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Crescendo
크레센도 : 점점 세게
적당한 긴장감과 알맞은 여유로 이루어진 컨디션은 훌륭했다. 이렇게 쾌적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였다.
시후는 무릎 위에 둔 태블릿을 보며 만족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액정 안에 있는 그래프와 문장들은 완벽한 성과를 이루어 냈음을 알려 주는 보고서였다.
“이게 뭐예요?”
보고서 내용을 검토하는 도중, 익숙한 음성이 그에게 질문했다. 시후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로 시선만 위로 올렸다. 곧, 검은 눈동자에 미소가 찬찬히 번져 나갔다. 이제 막 시후의 집을 방문한 이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피아노죠.”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로 대꾸하자 상대의 옆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게 아니라” 하며 운을 떼는 사람, 예준은 곧바로 시후와 시선을 마주했다.
“형 집에 피아노가 왜 있냐고 물은 거예요.”
예준의 말대로, 거실에는 그랜드피아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짙은 색 커튼과 서울의 한강 야경을 배경으로 한 피아노는 흡사 어느 잡지의 한 면을 차지한 화보처럼 아름다웠다.
“피아노 치는 거 좋아하잖아요. 심심할 때마다 치라고 들여놨어요.”
“저렇게 비싼 걸, 날 위해서 샀다고요?”
‘날 위해서’라는 말에 당혹감과 기대감이 있음을 시후는 어렵지 않게 읽어 냈다. 그렇다고 대답하려던 것도 잠시, 시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곧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말은 본래 하려던 내용과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우리를 위해서 산 거죠. 예준 씬 연주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듣는 걸 좋아하니까.”
“아.”
“부담 주는 건 아니에요. 치기 싫으면 안 쳐도 돼요.”
“……아니, 싫지 않아요. 좋아요.”
피아노 근처로 다가간 예준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그는 시후에게 시선을 보내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내었다.
“많이 좋아하죠.”
그랜드피아노와 유예준이라,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어느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손뼉 치는 청중들과 피아노를 뒤로한 채 인사하는 유예준. 지금보다 성숙해진 얼굴을 한 피아니스트는 겨울의 찬 기운을 풍기는 코트 차림 대신 값비싼 연미복을 입고 있었다.
시후는 제 상상이 머지않은 미래일 것이라고 덤덤히 예감했다. 예준의 연주는 특별하다. 마음을 자극하고 온몸을 간질거리게 만드는 그의 세계에 감화될 사람은 비단 자신만이 아닐 테다. 언젠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청년을 향해 시후는 말을 건넸다.
“이참에 연습실도 옮기는 거 어때요.”
“연습실요?”
“내가 후원해 줄게요. 더 넓고 좋은 공간으로 가요.”
피아니스트로서나 섹스 파트너로서나 예준은 원석 같은 존재였다. 깎고, 다듬을수록 빛이 나는 아이. 그런 예준을 원하는 대로 길들일 수 있다는 게 마음에 꼭 들었다. 후원해 주겠다며 연습실을 제공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예준은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 생각에 잠긴 얼굴에는 씁쓸한 빛은 있었으나 화가 나 보이진 않았다. 시후는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당겨 올렸다.
“다행이네요.”
“?”
“화 안 내서 다행이라고. 또 돈지랄했다고 싫어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
가만히 듣던 예준은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앉아 있는 시후 쪽으로 발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화 안 나요. 이젠 그냥, 이런 생각만 들어요.”
“무슨 생각.”
“부자란 이런 거구나.”
부자? 시후는 얌전하게 서 있는 청년을 응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불현듯 백시후라는 인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스쳤다.
집안이라거나, 이끌어 가고 있는 사업이라거나. 어느 사이트에 이름만 검색해도 뜰 정보들이니 이제 예준이 알아차렸어도 이상할 것 없긴 했다.
“부자 맞으시잖아요.”
시후의 눈빛을 어떻게 해석한 걸까. 예준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정돈되지 않은 갈색 머리카락이 이마 위를 부드럽게 쓸었다.
“여기 집만 봐도 알겠는데.”
“……집만 보고 알았어요?”
“형 하는 말이나 옷차림으로도 알 수 있고요.”
차분한 말씨가 시후의 귀에는 퍽 순수하게 들렸다. 그만 웃음이 나온 시후는 자신이 무슨 마음을 가졌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이 해사한 낯빛을 가진 아이가 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벌써 한 달이나 훌쩍 넘게 알고 지냈음에도, 인터넷과 뉴스에서 곧잘 나오는 제 정보를 예준이 언젠가 볼 것임을 알면서도.
‘귀여우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눈만 깜빡이는 저 얼굴이 귀여우니까.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다정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요, 나 부자예요. 돈 많은 거 맞으니까, 이해하고 내 선물 받아 줘요.”
“선물이라면 연습실 말하는 거죠? 죄송한데,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화 안 난다고 했잖아요.”
“화 안 나요. 그래도 거절할게요. 그 연습실, 저한테는 나름 특별한 곳이라서.”
“특별?”
“지난 대회 상금으로 얻어 낸 공간이에요, 거기는.”
잔잔한 음성에는 자신이 정말 화나지 않았음을 알려 주고픈 뜻이 담겨 있었다. 예준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디뎠다. 시후가 다리를 들면 맞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오피스텔도, 연습실도. 다 제가 얻었거든요. 전부 제 혼자 힘으로 이뤘다는 게 기분 좋아요. 여기서 더 잘되면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주인의 애정이 물씬 풍기던 방들을 생각하며 시후는 알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예준은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게 얻은 공간이니까, 지금 당장은 옮기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고마워요, 형이 후원해 주겠다는 말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왜?”
“……전 그냥, 형의 섹스 파트너일 뿐이잖아요.”
그는 방금까지 힘 있게 말하던 목소리와 사뭇 다른 느낌으로 읊조렸다. 건조하지만 쌉쌀한 감정이 은근하게 풍기는 속삭임이 시후의 가슴을 꾹, 찔렀다. 유감스럽게도 미안함을 느낀 건 아니었다.
