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260화
“잠깐만 이거...”
이야기가, 내가 아는 것과는 좀 다르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르다고만 여겼던, 서로 다른 길로 이어지던 선이 맞물린다는 사실을 느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에 비하면... 이야기가 무척이나 비약적으로 진화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거. 내 얘긴가?”
드래곤의 멸종을 막기 위해, 다른 차원에서 소환됐던 나.
그렇게만 알고 있었던 것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과거의 드래곤들의 대화와 어느 정도 맞물리고 있었다.
단지, 드래곤의 멸종이 아니라 세계의 멸망이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
“...진 않는데.”
드래곤이 멸종하면 결국 이세계가 망하는 건 똑같았다. 지금 눈에 비쳐보이고 있는 과거에 있었던 일, 드래곤들은 ‘세계의 멸망’을 말하고 있었지만, 내가 알기론 드래곤의 멸종도 결국 세계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은 동일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
무언가 꺼림칙했다.
‘...다행히 아직 그는 우리들이 계획을 알아차린 것을ㅡ'
그리고 그런 꺼림칙함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던, 아네모네스의 입이 다시 열리기 직전에...
[2급 이하 관리자에 의해 ‘레코드’의 권한이 해제됩니다.]
[플레이어를 ㅡㅡㅡ가 감지해냅니다.]
[대상이 플레이어를 주시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카이네르야의 안배가 발현합니다.]
[대상의 주시를 일시적으로 분산시켰습니다.]
[주시자의 눈, 헤아리는 자가 이에 대응합니다. 대상의 관찰을 차단했습니다.]
“응?”
아네모네스가 말을 잇던 도중에, 그런 알림과 함께 뚝하고 끊겨버렸다. 그리고.
“자, 잠깐만...”
쭈우욱, 하고 무언가가 하반신에 달라붙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달라붙는다기보단 빨아들이는 듯한... 의식과는 동떨어진 감각. 여기에 있는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전해지는 듯한 감각이.
그와 동시에 몸이 부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읏...?!”
빛으로 이루어진 터널이, 강하게 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뭔가 중요한 정보를 듣기도 전에 끊겨버렸다는 것보다도, 또다시 터진 새로운 상황에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길 통과하면... 대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번 지나쳐오기는 했는데, 저길 또 지나쳐가면... 돌아갈 수는 있는 건가?
...물론, 어디까지나 그녀들이, 내 연인들이 있는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부모님께 죄송스럽긴 하지만, 이미 그쪽 세계에 내 자식만 둘이나 있는데 내팽개치고 갈 수는 없으니까. 부모님들도 손자, 손녀들을 버려두고 왔다는 걸 아신다면 날 땅에 파묻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이대로 빨려들어져 가야하는지, 아닌지 고민해봐도, 마땅찮은 정답이 나오질 않았다. 거기에 고민할 시간도 얼마 없었다.
“......이거 안 되겠는데.”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나는 터널의 흡입력에 저항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빨아들이는 힘이 너무 강했다. 더군다나 여기선 뭘 붙잡고 버틸만한 것도 없었다.
내 몸뚱이를 제외하면 텅텅 비어있으니 말이다. 내가 내 몸을 붙들어잡는다고 해도, 터널이 빨아들이는 흡입력에 버틸 수 있을리도 없고 말이다.
“제발 제대로 돌아가라...”
그저 기도하며, 저항을 풀자 순식간에 몸이 터널쪽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육체적 비틀림을 발견합니다. 기능 ‘불멸자의 심장’이 이에 대응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정신적 비틀림을 발견합니다. 기능 ‘주시자의 눈’이 이에 대응합니다.]
[기능 헤아리는 자가 이를 조율합니다.]
[비틀린 균형을 조정합니다...]
[플레이어의 3급 이하 신역의 권한이 해제됩니다.]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잃었다.
부상하는 의식과 함께, 느릿하게 뜨여진 눈앞에 아샤와 아냐의 얼굴이 보였다.
바다의 일부를 옮겨놓은 것 같은 푸른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 어딜 봐도 미소녀라는 느낌의 쌍둥이 소녀들의 얼굴이 말이다.
그리고 그런 둘의 얼굴에 진뜩하게 묻은채로, 흘러내리고 있는 것도 보였다.
“......”
저게 뭔지는 알고 있었다.
정액이였다.
그것도 아직 채 굳지도 않아서, 끈적거리며 흘러내리고 있는, 막 싸낸 듯한 정액이였다. 그것도 한두 번으론 끝나지 않은 양의 정액이었다.
문제는 왜 눈앞에 아샤와 아냐 있고, 그런 둘이 얼굴에 덕지덕지 정액으로 범벅됐냐는 건데... 나도 깨자마자 정액을 뒤집어쓰고 있는 쌍둥이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 또 커졌다♥”
“아냐, 다음은 내 차례니까~”
“알았으니까 밀지 마, 언니.”
하지만 얼마 안가서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있었다.
정신을 잃은 나를 에루나가 내 방에 눕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티격태격하면서 자기차례니 뭐니하고 있는 두 범인. 아샤와 아냐가 그런 내 방에 쳐들어온 상황이란 것을.
