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화 〉343화
밖으로 나오자 보인 것은 십수 명 정도의 인간들이었다. 하나같이 엇비슷한 갑주를 차려입은 인간들.
딱 봐도 나 기사입네, 라고 주장하는 듯한 인간들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자, 그런 내 앞으로 한 녀석이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여기서 고위급 마법을 쓴자요?”
백색의 갑주를 입은 기사들. 그리고 그 기사들의 대표로 보이는 자의 말을 들으며, 위아래로 훑어봤다.
미스릴이네.
그것도 통짜로 된 미스릴로 만든 갑주를, 그 위에 하얗게 칠을 한 것을 입고 있는 그들을 보고서. 이자들의 정체 역시 알 수 있었다.
아니,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일단은 인간들에겐 그 자체로 보물이나 다름없는 통짜 미스릴의 은은한 푸른 빛마저도 하얗게 칠해버릴 정도로, 하얀 것에 집착하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알기론, 인간들의 세계에서 그런 녀석들로 가득한 집단은 하나뿐이였다.
천신교.
신들이 전부 떠나가버린 이 세계에서, 천신이라는 있지도 않는 신을 맹신하는 종교 집단.
그리고, 그런 녀석들로 보이는 기사들이라면 또 뻔했다.
이 녀석들의 정체는 아마 에루나가 말했던 성전 기사단이라고 불리는 녀석들이겠지.
수준도 썩 나쁘진 않았다.
검주는 없었지만, 제일 강해 보이는 녀석은 검주보다 한 끝발 밀리는 검성이고 나머지 기사들도 전부 고위 기사들이였으니. 어지간한 기사단은 가볍게 쌈싸먹을 수 있는 수준의 전력인 건 확실했다.
아무튼, 너무 오랫동안 아무런 대답도 안 해서 그런지, 이마위로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한 녀석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고위 마법이라니, 그런 걸 쓴 적은 없는데.”
그냥 아내들이랑 그렇고 그런 짓을 했을 뿐이지.
순수하게 진실만을 말한 나에게 기사가 더 많은 핏대를 이마 위로 새기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이 정도의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그런 거짓을 말하다니. 성녀께서 영지 내에서의 사사로운 마법 사용을 금한 것을 듣지 못하였소?”
“듣지 못했는데.”
“...감히 우리 제7 성전 기사단을 우롱하는 것인가?!”
아니, 진짜 못 들었다고.
하긴, 아무리 이렇게 마력을 뿌려댔다고 기사단이나 되는 녀석들이 바로 찾아온 것도 이상하긴 했는데. 자신의 영향 아래에 있는 모든 영지에서 마법을 금했다면 그만큼 탐지하기 쉬웠겠다.
아무튼, 사실만을 말했을 뿐인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에 손을 올리는 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거, 뽑지 마. 뽑으면 큰일 날걸?”
“가암히ㅡ!”
그런 내 말에 고함을 지르며 검을 뽑아 들려는 기사를 바라봤다.
제일 강했던 녀석. 썩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한 녀석이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검주는커녕, 검성 언저리에 걸친 기사에 불과했다. 검자루에 손을 뻗는 것부터, 발검을 하려는 것까지. 무척이나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손을 뻗었다.
“커윽...!”
우드드득!
“뽑지 말랬잖아. 경고했을 텐데.”
그대로 기사의 팔을 잡아 꺾은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뽑았다. 조금 힘 조절이 안 돼서 어깨만이 아니라 팔의 관절이 전부 뽑아낸 것도 같지만. 상관없었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이제껏 이룬 검성이란 실력도 제대로 복구하지 못하고, 기사로써의 생명이 끝장나겠지만 이쪽에서 나름 말로 끝내려고 한 것을,먼저 검을 뽑아서 파토를 낸 녀석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 없었다.
“파일로경...! 이노오옴!”
그리고 그런 기사를 보며 고함과 함께 검을 뽑아들려는 기사들을 보면서,
“피를 보면 태교에 좋지 않을 텐데... 뭐, 별수 없나.”
주먹을움켜쥐었다.
