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화 〉306화
카르네가 갖고 있는 동경.
연애라는 것에 대한 동경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내가 싫었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모두를 전부 알면서도, 그것을 이용해먹는 것은 정말로 싫은 기분이었다.
“너, 너... 너...!”
그런 나를 올려다보는 카르네의 체온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불처럼 뜨겁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은 카르네가 분노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녀의 마음을 짓밟는 행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윽고, 그녀의 주변이 아지렁이가 흔들리듯,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카르네 그 자신이 활활 타오르며 주위에 있는 것을 태워버리는 불길이 된 것처럼.
카르네는 불과도 같은 여자였다.
그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어.”
하지만 불이 단지 뜨겁기만 한 것도 아닌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의 몸을 덥히는 것도, 식어버린 것을 데우는 것도. 불이 가진 뜨거움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쓰기 나름이란 소리였다.
“돌아오면, 같이 데이트라도 하러 가자고. 카르네.”
그리고, 불이란 것이 사실은 무척이나 외로움을 잘 탄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것을 모두 불살라버리면, 홀로 남게 되어버린 불꽃은 이내 사그라들다가, 없어지는 것처럼.
내버려두면, 반드시 사라져버린 불꽃처럼.
카르네는 외로움을 많이 탔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원하는 것이, 나의 ‘관심’이란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루시아도, 아샤도, 아냐도... 그리고 다른 누구도 없이. 단 둘이. 그건 어때?”
그 마음을 나는 이용해야했다.
“응? 카르네. 나의 공주님.”
그렇게 말하며, 카르네의 뺨을 어루만지자. 이내 화악하고 카르네의 손이, 그런 내 손을 뿌리쳤다.
“...나를 지금, 바보로 알고 있는 거야~?!”
화르륵, 하고 나를 노려보는 카르네의 눈이 그렁그렁해지는 것이 보였다.
“고작 그런 말로ㅡ”
“사랑해, 카르네.”
멈칫, 하고 그런 내 말에 굳어버린 카르네의 손을 붙잡고서, 그대로 입을 맞췄다. 꽈악, 하고 내게서 벗어나려는 카르네의 손에 깎지를 끼면서, 억지로 입술을 탐했다.
그녀가 동경하던 연애 소설 속의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고백이란 건 알고 있다.
그녀가 원하던 키스랑은 너무나도 천지차이인 키스인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카르네에게 미안한 일이였지만, 적어도 내가 낙스에 다녀와야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란 것도 사실이였다. 뭐, 이런걸로 냉큼 수락해줄리가 없겠지만.
거기선 내가 노력해야겠지.
처음은 강제로 시작하긴 했지만, 그 다음부턴 차근차근 카르네를 설득해나갔다.
굳게 닫히려는 입술을 억지로 벌리고, 치아 사이사이로 혀를 밀어넣었다.
그녀가 거부하고 싶더라도, 이미 뼛속까지 각인된 본능이 내 몸을 거부하지 못하리란것도 알면서 하는 행위라는 것이 조금 너무 더럽지 않나 싶지만.
쓸 수 있는건 다 쓰고 보는 것이 좋으니까...
츄우웁ㅡ
한참동안의 키스 끝에 입술을 떨어트린 내가 새빨갛게 물들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카르네에게 말했다.
“그럼 다녀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나는 화끈거리는 뺨을 어루만졌다. 새빨갛게, 마치 불꽃에 데인 것처럼 달아오른 뺨은 무척이나 따가워서, 꽤 아팠다.
‘이제 됐어~! 가서 죽던지 말던지, 아니, 가서 죽어버려~!’
그렇게 말하며, 내 뺨을 있는 힘껏 후려친 카르네의 작품이었다.
...뭐, 허락은 허락이었다. 나중에 돌아오면 사과하자. 그래도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용서해줄때까지 무릎 꿇고 빌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선 낙시안들 중에서도 천공성에 남아있는 로로부터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씁쓸하게 걸음을 옮겨서, 로로가 있을 연병장으로 향하자 한창 수련중이었는지 허수아비를 치고 있는 로로가 보였다.
말이 허수아비지 짚과 나무로 만든 어줍잖은 것이 아니라 무려 묵철에 아다만티움을 도금해놓은, 엄청나게 단단한 물건이었다.
아마 저기다가 마력을 핵을 박아넣으면, 어지간한 골렘보다 튼튼한 녀석이 만들어질 거다.
아무튼, 더럽게 비싼 허수아비... 아니, 철각인형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을 두들기고 있는 로로를 보고서,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로로.”
거의 한달만에 본 건가? 그새 키도 꽤 자랐는지 전에 봤던 것보다 어른스러워진 로로에게 그렇게 말을 걸자, 흘끔 나를 쳐다봤던 로로가 묵묵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웅ㅡ
짙은 푸른빛. 일렁이는 불꽃처럼. 그런 로로의 주먹 끝에 맺히는 투기가 보였다.
