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7화 〉347화 (347/370)



〈 347화 〉347화

“딸아, 우리는 저주받았다.”

내가 태어났을 적에,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언제나 굶주린다. 무엇을 먹어도 허기진 채로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떠한 것으로도 우리의 주린 배를 채울  없다.  무엇도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그리하도록 태어난 존재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이 땅에 버려진 형제들을, 같은 슬픔을 짊은 자들을 먹어치운 자의 말로이니라.

아버지는  태어난 나를 끌어안고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흘린 눈물은 추레한 짐승들만을 낳는다. 먹어치우고, 삼키고, 그럼에도 만족할 수 없는 자들만을 낳는다. 그들은 항상 울부짖는다. 더, 더 먹게 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땅을 보라, 이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아니함이니. 그들은 영원토록 굶주릴 수 밖에 없노라.”

그렇기에 우리는 또다시 우리들을 먹을 수밖에 없다.

“단지 살기 위해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그것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노라고.

“때가 왔다. 네가 태어났음은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눈물 속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울지 않는 짐승아.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미소지을 줄 아는 짐승아. 나의 피조물. 나의 분신. 나의 딸아.”

아버지는 눈앞에 있는, 굳게 닫힌 문을 보며 말씀하셨다.

“이제 곧, 우리의 뜻은 너에게도 이어지리라.”

그녀가 이미 죽어버린 거인의 시체를 발견할  있었던 것은순전히 우연한 결과물이였다.

그녀가 천신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신을 만들고, 수백 년에 걸쳐서 성녀를 연기하며 인간들을 속이고 있던 와중에, 그 세월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지하에 잠들어있던 유적을 지키듯 죽어있는 거인의 시체를 발견한 것은, 지극히 우연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건 운명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인간들을 속이고, 천신이란 신을 대신해서 인간들의 신앙을 받으며 마계를 넘어온 후유증을 이겨내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녀가 강하다고 한들, 본래의 힘을 되찾는다고 한들수호자를 자칭하는 위선적인 도마뱀들 모두를 상대하긴 힘이 부족했다.

기껏해야 두세 마리의 도마뱀과 동귀어진이 한계.

하지만 기껏 두세 마리의 도마뱀과 죽어버릴 바엔, 하느니만 못한 복수였다.

아버지의 패배는 그녀 또한 인정할 수 있었다.

아버지 역시, 언제나 그녀에게당신의 침략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항상 알려왔으니까.

아니, 결코 운명은 자신에게 승리를 말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자신이 패배할 것임을 알려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은, 자신들은 차원을 넘어서 도마뱀들이 지키고 있는 땅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였다.

운명, 아니 숙명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됐을 당시에만 해도 그리 슬프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녀는 알고 싶었다.

갓 태어난 자신을 끌어안으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전해줬을 뿐이었던 아버지를 최후를.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패배마저 그 빌어먹을 도마뱀들에게 욕보인 아버지의 최후를.

복수를 다짐했다.

처참했던 왕의 최후를,  유지를 이어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히 그의 딸이자 후계자였던 자신의 의무였으니.

그런 만큼, 도마뱀들 모두를 똑같이 모욕하는 것만이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겐 그럴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에 비한다면 지금의 자신은, 자신과 함께 태어났고, 아버지를 따라 이 곳으로 왔다 죽임당한 수많은 형제와 비교해도 약할 따름이였으니.

그렇기에 복수를 다짐한 채, 분노를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백 년, 이백 년... 아버지의 죽음과 그 최후를 알게 됐을 때부터 분노를 삼킨 채로 인간들 사이에 숨어 지내던 그녀의 앞에, 거인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렇기에 운명이라고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들이 그 흔적마저도 모조리 없애버렸던, 거인의 시체가 자신의 영향력에 있던 인간들의 도시 지하에 묻혀있었다는  자체가 운명이 아니라면 도대체 뭘까?

드래곤과 함께  세계를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해 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종족인 거인.

능히 드래곤과 맞먹거나 그 이상의 힘을 갖고 있던 거인의 시체가 가지고 있는 힘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였다.

이미 죽어 움직이지 않게  거인의 시체였지만, 그 안에 깃들어있는 힘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듯싶었으니까.

아니, 죽은 뒤로부터 수천 년은 훌쩍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투기를 뿜어내는 존재였으니 뭐라 말할 것도 없었다.

마력과는 지극히 상극인 투기를 그토록 뿜어낼  있는 존재라니. 더군다나 그 망할 도마뱀의 뼈로 만든 무기까지 유적 속에 같이 잠들어있다니.

