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259화
빛의 터널.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서 떠올린 것은 지금은 먼 옛날 일처럼만 여겨지는, 내가 막 소환됐을 당시의 일이었다.
그때도 분명 이랬었지?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뭐 그때랑 별다를 바는 없어보였다. 주변 풍경은 말이다.
그때랑 다른 점이 있다면.
“...전부 제대로 달려있네.”
작은 먼지, 혹은 알갱이.
그렇게만 느껴졌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던 이전과 달리. 지금의 나는 사지가 멀쩡하게 달려있는 오체만족의 상태였다. 물론 오체가 만족하고 있다는 거지, 정상이란 건 아니었다. 달려만 있다시피 할뿐이지 차라리 이전의 알갱이였던 당시가 더 정상이었던 거라고 생각되기까지 했다.
그야 내 몸의 절반 가까이가, 내가 평소에 봤던 몸과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오른팔부터 어깻죽지까지는 이런저런 빛깔로 알록달록, 뒤섞여 있었다. 파충류의 그것을 닮은 비늘, 뿔과도 같은 각질, 혹은 깃털 등.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로. 용화 상태라고 하기엔 조금 그런 기이하게 뒤섞인 모양새로 이루어진 신체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머리 위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 머리 위로는 마왕의 그것과, 과거 낙시안들의 뿔과 닮은 혹도 달려 있었다. 덕분에 이마에 돋아나 있는 뿔만 네 개에 달했다.
여기까지는 뭐, 그나마 그래도 봐줄 만은 한데...
하반신이 좀... 크고, 징글맞은 녀석이 촉수처럼 움직여대는 것이 내가 보기에도 남사스러웠다.
아무튼, 그런 자신의 모습을 나는 거울도 없는, 오직 빛이 뻗어져나가고 있을 뿐인 터널의 앞에 선 채로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묘한 감각이였다.
내가 나를 의식하면서도,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 한 느낌. 눈만이 내 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달려 있어서 날 보는 듯 한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굳이 표현하자면...
화면 너머로, 내가 내 캐릭터를 보는 듯 한 기분이었다. 세상에, 대체 누가 자기 캐릭터를 이런 괴물로 만들까 싶기는 했지만. 취향이란 특이한 법이니 이런 식으로 꾸미는 자도 분명 있기는 있을 거다.
나는 아니지만.
아무튼, 몇 차례 몸을 움직여보고서 그런 기묘한 감각을, 내 신체가 아니였던, 다른 것을 움직이는 감각을. 나는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한 번 겪어봤으니까.”
내가 나를, 마치 게임 속에 있는 캐릭터를 만지는 것처럼 커스텀마이징했던... 그때, 이미 겪어본 감각이었다.
다리를 네 개나 달아보고서 달려보기도 하고, 팔만 여덟 개를 달아보고서 휘둘러보기도 하고, 커다란 외눈만 달아보기도 하고.
도중에 정상으로 돌린다는걸 잊어먹고, 심장을 두 개나 달아놓은걸 까먹기는 했지만. 덕분에 아직 살아있는 거니까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아무튼... 이형의 것을 몸에 달고서 움직여본 것은, 이미 옛저녁에 해봤던 일인 것이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는 것도, 기이한 형태로 꺾여져있는 팔을, 손을 다루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어디보자.”
자, 그럼 일단은 내 몸 자체에 이상이 없다고 치고서. 현 상황이 대체 뭔 지랄인지 알아볼까.
“상태창.”
우선, 내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것들이 무사한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상태창」
「이름 : 이지경(베헤노스)」
「칭호 : ???」
「성별 : ???」
「나이 : ???세」
「직업 : ???」
「종족 : ???(???+???+???+???)」
「근력 : ???(?)」
「민첩 : ???(?)」
「체력 : ???(?)」
「지력 : ???(?)」
「마력 : ???(?)」
「매력 : ???(?)」
「행운 : ???(?)」
「생명력 : ???/???」
「마나력 : ???/???」
「지구력 : ???%」
지직, 하고. 여느 때와 같이 눈앞에 떠오를 상태창을 기다리고 있던 내 눈에 비친 것은 이름 외에는 죄다 ???로 도배되어있는 상태창의 모습이었다.
