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화 〉346화
아니, 절반이 드래곤이 아니였어도 저만한 투기에 직격하게 된다면 멀쩡할 리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좋아, 튀자.
원래부터 한번 해보고 안된다 싶으면 튈 계획이였던 만큼 결정은 빨랐다.
더군다나 저런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데 만전은커녕 마력은 절반 정도에 투기도 거의 다 써버린 상황에서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비겁한 도망이 아니라 전략적인 후퇴라는 거였다.
“다들, 그렇게 됐으니까 연결을 풀어줘.”
“...어쩔 수 없지.”
“솔직히 이 몸으론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사실이니까요.”
“조심해야돼애?”
“또 다쳐서, 내 시간을 까먹으면 이번엔 진짜로 화낼거니까~?!”
“오빠, 미안해.”
“아냐가 도와주고 싶었는데...”
제각각, 그렇게 말하며 골렘과의 연결을 끊으려는 것이 보였다.
아무튼 아내들이 골렘과의 연결을 끊는 동안에 나 역시 공격을 피하려고 열심히 날아다녔다. 스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거인들의 공격을 피하다보니 안그래도 여유로운 편은 아니였던 마력들이 빠르게 소모되기 시작했다.
뭘, 하지만 괜찮았다.
일단 아내들부터 무사히 보내고 나면은 나야 알아서 튈 수 있었으니까. 교란 마법이 펼쳐져있던 말던, 수백 겹으로 겹쳐져 있는 낙스의 결계마저 뚫어버리는 역치의 날개가 있는 한 나야 전이문을 만들 정도의 마력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안돼.”
“...연결이 끊기질 않아요.”
아무래도 연결이 끊기질 않는 모양이였다. 혹시 몰라서 사전에 몇 번이고 연습했던 건데 갑자기 안될 이유가 없었다.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버지의 유해를, 제가 마땅히 이어받아야 할 힘을 강탈한 주제에...! 간악한 찬탈자여, 망할 도마뱀들과 함께 통째로 사라져버리세요!”
이쪽을 향해 악담을 퍼붓는 마왕과 그런 마왕의 명령대로 마구잡이로 투기를 두른 드래곤 슬레이어를 휘둘러오는 거인의 팔이 원인이겠지.
애당초 마력과극히 상극인 투기를 저만큼이나 뿌려대고 있으니, 주변에서 마법을 발동시키는 것 자체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더군다나 마왕은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의 마력을 지배하는 존재였다.
제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쉽게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는 모양이였다.
골렘에게 자아를 심는 마법이간단해 보여도 생각보다 어려운 마법이기도 한 것도 원인일 거다. 자아를 통째로 옮겨 넣는 마법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거인과 마왕의 방해를 받아가며 다루긴 조금 그런 마법인 셈이였다.
억지로 끊어버린다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자칫잘못하면 자아 그 자체에 손상이 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럴 경우는 생각해둔 적이 없었는데...
아무튼, 아내들의 피신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모두 죽이세요, 드래곤 슬레이어!”
한가지 다행이라면, 거인이 완전히 부활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마왕이 일일이 명령을 내린 이후에야 행동하는 탓에 그사이에 딜레이가 있었다.
마력의 종주인 드래곤의 대칭점인 거인. 투기 그 자체의 화신답게 팔밖에 남지 않았다곤 해도 엄청난 피지컬이이였지만, 피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는 거였다.
휙휙, 휘젓듯이 날 찌르려고하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방법을 몰두했다.
이걸 어쩐다.
가장 좋았던 수단이였던, 아내들을 먼저 무사히 돌려보내고 나서 나는 역치의 날개로 홀라당 날라버리는 것이 막혀버린 이상 어떻게든방법을 찾아야 했다.
“ㅡ엿차.”
그것도 미친 듯이 투기를 뿜어내는 창을 휘둘러오는 거인의 공격을 피하면서 말이다.
이거 좀 위험한데.
원래대로라면 나야 전이문을 만들만한 마력을 제외하면 얼마든지 펑펑 마법을 써도 된다는 입장이였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최대한 지금 남아있는 마력을 보전하면서 움직여야한다는 소리였다.