“방금 한 단어, 다시 해 봐요.”
“네?”
“섹, 스.”
한 음절씩 띄어 분명한 발음으로 말하자 예준의 몸이 흠칫거렸다. 자신이 먼저 말해 놓곤 막상 남의 입으로 들으니 민망한 모양이었다. 빨개지는 귀를 구경하며 시후는 입매를 끌어올렸다.
“야하네, 예준 씨 목소리로 들으니까.”
말을 마친 뒤 시후는 상체를 앞으로 수그렸다. 그러고는 어서 해 보라는 듯이 빤히 올려다보자 예준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애꿎은 피아노만을 응시하는 옆얼굴마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저 볼 위로 손바닥을 대 보고 싶었다. 잘 구운 감자처럼 따끈따끈하게 익어 있을 게 분명했다.
감자라고 생각하니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별안간 다가가서 뺨을 물어보고픈 난폭한 충동마저 들었다. 그랬다간 예준이 자신을 미친놈처럼 볼 게 분명해 시후는 행동으로 옮기는 대신 작게 웃었다.
“왜 웃으세요?”
“예준 씨 꼭 감자 같아서.”
“……감, 자?”
예준은 아직 붉은 기운이 가시지 않은 제 뺨을 잡아당기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살, 안 쪘는데.”
제 얼굴이 동글동글하게 느껴진 줄 알았나 보다. 살이 찌기는커녕, 뺨에서 턱으로 떨어지는 선이 날카롭기만 하다.
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만졌다. 예상한 대로, 맞닿은 피부가 알맞게 익어 있었다. 간질간질한 기분이 손목을 타고 온몸을 찌릿하게 울렸다. 시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러나 사실은 장난기를 담아 손가락으로 볼을 눌렀다.
꾹.
예준은 볼이 찔린 채로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뭐 하냐는 표정에 시후는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잘 익었나, 확인 중.”
“진짜 감자 취급하시네.”
“귀여워서 그래.”
“……푸핫! 하하하!”
“?”
왜 이래, 갑자기. 시후는 신이 나서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보고 흠칫했다. 상대는 꼭 산책 나가자는 말을 들은 강아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째 부담스러워져 그는 볼을 누르던 손가락을 밑으로 내렸다.
“갑자기 왜 웃고…….”
별안간 포옹을 당하게 됐다. 얼결에 품 안에 안긴 시후는 눈을 크게 떴다.
“저 이제 알거든요.”
“뭘?”
“칭찬이라는 걸요, 형이 귀엽다고 해주는 거. 처음엔 애 취급하는 것 같아서 좀 짜증 났는데, 이젠 아니에요.”
“…….”
“앞으로도 저 귀여워해 줘요.”
자기가 자기 입으로 귀여워해 달라고 하다니. 잠깐 말문을 잃었던 시후는 매끈한 이맛살을 구겼다.
“……예준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좀 뻔뻔하네. 무턱대고 끌어안질 않나, 귀여워해 달라고 하질 않나.”
“아! 죄송해요, 그만……. 싫으셨죠?”
예준이 황급히 손을 치우며 뒤로 물러섰다. 별안간 포옹당했던 시후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에게 이렇게 덥석 안기게 된 건 참 오랜만이었다.
순간적으로 턱 막히던 숨, 예고도 없이 온몸에 닿던 타인의 체온, 귓가 바로 옆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싫진 않았고.”
시후는 그새 후회하는 것 같은 예준의 머리를 가볍게 쓸었다.
“그래, 뭐. 예준 씬 허락할게.”
“허락이요……?”
“말도 없이 끌어안는 거 말이야. 예준 씨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덧붙임이 끝나자마자 예준은 뒤에서 그를 덥석 끌어안아 왔다. 시후의 귓바퀴에 은은한 숨결이 내려앉았다.
“백허그도 돼요?”
“이미 안았잖아.”
“아하하.”
예준은 웃으며 시후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마구 비볐다. 사락, 사락. 머리카락 흔들리는 소리가 가까이 울렸다.
품에 갇힌 시후는 잠자코 눈을 감았다. 허리를 단단하게 안은 팔뚝의 힘이나 어깨에 문대는 머리카락의 부드러움 때문인지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설마 유예준처럼 얼굴이라도 빨개진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닳고 닳은 자신이 백허그에 그런…….
“읏!”
별안간 시후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터졌다. 허리가 빳빳하게 세워지고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돌연 귓불이 빨리더니 그 아래 살갗에도 따뜻한 것이 닿았다. 그것이 예준의 입술임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갈색 눈동자가 바로 앞에 있었다. 예준은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더니 곧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동그랗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고 그 주변의 피부가 분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말랑말랑하게 변해 가는 얼굴에 시후는 짧게 실소를 뱉었다. 누가 보면 이쪽이 희롱이라도 한 줄 알겠다.
문득 그의 시야 안으로 피아노가 들어왔다. 주말에 사람을 시켜 설치한 피아노는 반지르르한 광택이 흐르고 있었다. 시후는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그것과 예준의 미소를 번갈아 보았다. 예민한 부위가 자극당한 탓인지 흥분이 은근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예준이 저를 관찰하듯 응시하는 시후에게 입을 맞추었다. ‘쪽’ 하는 소리가 지나치게 귀여워 잠깐 숨이 멎을 정도였다. 예준은 경직된 상대에게 몇 번이고 가벼운 뽀뽀를 건넸다.
쪽, 쪽, 쪽.
“예준, 씨.”
말을 하는 도중에도 서로의 입술이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허리를 감싸고 있던 예준의 팔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옷을 들추고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을 것 같은 예감이 시후의 몸을 찌르르 울렸다.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르네.”
“형을 무서워해야 하나요?”
부드러운 음성이 빨렸던 귓불을 타고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무서워지면 좋겠다, 꼭.”
예준의 눈동자에 빛나는 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꼭’이라는 강조에 시후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그렸다.