마치 이걸로 드래곤을 죽이라고, 복수를 행하라고 운명이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운명이 마침내 우리들에게 승리를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런 거인의 시체를 조종하기 위해서 그녀가 치러야 할 대가 역시 가벼운 것은 아니였다.

투기가 마력과 상극이란 점은, 마력을 다루는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인 셈이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력조차도 비틀었다.

성질을 비틀었다고 해도 좋았다.

근간부터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위였지만, 그녀는 성공했고... 자신의 마력을 거인의 시체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투기를 뽑아내는 법을 알게 됐다.

그렇게 거인의 힘을 습득하게 됐을 때, 그녀는 무척이나 기뻤다.

마침내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덕분에 거의 회복했던 힘의 대부분을 다시 잃고는 말았지만, 그거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였다.

그리고 자신의 힘이 완전히 회복됐을 때, 홀로 두세 마리 정도의 도마뱀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점친 자신과 거인의 힘이라면 이미 멸종에 가까울 만큼 숫자가 줄어든 도마뱀 따위야 언제든지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본격적으로 드래곤들을 모조리 죽일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

겸사겸사, 아버지에게 저주받은 인간들... 드네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인간들도 그 계획에 이용하기로 하고 말이다.

아버지의 저주를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태생부터가 뛰어난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인간치고는 제법 쓸만한 힘들을 갖추고 태어나고는 했으니. 그들의 힘을 이용해서 드래곤을 베는 것도 무척이나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아버지를 욕보인 드래곤과 인간, 둘 모두에게 복수할 방법이기도 했고 말이다.

어렵사리 구한, 신들의 힘을 가진 편린이 깃들어있는 검을 천신이 내린 성검으로 이름을 알리고 대대로 드네아 가문의 가장쓸만한 인간들을 용사로 임명했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고 한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신탁이란 이름의 세뇌를 받아오다 보면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충실한 꼭두각시가 되기 마련이였다.

수명이 짧은 존재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 따라 맹목적으로 변하고는 하는 법이였으니 말이다. 그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라기까지 모든 것을 조종해왔던 그녀에게, 그들이 충성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였다.

아버지의 원수의 후손들이 자신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것은 제법 기분 좋은 일이었다.

“후후, 결국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거겠죠.”

자신과 같은 동족을 베어 죽이면서도, 용사라고 추앙받자 기뻐하고 자신의 명령에 부복하는, 아버지의 원수이기도 한 존재의 후손인 여인을 내려다보면서 그녀는 미소 지었다.

그렇게 대를 거쳤다.

자신의 검이 되었던, 인간들은  년, 이십 년 주기로 저마다 다른 이유로 얼굴이 달라졌다.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죽거나, 정적을 베다 죽거나, 자신의 연인이라고 생각했던 이에게 독약을 받아먹고 죽거나...

상관 없는 일이였다.

어차피 용사는 새로 임명되었으니.

그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의 계획의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천신교라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드래곤과의 결전 때의 마력을 뽑아낼 인간들을 늘리고, 그러한 인간을 더더욱 늘리기위해 도시를, 나라를 번영시켰다.

왕국은 제국이 되었고, 더욱 많은 인간이 몰렸다.

대대로 드네아의 인간들은 그런 상황에서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죽이는 암기가 되어왔다. 대를 이어갈수록, 그들은 같은 종족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뛰어난 무력을 지닌 채로 태어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어떤 인간의 왕국조차도 드네아의 인간을 막을 수조차 없었다.

압도적인 무력.

그 힘은 곧 천신교의 힘이 되었다. 드네아의 인간들은 천신교나 제국에 방해가 되는 인간들을 단신으로 찾아가 목을 베어오고는 했으니 말이다.

방해되는 인간 귀족들을, 정적들을 베어낼수록 용사는 유명해졌고, 천신교는 더욱강해져만 갔다.

당연하게도, 더 많은 신앙을 받게  그녀 역시 빠르게 힘을 회복할  있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복수를 준비하던 중에, 처음으로 계획이 뒤틀리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본래 용사로 임명하려고 들었던 드네아의 인간, 엘리시스가 그녀의 손에서 벗어난 것이였다.

이제까지의 드네아의 인간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갖고, 가장 강하게 성장했던... 계획대로라면 마침내 드래곤들에게 사용될 예정이였던 인간이 제멋대로 용사로 임명되기를 거부하고 밖으로 나돌은 것이였다.