“시끄럽게 고함지르는 녀석들보단 나을 테니.”
한 놈에 한 방씩.
“조용히 하세욧!”
주먹을 휘둘렀다.
꽈드득!
별다른 기능을 활성화하지 않아도, 200대에 이르는 근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휘둘러지자 기사들이 입고 있던 갑옷들이 순식간에 찌그러지며 바닥에 처박혔다.
“어윽...”
“그으윽...”
바닥에 엎어져서 움찔거리는 기사들이 보였다.
“음...”
낙스에 가서부터 생각했던 건데. 나 생각보다 진짜 셌다.
주위에 예전에는 까마득하기만 했고, 지금도 나만한 강자들인 아내들뿐이라 가늠하기 어려웠지, 지금의 나만 해도 어지간한 깽판을 치면 나라가 이리저리 휘둘릴만한 무력을 가진 것이였다.
자연재해취급을 받는 드래곤.
그런 드래곤이 절반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머지 반은 신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선 오히려 드래곤보다 더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르. 그르륵...!”
그때 쓰러져있던 기사가 몸을 퍼떡이는 것이 보였다. 힘 조절은 했다고는 해도, 당장 일어날 순 없을 만큼은 됐는데 갑자기 저러는 걸 보고 살짝 놀랐지만, 그보다 놀라운 일은 바로 그 다음에 일어났다.
우둑, 하는 소리와 함께 비정상적으로 목을 꺾인 기사가 엎어진 채로 목만 쭉 내밀어서 나를 올려다봤으니까. 피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입을 열어서, 기사가 내게 말했다.
“찾았다... 간악한 찬탈자...! 이곳에 있었구나ㅡ!”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증오로 가득한 외침과 함께, 꿈틀거리던 기사가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보였다.
꾸득, 꾸드득 근육이 뒤틀리고, 살점들이 부풀어 오르는 것도.
“그, 오오ㅡ”
이윽고 입을벌려, 괴성을 토해내려는 것을 보며.
“좀 조용히 하라니까.”
꽈직, 하고 다시 주먹을 휘둘러 바닥에 처박았다.
이번에는 힘 조절 같은 것도 없이, 제대로.
몸이 뒤틀리면서, 마수화하려던 기사가 그대로 머리가 으깨져서 죽었다.
인간이였을 적엔 몰라도, 마수화하려던 것을 가만 봐줄 수는 없었으니까 페이즈 2로 넘어가기도 전에 죽여버린내가 피투성이가 된 손을 털었다.
“태교는 망했군.”
이래서 아내들이 내려오는 것을 반대했던 것도 있었는데.
무슨 꼴을볼지 전혀 모르는 곳에 같이 오기 싫었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순 없으니 늦은 후회는 짧게 하기로 했다.
그보다 급한 게 있으니.
마수화하려던 기사를 시작으로 몸을 일으켜세우는 성전 기사단의 기사들을 바라봤다. 꾸둑, 꾸둑하는 괴상쩍은 소리와 함께 관절과 근육, 뼈마저도 뒤틀어가며 인간에서 다른 무언가로 변하기 시작하는 이들을.
마수화였다.
마왕이, 자신에게 종속되는... 인간의 피와 살로 만들어내는 괴물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였다.
처음으로 마수화하기 시작한 기사가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증오로 가득한 외침과 함께 주변의 공기가 이상해진 것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공기에 깃들어있는 마력이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마력들이 한순간에 빨려 들어가듯 어느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가 일어나려 하는 징조.
그것이 썩 유쾌한 것이 아니란 것쯤은 뒤통수가 저릿저릿한 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쯧.”
혀를 찬 내가 순식간에 변이를 마치고서 근육을 찢으며 돌출되어 튀어나온, 뼈로 만들어진 송곳이 달린 팔을 휘저으며 달려드는 마수와 부풀어 오른배로부터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을 쏟아내는 창자를 끄집어내며 내게 휘두르려는 마수까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였던 성전 기사단들이 달려드는 것을 보며 손을 휘저었다.
촤아악ㅡ!
