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9화 〉299화 (299/370)



〈 299화 〉299화
“이게 무슨 짓이야~!”

상황을 정리하고서 카르네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놓아주자 그녀가 날 원망스레 쳐다봤다.

“미안, 카르네. 아무튼 보다시피 셋도 여기서 지낼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네가 전에 얘기했던  이상한 계획대로 말이지~?”


“그래.”


“나야, 그다지... 뭐, 상관은 없긴 한데~”

뭔가  불만스러워 보이는 카르네가 보였다.


상관없다면서 뾰루퉁하고 튀어나온 입술이 그 증거였다. 보기에는 귀엽기 그지없었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안심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대체  이러나 싶어서 카르네의 정보창을 살펴봤다.


‘뭐야, 나한테는 그렇게 심술부려놓고서~?’

덕분에 불만의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루시아와 아샤, 아냐를 대하는 태도와 자기를 대하는 내 태도가 다른 것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속으로 차별이니 뭐니하며 투덜거리는 카르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에루나의 말이 새삼스레 실감이 갔다.


‘질투심이 강하긴 하네.’

이제 겨우 오십을 넘긴 호감도에 비하면 꽤나 틱틱거렸다. 크리샤나 아르카의 경우에는 호감도가 70이 되기 전까진 이렇다 할 질투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질투라는 감정보다는 자존심이 앞섰던 그녀들은 질투는 해도 이렇게 대놓고 티를 내진 않았다. 하지만 아주 조금 자신이 못하다고 여긴 순간 바로 질투심을 드러내는 카르네를 보니 에루나의 말대로 카르네는 다른 드래곤들에 비해 질투심이 강한  싶었다.


잠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여기서 카르네의 비위를 맞춰줘야하나, 아니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하나.

고민은 짧았다.


역시 이런 건 초기에 해결하는 게 나중에 편해지는 법이였다. 애당초 이런 걸로도 질투하면 여러모로 곤란해지는 건 나였으니까.

“뭐, 뭐야~ 갑자기~?”


와락, 하고 카르네의 허리를 끌어안고 당겼다. 덕분에 내게 찰싹 붙은 꼴이 된 카르네가 투덜거려왔지만,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였다.

뾰죽하고 튀어나온 입이 들어간 것만 봐도, 굳이 정보창을 보지 않아도 알  있었다.


아무튼 그런 카르네를 보며 나가 말했다.

“응, 소개시켜줄 애들이 아직 남았거든. 일단... 에네스타 알고 있지?”

“그야 뭐~? 루시아의 가디언이였던 엘프잖아? 지금은  가디언이고? 근데 걔가 왜~?”


이미 에네스타를 몇 번인가 봤던 카르네가 의아해하는 것을 보였다. 지금쯤이면 이미 소식이 전해졌을 크리샤나 아르카와는 달리, 카르네는 어차피 천공성에 올 예정이라서 전해들은 바가 없었던 탓이였다.


아무튼 그런 카르네에게 대답하지 않고서, 나는 침대에서 휴식 겸 이쪽을 구경하고 있던 루시아에게 말했다.

“루시아, 에네스타는 지금 어디 있어?”

“조카들을 살피러 갔을 거예요. 슬슬 그녀들도 위험한 상태인 모양이라서요.”


그런가. 그럴 만도 했다.


아내들의 일로 바쁜 나머지 제대로 챙겨주질 못한 건 사실이니까.


“마침 잘 됐네. 다들 여기로 오라고 전해줄래?”


“그럴 수야 있지만, 괜찮으시겠어요?”


루시아가 뭘 걱정하는지야 뻔했다. 내게 안긴 채, 재차 내가 루시아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고서 뭐야~? 하고 투덜거리는 카르네에게, 정말로 에네스타의 일을 벌써부터 밝혀도 되는 건지 묻는 거였다.

그런 루시아의 물음에 내 대답은 이랬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뒤로 미루면 미룰수록, 더욱 말하기가 껄끄러워질 뿐이었다. 카르네가 더욱 내게 강한 호감을 느낄 수록 그녀는 더욱 강한 질투심을 드러낼 테니까.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일을 벌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아직 덜할 때, 미리 맞는 쪽이 나았다.


일종의 예방접종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저기, 무슨 이야기하는 건진 몰라도. 나도 좀 알려주지~?”

“금방 알거니까 기다려, 카르네. 루시아, 그럼 부탁 좀 할게.”


“이지경님의 뜻이 그렇다면야... 알겠어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루시아가 톡, 톡하고 손가락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태양빛처럼 따스한 기운의, 루시아의 마력이 그녀의 손끝에서부터 흘러나와 허공에 무형의 마법진을 그렸다. 마력을 볼 수 없었더라면, 그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주시자의 눈, 그 기능으로 인해 실명한 눈으로는 그런 루시아의 마력이 뚜렷하게 보였다.


