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8화 〉 368화
* * *
여긴 어디야?
별안간 의식이 붕 떠서 어딘가로 옮겨져서, 나는 이게 뭔가 싶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비어버린 권좌가 보였다.
저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건, 이 세계의 신으로서의 자리였다.
이미 떠나가버린 신들의 자리였다.
수많은 저 자리들이, 이 세계를 만들고서, 마침내 떠나가버렸던 신들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런 권좌를 닦고 있던 이를 볼 수 있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것에 불과했다.
“어서 오십시오, 어리고, 가엾은... 만들어진 신이시어. 다만 그 자리에서 계십시오. 당신의 권좌는 여기에 없음이니.”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녀석이 그렇게 말했다.
비어있는 수많은 권좌를, 그 스스로부터가 닦아 빛내고 있는 주제에 자리가 없다는 소리는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오랜만인데 너무하지 않아?”
저것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과거,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과거에... 아샤와 아냐를 안았던 시절에 그를 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나를 보려다가 드래곤들의 안배에 강제로 추방당했던 그를 본 거였지만.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그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비켜라.”
저자는 신이 아니었다. 단지,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어 돌아올지도 모를 신들을 위하여 권좌를 빛내고 있을 뿐인 시종에 불과했다.
저자가 나를 막을 권리는 없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에 당신의 권좌는 없습니다.”
그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고 그가 입술을 비죽였다.
입술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으나, 그가 나를 비웃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신들이 남기신 조각들과 그분들이 이 세계를 긍휼히 여기어 마지막까지는 세계를 유지토록 남기신 물건들을 집어삼키고, 그것들을 어설프게 합치고 기워내어 신이 되신 당신에게, 진정한 신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마땅한 권좌 같은 자리가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톡 까놓고 말해서, 너 같은 거렁뱅이에게 이 자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린 신이시어. 당신도 마땅히 신이 되었으니... 그저 거기에 서 있는 것만은 허락하겠습니다. 그러니 감히 이곳을 엿보지 마소서.”
“그러냐.”
내 자리가 없단 말이지.
그야, 나는 이 세계가 만들어질 때 관여한 거라곤 하나 없는, 그저 이 세계에 소환됐을 뿐인 이에 불과했으니, 여기에 내 자리가 있을 턱이 없긴 했다.
내 앞에 있는 저자들은, 이 세계를 만들었던 신들의 시종이지 나의 시종이 아니었으니, 그런 나를 거부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가.
그렇다면야.
우웅, 하고 내 안에서... 어느덧 자라나 작은 구체의 모양이 되어버린 조각이 힘을 뿜어냈다.
“...아직 권능조차 되지 못한 씨앗으로 저를 위협하시는 겁니까?”
그 말대로였다.
이건 그저 이것저것 뭉쳐놓은 것에 불과하지, 어떠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무엇이든 될 가능성만을 품은 씨앗이었다.
무엇이든지 될 가능성을 품은 씨앗.
이미 수많은 것들을 양분삼아서, 열매를 맺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씨앗.
이것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바라는 나.
내가 원하는 욕망에 따라 성장하게 될 씨앗.
“나는, 나 스스로가 신이 되었으니.”
나의 자리가 이곳에 없다는 건 인정하겠다.
“나의 자리 또한 나 스스로가 만들겠다.”
그래, 내 자리가 없다면... 그렇다면 내 자리를 만들면 그만이었다.
“나를 막을 테냐? 그렇다면 빼앗겠다. 나는 욕심이 아주 많으니.”
우웅, 씨앗이 싹을 틔웠다.
그리고 첫 번째의 열매를 맺었고, 그 열매는 나의 바람대로 되었다.
“나는 찬탈자다.”
설령 버려졌다고 한들, 남이 만든 세계를 빼앗아 내 것으로 하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나를 마땅히 찬탈자라고 부르는 것이 옳으리라.
그리고, 두 번째의 열매가 맺혔고, 이내 그 열매 또한 나의 바람대로 되었다.
“나는 포식자다.”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그 어떠한 것들도, 본래 나의 것이었던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나머지 모두는, 그저 내가 삼키고, 먹어치우며 채워온 것들이었다.