뚜렷하고, 아름답게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 로로의 팔을 타고서 진동하는 것도.
“흡...!”
짧은 기합성과 함께, 후욱하고 로로가 허수아비를 주먹으로 올려쳤다. 훌륭한 어퍼였다. 사람이었다면 복부에 해당하는, 정 중앙에 로로의 작은 주먹이 꽂힌 철각인형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 같았지만.
콰드드득!
그대로 거침없이, 아다만티움과 묵철로 이루어진 동체를 좌우로 갈라부수는 로로의 주먹이, 이내 철각인형의 머리까지 터트렸으니 말이다.
“......”
뭔가 엄청 늦게왔다고 시위하는 딸을 보는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러리라. 방금까지 손대중을 하면서 치고 있던 것을, 내가 말을 걸자마자 개박살을 내버렸으니까.
“...화, 화났니?”
덕분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했다.
딸에게 쫄아버린 아버지라니, 추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금 막 카르네한테 뺨을 얻어맞고 왔는데, 로로한테도 맞고 싶진 않았다. 아니, 카르네의 손바닥이야 그럭저럭 맞을만했는데, 저걸로 맞으면 아무리 나라도 진짜 장난 아니게 아플 것 같아서 사양하고 싶었다.
흘끔, 나를 다시 쳐다보는 로로의 시선에 비질땀을 흘리며 긴장하고 있자니, 이내 휙휙 고개를 내젓는 로로가 보였다.
그런 그녀가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화, 안났어.”
다행이었다.
속으로 안도하며 로로에게 다가가려는데, 촤르륵하고 로로의 주변에서 뻗쳐 나오는 촉수들이 보였다.
나를 빼닮아서 질척질척, 훌륭한 촉수들이었다.
내가 마왕이 되면서, 또 로로를 딸로서 받아들이면서. 로로는 마왕의 딸이라는 칭호와 함께, 여러가지의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 능력 중의 하나가, 내 능력의 일부를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내 능력을 어느정도 답습한 로로의 촉수가 내 것을 닮은 거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데...
저걸 왜 꺼냈는지 모르겠다.
알 것도 같긴 한데, 아무튼 모르겠다.
애써 그렇게 부정하고 있자니, 나를 빤히 바라보던 로로가 말했다.
“...아주 조금밖에.”
우리 딸 많이 화난 모양이다.
하긴, 자주 오겠다고 약속했던 아버지가 한달이 넘도록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으니 화날 만은 했다.
“오오오ㅡ?!”
스스로 납득하고 있을 때, 로로의 촉수들이 내게 뻗쳐왔다.
아무리 그래도 촉수물은 사양이었다. 내가 하는 거라면 몰라도, 당하는 거라면 절대로 사절이었다.
날아드는 촉수들을 일일이 바람의 칼날들로 잘라낸다. 철퍽, 하고 땅에 떨어진 촉수가 꿈틀거리며 다시 일으키는 것을 보고서, 나 역시 그림자의 손을 뽑아내 그대로 찍어눌렀다.
근데 그게 실수였다.
“...복수.”
그렇게 속삭이듯이 중얼거리는 로로의 곁에서, 마력진이 그려지는 것이 보였다.
“아, 맞다...”
상대가 사용한 능력을, 고대로 복사해서 되돌려주는 능력.
복수자.
로로의 주변에서 그려지고 있는, 바람의 칼날들의 마법진들과 뻗쳐나오는 그림자의 손들이 보였다.
나에 비해서, 마력이 턱없이 적은 로로가 뽑아낸 만큼 그 수도, 위력도 별 볼일은 없지만...
“...투기까지 두를 수 있었니?”
“...해보니까 됐어.”
과연 내 딸. 천재였다.
내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서, 명백히 상극인 마력으로 이루어진 마법들 위에, 투기를 감싸는 로로가 보였다.
덮는다기보다는, 삼킨다는 느낌으로.
마법을 단지 ‘사출’시켜서 쏘아내는 목적으로만 사용할 뿐인, 그런 수법이었지만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좋은 걸 배웠다.
“...좋아.”
딸이 하는 걸, 나도 못할 리가 없다. 오히려 이쪽이 더 잘할 수 있었다.
촤르르륵, 뻗어나온 그림자의 손에, 아르카의 나무줄기를 더하고. 거기에 로로에게 방금 배운 투기까지 두른다.
내가 그렇게할 때까지 빤히 지켜보던 로로가, 내가 준비를 마치는 순간에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쏟아지듯이 날라드는, 투기를 둘러서 강화된 마법들을 나 역시 투기와 나무줄기를 두른 그림자의 손들로 요격했다.
콰직, 콰지직!
마법들이 서로 부딪히며, 마력을 흩뿌리는 광경이 눈앞에서 번쩍번쩍하고 빛났다.