“무서워지면 좋겠다고?”
그는 “흐음” 하고 나른한 소리를 내며 예준의 손가락을 하나씩 잡아떼었다. 예준의 품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시후는 다시 피아노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곧, 까만 눈에도 예준과 같은 빛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재밌는 거 할까요?”
자신이 상대를 자극했음을 깨달았는지 예준은 기대감과 흥분이 섞인 얼굴이 되었다. 상기된 뺨을 보며 시후는 손을 위로 올려 턱을 쓸어 주었다.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를 칭찬하는 것 같은 손동작이었다.
기분 나쁠 법한 스킨십에도 예준은 긴 속눈썹을 밑으로 내리며 얌전하게 서 있기만 했다. 한없이 만족스러운 기분이 시후의 손끝을 긁었다.
* * *
시후의 체구는 상당히 큰 편이었다. 길쭉한 팔다리, 근육으로 이루어진 허벅지, 그리고 군살 없이 보기 좋게 부푼 가슴. 모두 남다른 존재감을 가지고 있기에 무조건 사이즈가 큰 옷을 입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시후는 당연하게 제 옷이 예준에게 아주 작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설마 발목까지 드러나고 상반신조차 꽉 낄 줄은 몰랐다는 뜻이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채로 시후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음.”
관찰하는 시선에 예준은 멋쩍다는 듯 제 목 뒤를 쓸었다. 그의 몸을 감싼 옷은 정장이었다. 와이셔츠에 바지, 조끼에 넥타이까지 완벽히 갖추고 있었다. 화보 속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훌륭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이 상황이 어색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준 씨, 설마 키 큰 건 아니죠?”
예준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 설마라고 생각하세요?”
“만난 지 한 달밖에 안 됐으니까. 그새 또 컸을 거라곤 생각 못 하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예준은 와이셔츠 단추를 만지작대었다. 손가락으로 단추 위를 긁는 것을 보아 제 상체를 조이는 옷이 불편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반면 지켜보는 시후의 눈은 즐겁기만 했다. 달라붙는 바람에 고스란히 드러난 큰 가슴의 존재감도, 두툼한 흉곽을 자랑하는 옷 선도 마음에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두 손에 무언가를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희고 긴 손가락 위에 걸쳐진 것은 바지 벨트였다.
예준은 벨트를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평범하게 주고받는 건 시후의 의도에 어긋났다. 모른 척 둘 사이의 거리를 바짝 좁힌 건 그 때문이었다. ‘움찔’ 하고 예준의 손가락들이 허공을 긁었다.
“가만히 있어요.”
읊조리는 시후의 음성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했다. 말을 마친 뒤 시후는 가까워진 상대의 몸을 한 번 더 훑어보았다. 잠그지 않은 조끼 사이로 와이셔츠 단추들이 눈에 들어왔다. 단추와 단추 사이가 살짝 벌어져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자칫 발견 못 했을 뻔한 즐거움이었다.
시후는 휘어지는 눈을 그대로 접은 채 미소 지었다. 나른한 느낌이 묻어나는 시선은 아래로 내려가더니 바지에 고정되었다. 힘이 들어간 그의 다리 위에도 두툼한 것의 굴곡이 보였다. 옷이 타이트하게 조여 대기 때문임을, 시후는 기분 좋게 깨달았다.
“보기 좋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예준의 허리에 벨트를 갖다 대었다. 별것 아닌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예준은 “읏” 하고 신음하더니 이를 꽉 깨물었다. 긴장한 사람처럼 목울대가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시후는 손가락을 말아 주먹을 쥐는 예준을 느끼며 직접 벨트를 채워 주었다. 찰칵, 차가운 소리가 열기 어린 정적을 긁었다.
“이렇게 크니, 더 조이진 못하겠네.”
시후는 벨트에 검지를 갖다 댄 채 표면을 느릿하게 배회했다. 숨을 참고 있는지 예준의 얼굴이 빠른 속도로 붉어져 갔다. 찌그러진 색소 옅은 눈동자가 흔들리며 시후를 살폈다.
“벨트 말이에요. 조일 대로 조여야 맵시가 사니까.”
“……벨트요.”
‘벨트’라고 중얼거리는 예준의 입매가 야무졌다. 달아오른 와중에도 차분함을 가장하려는 노력이 가상할 정도였다.
시후는 벨트 위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그리고 그 아래 위치한 성기가 단단하게 피가 몰렸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감하며 속삭였다.
“그래, 벨트. 무슨 생각을 했어요?”
벨트를 만지작대던 손이 위로 올라갔다. 배를 타고 가슴으로 올라간 손이 쇄골이 있는 부근에 멈췄다.
“무슨 생각을 했길래, 예준 씨 얼굴이 빨개졌을까.”
맞닿은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어째선지 예준은 분하다는 듯이 굵은 눈썹을 찡그렸다. 달싹이던 입매는 의외로 비웃음 같은 미소를 만들어 냈다. 이어 고개를 살짝 수그린 그가 시후의 귀에 입술을 대었다.
“알면 형이 화낼 거예요.”
“…….”
시후는 눈동자를 위로 올려 시선을 마주했다. 피하지 않고 응하는 눈빛이 당돌했다.
예준은 때때로 무례와 대담함 사이에 놓인 언행을 보이곤 했다. 다른 이였으면 대번에 기를 꺾어 버렸겠지만 시후는 이번에도 봐주기로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인지, 아니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새 정이 들어서인지는 시후 자신도 판단할 수 없었다.
그는 서늘한 손바닥으로 예준의 뺨을 감싸 주었다. 그리고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가 떼었다. 아까 예준의 입맞춤과 달리 쪽, 하는 소리 같은 건 없었다. 스치듯 가벼운 입맞춤을 마친 뒤 시후는 예준의 목에 단정히 걸린 넥타이를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말하지 마요. 예준 씨한테 화내기 싫으니까.”