근데 이미 앞서서 마수들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데에 마력을 절반 가까이 쓴 데다가, 거기에 마수들을 전부 베어버리느라 투기도 상당하게 소모한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공격을 피하고는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도 없는 일이였다.
게다가 이쪽은 소모할 대로소모했지만, 저쪽은 아까부터 마왕의 뒤편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마력 덩어리로부터 끊임없이 지원을 받는 실정이었다.
이미 뒈져버린 거인이 투기를 주구장창 뽑으면서도 멀쩡한 것도, 다 저것의 지원을 받아서고.
대충 저런 것과 비슷한 물건을 알고 있었다.
드래곤들이 다루고, 지배하는 보옥.
자신의 영지의 한해서지만, 그 안에서는 실로 무한한 마력을 끊임없이 제공해주는 보옥과 같은 물건인 게 분명했다.
단지, 드래곤의 보옥은 신들이 만들어낸... 진짜 무한한 마력이 담겨있는 치트성의 물건이지만, 마왕이 다루는 저건 도시에 있던 수십만에 달하는 인간의 생명력을 통째로 갈아 넣어서 만든 물건이라 한계가 있다는 정도일까.
문제는 수십만을 갈아 넣어서 그런지 좀처럼 한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정도였다.
“오오?!”
거인의 공격을 피하던 와중에 빠르게 날아오는 마법이 보였다. 내가 좀처럼 당하지 않자 성질이 뻗친 마왕이 펼친 마법이었다.
자신감 넘치게 거인을 부리고 있어서, 이런 짓까지 할줄은 몰랐는데.
과연, 마왕.
비겁하게 시야의 밖에서 뒤통수를 노리는 마법이나 펼쳐대고있었다.
곧장 마법을 요격하듯이 그림자의 손을 뻗어 보냈지만 수백 가닥으로 이루어진 공격마법들을 전부 막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하는 수 없이 한쪽 날개를 이루고 있는그림자의 손들도 뻗어 보내려고 하던 찰나에, 루시아의 마법이 펼쳐졌다.
“나 여기에 마력을 바쳐 바라건대.”
키이잉ㅡ
“휘몰아치고 내리찍어라. 뇌격!”
허공에서 펼쳐진 수십 개의 마법진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벼락들이 마왕의 마법이 닿기 직전에 튕겨내며 막아내는 것이 보였다.
쩌저적!
그대로 마왕의 펼친 마법을 분쇄하는 루시아의뇌격. 순식간에 마왕이 펼친 마법들을 요격하는 루시아의 마법에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앞이나 제대로 봐, 이 바보야!”
물론 감탄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긴 했다. 크리샤의 외침에 곧장 시선을 돌리자 끔찍한 몰골의 날개 달린 마수들이 이쪽을 향해 날아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캬악! 캬아아악!”
박쥐의 피막같이 생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드는, 날개보다 훨씬 커다랗게 부푼 배를 가진 마수. 생긴 것부터가 부딪히면 쾅하고 터지게 생긴 놈들이었다. 게다가 생긴 것과 달리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더군다나 뒤로는 거인의 창까지 휘둘러져 오고 있었다.
솔직히 저 창이랑 저 마수 놈들이랑 어느 쪽이랑 부딪히고 싶은지 묻는다면 차라리 마수들 쪽이 나았다.
창은 맞으면 뒈질 것 같지만, 저 마수는 조금 아픈 거로 끝날 것 같으니까.
물론, 맞아줄 생각도 없었다.
“크리샤ㅡ!”
거인의 창을 피하면서 크리샤에게 냅다 부탁해버리자 잔뜩 인상을 찡그린 크리샤가 영창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나 여기에 마력을 바쳐 바라건대...”
순식간에 영창을 마친 크리샤가 양손을 뻗으며 마법을 펼치자 눈앞에서 자그마한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찢어라, 분쇄해라. 검은 균열”
마치 입을 벌린 것처럼, 찢어진 균열이 이쪽을 향해 날아들던 마수들을 집어삼켰다.
꽈지지직!
빨려 들어가기 무섭게 산산조각이 나듯이찢기는 마수들을 보니 엄청나게 믿음직했다.
역시 마누라가 최고야!
