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8화 〉308화 (308/370)



〈 308화 〉308화

“그래서,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물어도 될까? 니아.”

로로의 도움으로 니아를 떼어내고서, 옆에 둔 채로 그렇게 묻자 니아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훈련중이었어요! 주인님!”


그 말에 다시 니아를 바라봤다. 갑옷으로 가려진 것보다는, 드러난 맨살의 비율이 더 많긴 했지만 어찌됐건, 니아가 입고 있는 것은 엄연한 갑옷이었다.

거기에 마법이 주렁주렁 달린 상당한 수준의 마갑, 드래곤이 가진 아티펙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지금의 니아는 맨살이 드러난 부분에도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견고한 갑옷을 입고 있는 셈이었다.


어지간한 중갑보다는 지금의 니아가 입고 있는 갑옷이 훨씬 튼튼할 거란 소리였다.

니아의 말에 뒤늦게 주위를 둘러봤다. 니아도 그렇고, 카울도 그렇고, 주변에 있는 녀석들이 하나같이 갑옷차림이란 것을 그제야 눈치 챘다.


게다가 숫자도 꽤 됐다.

여기에만 있는 이들만 대충 수 백에 달했으니까. 종족도 다양했다.

코볼트에 오크에, 엔트까지.

원래부터 다양한 종족이 모여있던 천공섬이니 종족이 다양한 거야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전부 무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상했다.

마치 어딘가 전쟁이라도 나갈 것처럼 무장중인 이들은, 천공섬에 어울리지 않은 차림인 것은 분명했다.

작은 분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자잘한 것들이다. 여태껏 경비나, 순찰을 해왔던 니아도 평소에는 시녀복 차림이었으니 말이다.


애당초 에루나가 준비해온 시녀복도 평범한 시녀복인 것도 아니였다. 어지간한 칼날도 제대로 들지 않을 만큼 튼튼한, 겉으로만 시녀복으로 보일 뿐인 물건이였다.


그러니까 천공섬에선 시녀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제대로 된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훈련이라니, 무슨 훈련?”

“우웅, 그러니까...”

그런 내 말에 뭔가 떠오르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니아를 대신해서 대답한 것은 바록과 바쿠였다.

“주인님. 실은...”

“시녀장님께서 저희들에게 명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에루나가?”

고개를 끄덕인 바록과 바쿠가 말을 이었다.


“만약을 대비하란 말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나, 시녀장님의 말씀이 그러했던지라...”

“마땅한 일거리가 없던 자들과, 자경단을 포함해서 대략 오천 정도가 훈련 중에 있었습니다.”

“아, 그래...”


대충은 무슨 이유였던 건지, 바록과 바쿠의 말을 듣고서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얘네들도 엄청 강했었지...?”


천공섬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은, 대충 20만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중 태반은, 한 때는 몬스터들과 생사를 다투던 이들이었고, 또 나머지들은 인간들에게 몬스터취급을 받는 이들이었다.

저기 보이는... 마냥 덩치  개가  발로 서서 갑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만 보이는 코볼트도 혼자 인간 병사 둘 셋은 거뜬히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인 셈이였다.


하물며 천공섬에 있는 대부분이 그러했다.

천공섬에서는 평범하게 푸줏간을 하고 있는 트롤도 있고, 약초를 재배하는 엔트도 있고, 광장에서 광대 짓이나 하는 임프들도 있었지만, 이들 모두가 밑에서는 ‘몬스터’였다. 트롤과 엔트는 특히 위험취급을 받는 중형급 이상의 몬스터이기도 했다.


하급마법뿐이지만 자유자재로 마법을 부리는 임프며, 하나같이 명궁들로 소문이 자자한 엘프들... 산악엘프들도 몇 천이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페어리 종족들도 마법으론 임프보다도 더한 종족이고, 산악엘프들도 마법을 부릴 줄 알았다. 당장  앞에서는 꼬리를 만  같은 카울도, 전사로서 유명한 웨어울프 종족이었다.

평상시엔 그저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녀석들이었지만, 변신하고 나서는 털가죽에 칼침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 기사들도 겨우 상대할만한 종족이였다.


즉, 여기에 모여 있는 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일당백의 전력인 셈이었다.

“...얘네만 내려 보내도 전쟁은 가볍게 끝낼 수 있겠네.”


에루나에 의해 만약을 대비해서 모인 이들만 오천. 당장 전사로 쓸 수 있는 이들만 오천이 넘는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인간’을 상대로 한다면, 이들의 전력은 단순한 오천이 아니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5만이 채 안 되는 제국군을 상대하기엔 차고 넘치는 전력이었다.

존재를 드러내기만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제 3의 세력인 셈이었다.