예준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떴다. 화내기 싫다는 발언에 기쁘기도, 아쉽기도 하다는 반응이었다. 모순된 감정들이 뒤엉킨 낯빛을 감상하며 시후는 나지막한 소리를 한 번 더 내었다.
“열받게 만드는 게 취향이라면, 한번 해 보고.”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저 머리통에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 생각이 과연 자신을 화나게 만들 수 있을지 알고 싶기는 하다.
시후는 여유가 묻어나는 미소를 머금었다. 나긋나긋한 웃음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예준은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미간에 힘을 주었다. 잘생긴 옆얼굴에 짜증 섞인 기색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러나 예준은 곧 어쩔 수 없다는 한숨을 토했다. 이어 고개를 가로저으며 긴 눈꺼풀을 아래로 내리떴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속눈썹이 근처에 박힌 눈물점을 찌를 것 같았다. 시후는 그 부위를 혀로 한번 핥아 보고픈 충동이 일었다. 화들짝 놀랄 반응은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시후는 더 짙은 미소를 보이며 예준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 그가 한 행동은, 끌고 온 예준을 피아노 의자에 앉히는 것이었다.
순순히 자리에 앉은 예준은 공손하게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다. 그러자마자 시후는 허벅지 사이에 한쪽 다리를 밀어 넣어 막았다.
“……시후 형.”
이 상황에 이름을 부르다니.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였다면 유예준은 확실히 성공했다.
시후는 “흠” 하고 만족 어린 소리를 내더니 허벅지 사이에 밀어 넣은 다리를 움직였다. 서로의 살을 감질나게 문대자 예준의 매끈한 이마에 점차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왜요?”
“윽.”
“이름 불렀으면, 용건을 꺼내야지.”
“……그냥, 불러 보고 싶었어, 요.”
“그래요?”
차분히 물으며 시후는 제 앞에 앉은 사람 쪽으로 허리를 수그렸다. 먹물처럼 짙은 눈동자가 예준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고요한 눈빛에 무엇을 느낀 건지, 예준의 턱에 힘이 들어가고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고요한 눈길은 잘생긴 입술 모양새를 훑었다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시후는 예준이 어느새 주먹을 쥐고 있음을 보며 양 무릎을 꿇었다. 큰 체구가 다리 사이로 들어오자 예준은 두 허벅지를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돌발 상황에 놀랐는지 예준이 “아” 하고 떨리는 숨소리를 내었다. 주먹 쥔 손에 핏줄들이 불거졌다.
시후는 그가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도록 무릎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언제든지 뿌리칠 수 있을 정도의 약한 악력이었으나, 예준은 밧줄에라도 묶인 듯 몸만 잘게 꿈틀거릴 뿐이었다.
당혹 속에 거부감은 없음을 알아차린 시후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당겨 올렸다.
“이제 진도 좀 나갈까, 싶은데.”
손바닥 아래 움찔, 동요하는 무릎이 느껴졌다. 시후는 진정하라는 듯이 그것을 가볍게 주물러 주며 덧붙였다.
“빨아 볼 줄도 알아야죠.”
“어, 디를…….”
“아래.”
시후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예준을 위해 대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눈짓으로 중심부를 가리키며 알아들었지 않냐는 표정을 지었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예준의 눈 부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랫입술까지 꾹 깨무는 바람에 또렷한 보조개가 생겨날 정도였다.
시후는 여전히 예준의 무릎에 손을 댄 채로 그의 혼란이 멎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조심스러운 질문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다른 사람하고도 해 본 적 있으세요?”
“빨라고 시킨 적은 있죠.”
“…….”
예준은 다시 입을 닫았다. 일직선으로 변한 입매에 은근한 짜증이 배어 나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예준의 상태를 감상하며 시후는 상대의 무릎 위에 두었던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을 세운 채 다리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곧, 손끝에 정장 아래 꿈틀거리는 좆이 느껴졌다. 그것을 살살 만져 주자 예준이 크게 숨을 토하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이마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눈썹을 찔렀다.
“형.”
“말해요.”
“그럼 지금, 저한테, 해 주려는 거예요?”
뜨문뜨문 끊어지는 발음이 불분명했다. 시후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벨트를 풀어 ‘달칵’ 하고 차가운 소리를 내었다.
“그렇지.”
지익.
지퍼 열리는 소리가 열기를 더했다. 능숙하게 성기를 잡아 꺼내는데, 예준이 한 손으로 어깨를 잡아 막아 세웠다. 고개를 들자 예준이 양미간을 좁힌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 아니에요? 그러니까, 남의 거를, 빨, 아 보는 거요.”
“왜.”
시후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똑같이 인상을 썼다.
“못 미더워요? 만족시켜 줄 테니 긴장 풀어요.”
“그런 게 아니라…….”
예준은 잠깐 머뭇거렸다.
“왜 제 건 해 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텐 안 해 줬다면서요.”
“가르쳐 주기로 했으니까. 전 파트너들은 능숙해서 알려 줄 필요도 없었어요. 빨라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왜 그렇게 떨떠름한 얼굴이에요?”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슬퍼? 왜. 이해 못 할 발언에 시후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와중에도 좆을 잡아 위아래로 천천히 쓸어 주는 행동을 잊지 않았다.
“슬플 필요가 있나? 그냥 영광으로만 생각해요.”
마지막 말은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소리였다. 예준은 복잡한 눈빛을 한 채로 숨을 크게 달싹거렸다. 손에 잡힌 성기가 꺼덕거리더니 맑은 액을 한 방울 흘렸다. 시후는 이러다 뭐 하기도 전에 사정하겠다 싶어, 엄지로 요도구를 틀어막았다.
“큿.”
날카로운 신음이 귓바퀴에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하며 시후는 요도구를 막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런 뒤 혈관들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기둥 쪽으로 입술을 갖다 대었다.
비릿한 체향이 코끝을 스쳤다. 불쾌할 법도 하건만, 이상하게도 거부감 대신 식욕 비슷한 충동이 치솟았다. 시후는 맛있는 음식이라도 눈앞에 둔 듯 침이 도는 걸 느끼며 입술을 살짝 모았다. ‘후’ 하고 바람을 불자 그의 어깨를 그러쥐고 있던 손에 힘이 확 들어갔다.
