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화 〉274화
“키에에엑...!”
버둥거리는 고블린의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자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목뼈가 분질러진 고블린의 사지가 늘어졌다.
덜렁덜렁, 절명해서 늘어진 고블린을 대충 던져버리고서 주변을 둘러봤다.
내게서 풀풀 풍겨대는 마왕의 마력의 이끌려 덤벼든 고블린들의 시체가 잔뜩 있었다.
“이건... 확실히 개선해야겠는걸.”
마력에 이끌린 몬스터들이 낮밤을 안 가리고 달려드는 통에 엄청나게 귀찮았다. 에루나가 내게 말했던 주체니 뭐니하는 이야기보다는, 확실히 직접 와 닿는 단점이었다.
천공성에서 한창 아이 만들기 중인 본체였다면 내게 다가온 몬스터들을 그대로 복종시켜버리고 끝냈겠지만, 이 몸으론 그저 마력만 주변에 퍼트리고 몬스터들을 이끌리게 할 뿐 그런 힘이 없었다.
즉,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를 내쫓기 위해서든, 아니면 날 잡아먹고 마왕의 마력을 취하기 위해서든,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해서 덤벼드는 몬스터들을 일일이 잡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꼭 벌레잡이 덫이 된 기분이었다. 달콤한 향기에 이끌린 벌레들을 죄다 잡아들이기 위한, 그런 덫 말이다.
뭐, 안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움직이며 몸을 쓰고, 그때마다 조금씩 개선한 끝에 더 이상 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됐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보다 인간적인 느낌으로 움직일 수 있게되서, 아무리 검주라도 직접 몸을 베거나 하지 않으면 이 몸이 골렘이라는 걸 알아차리기 힘들 수준이 됐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동안의 전투 덕분에 여러 기능도 새로 취득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잠깐 쓰고 말 예정이었던 골렘의 몸에 익숙해지고, 강해져봤자 별로 기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디까지나 몸을 다루고 있는 내 영향을 받아서, 천공성에 있는 나와 비슷하게 성장 중인 골렘을 봐도 그다지 감흥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하루 이틀이면 도착할 줄 알았던 길을 이놈의 몬스터들 때문에 한참이나 더 걸렸다는 것만 짜증날 뿐이었다.
“그래도 이제 고생할 일은 없겠네.”
멀찍이서, 이제야 시야에 들어오는 성벽들이,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드네아 공작령이자, 아리스의 고향. 또는... 검사들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도시.
“저기가 브란데냐구나.”
아리스의 이름 사이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던, 도시가 보였다.
“드네아 공작가를 찾아가는 거라면 당분간 관두는게 좋을 걸세.”
대충 중간에 머물렀던 도시에서 구한 용병증을 신분증으로 하니 별 다른 검사도 없이 들어올 수 있었던 브란데냐의 여관에서, 주인 아저씨가 건넨 말에 내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왜요?”
스윽, 하고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는 여관 주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굳이 그걸 제지하지는 않았다. 이전에는 꽤 이름을 날린 검사였던지, 칭호에 검객이 달려있는 여관 주인이었지만. 그래봤자 지금의 나를 파악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였다.
어디까지나 상대를 가늠해보려는 시선. 통찰 마법이나, 아리스의 혜안 같은 게 아니라면 정체를 들킬 일은 없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 허리춤에서 더 내려가서 허벅지 같은 걸 볼 때는 조금 불쾌하긴 했지만... 뭘, 그것도 이해했다.
검사로써 중요한 것이 하체임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여관 아저씨가 그렇게 나를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자네도 공작가에서 용병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것 같은데... 아닌가?”
아니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괜히 무안해할 것이 분명해서 대충 그렇다는 모양새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여관 아저씨가 그럼 그렇지,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말했다.
“헌데, 그게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신분상승의 기회가 아니란 말이지. 심사과정부터 엄청난 모양이더라고.”
흘끔, 그렇게 말하며 메뉴판을 보는 여관 아저씨를 보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장사를 잘하시는 양반이었다.
“이걸로 대충 차려주세요. 그래서, 심사과정이 어떤대요?”
주머니에서 오다가 잡은 고블린들의 퇴치비용으로 받아낸 은화 몇 개를 꺼내서 여관 아저씨에게 건네자 큼, 하고 헛기침을 한 아저씨의 말이 이어졌다.
“무려 그 기사단장님이 직접 심사하신다지 뭔가. 자네도 알고 있겠지? 용갑기사단의 단장이신 용기사 보레아스를 말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던 이름이었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이라니? 당연히 그 기사단장님의 눈의 찰만한 놈들이 용병같은 걸 할 리가 없지 않나? 아무튼 죄다 신세 한 번 바꾸려다가 반병신이 돼서 나오더군. 몸이 재산인 용병이라면 차라리 안가느니만 못한 일이지.”
