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9화 〉 3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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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이지경’님의 특성 ‘반신의 육체’의 승급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특성 ‘반신의 육체’를 승급하시겠습니까?]
귓가에 들려온 알림 소리에 대한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마도, 어쩌면.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최악의 결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해줘.”
그리고, 그렇게 대답한 순간.
나는 설령 육체만이라도 신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내 육체는 반신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반은 이미 신이라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신이 된다고 쳐도 그게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을 수밖에 없었다.
전능이니 전지니 뭐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그러한 개념이 평생을 신이니 뭐니하는 거랑은 아무 상관도 없던 인생을 살아왔던 내게 와닿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까 막연하게, 지금보다 좀 더 세지고 말겠거니 하는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지금에서야 느낄 수 있었다.
끊임없이 확장되는 영성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순식간에 희미해졌다.
불완전한 것과 완전한 것의 차이는, 너무나도 까마득했다.
반신에 이르렀던 나라는 존재는, 신의 그릇 안에서는 한없이 작은 존재였다.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것.
그건 무한하다는 것과 같았다.
완전한 것의 앞에서는 절반이든 아니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국, 하등 상관없이 똑같을 뿐이었다.
아마, 이전까지의 나였더라면.
샤르가 말했던 대로 그저 이지를 잃은 채로 신의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릇이란 것은 담아내기 위한 것이고, 무한하기 그지없는 용량을 지닌 신의 그릇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담아내려고 들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고생하는 건 나였다.
아니, 이걸 고생한다는 표현으로 끝내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담는다는 것은... 멜로니의 기억을, 수백 년에 달하는 기억과 경험들을 받아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도 아슬아슬하게 버텨냈던 것 같은데, 그것보다 훨씬 더했다는 거다.
그렇기에 전지하고, 그렇기에 전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 자신이 세계이니.
자신의 안에 있는 것에 대하여,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의 안에 있는 것에 대하여, 전능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신이란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자신의 안에 가둔 존재였다.
그 자체로 세계가 되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 속에서, 개인의 존재는 한 줌에 불과한 것이었다. 끝없이 흐르는 격류 속에서, 한 줌의 모래는 금세 흩어지기 마련인 것처럼. 무수한 것을 담다 보면, 그 안에 깃든 한 줌에 불과한 것은 그저 뭉개지고, 희미해지기 마련일 뿐이니까.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것은, 순식간에 나라는 자아를 뭉개려 들었다. 아니, 뭉개려 드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뭉개지고 있었다.
나라는 자아는 이미 조각조각 나뉘어서, 격류에 휩싸인 모래처럼 흩어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가 이에 대응합니다.]
꿈틀, 하고 내 안에 깃들어있던 조각을 움직였다. 마치 손을 뻗으려고 하면, 손이 뻗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것은 내 의지에 충실하게 따랐다.
끊임없이 확장되는 영성 속에서, 끝없이 흘러들어오는 것에 휩쓸려, 나는 나라는 자아가 조각조각 나뉘어 흩어지는 것을 붙들어 잡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모두.
나를 이루고 있던 것들을 조각조각 나누어서, 다시 조립했다.
그리고, 그런 조각은 나를 감싸고선 한껏 그 자신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비어있는 그릇을 채우려 드는 육체가. 그로 인해 나 자신을 뭉개려 든다면, 그렇다면 나 스스로가 그릇을 채우면 그만이었다.
오오오오ㅡ
한없이 넓은, 무한하기 짝이 없는 그릇을 나 자신으로 채워나간다.
완전한 것을, 무한한 것을 채운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였지만, 이것이 가능해야 신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작 그릇에 담길 수 있는 존재가, 그릇에 삼켜질 뿐인 존재가 신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신이란 존재는, 자신 그 자체로 세계인 존재였지만.
세계가 신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 신은 그릇에 담기는 존재가 아니었다.
흘러들어오는 그 모든 것들은, 신에게 녹아드는 것들이지 신이 그것에 녹아드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스스로 신성을 자각합니다.]
[‘법칙’에 따라 플레이어에게 신역이 해금됩니다.]
신은 오롯하게 스스로 존재한다.
그 완전성이야말로 신이 신으로 불리는 이유였다.
조각이 나를 덮어씌우려던 그 모든 것들을, 도리어 집어 삼켜갔다.
그릇을, 한없이 나로만 채우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삼켜가면서 몸집을 불려가는 조각의 모습을 보니,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만 여겨졌다.
삼키고, 삼키고.
끊임없이 몸집을 불려간다.
탐욕스럽게, 제 욕심을 채워간다.
고집스럽고, 아집스럽게.
덧칠하고, 삼키고, 먹어치웠다.
손에 쥔 것을 채 삼키기도 전에, 새로운 것을 쥐고서 먹어치우려 드는 조각은, 탐욕 그 자체였다.
그것은, 조각은 나를 닮아있었다.
닮은 게 당연했다.
결국, 저것 역시 나에게 비롯된 것이니.