“참아요.”
시후는 짧게 한마디 건넨 뒤 연붉은 입술을 벌려 그대로 기둥에 갖다 대었다. 말캉한 입술 위에 닿는 것은 예상보다 뜨겁고 축축했다. 시후는 실소를 참았다. 빳빳하게 발기한 성기에서 체향 말고도 비누 향이 풍기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려서였다.
‘준비성 좋네.’
제집에서 비누나 청결제로 닦았을 예준을 생각하니 온몸이 짜릿하게 달아올랐다. 성기를 닦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살기둥에 입술을 찍어 눌렀다. 도장 찍듯이 꾹꾹 문댈 때마다 머리 위로 억누른 숨소리가 터졌다.
“윽.”
짙고 붉은 시후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는 오싹하게 떨리는 등줄기를 느끼며 입을 더 크게 벌린 채 목을 아래로 숙였다. 쿠퍼액과 본인의 침으로 젖어 있는 그의 입 안으로 두툼한 것이 밀려 들어왔다.
“……읍.”
시후는 눈썹을 구기며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상대의 것은 커도 지나치게 컸다. 굵직한 두께에 벌써 입술 가장자리가 얼얼하게 아플 지경이었다.
그는 뿌리까지 삼키는 건 힘들겠다고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입을 다물지 못한 바람에 타액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려고 했다. 시후는 입 안에 고이는 침을 악착같이 삼키며 더 깊숙이 성기를 빨았다.
불끈거리는 기둥에는 혈관들이 사납게 서 있었다. 말간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흉악한 그것들은 입 안 점막에 찰싹 달라붙었다. 입천장과, 볼 안쪽을 문대는 느낌에 시후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형, 잠깐만, 요. 윽……!”
이상한 일이었다. 알 수 없는 즐거움이 벼락처럼 환기되어 꼬리뼈를 긁고 있었다. 빨리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좋은 건지.
‘이해 안 돼.’
시후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천천히 움직였다. 귀두의 굴곡진 선이 목젖을 쿡쿡, 찌르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헛구역질이 나면서도 한없이 짜릿한 감정이 심장을 두드렸다. 이해 못 할 감정이 계속되자 시후의 눈 부근이 경련하듯 꿈틀거렸다.
찌걱, 찌걱.
성기를 반이나 문 채로 움직이자 음탕한 소리가 난잡하게 울렸다. 더는 참을 수가 없겠는지 예준이 “아” 하고 탄성을 뱉으며 시후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시후는 성기를 빨며 눈동자만 움직여 그의 손을 살폈다. 앞으로 미는 손가락들이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시후 형.”
낮은 목소리에 흥분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예준은 시후를 가볍게 떠밀며 다음 말을 씹듯이 뱉었다.
“안 되겠어, 요.”
“…….”
“비켜 주세, 윽!”
예준이 말을 미처 끝맺기도 전, 시후는 더 깊게 성기를 빨며 볼에 힘을 주었다. 날렵하던 뺨이 움푹 들어가면서 목구멍이 기둥을 강하게 조여 댔다.
제 성기를 터트릴 기세로 주무르는 감각을 참을 수 없었던 건지, 예준이 거칠게 몸을 비틀었다. 어깨를 밀던 손에도 점차 힘이 들어갔다.
시후는 좆을 입에 머금은 채로 소리 없이 웃었다. 눈이 가늘어지면서 입꼬릴 올리는 얼굴에는 질 나쁜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 이러다, 진짜…….”
다급히 중얼거리는 목소리에서 난처한 기색이 주춤주춤 묻어났다. 시후는 여전히 입매를 삐뚤게 만든 채로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강렬하게 부딪쳤다.
‘이러다 뭐.’
뒷말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시후는 저 단정한 얼굴로 스스럼없이 말해 주기를 바랐다. 이왕이면 쌀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해 주면 좋겠다. 저속한 고백을 상상하자 성기로 꽉 막혀 있는 목구멍에서부터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후는 다시 긴 속눈썹을 밑으로 내리깔며 치아로 살갗을 긁었다. 살살 깨물 때마다 비릿한 맛이 혀에 묻었다.
“큭!”
어깨를 쥐고 있던 예준의 악력이 사라졌다. 허공을 긁고 있거나, 아니면 제 얼굴을 감싸고 있을 게 분명했다. 상대의 당혹감을 생생하게 느끼는 것만으로도 희열이 끝도 없이 솟았다.
이걸 어떻게 더 놀려 줄까.
혀에 달라붙는 체액을 스스럼없이 마시며 시후는 더 깊게 성기를 빨아 주었다. 쉽다고는 결코 볼 수 없는 행위에 그의 얼굴 역시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마 위에서 찰랑거리던 흑발은 땀에 젖어 푹 가라앉았고, 곡선을 자랑하는 목덜미 역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아, 읍.”
그는 가쁘게 숨을 쉬면서 혀를 길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단단하게 곧추선 혀로 살덩이를 느릿느릿 핥아 주었다.
“윽, 형…….”
“…….”
“형, 제발, 그만…….”
“…….”
정말 사정이라도 할 것 같은지 입 안에 있던 살덩이가 크게 꿈틀거렸다. 시후는 두 손으로 예준의 양 허벅지를 움켜쥔 채 있는 힘껏 입을 벌렸다. 절반 넘게 들어온 기둥이 혀를 묵직하게 짓눌렀다.
‘안 되네.’
역시 완전히 삼키는 건 안 되겠다. 부족한 산소에 머릿속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시후는 예전 파트너들을 떠올렸다. 우성 알파의 좆을 잘도 끝까지 빨던 아이들. 목젖까지 깊게 물던 모습을 회상하며 시후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떻게 한 거지? 전에는 없었던 호기심이 이제야 눈을 떴다. 시후는 “흠” 하고 소리 내며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그 순간, 뒤통수가 뜨거운 것에 의해 잡혔다.