그러니 마땅히 나는 포식자로 불리는 것이 옳았다.
세 번째 열매가 맺혔다. 그것은 아직 내 바람을 듣지 못해서, 다만 열매로 내 욕망을 기다렸다.
내가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이름짓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바랬던 것이 무엇일까.
그건...
앞으로도, 모두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영원이다.”
모든 열매를 수확하자, 나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나는 찬탈하는 영원의 포식자다.”
드럽게 욕심 많아 보이는 이름이라,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세 개... 이제 막 태어난 어린 신이 벌써 세 개나 되는 권능을 거느리시는 겁니까?”
“원체 먹은 게 많아서 말이지.”
조각이었다고 한들, 신의 힘이였던... 권능의 파편이었던걸 잔뜩 먹어서 영양분을 채웠던 씨앗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근본부터가 잘 먹고 잘 자란 우량아였던 셈이었다.
스윽, 하고 녀석을 바라봤다.
나랑 엇비슷해보였던 녀석은, 이제는 작디작아져 있어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자, 나는 찬탈자다. 나는 포식자다. 나의 자리가 없다 한들,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있을까. 다만, 빼앗고 차지하고, 먹어치울 뿐이다.”
내 시선이, 수많은 권좌 중에서도 가장 드높은 곳에 있는 권좌로 향했다.
“그러니, 저 자리를 내가 갖겠다.”
“어린 신이시어. 욕심으로 스스로를, 그저 빼앗을 뿐인 자로 지으신 어리석은 신이시어. 당신이 영원을 바라나, 영원한 것은 오직 신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저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없나이다.”
그렇게 말한 그자가 몸을 부풀리는 것이 보였다.
커다랗게, 커다랗게 부풀어서 마침내 다시 나와 비슷한 크기까지, 아니 그보다도 더욱 커져가는 것이 보였다.
“수많은 신이 저를 만드시고, 그 수많은 신을 모셔온 제가, 이제 막 스스로를 깨달아 신성을 얻으신 당신께 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죽거리며 그렇게 말하는 녀석을 내가 올려다봤다.
커다랬다.
부풀고, 부풀어서...
먹음직스러웠다.
절뚝이며 오르고, 올랐다.
자리가 높은 이유가 있었는지, 걸음을 옮길수록 너무나 무거워서 힘이 들었다. 한층, 한층을 오를 때마다 나를 억눌러오는 이것은, 내게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듯 싶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고깃덩이를 씹었다.
“끄, 윽...”
몸을 꿈틀거리며 고깃덩이가 신음했다.
큰소리치며 나를 막아섰지만, 녀석은 완전히 샌님이었다.
힘은 나만큼이나, 어쩌면 나보다도 강했는데, 녀석은 싸우는 법이라곤 하나도 몰랐다.
하기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하물며, 이미 비어버린 권좌들을 마냥 닦고 빛내고만 있었을 녀석이 강하다고 한들, 그 힘을 제대로 써본 적이나 있었을까.
그래서 두들겨 팼다.
그렇게 다져놓고서, 한 움큼씩 뜯어다가 삼키자 나는 더더욱 거대해져 갔다.
신이 되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뜯고, 삼키고, 찢고, 먹었다.
나는 계속해서 거대해져갔고, 녀석은 계속해서 작아져만 갔다. 마침내, 내 손 안에 녀석이 전부 들어올 무렵에는.
나는 그를 손아귀에 쥔 채로 권좌가 있는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지치고, 힘이 들 때마다. 내 손에 쥔 녀석을 씹어 삼키면서 계속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위에 있던 권좌가 내 앞에 있었다.
“끄, 아아아!”
녀석이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막으려는 듯 비명을 질러가며 손을 뻗어왔지만.
“덕분에 오르는데 덜 힘들었다.”
으적, 하고 다만 내게 먹힐 뿐이었다.
우웅...
네 번째 열매가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한층 더 드높은 신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찬탈, 포식, 영원... 다음은 뭐로 하지?”
지금도 찬탈하는 영원의 포식자 같은 이상한 이름인데, 여기서 하나가 더 더해지면 괴상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장애물이 보이기에, 당장에 쓸모가 있어 보이는 이름들로 나를 정했지만... 지금은 뭐, 그렇게 급하지는 않았으니 조금 고민했다.