“그렇군요... 그 기사단장님이 엄청 센가봅니다?”
“그럼 당연하지, 무려 검주니까.”
그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 검주라... 대체 심사로 뭘 하는지는 몰라도 대련같은 거라면 꽤 곤란했다. 검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들키지는 않겠지만, 실수했다가 몸이 베이기라도 하면, 내 몸이 일반적인 몸이 아니란 걸 단박에 들켜버릴 테니 말이다.
물론, 베이지만 않으면 될 일이기는 했다.
“그래서, 대체 드네아 공작가에서 왜 용병들을 구한답니까? 공작가에도 병사나 기사들이 있을 텐데요.”
“그것도 모르면서 여기까지 온 건가?”
“검주께서 심사한다는 걸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제가 있는 곳에선 듣지 못했던 이야깁니다.”
당연했다.
천공성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턱이 없었으니.
아무튼 내 말에 어느 정도 납득이 됐는지 그도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인 여관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지...”
“아리스를 구하기 위해서라.”
드네아 공작가에서 대대적으로 용병들을 모집하는 이유가, 사라진 성녀를. 드네아 공작가의 공녀이기도 한 아리스를 구하기 위한 것이란 소문이 있다는 여관 아저씨의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역시 뭔가 있었다.
현재 아리스는 실종중이란 형편이었다. 그 이유도,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인한 실종이었다. 크리샤가 그렇게 꾸며놨으니, 이들에게 있어서 아리스는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아 실종... 사실상 죽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런데 정작 그 아리스의 집에서는, 공작가에서는 그녀를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용병을 모으고 있었다.
그녀의 흔적을 찾기 위한 수색이 아니였다. 구출이였다.
명백하게 차이가 있는 두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뻔했다. 구출한다는 말은, 이들은 아리스가 붙잡혀있다는 것을 알고 있거나... 혹은 그렇게 여기고 있다는 거였으니.
“그 아리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모양이지만.”
그렇지 않고선, 하늘을 떠다니는 천공성에나 있을 아리스를 구출하기 위해서 용병같은 걸 모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용병들을 모아봤자 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세상에 하늘에 떠있는 성을 검 한 자루만 덜렁 차고서 갈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천공성이 그냥 떠있는 것도 아니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이동중인 천공성은 이미 라이어스 제국과는 한참 떨어져있는... 바다 한 가운데에 떠있는 형편이었다.
그걸 알았다면 차라리 용병이 아니라, 어디 마탑의 지원같은 걸 구했을 텐데...
“...다른 이유라도 있나?”
의심뿐이긴 했지만, 거의 확정적으로 드네아 공작가에 머물고 있는 검은 성녀가 마왕이라고 여기고 있는 지금, 용병을 구하는 이유가 정말로 아리스를 구출하기 위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만약 다른 이유라면.... 여러모로 생각할 여지가 많았다. 당장 나만해도, 어느 정도 수준의 검사들을 ‘아무렇게나’ 다룰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 꽤 됐으니까.
그녀가 마왕이라면, 분명 나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 끝에 엘라제를 땅에 꽂고서 쓰러뜨려보기로 했다. 왼쪽으로 쓰러지면 못 먹어도 고였고, 오른 쪽으로 쓰러지면 이쯤하고 얌전히 천공성으로 돌아가기로 하는 걸로 하고 말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발을 들여놓기가 조금 꺼려져서 그런 거였다.
그리고...
“...좋아, 가보자.”
왼쪽으로 쓰러진 엘라제를 보고서, 도로 주워다가 허리춤에 찬 나는 드네아 공작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용병인가. 소문은 들었나?”
“들었죠. 무시무시하던걸요.”
병신은 아니지만 반병신이 돼서 한동안 밥벌이도 못하는 버러지들이 되버린 용병들의 이야기는 여관 아저씨에게 친절하게 잘 들었다.
결국 드네아 공작가로 가겠다니까 엄청 말려주기도 했고.
“그런가. 그럼 말려도 듣질 않겠군. 그래, 사용하는 무기는 뭔가?”
“검이요.”
“...명복을 빌지.”
왜 검을 사용한다니까 명복을 빈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드네아 공작가의 사병으로 보이는 병사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온 나는 곧장 연무장이 있다는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막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꾸억ㅡ!”
돼지 멱을 따는 소리와 함께 덩치 큰 남자가 내게로 날아왔다.
“이거 본 적이 있는데.”
우리집에서도 자주 봤던 광경이였다.
당연히 하도 보던 것이라 대응책은 있었다.
“조심하시고.”