“그래도 조금 그런데.”


크리샤에게 떠넘겨지다시피 받아버린 선물이었지만, 어찌됐건 이들 모두는 내 백성이였다.


솔직히 책임을 져야한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이들을 병사로서, 전쟁에서 소모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만약을 대비했을 뿐이니 뭐라 말은 못하겠고.”

단지, 내게 보고하지 않고서 이런 짓을 벌인 것에 대해서는 주의해둬야겠다.

내 명령에 따라서, 전쟁을 억누르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을 뿐이고, 나 역시 꽤나 바빴다고는 하더라도 이런 것도 모르고 마냥 태평하게 있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이들이 가꾸고 있는 천공섬은 발전하는 대로, 내게 쏠쏠하게 능력치를 주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전쟁으로 소모하면, 그만큼 내가 약해지는 것이다.

그래봤자, 아주 조금... 수백명이 죽더라도 능력치의 감소는 아주 적을 테지만. 그래도 허투루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주인님, 화나셨나요? 니아, 잘못했나요?”

“아니, 그런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화가  것은 아니다.

단지 새삼스레 내 위치를 깨달았을 뿐이었다.


내가 명령만 한다면, 여기에 있던 이들 모두가 아무런 거리낌도없이 전쟁에 나설 것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아버린 탓이었다.


그것이, 무척이나 속이 쓰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혼이 날거라고 생각했는지 귀를 접고서 나를 올려다보는 니아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만약... 그렇다면, 그럴 일이 없도록 하면 되겠지.”


그러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다.


“...그래서 바록, 바쿠?”

고개를 돌리고서, 니아와 마찬가지로  눈치를 보고 있던 둘을 불렀다.


그러자 갑작스레 이름을 불린 둘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얘네도 그새 많이 커서, 거의 5미터에 가까워진 것이. 진짜로 거인이라는 느낌이였는데, 고작 이름을 불린 것만으로도 잔뜩 쫄아버리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마치 성적표를 숨기려다가 걸린 아이같은 둘을 보며, 내가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그런 내 눈에 두 명의 훤칠한 미녀가 보였다.


약간 회색빛의 피부에, 귀 끝이 뾰족한... 산악 엘프인 두 여자가, 갑옷차림으로 바록과 바쿠의 곁에 있었다.

갑옷으로 무장하기는 했지만, 상체는 가슴부분만 겨우 가린, 가벼운 가죽으로 된 체스트 아머를 입고 있는, 유독 눈에 띄는 이들이었다.


눈에 띄는 이유야  거 없었다.

반거인족이라고는 해도, 거인은 거인이다. 그 혈통이 어딜 가는 것은 아니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 두 산악 엘프의 아랫배 벌써부터 눈에 띄게 부풀어있었다.


“재네들이 걔네구나. 대체 언제 소개시켜줄건지 기다렸는데, 소개는커녕 덜컥 임신이나 시키다니.”

“그, 주인님...”


“저, 저기...”


여자 친구의 소개는커녕, 덜컥 혼수로 아이를 임신시켜온 못돼 먹은 두 아들을 바라보자, 둘이 몸 둘 바를 모른 채로 고개를 낮게 숙였다.


그 옆에서, 두 산악엘프도 어쩔  몰라 하는 것이 보였다.

“너희, 이름이 뭐지?”

“...에, 에쿠르라고 합니다.”

“...네르시아라고 합니다.”


“그래, 에쿠르. 네르시아.”


나지막하게, 둘의 이름을 중얼거리고서 손을 뻗었다.


“늦었지만, 축하하마. 그리고 이건 선물이란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대상 ‘에쿠르’를 가신으로 임명합니다. ‘에쿠르’가 기사로 임명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대상 ‘네르시아’를 가신으로 임명합니다. ‘네르시아’가 기사로 임명되었습니다.]


후욱, 하고 눈앞에 있는 에쿠르와 네르시아의 능력치가 대폭으로 상승하는 것이, 정보창을 통해서 보였다.

기사로 임명된 만큼, 전보다 훨씬 튼튼해졌을 것이다. 이미 알아서 잘하고 있었던 것 같으니 별 도움은 안 될 것도 같지만, 밤일하는데도 도움이 꽤  거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였다.


[대상 ‘에쿠르’가 기사장 ‘바록’의 휘하에 소속됩니다.]

[대상 ‘네르시아’가 기사장 ‘바쿠’의 휘하에 소속됩니다.]


본래 시종였던 바록과 바쿠 역시, 기사장으로 재임명했다. 원래는 에네스타밖에 없었던 기사장이였지만, 이걸로 내 가신으로 셋이나 되는 기사장이 생긴 셈이었다.