딱 봐도 오류가 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고유 특성 : 차원을 넘은 자(SS), 개변자(S), 만인지상(S)」
「보유 기능 : 주시자의 눈(EX), 불멸자의 심장(EX), 카마수트라(SS) 헤아리는 자(?)」
고유 특성과 보유 기능 중에서 몇 개는 멀쩡한 것이 보였다. 카마수트라 저건 어째서 끼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멀쩡한 특성과 기능을 보아하니 대충 어떻게 된 건진 알겠다.
편린.
그것이 깃들어져있는 것으로 여겼던 기능은 멀쩡했다.
카마수트라니 개변자, 만인지상까지 끼여져 있는 걸 보면 SS급, 혹은 S급부터는 멀쩡하게 적용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카마수트라나 개변자, 만인지상을 제외하면 제일 높은 등급의 기능이나 특성이 죄다 A나 B라서 확인하긴 힘들었다.
그래도 아마 맞을 거다. S급부터는 멀쩡하다는 가설이 말이다.
특성 중에선 A급이 꽤나 있었으니 말이다.
“...S급이 기능은 초인이였고, 특성은 초월이였나?”
초월이나 초인이나 둘 다 공통점이 있다면 무언가를,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다들 먹통이 되어버린 와중에도 멀쩡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뭐, 그건 됐고... 이게 대체 뭔 일이래.”
아리스에게 있던 특성, 마왕의 저주란 걸 해석하려던 도중에 여태 전혀 반응이 없었던 편린이 내 몸에 멋대로 흡수되더니 이 꼬락서니가 났다는 것까지는 확실한데. 대체 뭔 일이 났길래 이런 곳으로 끌려와서, 이런 몸이 된 건지는 감이 안 잡혔다.
그 예의, 이 지랄을 낸 것이 분명해 보이는 기능. 헤아리는 자는 등급도 제대로 표시되지도 않고 있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헤아리는 자’가 현 상황에 대응합니다.]
범인이 움직였다.
아니, 범인만이 아니라.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주시자의 눈’이 현 상황에 대응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불멸자의 심장’이 현 상황에 대응합니다.]
공범들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건이 충족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알림음과는 다른, 기계음이 아닌 목소리가,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그 직후에 귓가에 들려왔다.
[일시적으로 플레이어님께 3급 이하 신역의 권한이 부여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헤아리는 자’가 ‘레코드’의 열람 권한을 요청합니다.]
[요청을 승인합니다.]
권한이니, 요청을 승인이니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직후,
“우웨에에엑!”
이거 어디서 당해본 것 같은데.
울컥, 하고 목 너머로 무언가가 쏟아지는 느낌과 함께 토악질했지만,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런 느낌만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느낌만 들었을 뿐인, 기시감이 드는 경험뿐만이였던 몸 쪽과는 달리. 이 직후에 있을 일을 예상했던 내게, 정말로 그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영상들이 지나쳐갔다.
마왕 같은 차림의 내 곁에 있는, 드래곤의, 본신의 모습으로 변한 연인들이 있는 영상이.
알몸으로 있는 연인들 모두와 몸을 섞고 있는 영상이.
중년의 내가, 알록달록 머리색의 아이들을 껴안고 웃고 있는 영상이.
차례대로.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이것이 뭔지 나는 이해했다.
이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미래들의 모습이었다.
거듭되며 뻗어나가는 갈래들의 미래를 헤아려서, 내가 변할 수 있는, 미래들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였다.
주시자의 눈으로는, 로로의 과거를. 과거를 보았다면... 헤아리는 자는 미래를, 내 미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아버님.’
검은 머리의 소녀의 모습이 스쳐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주의, 다른 누군가의 의지가 플레이어에게 개입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음을 확인합니다.]
[아일라아드의 안배가 발현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헤아리는 자’가 일시적으로 ‘마왕의 저주’의 해석을 보류합니다.]
그렇게 알림이 들려온 직후에, 막 눈앞에 나타났던 검은 머리의 소녀가 비치는 영상이 일그러졌다.
그 대신에...
‘예정된 멸종을 막을 방법은 정말로 없는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 펼쳐지는 듯 보이던 영상이 끊기고서, 목소리들만이 돌연 귓가에 들려왔다.
[‘레코드’의 심화 영역에 돌입합니다.]
그런 내 귓가에 들려온 음성과 함께, 목소리가 점점 뚜렷하고, 확고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나리오를 깰 방법이...’