“?”
그것이 예준의 손바닥임을 깨닫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무언가 불길하다는 직감이 드는 찰나, 들릴 듯 말 듯 희미한 읊조림이 귓가에 울렸다.
“……씨발.”
낯선 음색과 내용에 잘못 들었나 싶어 인상을 구길 때였다. 별안간 유예준이 뒤통수를 움켜쥔 채로 제 좆을 힘껏 쑤셔 박았다. 굵은 살덩이가 입천장을 긁고 식도 안쪽까지 밀려 들어왔다.
“!”
예기치 못한 상황에 시후는 눈을 부릅떴다. 양 허벅지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놔 달라는 듯이 상대를 밀어 대었지만, 머리통을 잡은 유예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큭.”
그저 짧고 거친 신음만 토하며 시후의 머리를 더 강하게 짓누를 뿐이었다.
삽시간에 강제로 얼굴이 숙여진 시후는, 뿌리 끝까지 성기를 삼킨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오뚝하고 날렵한 콧날이 음모로 쉴 새 없이 희롱당했다. 훅 올라오는 체향과 목젖을 짓누르는 존재감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읍, 으읍, 윽!”
달싹거리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액체는 이제 투명하지 않았다. 목구멍의 여린 살을 찔러 대는 귀두에서 마침내 정액이 터져 나온 것이다. 정액과 침이 섞인 것은 결합 부위를 타고 아래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큽……!”
아까와 달리 그것을 제대로 삼키지도 못한 채 시후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제멋대로 기도에 달라붙는 정액이 비리고 끈적했다. 호흡이 거의 불가능해진 시후는 이 상황을 만든 이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예준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신음조차 뱉고 있지 않았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꼬리와 비틀린 입매, 그리고 뺨에 서린 난폭한 표정은 평소에 보기 힘든 얼굴이었다. 절정의 순간에 잠긴 남자는 하반신을 들썩이며 계속해서 시후의 입에 제 것을 처박아 대었다.
퍽, 퍼억, 퍽!
음란한 마찰음이 터지고, 시후의 입술 가장자리가 점차 찢어지기 시작했다.
‘미친놈.’
이거 완전히 맛이 갔군. 시후는 자신을 성인용품처럼 쓰는 예준의 행태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턱에 힘을 주어 성기를 깨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흥분을 고통으로 바꿔 상황을 역전시키기에 이만한 해결책이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목구멍이 정액 범벅이 되어도, 숨쉬기가 힘들어 뇌가 터질 것 같은데도. 불쾌감을 분명히 느끼는 와중에도 녀석을 가만히 놔두고 싶었다. 시후는 그 이유가 제 목을 오싹하게 만드는 쾌락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내가, 느끼고 있다고?
시후는 예준의 성기를 입 안 가득 문 채로 목울대를 꿈틀거렸다. 더 많은 양의 정액이 그의 꿈틀거리는 목선을 타고 떨어졌다. 그제야 그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쥐고 있던 예준이 손을 떼었다.
“헉, 허억……!”
잔기침과 함께 거친 숨소리가 시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는 잘게 콜록거리며 손등으로 입술을 문대었다. 푸르스름한 핏줄이 선 손등이 정액으로 말갛게 번들거렸다.
“너, 이…….”
비속어라도 뱉으려는 찰나, 크고 단단한 손이 시후의 등을 받쳤다. 어느새 양 무릎까지 꿇은 예준은 가까이 다가와 그의 얼굴을 살폈다. 낯빛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마치 본인이 강제로 목젖까지 뚫린 것 같은 반응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안색에 시후는 분노보다 황당함을 느꼈다. 말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예준은 다른 손을 내밀어 시후의 입술과 턱을 닦아 주었다. 색소 옅은 눈동자가 죄책감으로 촉촉하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설마 우는 건 아니죠?”
시후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맑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고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에 시후는 잠깐 불쾌감을 잊었다.
진짜 울어?
“…….”
섹스하다가, 그것도 제 물건 빨렸다고 우는 애는 처음 봤다. 어이가 없어 물끄러미 응시하는 동안 예준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지를 추켜 올리지도 못한 채 긴 팔을 뻗었다.
그는 침대 옆 탁자 위에 두었던 티슈를 꺼내다 시후의 얼굴을 닦았다. 시후는 제 입술 근처를 닦는 손목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역력한 반응을 살피는 동안 예준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여기에 뱉어요.”
그렇게 말하는 예준은 어느새 새 티슈를 꺼내 들었다. 시후는 말없이 티슈를 응시하다가 다시 예준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팔자 눈썹에 축축이 젖은 긴 속눈썹은 어딘지 시골 똥강아지를 생각나게 했다. 그보다 덩치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지만.
“뱉을 거 없는데?”
“……네?”
시후는 “아” 하고 소리 내며 입을 벌렸다. 혀를 살짝 내밀어 주자 멍하니 바라보던 예준의 뺨이 벌겋게 익었다. 제 정액을 다 삼켜 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었다. 시후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까딱였다.
“죄송……. 윽!”
“됐고.”
예준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는 시후의 악력이 강했다. 느닷없는 힘에 예준은 휘청이며 상체를 구부리게 되었다. 시후는 “아” 하고 소리 내는 그의 머리통 위에도 손을 올렸다.
손바닥을 간질이는 갈색 머리카락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입이 찢어져라, 처넣던 폭력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보드라움이었다.
시후는 그 머리통을 가볍게 아래로 누르며 속삭였다.
“이제 네가 빨아 봐.”
읊조리는 반말에 흥분이 배어 나왔다. 머리를 쥐고 있던 손이 점차 아래로 내려갔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목덜미를 거머쥐었다. 터질 듯 팔딱팔딱 뛰는 예준의 혈맥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침묵이 흐르고, 마침내 예준은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똑같이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는 소리에, 내려다보던 시후의 눈이 가늘어졌다.