빛을 잃은 대신, 세상의 본질과 지나가버린 과거를 꿰뚫어 보는 눈에는, 루시아가 펼치는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훤히 보인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루시아의 마법을 관찰하던 내 귓가에, 공간 전이마법을 습득했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오랜만에 습득한 마법이였다. 그것도 나는 여태 쓰지 못해서 에루나에게나 종종 부탁하던 공간 전이마법이였다. 상당한 마력을 소모하느라 에루나에게 부담을 주기만 했던 마법이였던 만큼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걸로 에루나에게조차도 알리지 않고 놀러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건 아니였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루시아의 마법이 펼쳐지자, 쩌억하고 벌어진 공간 너머로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부르기보단, 직접 에네스타와 에오시스 자매들의 방과 내 침실을 연결시킨 모양이었다.

덕분에 에네스타 쪽에서도 이쪽을  수 있었는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그런 에네스타의 앞에서, 병에 담긴 하얀 액체를 받아서 마시고 있던 에오시스 자매들도 말이다.


저게 뭔지야 뻔했다.


아마 넘쳐흐를 정도로 싸질렀던 내 정액들을 병에 주워 담은 것이 분명했다. 효율적이라면 효율적이긴 한데, 흘러나오거나, 바닥에 떨어졌던 것을 저렇게 병에다가 담아다가 에오시스 자매들에게 먹이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니 기분이 뭐했다.

“아, 나의 주... 이, 이건...”


그건 에네스타도 마찬가지였는지, 마치 아이에게 젖병을 물린 것처럼 에오시스 자매들에게 정액을 마시게 하고 있던 에네스타가 두 뺨을 붉히는 것이 보였다.

“주인님...? 앗.”

“주인님! 엣...”


“움... 우움...!”

그리고 그런 에네스타에게서 받은 정액을 마시고 있던 나타와 모네가 나를 보더니 화색이 되어 냉큼 이쪽으로 달려오려다가...

 곁에 있는 카르네를 보고 멈칫했다. 아직 정액을 받아 마시고 있던 에샤는 카르네를 보고서 사레라도 들렸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드는 것도 보였다.


“...뭐야? 쟤~? 뭔가, 배가 엄청 나온 것 같은데. 살이   아닌 것 같고~? 그렇지~?”

그럴 만도 했다. 에네스타의 배를 향해 고정된 카르네의 시선과 함께, 그녀의 심기가 팍 나빠진 것이 보였으니까.


아무리 이쪽의 지식이 미흡한 ‘조숙한 아가씨’인 카르네라고 하더라도, 임산부의 배를 몰라볼 정도로 무지한 것은 아닐 거다. 애당초, 이미 내 아이를 임신한 크리샤와 아르카를 몇 번이나 본 카르네다.


에네스타의 부푼 배가, 그녀가 임신했다는 증거임을 못알아볼리가 없었다.


그리고, 정황상 내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도.  알아 볼 턱이 없다.

“응? 뭐야~? 루시아도 알고 있던 것 같고~? 아샤랑 아냐도 그렇고... 크리샤랑 아르카는 알고 있나~? 샤르는? 혹시 나만 몰랐던 거야~?”


그렇게 내게 따져 묻는 카르네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에서 엿보이는 감정을, 굳이 정보창을 펼쳐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른 자매들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에네스타까지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드래곤 특유의 프라이드와 독점욕이 섞여있는 카르네의 감정이, 그녀의 눈동자 위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그렇게, 예전이라면 생각했을 거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였다면, 그랬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래, 보다시피 에네스타가 임신한 아이는 내 아이가 맞아. 너한테 말해주지 않은 건, 어차피 곧 너도 여기 와서 볼 테니까 그랬던 거고.”

“...너, 너무 뻔뻔하지 않아~?”

“뻔뻔하다니? 사실대로 말한  뻔뻔한가.”

나를 올려다보는 카르네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서 되려 물었다.

“아니면, 뭐지? 내가 거짓말을 했으면 좋았나. 카르네? 사실을 숨기고, 변명하고, 내 아이를 임신한 에네스타를  손으로 뿌리치길 바랬나?”

쩌어억.


내 눈동자가 갈라지는 것을, 나 스스로가 알  있었다.

투둑, 투둑하고 그런 내 몸 위로 비늘이 돋아났다. 그 비늘들이 마치 갑옷처럼,  몸위로 둘러졌다.

그리고, 쭈욱하고  머리 위로 좌우로 세 개씩, 그리고 중앙에  개의 뿔이 돋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용화... 아니, 이 경우에는, 지금 내가 본래 갖춰야했을 모습으로. 드래고니안의 진짜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간의 모습이 아닌, 드래고니안이란 종족의 모습.

크리샤나 아르카가 분노했을 때의 모습, 인간에서 벗어나, 반인반룡의 모습처럼 바뀐  모습이 카르네의 붉은 눈동자에 비쳐보였다.

