가 나를 보고서 눈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위로 떠오른 정보창도 보였다.
「상태 : 새침 (날 제쳐두고 다른 녀석들만 신경 쓰고... 두고 봐, 이름, 정해두지 않았으면 머리털을 다 뽑아버릴 거야!)」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다. 아이의 이름은 제대로 생각해뒀으니까. 그 다음은 아샤와 아냐... 둘은 쌍둥이라 그런지 생각하는 것도 똑같았다.
「상태 : 즐거움 (빨리 오빠랑 놀고 싶다~)」
「상태 : 즐거움 (오늘은 무슨 놀이를 가르쳐 주려나?)」
또 다음은 루시아.
「상태 : 반가움 (이지경님과 대화하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네요.)」
다음은 아르카.
「상태 : 졸림 (지금이 딱 자기 좋은 시간인데에, 어서 끝내고 자면 안되나아?)」
마지막으로 샤르까지.
「상태 : 무심 (...얘기할거랑 부탁할거, 그리고 제안할거?)」
눈앞에 떠올라있는 일곱 개의 정보창들. 제각각의 드래곤들의 위에 정보창에 떠올라있는 상태를 전부 모아다가 확인하고 있는 중인 내게 있어서 사각이란 없었다.
이게 보고 안다고 해서 대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어서 문제일 뿐이지. 아무튼 적어도 갑작스레 무슨 사고가 터질 일은 없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카르네나 샤르처럼 별달리 호감도를 올리지 않은 드래곤의 정보창도, 훤히 볼 수 있는 이유는 별 거 없었다. 드래곤들의 처녀를 빼앗은 자의 칭호 효과로 다른 드래곤들과도 기본적으로 높아진 호감도 덕분이었다. 그거 말고도 아름아름, 나에 대한 호기심이 쌓인 결과 가까스로 30에 걸친 호감도였지만 이거면 충분하고 넘쳤다.
정보창을 통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딱 적정한 수치의 호감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녀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자니, 루시아가 내게 말했다.
“얘기하실 거라는 건, 저희들끼리 했던 내기에 대한 거겠죠?”
그런 루시아의 말대로 내기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맞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일단 그렇지.”
“부탁하실 거라는 건, 그거랑 관련된 일일 테고... 그 다음은 제안, 인가요. 저도 감이 안 오네요...”
“그럴 거야.”
앞 선 두 가지의 일이야 예상하기 쉬웠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제안할 게 있다는 말은 영 생뚱맞은 일일 테니 말이다.
뭣보다, 내가 그녀들에게 뭔가 제안했던 적은... 맨 처음,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내기에 대한 거였으니 말이다.
“일단, 에루나. 식사 좀 부탁할게.”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루나가 손가락을 튕기자, 식탁 위에 갓 차린 듯한 요리들이 잔뜩 늘여졌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요리들을 보고서, 드래곤들이 하나같이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것을 보고서 내가 말했다.
“밥부터 먹자고, 다들 배고프지?”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지...
일단 위장부터 휘어잡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