강한 만큼이나 오만하고, 제멋대로 굴던 인간이 용사라는 이름으로 추앙받기보단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영향력 밖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아무리 강해봤자 인간에 불과했으니. 더군다나 그녀가 낳은 자식 역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또한 순종적이었으니 큰 문제는 아니였다.

비록 당장의 강함은 어미에 비한다면 부족할 지언정, 그마저도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였다.

이미 수백년을 견뎌온 복수였다. 십년, 이십년쯤이 더 걸린다고 한들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시점이 된 것일까? 연이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어긋남.

그런 어긋남이 전조였다는 듯이, 갑작스레 그녀의 계획에  차질이 일어났다.

조금씩이나 회수하고 있던, 저주로써 세계의 법칙 그 자체를 뒤바꿔버린 아버지의 힘을 갑자기 모두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이었다.

하물며, 그 누군가가 엘리시스를 대신해서 용사로 임명됐던 아리스마저 채가고 말았다.

아버지가 남긴 힘과 자기가 손수 기르고 있던 용사를 찬탈당한 그녀는 분노에 찰 수밖에 없었다.

그와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가 남긴 힘은, 세계마저도 변혁시킨 저주였다.

스스로 뿔을 부러뜨림으로써 세계에 새긴 저주.

그 저주를 이루고 있는 아버지의 힘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아버지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론 부족했다.

그 누구보다도 세계를 저주해야만, 그 스스로 마왕의 자리로 올라서야만, 마땅한 후계만이 취할 수 있었던 힘인 셈이였다.

아버지의 딸인 자신조차도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회수해갔을 뿐, 모두 얻는 것이 불가능했던 힘을 가져가 버린 찬탈자.

대체 그런 존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땅히 이 세계에서 태어난 존재가, 그토록 이 세계를 증오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증오하고, 스스로를 제물을 바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다고...?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우리들이 아닌 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것이 가능한 이가 있었단 사실은, 아버지의 힘을 모두 빼앗긴 것으로 이미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결국 어차피 그런 존재라면 결국은 도마뱀들의 적인 셈이였다.

오만하고, 위선적인 도마뱀들은 스스로를 수호자니 질서자니하고 칭하며 그렇게행동하려고 들었으니 말이다. 그런 도마뱀들에게 마왕의 힘을 가져가버린... 누구보다도 이 세계를 증오하는 자라니, 적이면 적이었지 결코 협력할 존재는 아니였다.

아버지의 원수들인 도마뱀들을 베기 위해 준비해둔 편린이 깃든 검마저 빼앗아간 것은 화가 나기는 했지만... 어쩌면 도마뱀들을 처리할 때 도움이 되어줄 수도 있는 찬탈자는 훗날에 어떻게든 하기로 하고 물러설 수밖에없었다.

하필이면 그 찬탈자가 있던 곳이 도마뱀들의 영역이였기에, 차마 찾아갈 수도 없었던 것도이유였지만 말이다.

아직 도마뱀들 모두와 싸우기엔 준비가 완전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

천신을, 자신을 따르는 인간들이 가장 절망하고, 좌절하면서 죽음으로써 그들로부터 빨아들일 수 있는 마력이 더더욱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가장 많은 죽음.

가장 많은 절망.

그 모두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가능했다. 명분을 만들기도 쉬웠다. 자신의 힘을 빼앗아간 찬탈자를 새롭게 나타난 마왕으로 내세우고,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명목으로 근처의 아무 나라나 지목해서 전쟁을 일으키면 그만이었으니.

마침 찬탈자의 마수들이였는지, 뭔지는 몰라도 투기를 다루는 괴상한 오우거까지 등장했으니 더더욱 일이 쉬웠다.

더군다나 그 오우거에게 팔을 잃은엘리시스를 치료해주는 것으로 찬탈자에 의해 잃어버린 아리스를 대신해서, 그보다 더욱 강했던, 본래는 용사로 임명되어야했을 엘리시스를 다시 한번 부릴 수 있는 발판까지 마련하게 됐으니, 계획했던 일은 아니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득을 본 셈이였다.

아무튼 그렇게 나름의 계산을 거쳐서, 란자크 왕국과의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엘프와 드워프를 비롯한 온갖 곳에서 들어오는 방해와 배를 띄우기도 힘들 정도의 기상악화까지. 더군다나 바다 전체에는 거대 몬스터들까지 깔렸다.

대놓고 전쟁을 억제해버리는, 드래곤의 개입이 분명한 징조들에 점점 더 초조해져만 갔다.

 정체를 들킨 것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