루시아에게 배워뒀던 바람의 칼날이 그대로 휘저으며, 마수들의 허리를 싹둑하고 썰어내는 것을 보며 나 역시 마력이 몰려드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포식...”
뭐가 됐든 간에, 결국 마력일 뿐이니 전부 모여들기 전에 흡수해버리면 그만이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포식자를 활성화시키려고 했지만.
달려드는 마수를 처리하느라 조금 늦어버린 모양이였다.
ㅡ지이이잉
발밑으로부터, 아니 도시 전체의 밑에서부터 검은 마력이 솟구쳤으니까. 그리고 그 검은 빛을 쬔 이들의 몸에서 조금 전에 죽여버린 성전 기사단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여, 여보...!”
“아아악!”
근데 전부는 아니였다. 나를 포함해서, 아내들과 옆에 있는 여점주도 검은빛이 쪼여지고 있었지만. 딱히 별일 없었으니까.
하지만, 뭐가 수상쩍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 아아...”
순식간에 눈앞에 있던 기사들이 쓰러지는가 싶더니, 괴물이 되어 다시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순식간에 머리를 잃고, 반 토막이 되어 죽어 나자빠진 것을 보며 얼이 빠져있던 여점주가 옆에 흘린 것에서부터 검은빛과 동조하듯이 검은 마력을 피워올리고 있었으니까.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던 패.
이 도시에 진입했을 때 건네받았던, 그 패와 같은 것이 거기에 있었다.
처음 받았을 땐 몰랐는데,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마력을 풀풀 피워올리고 있는 지금은 확실했다.
이거, 마도구네.
아니, 정확히는 주술 도구라고 해야 하는 것이옳으리라.
그것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스스로 제물로 바치는 것을 동의하는 것과 다름없는 저주가 새겨져 있는 지독한 물건이었다.
“하아...”
콰직, 하고 한숨을 내뱉은 내가 손을 휘젓자 패가 반으로 쪼개지면서 흘러나오던 마력 역시 흩어졌다. 그리고 나 역시 품에 있던 패를 꺼내 쪼개버렸다.
내가 마수화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깃든 마력보다도 내가 우위에 있기 때문일 거다. 아무리 주술 자체가 강제적으로 저주를 거는 물건이라고는 해도,거기에 깃들어있는 마력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것까지 그렇게 할 순 없는 법이니까.
패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검은 마력은 꽤 상당한 양이였지만, 이미 마력 스텟만 거의 300에 이르러가는 날 마수로 만들어버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내들이 경우엔 아내들의 몸이 어디까지나 골렘이라 소용없었던 것 같고. 본신이였을 경우에도 나랑 비슷한 이유로 소용없었겠지만.
하지만, 단순히 인간 자체를 마수화하기엔 충분한 수준이긴 했다.
덕분에 도시의 반 이상이 마수화해버린 것이 느껴졌으니까.
하지만,그것뿐만이 아니였다.
마수화한 이로부터 검은 마력이 피어올라 중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내가 쪼개버린 패에서도, 쪼개지는 순간 흩어지는가 싶었던 마력 역시 중앙으로 다시금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죽여버린 마수가 된 기사들로부터도 마력이 흘러나오면서 중앙으로 모여들고 있고.
간간히 마수화가 되지 않은 이들이 저항하다가 마수화한 이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도 검은 마력이 피어올라서 중앙으로 향했다.
“이게 끝이 아니란 거네.”
인간들이 마수화하는 것이나, 마수화한 이들이 운 좋게, 혹은 재수 없게 마수화하지 않은 인간들을 덮쳐 죽이고 먹는 것이나.
어디까지나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하려는 징조에 불과했다.
그 무언가가 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뜻대로 되게 두고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그르아아아!”
피투성이가 된 팔을 질겅질겅 씹고 있던 마수가 나를 발견하고는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마수의 발에는 눈물을 흘리며 죽은 인간 여성의 시체가 달라붙어 있었다.
철퍽, 철퍽 마수가 달려올 때마다 바닥과 부딪히며 짓뭉개져 가는 여성의 시체에는 팔이 없었다.