루시아나 크리샤나, 이번의 마법으로 골렘에 남아있던 마력을 전부 쥐어짠 것 같기는 하지만...
음...
“좋아, 일단 이렇게 하자.”
“꺅?! 잠깐, 뭐하는... 읏♥”
꾸물꾸물, 크리샤의 허리에 감겨있던 그림자의 손이 그대로 크리샤의 몸으로 파고들어 갔다. 정확히는, 골렘의 안으로 파고들어서 연결된 거긴 하지만.
크리샤만이 아니라, 루시아와 아르카, 카르네에 아샤와 아냐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마력의 대부분을 아내들에게 다시 한번 전해줬다.
“읏, 으... 이건...?”
“직접 전해주는 게 훨씬 효율이 좋으니까.”
골렘도 일단 내가 만들어낸 거라 썩 연비가 나쁜 건 아니지만, 아예 연결되어있는 것보단 못했다.
아무튼 연결된 그림자의 손을 통해서 마력을 거의 전해주고 나니까 나는 날개를 유지할 마력을 제외하면 완전 텅텅 비어버린 거나 마찬가지가 됐다.
대신 고위 마법을 펑펑 뿜어낼 수 있는 전력이 여섯이 생겼지만.
아무튼, 저쪽에서도 유사 보옥을 사용하는 것처럼. 나 역시 아내들의 유사 보옥이 된 셈이였다.
사실상 그림자의 손이나 몇 가지 마법을 제외하고는 아내들에 비한다면 마법의 마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보다는 차라리 아내들이 내 마력을 사용하는쪽이 훨씬 효율적이라서 그렇게 한 거지만.
“잠깐만, 너...!”
“방어는 전부 맡길게.”
더더욱 효율적으로 완전히담당을 분리하기로 한 내가 그렇게 말하자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보는 크리샤의 모습이 보였다.
“대신 회피랑 공격은 내가 맡을 테니까. 응?”
“...이, 정말이지!”
대충 내가 무슨 짓을 하려 하는지 눈치챈 크리샤가 짜증을 부리면서도 주변에서 쏟아지는 마수들에게 연이어서 마법을 쏟아부었다.
크리샤만이 아니라 루시아와 아르카, 아샤에 아냐. 거기에 카르네까지.
쾅! 콰과과광!
어디서 계속 날아드는 마수들이나 마왕이 쏘아 보내는 마법을 향해 내가 부여한 마력을 물 쓰듯이 사용해서 펑펑 마법을 쏟아 부어대자 마수들이나 마왕의 마법을 신경 쓸 필요도 없어졌다.
즉, 나는 거인의 팔만 집중하면 되는 셈이었다.
“이, 이잇! 고작 이 정도로...! 드래곤 슬레이어!”
쿠와아아ㅡ!
한층 더 거세게 투기를 뿜어 보내는 창이 나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그런 창을 향해서도 아내들이 마법을 쏟아 부어댔지만, 조금도 기세를 잃지 않고 곧장 이쪽으로 향해 날아오는 게 보였다.
과연, 저만큼은 해야지 드래곤이랑도 한 판 붙어볼 만한 거구나.
결국 드래곤에게 패배해서 찢기고, 남아있던 흔적마저 드래곤에 의해 철저하게 격리될 만큼 좆망해버린 거인들이였지만, 그래도 한때나마 드래곤과도 어깨를 겨누었던 종족다웠다.
아무리 약화했다고는 해도, 여섯이나 되는 드래곤이 쏟아붓는 고위 마법들을 두들겨 맞으면서도 까딱도 하지 않는 거인의 팔을 보면 저게 살아있었을 적엔 얼마나 무시무시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결국 뒈지고 나서도, 마왕한테 시체마저도 부려 먹히는 실정인 녀석한테 맞아 뒈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부담이 덜어진 만큼, 주시자의 눈과 헤아리는 자를 동시에 활성화했다.
마력, 그리고 투기의 흐름이 눈앞에 그려졌다. 하물며 헤아리는 자를 통해 단 몇 초에 불과할지라도, 거의 확정적인 미래마저 보였다.
주르륵...
그 대신에 양 눈에서 뜨뜻미지근한 게 흘러내리는것이 느껴졌지만, 이 정도는 아프지도 않았다.