‘우리로는 불가능한...’
‘이 세계에 얽혀있는 존재는, 정해진 멸망을 피할 수 없어. 우리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다고...’
‘마왕의 저주를 해결하려고 했다가 이런걸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
‘방법이 정말로 없는 거야?’
‘...종말을 피할 방법.’
‘신들이 버려버린 놀이터를, 서서히 무너지기로 예정된 이 세계의 멸망을 막을 방법...’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 하지만 그때 들었던 목소리와는 달리... 정말로, 진지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지 대화뿐이라, 정말로 그들이 맞는지 의아해할 쯤.
[주시자의 눈이 지나간 역사의 굴레를 엿봅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는 힘. 주시자의 눈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작은 점이 오른쪽 눈에 비쳐보였다.
여섯 명의 남녀가 거기에 있었다.
작은 점으로 비쳐 보이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편린을 엿보고 있는 내 눈에 그들이 비쳐보였다.
‘아네모네스. 정말로 방법은 없는 거야?’
루시아의 어머니.
혹은... 그녀의 과거.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여인이, 푸른 머리카락의 남성의 물음에 고개를 내젓는 것이 보였다.
저 남성의 정체도 나는 알고 있었다.
아샤와 아냐의 아버지. 혹은 그녀들의 과거.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건 확실해요. 아일라아드.’
그런 푸른 머리카락의 남성에게, 아네모네스가 고개를 내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아일라아드. 그 이름은 방금 전에 들었던 이름이었다.
방금 막, 알림을 통해서 ‘아일라아드의 안배’가 발현되었다는 알림을 들은 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에 대해서 생각을 이어나갈 시간은 없었다.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영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멸종을 기다려야 된다고? 장난해? 아직 연애도 제대로 못해봤는데~?!’
고개를 내젓는 아네모네스에게 그렇게 외치는 붉은 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쟤도 누군지 알겠다.
카르네의 아버지, 혹은 그녀의 과거.
‘...진정해. 카르디에마.’
그리고 그런 남성을 조용한 목소리로 진정시키는 은발의 작은 소녀도 보였다.
“...샤르?”
과거에, 내가 이 세계에 소환되기 전에 보았던... 은발의 여인은 거기에 없었다. 단지, 샤르와 꼭 닮은 소녀만이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
‘맞아, 진정하라고 카르디에마. 아네모네스가 정말로 방법이 없었다면 이렇게 우릴 모으지도 않았을 테니까.’
녹색 머리의 남성.
아르카와 닮았다면 닮은 남성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녹색 머리의 남성의 말에 붉은 머리의, 카르디에마라고 불린 남자가 투덜거렸다.
‘정말로 그러길 바라는 중이야, 데메테네스.’
녹색 머리의 남성의 이름은 데메테네스였던 모양이다.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덕분에 확신했다. 샤르를 꼭 닮은 소녀 때문에 아리까리하긴 했지만, 이건 과거의 모습이었다.
루시아가 아네모네스라는 이름의 금색용이였을 때의, 카르네가 카르디에마라는 이름의 경박한 남성이였을 당시의, 아샤와 아냐가 둘로 나뉘지 않고, 온전하게 아일라아드라는 이름의 남성이었을 당시의 과거. 그리고 아르카가 데메테네스라는 이름의 남성이였을 때의 과거.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기분이 그랬다.
과거라고 해야 할까, 동일하지만 같은 존재가 아닌 타인이라는 건 알겠는데, 살을 섞었던 아르카나, 섞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는 할 건 다했던 아샤나 아냐의 남성인 버전을 보는 기분이라...
...둘 다 우월하다시피 한 드래곤이 변한 모습이라 하나같이 미남이긴 한데, 아무리 가능을 외치는 나라고 해도 저건 좀 그랬다.
“...농담할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너무 무거운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나온 농담에 그렇게 중얼거리며 실소를 흘리고 있자니,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던 아네모네스의 입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방법은 있어요. 단지,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타력에 의한 방법이.’
아네모네스의 입이 열리고, 그렇게 말하자 다른 여섯의 드래곤들이 그녀를 응시했다.
‘타력?’
‘다른 힘을 빌리자는 뜻이야?’
‘...설마 너.’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그녀를 응시하는 드래곤들을 향해. 아네모네스가 말을 이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자, 존재할 수는 없는 자. 우리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그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