연인, 혹은 아내. 그것도 아니더라도, 마수가 되어버린 자와 깊은 관계였던 이였으리라.
그리고, 아무래도 좋은 일이였다.
“캬아아아악!!”
피눈물을 흘리며 달려드는 마수의 머리를 붙잡았다.
“가, 그각... 그앗...”
우둑, 우드득...
퍼석!
그대로 머리를 짓눌러 부순 내가 뇌수가 듬뿍 묻어버린 손을 다시 한번 털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귀찮아졌는데...”
허리에 찬 광휘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선, 아내들에게 말했다.
“조금 무리한 부탁을 할 생각인데. 들어줘.”
“흐응, 대충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전부는 무리에요.”
“아무래도오, 이 몸으로는 마법을 쓰기 힘드니까아.”
곧바로 내 의사를 알아챈 셋이 그렇게 대답했다.
“저기~? 너희만 알지 말고 나한테도 좀 알려주지~?”
“오빠가 하는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게.”
“그래서, 뭐 해줄까,오빠?”
아무튼, 척하고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내가 할 부탁을 들어줄 생각으로 가득한 셋도 보였다.
“마력은 얼마든지 써도 되니까. 아직 마수화하지 않은 인간들 좀 보호해주라.”
인간이 죽든 말든 크게 상관은 없어졌지만, 그토록 나한테 증오에 차서 뭐라 지껄이던 녀석이. 정작 마수들을 내가 아닌 인간들에게 보내, 살육을 벌이고 이유가 있을 테니까.
애당초 그 녀석, 계속 전쟁을 일으켜서 떼죽음을 일으키려고 안달이 난 녀석이였다.
무슨 이유가 됐든 살릴 수 있는 녀석은 최대한 살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수가 되어버린 것을 죽이는 것도 일이니까.
물론, 그러기 위해선 다소 힘이 들기야 하겠지만.
“최대한 많이, 부탁할게.”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내가 만든 골렘들에게 내가 가진 마력의 반쯤을 양도했다.
쑤욱, 하고 뭉텅이로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한순간에 빠져나간 마력이, 마치 내 사지의 일부를 뜯어낸 것 같은 탈력감을 가져왔지만. 버틸 만은 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금방 찰 테니까.”
걱정스레 묻는 크리샤에게 그렇게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인 크리샤를 비롯한 아내들이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웅ㅡ!
순식간에 펼쳐진 마법과 함께, 아직 마수화가 되지 않아서, 방금까지 가족이나 연인, 혹은 지인이나 친구였던 이들에게, 이전의 모습이 어땠는지 알아볼 수조차도 없이 참혹할 정도로 엉망이 되어 버린 마수들에게 공격당하기 직전이던 인간들 주위로 보호막이 펼쳐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내가 광휘를 움켜쥐었다.
쭈우우욱ㅡ
그리고 그런 광휘의 끝에서 투기가 피어올랐다. 쭈욱, 쭈욱 내가 가진 투기로 하여금 오로지 길이만을 늘리자 수백 미터에 이르는 투기가 뻗쳐올랐다.
화르르륵!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푸른 투기가 광휘에 둘러싸인다.
그리고 곧, 그런 투기가 검게 물들어갔다.
“하아아...”
한계까지 치솟았던 투기가, 검게 물든 채 다시금 뻗쳐올랐다. 수백 미터에 이르렀던 투기의 칼날이, 검게 물든 채로 치솟아서, 쭉쭉 솟구치는 것을 보였다.
하지만 이걸로도 부족했다.
“불멸자의 심장, 주시자의 눈, 전능자의 손.”
우우웅...
심장이 뛰었다. 대폭으로 상승한 능력치가 더해졌다. 주시자의 눈을 통해, 보호막이 인간들에게 둘러쳐지자, 곧장 타겟을 이쪽으로 바꿔 미친 듯이 달려드는 마수들이 비쳐 보였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건틀렛이 오른손 위로 덧씌워졌다.
“단죄하는 검.”
하늘 높이 치솟은 검은 투기에 둘러싸인 광휘를 양손으로 쥔 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광휘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