후욱!
날개를 휘두르며 한층 더 빠르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나마 피하던 거인의 공격으로부터 열심히 도망쳤다.
과거와 힘의 흐름 그 자체를 읽어내는 주시자의 눈과 미래를 내다보는 헤아리는 자.
신의 힘이 담긴, 두 편린의 힘을 활성화하는 것의 효과는 엄청났다.
덕분에 피하는 와중에도 말할 여유까지 생겼으니까.
“너무 느린 거 아니야?”
“이래서 스치기는 하나?”
“여기서 좀 기다려줄까?”
정말로 기다려줄 만큼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깐족거리며 거인의 공격을 피하고 있자니, 울긋불긋하고 마왕의 이마 위로 핏줄들이 돋아나는 것이 보였다.
거의 다 됐다.
이제 큰 거 한 방만 날리면 제대로 터질 것처럼 보였다.
“ㅡ쓰으읍.”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토해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절반뿐이지만, 무려 절반이나 드래곤인 내가 토해낸 포효가, 드래곤의 피어가 울려 퍼졌다.
쩌렁쩌렁하고 단순히 고함을 지르는 것뿐인데도 주변의 마력마저 뒤흔들린다.
하지만, 그래 봤자 수많은 마법에 두들겨맞아도 멀쩡했던 것이 까딱이나 할 리가 없었다.
피어니 뭐니해도 결국 급이 비슷한 것에게는 조금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할 뿐이니. 드래곤과 동급인, 하물며 시체인 거인이 먹힐 턱도 없었다.
다만ㅡ
“뭐, 뭐, 뭐ㅡ!”
급이 비슷한 것끼리는, 단순한 소리. 즉, 외침에 불과한 드래곤 피어를 들은 마왕이 분노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당장 저 빌어먹을 찬탈자를 꿰뚫어 죽여버리세요! 드래곤 슬레이어!”
도발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였다.
딱 봐도 파더콤 같아 보이길래 붙잡히면 그 예쁜 엉덩이를 새빨개질 때까지 맴매를 해주겠다고 했을 뿐인데, 먹혀도 제대로 먹혔는지 한층 더 흉폭한 기세로 곧장 날아드는 거인의 창이 보였다.
쿠콰과과광!
주변의 공간마저 일렁거리며 찢겨날 정도의 압력을 가진 채로 날아오는 투기의 창.
음, 도발이 제대로 먹혀도 너무 제대로 먹힌 모양이였다.
“......”
다만 그 도발을 들은 게 마왕만이 아니라서 문제였지만.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내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차례대로 기능들을 활성화시켰다.
용화.
불멸자의 심장.
일차로 증폭된 능력치가 온몸에 솟구쳤다. 용화와 불멸자만으로도 기존의 서너배는 가뿐하게 증가한 신체능력에서 용솟음치는 힘은 정말로 반신이라고 할 만한 것이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저 투기와 비교하기엔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게 속한 것들.
내게 충성을 바치고, 가신이 된 이들의 기능까지도 모조리 끌어모았다.
바록의 투귀화.
바쿠의 괴력.
로로의 복수자.
그 밖에도...
이름조차 모르는, 내게 속해있는 이들의 기능까지도. 얼마전에 복속시킨 란자크 왕국의 누군지도 모를 기사의 기능까지도.
전부 끌어모으면서, 내 능력치를 증폭시킨다.
꾸득꾸득꾸득ㅡ
반신에 이른 육체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힘이 가득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두근두근두근, 불멸자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펌프질하면서, 그런 힘을 온몸 곳곳으로 전하고, 개혁하는 자가 이를 내 몸 구석구석까지 개조에 가까울 정도로 바꿔 가는 것이 느껴졌다.
한계를 아득하게 넘어선 힘에 의해 육체가 파열하고, 그를 순식간에 수복하면서 한층 더 강해진 육체가 힘을 받아들인다.
일련의과정이 순식간에 수십 번에 걸쳐서 일어나자, 완전하게 힘을 갈무리할 수 있었다.
온몸에 가득한 힘.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감.
“자, 와라!”
그리고 거인의 창이 나를 향해 덮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