마력을 볼 수 있는 눈이라 그런지, 덕분에 시야가 어지러웠다.
그 잠깐의 순간,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깜빡인 사이에.
화악, 하고 코앞까지 온, 내게 뻗어오는 로로의 다리가 보였다.
펄럭이는 검은 드레스 사이로 뻗어지는 새하얗고, 건강한 허벅지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젠 제대로 챙겨 입고 다니는구나?! 이 아빠, 엄청 기쁘... 흡...!”
여전히 치마를 입고서 휙휙 다리를 뻗대는 건 안바뀌었지만, 적어도 속옷은 이제 확실히 입고 다닌다는 게 어디냐.
그런 생각을 하며, 팔을 교차했다.
콰직!
쁘드득, 하고 로로에게 걷어차인 팔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부러지진 않았지만, 소리가 굉장했다.
“흣...!”
하지만 나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였다.
숫자보단 물량으로 잔뜩 뽑아낸 그림자의 손들이, 로로를 덮쳤다.
“ㅡ흥.”
코웃음치듯이, 그런 소리를 낸 로로가 팡, 하고 내 팔을 지지대 삼아서 뛰어올랐다. 촤르륵, 하고 그런 로로를 따라 움직이는 촉수들이 덮쳐들던 그림자의 손들을 꿰뚫는 것이 보였다.
로로를 중심으로해서, 사방으로 뻗은 촉수들에 꽂혀서 꿈틀거리는 내 그림자의 손들을 보였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저거!”
애써 만든 것도 무색하게,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져서 나가 떨어져가는 내 그림자의 손들을 보며 무심코 그런 감탄을 했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쉬지 않고서, 로로의 다리가 다시 들어왔으니까. 펄럭이는 치마 사이로, 다시 한 번 뻗어오는 로로의 다리가 보였다. 크게 몸을 돌리며 휘둘러오는, 로로의 다리 사이로 검은 속옷이 보였지만, 못본 체 하며 중얼거렸다.
“ㅡ응, 모처럼이니까. 좀 더 어울려주고 싶지만.”
이러는 사이에, 카르네가 더욱 삐질 거다.
촤아아악!
깨달음이라고 해야 할까, 능력의 사용법이라고 해야 할까.
브란데냐에서 만난 미치광이 덕분에 깨우친, 검은 날개가 등 뒤에서 뻗어져 나왔다. 그때랑 비교해서, 진짜 내 몸인 만큼 수십 배는 더 견고하고, 날카로운 날개들이, 뻗어지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졌다.
그리고, 로로의 다리와 부딪혔다.
“읏?!”
퍼억, 하고 다리에 걷어차였는데도 꿈쩍도 안하는 날개에, 그녀도 놀랐는지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뭘, 이래봬도 지금보다 훨씬 못할 때도 엘리시스의 검까지 어떻게든 튕겨냈던 녀석들이다. 그렇게 쉽게쉽게 꺾일만한 것은 아니였다.
“응... 이해했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복수자.
그 능력의 발동으로 로로의 등 뒤에서도 작게 뻗어 나오는 날개들이 보였다. 내가 자기 능력을 고대로 빼앗아서 써먹었던 것처럼, 로로 역시 내가 겨우 익혀온 능력을 제 멋대로 빼먹고 있었다.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더니, 날 따라하는 로로를 보니 무척이나 기뻤다.
하지만 그래봤자 어설프다. 거기에 이미 앞서 사용한 마법들로 인해 로로의 날개는 턱없이 작고, 느렸다.
“응, 이해만 하렴. 쓰는건 나중에 하고.”
그렇게 말하고서, 손을 뻗었다.
화아아악, 하고 더욱 커진 날개들을 보고서 로로가 다시 한 번, 허공을 박차며 거리를 벌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빨리, 내 날개가 그런 그녀를 덮어왔다.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작은 날개를 펼치며 날아들려던 로로를, 파리지옥처럼 덮은 내 날개들이 붙잡았다.
주욱, 주욱.
로로를 붙잡고서 다시 줄어들은 날개와 함께, 덜렁덜렁하고 뻗어 나온 작은 날개들을, 그보다 더 커다란 내 날개로 꿰뚫려서 허공에 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팔을 뻗었다.
“자, 로로.”
내가 부르자, 잠깐 망설이던 로로가 이내, 날개를 접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그대로 툭하고 떨어진 로로를 받아 안아들었다.
“...늦어서 미안하니까, 용서해주라.”
이젠 품에 안아도,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로로를 안아들면서 그렇게 말하자, 푹하고 내게 얼굴을 묻는 로로가 보였다.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이고 있자니, 로로가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 이번에는 무슨 용무?”
내가 꼭 무슨 일이 있을 때만 찾는 것처럼 말하는 로로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사실이라서 더더욱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