그리고 내가 잠든 사이에 그런 둘에게 몇 번이나 착취당한 상황이란 것도 말이다.
그리고 그건 아직 현재진행형이였다.
“아움♥”
쪽~ 하고. 하반신에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빨기 시작하는 아샤의 입술의 감촉이 전해져왔으니 말이다.
별로 당황하지 않은 건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자고 있는 사이에 크리샤나 아르카한테 당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였다.
적응이란 게 이렇게 무서웠다. 별로 적응하고 싶어서 적응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아직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모른 채, 서로 사이좋게도 순서를 정해서 펠라치오에 열중하고 있는 아샤와 아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거지?'
둘이 기어코 내 방에 쳐들어온걸 보면 꽤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체감상으론 그다지 오랜 시간동안 누워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일단 일어나야겠다 싶어서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
꿈쩍도 하질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의식만 덩그러니 있고 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걸. 더군다나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 그렇게만 느꼈을 뿐이지 난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중이란 걸 말이다.
즉, 지금 나는 의식만 깨어난 채로, 몸 쪽은 여전히 잠들어있었다. 그런 주제에 주변의 상황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지만.
유체이탈, 뭐 그런 거 같았다.
'...어쩐지 좀 이상하다 싶더라니.'
아샤와 아냐 역시 드래곤이였다. 그런 둘이 내가 깨어난 사실도 모른 채, 계속해서 펠라치오만 할리도 없었다.
내가 깼다는 걸 알면 진작 다른 걸 요구하던지, 내 눈치를 보며 떨어졌던지, 둘 중 하나였을 테니까.
그런데 내가 깬 것도, 잠든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라면 지금의 상황도, 아샤와 아냐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빨고만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몸에 문제라고 생겼나?'
그렇다면 큰일인데. 설마 이대로 계속 이런다면 엄청나게 곤란한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고민의 대답 대신, 띠링띠링하고 귓가에 알림들이 들려왔다.
[대상 '아샤네오나 아드리아', '아냐세오스 아드리아'에게 적용중이던 '조기교육'의 효과가 종료되었습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두 대상에게 영구히 ‘음란’이 부여됩니다. 추가로 모든 감도가...]
[육체적 불균형이 해소되었습니다. 누적된 경험치들을…]
[일시적으로 육체의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내가 상황을 파악하는 와중에도 그간 쌓였던 알림들이 한 번에 전부 쏟아지듯이 들려왔다. 안그래도 막 자다 일어난 듯한 기분이라서 먹먹한데 쏟아져내리듯 귀에 꽂히는 알림들에 머리가 멍해졌지만, 중요한 부분은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조기교육의 효과가 끝났다는 것과, 지금 내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것이 일시적인 거라는 것 말이다. 덕분에 이대로 누워만 있어야 되는건 아니란 걸 알게 되서 안심이긴 한데.
'조기교육의 효과가 끝났다고?'
카마수트라의 특수효과, 조기교육은 말 그대로 조교 대상이 된 자를 조기에 교육하는걸 의미했다. 그리고 효과가 적용되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한 만큼, 무척이나 뛰어난 효력을 발휘하던 녀석이었다.
근데 그게 끝나버린 모양이였다.
내가 끝낸 건 아니니, 조건 중 하나가 충족되지 않게되서 강제로 종료된 모양이고.
어디보자... 조건들이 뭐였더라.
대상이 아직 성교를 경험한 적이 없고, 섹스에 대한 지식와 인식이 없는 경우와 나에 대한 전적인 신뢰였던가.
후자는 내가 뭔 짓을 한 것도 아니니 문제없을 테니... 전자의 조건이 어떻게 된 모양인데.
“츄읍♥ 쮸웁~♥”
입 안 가득 드래곤 슬레이어를 물고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샤를 바라봤다.
끄트머리를 입에 문 채로 혀로 굴리듯 애무하면서 양 손으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훑어오는 것이 누가 가르쳤는지 무척 기분 좋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깨면 안 된다고 생각은 아직 하고는 있는 모양인지 조금 자중하는 모양이라서 조금 간질간질한 느낌도 드는 것이... 꽤 색다른 기분이었다.
내 곁에 있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내게 정액을 쥐어짜내듯이 강렬한 애무만 해왔었으니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지막까지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젠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아샤의 펠라치오를 받으며 생각했다.
아샤와 아냐의 ‘조기교육’이 종료된 이유의 유력한 후보로는, 여태껏 내가 아샤와 아냐에게 해왔던 행위들의 정체를, 둘이 알게됐을 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여태 안들킨 게 이상한 일이긴 했지.'
눈이랑 귀만 가린 채로, 아샤와 아냐의 앞에서 아리스나 에네스타, 에루나를 안은 적도 있었고.
주니어를 통해서 당장 아샤와 아냐를 안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을 만큼 개발하기까지 했다. 여태껏 들키지 않은 것이 이상한 수준이였다.
...잠깐만. 그럼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손가락 하나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알거 다 알게 되버린 욕구불만의 드래곤들이 앞에 있다는,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언제나 두려웠던 현실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눈치 챘다.
“언니, 이 기회에... 어때?”
“우웅?”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고서야 다급하게 다시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던 내 귀에 아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도 깨지 않는 것 같고...”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