욕심만 드럽게 많았던 나에게서 나온 것이니 나를 닮을 수밖에.
[플레이어에게서 권능의 씨앗을 확인했습니다.]
[권능의 속성이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권능의 속성을 결정할 인자를 추려냅니다.]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과 함께 이제껏 잠자코 내 안에 깃들어있던 편린들이 공명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우우웅ㅡ
돌연 앞에 튀어나오더니 존재감을 뿜어내는 편린들이, 내게 뭘 요구하는 것인지 어째선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편린들이 내게 말했다.
나를 선택하라고.
그렇게 주장하듯이.
자신을 택한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을, 무수한 것들을 내게 보여줬다.
주시하는 자가 보여주는 미래는, 설사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라 할지라도 개변시키는 힘을 가진 나였다.
분명, 그런 힘을 얻게 된다면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많은 것들을 고쳐잡을 수 있으리라.
헤아리는 자는 나 스스로가 원하는 미래를 선택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그런 힘을 얻게 된다면, 분명 앞으로 실수하는 일은 없어지겠지.
역치의 날개는 내가 원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느 곳이라 하더라도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을 보여주었다. 이 힘만 있다면 내가 본래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아내들과도 같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게 분명했다.
불멸자의 심장은...
전능자의 손은...
그들이 자신을 선택하라며 내게 보여주는 것들은. 자신들이 온전하게 되었을 때 다룰 수 있는 권능은, 확실히 굉장한 힘들이었다.
편린, 신이 남긴 힘의 조각.
그것들이 조각이 아니게 되었을 때의 위력은, 확실히 지금의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두가 나의 것은 아니었다.
저것들은 전부 내가 취했을 뿐이지, 언젠가는 제 주인에게 돌아갈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쩌어억, 하고 내 의지에 조각이 이빨을 드러냈다.
이제 막 돋아난, 여리고 나약한 이빨이었다.
하지만, 이미 수도 없이 많은 것을 먹어치운 포식자의 이빨이었다.
더군다나 여기는 나의 몸이었다.
설령 막 돋아났다고는 하더라도, 적어도 여기에서만큼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이빨을 드러낸 조각을 보고서 편린들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생명도, 의지도 없이 단지 부려져왔던, 단순한 힘의 덩어리인데도 눈치 한 번 빨랐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입을 벌린 조각이, 편린들마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아직 미약하기 짝이 없는, 이미 조각나서 쪼개진 것에 불과한 편린과 비교해도 볼품없을 정도로 작디작은 조각에 불과한 나의 것.
하지만 이미 완성되고, 당장은 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남의 것보다는 내 것이 먼저였다.
그런 내 의지를 읽은 편린들이, 이미 잡아먹힌 전능자의 손을 제외한 모두가 기겁하면서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내게서 떨어져 나가려고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미 그릇 전체에까지 퍼진 것이 나였다. 편린들이 어디로 도망치든 간에, 어디에든 나는 존재했다. 그렇기에 나의 조각은, 끊임없이 편린들을 쫓아가서, 결국에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삼켜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남은 편린의 앞에서, 조각이 이빨을 드러냈다.
우우웅ㅡ
그건 나 자신이었다.
결국, 이 육체도 편린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릇 그 자체로 만들어진 내 육체가 호소해왔다.
자신을 집어삼키면, 나는 결국 죽고 말게 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여태까지 이뤄온 그 모든 것들도.
내가 원했던 그 모든 것들도 전부 잃어버리고 말 거라고.
그리고 당연하게도ㅡ
콰직ㅡ!!
나의 조각은, 내 육신을 이루고 있는 편린마저 씹어 삼켰다.
내 팔을 씹어먹은 조각에서, 팔이 돋아나는 것이 보였다.
내 다리를 씹어먹은 조각에서, 다리가 돋아나는 것이 보였다.
하나하나, 사지부터 시작해서ㅡ 끝으론 머리까지.
우적우적,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 조각이, 내가 손을 들었다.
내가 나에게 물었다.
바라는 모습이 있냐고.
바라는 거야 많았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들. 그녀들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아내들과의 자식도 많이 만들고 싶었다.
신이라고 생각하기엔 좀 지나치게 원초적인 본능이 앞서있는 듯도 했지만. 그것이 내 안에 있던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편린을 제외하고서ㅡ 어쩌면 편린들이 성장을 유도했던 수많은 재료가 된 기능들도 제외하고서. 내가 가장 높은 등급까지 만들었던 기능이 카마수트라였으니까 제법 어울리는 욕망이었다.
더군다나 아직 진짜 신이 된 것도 아니기도 하고, 욕망에 충실해서 나쁜 게 뭐가 있을까?
거기에 신이라고 해서 완전히 욕망에서 초탈하거나 그러라는 법도 없고.
뭘, 내가 아는 신화 속의 어떤 신은 자식만 수백이었다.
“그래, 그럼 네가 바라는 대로 될게.”
내가 그렇게 대답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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