“음...”


그 대신에, 둘을 시종으로 임명해서 생겼던 사자후와 투귀화가 사라져야했지만. 이미 두 기능은 사자심과 불멸자의 심장에 통합된 이후였다.

나와는 하등 상관없다는 소리였다.

대신...

[대상 ‘바록’과 ‘바쿠’가 ‘기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직업 ‘기사장’은 주인의 검과 방패를 이끌고, 통솔하는 역할을 합니다. 직업 ‘기사장’의 효과로 인해 기사장을 비롯한 휘하의 기사들의 능력치만큼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일부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근력과 체력이 9만큼 상승했습니다.]

하나 올리기도 더럽게 어려워진 능력치가, 근력과 체력뿐이었지만 무려 9나 올라갔다. 에네스타를 기사장으로 임명했을 때는 민첩이 대폭으로 올랐었으니, 주요한 능력치를 가져온 셈이었다.

근력과 체력, 어느 쪽이든 나에게는 무척이나 필요한 능력치였다.

“좋아, 선물도 줬으니까.”


이제 일할 시간이었다.





원래 여기까지 온 이유를, 낙스에 가게됐다는 것을 바록과 바쿠, 그리고 니아에게 알렸다.

“낙스, 말입니까...?”


“주인님, 그것이...”


내 말에 난감해하는 바록과 바쿠가 슬쩍, 하고 에쿠르와 네르시아의 눈치를 보는 것이 보였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두고서 낙스같은 곳에 다녀오고 싶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그런 둘을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내가 선물도 줬는데 내빼겠다는 소리는 안하겠지?”

그렇게 말하고서, 에쿠르와 네르시아를 보자 둘이 바록과 바쿠의 허벅지를 꼬집는 것이 보였다.

신장차이가 나서 옆구리를 꼬집는 건 무리였나보다.


“그럴 리가 있나요? 그렇죠? 바록?”

“바쿠...”


아무리 바록과 바쿠가 낙스에 가기 싫다 고해도, 가신으로 임명하면서 생긴 충성도가 내가 건네준 능력으로 인해 훌쩍 뛰어서 80대에 이르게 된 마누라들의 등쌀을 이겨낼 리가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러니까...”


기사로 임명해서 그런지 근력도 세졌는지, 바록과 바쿠가 허벅지를 꼬집혀서 아픈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잘된 일이었다.


“그럼 바록과 바쿠, 그리고 로로.. 니아는 어떻게 할래?”

“주인님 옆이면 어디든 좋아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안겨오는 니아까지, 모두 셋이나 되는 전력이 추가됐다. 이걸로 낙스행은 안심이었다.


“그럼 준비하러 갈까?”

슬슬 루시아도 준비를 마쳤을 거다.

나는 죽을상을 지은 바록과 바쿠, 그리고 마냥 신난 니아를 데리고서 천공성으로 돌아갔다.


“일찍 오셨네요.”


“일찍 끝났거든. 그래서 크리샤랑 아르카는 어때?”


“둘 다 찬성한다고 했어요. 대신... 바람피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크리샤도, 아르카도요.”

“...그런  아니라니까.”

왜 다들 날 믿지 못하는 걸까. 슬픈 일이었다.

“낙스는 언제부터 갈  있는 거야?”


“ㅡ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해요. 어쩌실 건가요?”


루시아의 말에 가만히 주위를 살펴봤다.

반쯤 억지로 끌려오다시피하긴 했지만, 바록과 바쿠 역시 각오를 다진 표정이었다. 훈련중이어서 그런지 갑옷도 차려입고 있었고, 문제는 없어보였다.


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웨어울프족의 대대로 내려오는 갑옷은 저래뵈도 바록과 바쿠가 입고 있는 중갑보다도 튼튼하니  문제는 없을 거다.

로로는...


“...좀 더 차려입는  낫지 않을까?”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로로의 차림을 보고서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고개를 내저은 로로가 말했다.

“거추장스러우면, 오히려 방해돼.”


“그래?”


그렇다니 뭐, 내가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였다.


“그렇다니까, 나도 지금 당장 가도 상관없어.”


“...그런가요. 그렇다면.”


고개를 끄덕인 루시아가 손가락을 휘젓자, 거울이 튀어나왔다.

“낙스와 유일하게 연결된 통로에요.  거울을 통해서만 낙스에  수 있어요.”


전에도 봤던 물건이였다. 이 거울 너머로 에루나가 로로들을 소개시켜줬을 때는 장난 아니게 골치가 아팠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럼 다녀올게.”

“...부디 조심하세요.”


마지막까지 걱정해오는 루시아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선, 나는 거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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