“해도 될까요?”
별안간 예준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여전히 뺨은 발갛게 물들고 눈동자는 물 먹은 포도알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저러다 코라도 훌쩍일 것 같아 시후는 실소를 간신히 삼켰다. 큰 잘못을 저지른 애처럼 눈꺼풀을 파르르 떠는 꼴이, 재미있기도, 어처구니없기도, 또, 은근히 꼴리기도 했다.
‘꼴린다고.’
정액의 비린 맛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벌써 짜증이 가셔 버렸으니 신기한 일이다. 시후는 “흠” 하고 중얼거리며 혀로 입천장을 긁어 보았다.
‘……아, 시발.’
머릿속에 욕이 채워졌다. 불룩 솟은 혈관들이 제 입천장을 거세게 긁던 감각이 떠올랐다. 그러자 다리 사이에 있던 물건이 묵직해짐과 동시에 찌르르한 감각이 꼬리뼈를 타고 올라왔다.
시후는 인상을 쓰며 유예준을 빤히 응시했다. 눈물에 젖은 뺨이 말갛게 빛나고 있었다. 욕이 한 번 더 뇌리를 스쳤다.
“내가.”
“윽!”
“두 번 말해야 할까요.”
사납게 뇌까린 시후는, 예준의 머리칼 사이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게 된 예준의 넓은 어깨가 크게 꿈틀거렸다. “하아” 하고 은은한 숨소리가 정적을 긁었다.
“읏.”
다음 신음은 예준이 아닌 시후가 낸 소리였다. 속옷 위로 뜨겁고 축축한 것이 닿았다. 유예준이 속옷 채로 한 번에 문 게 틀림없었다.
훅 치받쳐 오른 흥분에 시후는 뒤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몸에 힘을 주었다. 쇄골 아래 곡선을 자랑하는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스윽, 슥.
상대의 혀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기둥을 핥았다. 침으로 젖어 들어가는 드로어즈가 성기를 꽉 감쌌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윽, 후…….”
뜨거운 열망이 독처럼 번져 나갔다. 시후는 뚝뚝 끊어지는 숨을 뱉으며 눈썹을 구겼다. 그런 사이 예준은 속옷을 벗기더니 손가락으로 성기를 비벼 대었다.
어루만지는 손길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능숙했다. 손바닥으로 음낭을 누르고, 손톱으로 귀두를 한 번 긁었다가 기둥을 훑는 실력이 대단했다.
검은 속눈썹이 길게 드리운 시후의 눈매가 휘어졌다. 위아래로 애무하는 움직임은 전부 자신이 가르친 것이었다. 그는 배움이 빠른 제자를 응시하며 허리를 가볍게 튕겼다.
‘큰일인데.’
시후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생각했다. 애가 탄 몸 상태는 평소 예준과 관계를 맺을 때보다 더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러다 성기가 빨리기도 전에 사정할까, 시후는 이를 악물며 참아야 했다.
턱에 힘이 들어가고 그 아래 목울대가 쉴 새 없이 일렁거렸다. 핏줄이 선 피부가 벌겋게 변해 가는 동안, 예준이 귀두에 뽀뽀하듯 입술을 붙였다. 그리고 말캉한 감촉에 시후가 “윽” 하고 신음하자마자 긴 혀를 내밀어 그 부근을 핥아 대기 시작했다. 요도구 위를 지나쳐 가는 혀의 뜨거움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았다. 예준의 뒤통수를 움켜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원래는 턱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끝까지 쑤셔 넣을 생각이었다.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든 말든 목구멍을 좆으로 조져 놓으려 했던 이유는 뻔했다. 얼마나 힘든지 너도 똑같이 느껴 보라는, 일종의 복수심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그러나 감질나는 혀 놀림이 기대 이상으로 훌륭해, 시후는 원래 하려던 대로 움직이는 대신 예준의 뒤통수를 쓰다듬게 되었다. 잘했다는 뜻으로 읽혔는지 예준이 웃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속눈썹을 밑으로 내린 채 혀로 기둥을 핥아 대는 광경이 외설적이었다.
제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예준을 보고 있자니 거부할 수 없는 성감이 시후를 덮쳤다. 침인지, 제 체액인지 모를 액체가 기둥을 타고 불알까지 미끄러져 내리는 느낌마저 야했다. 참지 못한 시후는 숨을 커다랗게 뱉으며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큭!”
힘을 준 치아 사이로 날카로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짤막한 잇새 소리가 터지자마자 성기를 조이고 있던 예준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돌연 예민한 부위를 훅 눌러 대는 힘에 시후의 이마가 구겨졌다.
“기다려, 요.”
“…….”
“기다리라고 말했, 씹.”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예준이 침을 삼키는 소리를 내며 성기를 세게 빨아올렸다. 시후는 탄성인지, 탄식인지 모를 외마디 신음을 내고는 손에 힘을 주었다. 피아노 의자를 쥐고 있는 손가락들이 세워지면서 뼈마디가 도드라졌다.
느긋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원하는 대로 리드하며 우위를 선점하기엔, 치받친 흥분이 지나치게 뜨거웠다. 불처럼 올라온 감각은 머릿속 생각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결국, 시후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입 모양으로 욕을 중얼대며 허리를 몇 번 쳐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욱.”
예준은 작게 헛구역질을 했으나 제 입 안에 들어찬 것을 뱉지 않았다. 오히려 느껴 보라는 듯, 뜨거운 침으로 귀두와 기둥을 더 흠뻑 적실 뿐이었다.
은근한 고집에 시후는 “하” 하고 헛웃음을 터뜨리며 천장을 올려 보았다. 눈앞에 안개라도 낀 듯이 시야가 흐릿해져 갔다.
“하아, 하……. 나 이제 가겠는데.”
“…….”
“유예준 씨, 가겠다고 말했, 어. 분명히.”
가쁜 숨 때문에 가슴이 쉼 없이 오르내렸다. 몇 번의 경고에도 예준은 계속해서 성기를 빨아 대었다.