8개의 뿔로 이룬, 검은 왕관을 머리 위에 쓴... 용과도 같은 형상을 한 남자의 모습이.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카르네에게 어떻게 비쳐보였을지도 뻔했다.


“나,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그럼?”


카르네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서 자신을 바라보는 세 드래곤의, 자매들의 시선을 보고서 어깨를 움츠렸다.


그 시선에 담긴 빛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님을 알아서 그랬을까. 몸에 힘이 쭉 빠진 듯한 카르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야... 미안해...”


강약약강.

내가 여태껏 보기엔, 카르네는 그런 성격이였다.


그것이 카르네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성격이였다. 이 세상에 남아있는 일곱의 드래곤 중에서도, 카르네가 유독 약해질 때가 있다면... 드래곤 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크리샤와 루시아, 아르카의 앞에 있을 때였으니까.


그리고 적어도, 카르네가 보기엔 나 역시 강자였다.


과거에는 몰라도, 지금은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영지에서 펼친 마법조차 억지로 찢어버리고, 육체의 힘으로도 자신을 압도하는 존재가 바로 나였다.

본신의 모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주 그런 것도 아니란  카르네는 눈치 챘을 거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다른  드래곤이 누굴 편들지는 뻔했으니까.


“...사과해야할 건 내가 아니지.”


“......”


정말로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고, 나를 바라보는 카르네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러자 잔뜩 주눅든 카르네가 에네스타에게 말했다.


“미, 미안... 히얏?!”

그렇게 말하는 카르네의 엉덩이를 움켜쥐자 새된 비명소리와 함께 카르네가 몸을 움츠렸다.


“뭐, 뭐, 뭐하는 거야?! 사, 사과했잖아! 자, 잠깐만... 꺄악!”

거기서 멈추지 않고서, 그대로 카르네의 드레스도 들춰 올렸다. 덕분에 모두의 앞에서, 팬티  장 걸치지 않은 하체를 보이게 된 카르네가 얼굴을 붉히는 것이 보였다.

“시, 싫어! 이거 놔~! 놓아줘~!”

꾸욱, 하고 드레스를 잡고서 카르네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서, 오히려 대놓고 그런 카르네의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이 주물렀다. 그리고 태연하게 말했다.

“사과는 사과고. 이건 이거거든. 네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고 이러는  아니란 뜻이야. 그리고 이 정도는 평범한 거니까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그렇지? 하고. 루시아 쪽을 보자 내 시선을 받은 루시아가 고개를 애매하게 꼬며 말했다.

“예에, 뭐. 평범하기는 하네요.”


‘이곳에서는요’, 하고 뒷말만 생략하고 대답한 루시아였지만. 그런 루시아의 증언에 카르네가 충격 받은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펴, 평범...? 이, 이게...?”


제대로 충격 먹었는지 드레스를 잡아 내리려던 것도 멈춰버렸다. 하지만 이내 도리질친 카르네가 말했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아샤, 아냐! 너희도 말 좀 해봐!”


하지만 그렇게 묻는 상대가 하필이면 아샤와 아냐라는  문제였다.

그런 카르네를 보고서, 아샤와 아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려 이상하다는 듯이 카르네에게 말했다.


“말하라니 뭐가? 카르네. 아, 그나저나 오빠. 그 모습 진짜 멋지다! 그치? 아냐.”

“그러게, 언니. 그리고, 카르네. 오빠가 화내면 엄청 무섭다고? 반대로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하면 무지 기분 좋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면 좋을 걸?”


아샤와 아냐마저 그렇게 말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아샤랑 아냐가 보기엔 지금  모습이 꽤나 취향인 모양이였다. 드래곤에 가까워서 그런가. 루시아를 슬쩍 보자, 루시아 역시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왔다.


음, 정말로 멋진가?

내 모습을 한  살펴봤다. 멋지긴 멋진데, 아직 인간쪽의 감성이 팽배해서 그런지 이런 모습보단 역시 미남인 쪽이 훨씬 나아보였다. 뭐, 이것도 꽤 멋진건 부정할 수 없긴 했다. 용의 모습이 더해졌을 뿐이지 본바탕은 여전했으니까.

거기에 마누라들이 좋다는데 싫을리가 없다. 그렇다고 매번 이런 모습을 취하는건 힘 빠지니까 싫지만.

아무튼, 내가 그렇게 내 모습을 살펴보던 가운데 카르네가 한층 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저, 정말로? 이게 평범한 거야...? 이상한  나고...?”


그런 카르네를 보고서 내가 말했다.

“아니, 사실 정말로 평범한 건 아니지.”

“그, 그치~? 이런 게 평범할 리가ㅡ”

“진짜 평범한 건, 알몸이니까.”

“에으?”

내 말에 멍한 표정을 짓는 카르네의 드레스를 벗겨버렸다.

“아, 아아아아~?!”

잠깐 멍하니 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드레스가 벗겨져버린 카르네가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그런 카르네를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방에 있을 때는 알몸으로 있는  평범한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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