고지가 앞에 있었으니, 고민에 다소 시간을 들이는 것쯤은 아무 문제없으리라.
그렇게 고민하다, 문득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게 눈앞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고 한들 본래 이 세계를 만들었던 신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만 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던 신들이었지만, 신들에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언제 내가 어떤 이유로든 그들을 찾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부족함을 알았으니 나는 내 이름에 또 다른 이름을 더했다.
폭거.
그러자, 두 개의 이름이. 찬탈과 폭거라는 이름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가 비슷한 권능이니,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이 합쳐지자, 나는 포악한 영원의 포식자가 되었다.
더럽게 욕심도 많은데 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름이 되자, 나는 만족스러웠다.
“자, 그럼.”
눈앞에 있는 권좌.
들고 있던 것을 좀 험하게 먹어치우다 보니, 피투성이로 얼룩진 권좌에 앉았다.
그러자 눈앞에 많은 것들이 보였다.
새는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러나 날지 못하는 새도 있다.
물은 흐른다. 가둬진 곳에 고인다.
생물은 자식을 낳고, 그로서 번영한다.
천천히 그것들을 읽어내려가자, 이것들이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규칙이자 진리, 법칙임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신이 손을 대고 살폈는지, 저마다 다른 이의 힘이 깃들어있는 법칙들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내가 찾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드래곤은 자식을 낳고, 모든 자식은 여성으로서 태어난다.
먹물로 덧대어 칠해진 듯한 그것을 보고서 나는 손을 뻗었다.
드래곤은 자식을 낳고, 그로서 번영한다.
덧칠된 먹물만을 지우자, 온전하게 돌아온 것이 보였다.
“좋아.”
이걸로 반쯤은 해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생물은 죽는다.
그 법칙은, 아무리 손을 대어도 바뀌지 않았다. 아주 조금만 고쳐서, 다만 드래곤은 영원히 살아간다는 정도나 원한다면 영생할 수 있다 정도를 추가하려고 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약하기 때문일까?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단지,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것만큼은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강해지더라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스스로 영원이라 이름을 지었음에도, 나는 그녀들을 영원히 살아가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원이라 이름 지은 것이 영 헛된 것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영원하게 해줄 수는 없을지라도, 그렇게 되는 방법은 알 수 있었으니.
녀석도 말하지 않았는가.
영원한 것은 오직 신만이 영원하다고.
오직 신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였으니, 그녀들이 영원토록 살아가길 바란다면 그녀들 또한 신으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밑을 내려봤다.
아내들이, 날개로 둘러싸인 내 곁에서 잠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여기에 있으나, 저것 또한 나였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내가 아니라 다만 비어있을 따름인 내 곁에서 저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쓰려왔다.
나 자신에게 질투하는 꼴이 우스웠지만, 이곳에서 벌써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과 저곳의 시간이 꽤나 차이가 나는지, 여기서 몇 년 동안 치고받았던 거나 권좌에 오르기까지 또 수십 년이 걸린 것이, 저곳에는 고작 몇달이 흐른 정도에 불과했다.
이거라면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괜찮을 듯싶었다. 내 주위를 두르며 잠든 그녀들을 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막 신이 되었고, 신으로서의 권능을 다루게 되었지만. 그 조건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전지했다.
이 세계의 남아있는, 유일한 신이자 주신이었으니.
내가 알고자 하는 것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흠...”
신들은 자연적으로, 어떤 차원에서 태어나거나 혹은 스스로 일어나 신이 되거나, 그 밖에도 여러 방법으로 신이 될 수 있었다.
나와 같이, 신들의 힘이 담긴 것들을 먹어치우는 방식으로 신이 된 신들도 다수 있다는 거다.
즉, 그 덕분에 신은 꽤 많았다.
녀석이 나를 보고 갓 태어난 신이니 뭐니 했고 실제로 녀석은 갓 태어난 나와 힘만큼은 거의 비등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걸 나는 집어삼켰고, 더욱 강해졌으니. 적어도 갓 태어난 신들보단 강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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