“큭……!”
시후는 두 눈을 꽉 감은 채로 사정하는 순간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정액에 놀랐을 법도 한데, 예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기를 핥아 대며 더 달라는 듯이 부추기기까지 했다.
‘이런 건 또 어떻게 알아서.’
처음인 주제에 어떻게 하면 상대가 즐거울 수 있을지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시후는 열기가 천천히 식어 가는 여운을 즐기며 비로소 힘을 풀었다.
그러자 예준은 느릿하게, 아주 느릿하게 제 입에 있는 것을 뱉어 냈다. 살덩이가 ‘주르륵’ 하고 소리를 내며 살짝 휘어졌다. 마지막으로 귀두가 입술 사이에 걸쳐졌을 때, 예준은 그것을 치아로 살짝 물었다.
“읏.”
돌발 상황이 시후의 하반신을 들썩이게 했다.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뜨고 고개를 수그렸다. 침과 정액으로 범벅이 된 그의 성기는 어느새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이제 막 갔음에도 좆이 계속 저릿저릿했다.
“…….”
긴 속눈썹이 길게 드리워진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여기서 더 깨물렸다가 빨렸으면 정액 말고 다른 게 나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스쳤다. 돌연 아랫배를 들끓게 하는 요의가 그 증거였다.
시후는 오른손을 들어 흐트러졌을 머리를 정리했다. 손가락으로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원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꿀꺽’ 하고 삼키는 소리가 그의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지금 뭐 하는…….”
뭐 하는 짓이냐고 물으려는 찰나, 예준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불투명한 액체로 엉망이 된 입술이 굳게 다물려 있었다. 비릿한 맛에 당황했는지 그 아래 턱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예준은 정액을 뱉거나 헛구역질을 하는 대신 같은 소리를 한 번 더 반복했다.
꿀꺽.
정체 모를 오싹한 느낌이 시후의 등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게 희열인지, 아니면 불쾌감인지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가 머리를 정리하던 손을 내리며 조용히 물었다.
“삼켰어요?”
“네.”
순순히 대답하면서 예준의 입술 사이가 벌어졌다. 빨간 혀가 아직 흰 액체로 덮여 있는 모습을 순간이나마 똑똑히 목격했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왜.”
“그냥. 그러고 싶어서요.”
“…….”
“형 거, 먹어 보고 싶었어요.”
예준은 반들반들하게 젖어 있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기쁨 이외에는 어떠한 감정도 섞여 있지 않은 화사한 웃음이었다.
아이같이 천연한 얼굴에 시후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문득 녀석이 예상보다 보통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쳐다만 볼 때였다. 빙글빙글 웃던 예준은 갑자기 “아” 하고 소리 내더니 눈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언제 즐거워했냐는 듯, 낯빛이 금방 어두워졌다.
“아까는, 정말 죄송해요.”
“아까 뭐.”
별생각 없이 물었던 시후는 금방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그 순간, 목구멍에 가시가 박힌 듯 따끔해졌다. 뿌리 끝까지 좆을 물었을 때, 발기하고 말았던 자신이 생생하게 떠올라서였다. 귓불 쪽으로 열이 올랐다.
바닥만 보느라 예준은 그런 시후의 동요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
“그딴 짓, 죽어도 안 할게요. 진짜예요.”
“…….”
“……저 미워하지 마세요.”
한참이고 말이 없던 시후는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머릿속이 어지러웠으나 그 이유를 예준에게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심란함이 일어나는 걸 느끼며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
“안 미워해요. 안 미워하니까, 일단 옷부터 제대로 입죠.”
“아.”
예준의 귀가 삽시간에 빨갛게 변했다. 둘 다 성기를 꺼내 놓고 있었음을 새삼 자각한 모양이었다.
이럴 때는 또 동정이었던 티가 물씬 난다. 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티슈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것을 뽑아 쓰려던 순간, 시후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어느새 성기가 또 반쯤 일어나 있었다. 대가리를 빳빳하게 치켜들고 있는 것은 흥분했다는 증거였다. 이해 못 할 반응에 그의 매끈한 미간이 구겨졌다.
그때, 목구멍이 다시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유예준이 아까 일을 거론한 탓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잠잠하던 손등 위로 핏줄이 일어나고, 목울대는 소리 없이 일렁거렸다. 시후는 가빠지는 숨을 꾹꾹 억눌러 참았다.
“……이걸로 처리해요. 찝찝하면 욕실 쓰고.”
“감사…….”
예준이 말을 다 잇기도 전, 시후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문을 닫자마자 벽에 등을 대고는 자신의 성기를 잡아챘다. 위아래로 한 번 흔들자마자 성기의 딱딱함이 더해졌다. 인상을 쓴 채로 시후는 홀로 수음을 했다.
“…….”
입술 사이가 점차 벌어졌지만 신음이나 숨소리 같은 건 내지 않았다. 대신 성기를 쥐고 있지 않은 손을 들어선 제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자신도 모르게 벌인 행동에 놀란 허리가 바짝 곧추세워졌다.
잠깐 경직되어 있던 것도 잠시, 시후는 손가락 끝을 갈고리처럼 휘었다. 단정하게 깎은 손톱이 입천장을 긁었다. 물기 어린 소리가 귓등에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듯이 목젖이 저절로 꿈틀거렸다. 시후는 좆을 쥐고 있지 않은 손을 더욱 올려서는, 제 목구멍 안으로 손가락들을 밀어 넣었다. 구역질이 났지만 그만큼 하반신이 뜨거워졌다. 부족해진 산소에 얼굴을 찡그리던 시후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
성기를 쥐고 있던 손이 어느새 정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당혹스러움에 목구멍 깊은 데까지 쑤셔 넣었던 손가락들을 빠르게 빼내었다. 손가락 끝에 묻은 타액이 은실처럼 길게 늘어졌다.
시후는 한참이고 제 두 손을 살폈다. 잘생긴 얼굴에 혼란스러워하는 빛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