날아드는 남자를 보고서 몸이 굳은 듯 멈춰선 병사의 뒷덜미를 잡아당기고서 땅을 발로 내리찍었다.
콰직!
순간적으로 발에 과부하를 걸고서, 근력을 극도로 상승시켜 내리찍은 진각과 함께 거미줄처럼 갈라져서 튀어오른 돌조각들을 그대로 걷어찼다.
퍼퍼퍽!
“어흑, 억!”
날아오던 남자의 가죽 갑옷 위로 몸을 두들겨댄 돌조각에 허파에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내며 추락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디 잘 못 맞았는지 돌조각이 두들긴 어깨를 붙잡고 뒹굴기는 했지만...
뭘, 그대로 날아가서 벽에 부딪히거나, 나나 병사랑 부딪혔으면 그쪽이 더 큰 사고였다.
전자라면, 아마 저 남자는 온몸의 뼈가 으깨졌을 거고, 후자였다면 병사도 납작해졌을 것이다. 안그래도 가슴이 없는데, 거기서 더 납작해지면 눈뜨고 볼 수 없어질 거였다.
...나야 알아서 피했을 테고.
아무튼, 결과적으로 남자는 온몸의 골절 대신에, 어깨의 탈골로 끝났고 나랑 병사는 멀쩡하고. 모두가 행복한 결과물의 완성이었다.
“...호오.”
그리고 그런 나를 갑옷 차림의, 용병을 날려 보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여기사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에, 곧은 의지가 엿보이는 눈매. 그리고 갑옷 위로도 알 수 있는, 나름대로 여성다운 몸매까지.
“...언니랑 안닮았구나, 아리스.”
아리스의 언니라고 하기엔 큰 가슴을 보고서 감탄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감탄한 건 아니였다. 라이어스 제국, 인간들의 가장 커다란 나라의 기사단장 답게...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보창을 보지 않고서도 대충 알 수 있었으니까.
적어도, 그 재능만큼은 초월자인 그 아줌마를 닮아서 자매 모두 뛰어난 모양이였다.
가슴과 달리 재능은, 언니인 보레아스보단 아리스가 더 우위인 모양이지만.
“...너는 누구지?”
나를 향해 흥미롭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서 그렇게 묻는, 아리스의 언니이자, 제국의 기사단장 보레아스를 보며.
나는 말 대신에 허리에 차고 있던 엘라제를 뽑아들었다.
“흠, 확실히... 우리쪽의 병사가 데려왔으니 물어볼 필요도 없었군. 그래, 너도 용병으로써 온 건가?”
“대충, 뭐 그렇죠.”
일단은 그렇긴 했으니까. 나는 조용히 신체를 활성화하면서 대답했다. 딱히 위협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태도의 보레아스였지만. 이러다가 얻어터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였다. 검주와 상대할 때, 단순히 기척만으로 상대를 파악하면 안된다는 것쯤은 몸으로 체득한 만큼, 나는 계속 경계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 나를 보고서 어깨를 으쓱인 보레아스가 말을 이었다.
“너라면 저 용병을 받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그런 식으로 대응한 건지 물어도 괜찮나?”
“용병? 아, 저 남자요?”
“음.”
고개를 끄덕인 보레아스를 보고서. 나는 호기심도 많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일단, 제 소개를 하자면 용병인 베헤라고 합니다. 보다시피 검을 사용하는 검사고... 질문의 대답은, 저 용병이 남자기 때문입니다.”
일단 보레아스의 첫 질문부터 차례대로 대답하자, 보레아스가 고개를 갸우뚱하는게 보였다.
“남자라서 그랬다고?”
“네, 내 몸에 남자가 닿는 건 질색이라.”
대충 급조해서 말한 변명이였다. 내가 무슨 나 말고는 다른 남자들을 죄다 인정하지 않는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닿았다고 질색할 리가 없었다. 알몸으로 달라붙는거라면 몰라도. 하지만 그런 내 대답에 보레아스는 뭔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무능한 남자만큼 구질거리는 건 없으니. 특히 저놈 같은 부류는 몸에 닿는 것조차도 싫을 만하지. 음, 나 역시 너의 말이 공감한다.”
“...그렇습니까?”
“그래, 남성이란 이유로 우쭐대기나 하고. 제대로 검을 휘두를 줄도 모르는, 약하기 그지없는 실력을 지닌 주제에 말이다. 전장에서 남성은, 여성의 검이 무조건 빗나가리라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럴 리가 없죠.”
그랬으면 에네스타한테 두들겨 맞았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 헌데, 저놈은 나를 무시했다. 내가 검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낱 종교의 교리 따위로, 나를 여성이란 이유로 얕잡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