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Fine
피네 : 끝, 마침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시후의 집이었다. 거실을 디디게 된 예준은 놀란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엉망으로 변한 집 안 꼴에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는 동안 시후는 선물을 살피고 있었다. 상자를 열어 본 그의 입 부근이 꿈틀, 움직였다. 시야 안으로 들어온 것은, 넥타이핀이었다.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요.”
“내가?”
무심결에 묻는 순간, 지난 섹스 때 나눴던 대화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넥타이핀 하나 살까, 하고.’
‘넥타이핀?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데요?’
‘왜. 사 주게?’
장난으로 한 말이었다. 이미 자신은 잊었던 소리를, 유예준은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나 보다.
시후는 넥타이에 핀을 꽂아 확인해 보았다. 심플한 디자인은 그가 원했던 화려함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미소를 짓게 했다.
시후는 옅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예준은 부지런하게 거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가 담배 재떨이에 손대려는 녀석의 팔을 잡아챘다.
“건들지 마.”
“그래도…….”
“내가 너 청소하라고 데려온 줄 알아?”
“그럼요?”
순순히 끌려가며 예준은 모른 척 물었다.
“뭐 하려고 데려온 거예요?”
“그새 여우 짓이 또 늘었어, 유예준.”
시후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예준을 자리에 앉혔다. 두 손으로 밑을 짚던 예준은 빠르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가 앉게 된 곳은 피아노 의자였다. 왜 여기에 앉히냐는 표정이 아이처럼 천진했다.
내려다보는 시후의 눈에 붉은 안광이 스쳤다. 이제야 비로소 단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자각하자마자 흥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시후는 자신의 이성이 빠르게 사라져 감을 느끼며 예준의 양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손바닥 아래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사랑스럽다. 다리 사이를 벌리며 무릎 꿇은 시후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진작 가둬 놓을걸.”
러트가 오면 온 대로, 안 오면 안 온 대로 섹스를 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그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며 예준의 고간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다리 사이를 입술로 상냥하게 문지르자 익숙한 신음이 머리통을 울렸다.
“잠깐만, 요.”
“…….”
“잠깐만.”
그제야 시후는 예준의 허벅지 사이에 몸을 집어넣은 채로 턱을 쳐들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굶주린 맹수처럼, 눈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그러나 입술 만큼은 퍽 점잖아 보이는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1분 줄게. 하고 싶은 말 있음 해.”
그 이상은 어림도 없다는 듯 단호한 말투였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예준의 낯빛이 붉게 타올랐다.
“씻어야지 않을까요.”
“그럴 여유 없는데.”
“……이러다 또 러트라도 오면요? 병원에서 안정기라곤 했지만, 그래도…….”
“그럼 더 좋고.”
고저 없던 목소리가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몇 주간의 공백 기간 때문에 흥분이 더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예준의 안쪽 허벅지를 쓸던 시후는 곧 바지 버클을 풀었다. 이어 속옷을 잡아 내리며 성기를 꺼내는 손길이 평소보다 급했다.
퉁, 튕겨 나온 자지는 이미 딱딱하게 발기해 있었다. 시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검붉은 것을 구석구석 살폈다. 시선만으로도 자극받았는지 예준이 조각난 숨을 뱉었다.
시후는 그것을 한 손으로 잡아채며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손바닥에 닿는 살덩이가 축축했다. 그것을 위아래로 부드럽게 문지르자 상대의 페로몬이 짙어져 갔다. 같은 알파로서 경계심부터 느껴야 마땅하건만,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몸은 페로몬이 닿는 것만으로도 짜릿해했다.
“걱정 그만하고.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움직여.”
자지를 한 번에 삼켜 보고 싶어 목구멍이 근질거렸다.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직전, 시후는 눈동자만 위로 올린 채 한 번 더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응, 예준아?”
시후는 제 메시지를 예준이 읽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내려다보는 예준의 얼굴에 느낌표가 떴기 때문이었다.
떨리는 시선을 마주한 채로 시후는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건조한 겨울 공기에 살짝 말라 있던 입술이 젖어 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고개를 수그린 시후는 젖은 입을 더 크게 벌렸다. 꿈틀거리는 목구멍 안으로 딱딱한 것이 가득 밀려왔다.
“읍.”
몽둥이만 한 길이와 두께에 바로 뿌리까지 삼키지는 못했다. 시후는 잠깐 동작을 멈추곤 입술만 우물거렸다. 새어 나오는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에 힘이 들어갔다. 제 생식기를 조여 대는 힘에 괴로웠던 걸까, 예준이 “읏” 하고 짤막한 신음을 내었다.
시후는 예준의 허벅지를 잡아 고정한 채로 코로만 숨을 내쉬었다. 머리 꼭대기까지 치받쳐 오른 흥분을 가다듬자 제 입 안의 것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입천장에 달라붙은 성기의 혈관들, 식도까지 들어온 귀두의 단단함. 오랜만에 겪는 자지 맛에 비로소 만족감이 온몸 전체로 퍼져 갔다.
그가 웃음을 삼키며 다시 얼굴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귀두가 목구멍을 꾸욱, 꾸욱 찔러 댔다. 그 끝이 연약한 살점을 뭉근하게 짓누를 때면,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욱” 하고 소리 내곤 했다. 그러자 예준이 손을 밑으로 내려 시후의 목 뒤를 쓰다듬었다.
살결을 훑는 손가락은 다정다감했으나, 흘러나오는 페로몬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시후를 짓누르고, 소유하고, 지배하고픈 욕망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베타이던 때도 이런 마음이었던 것일까? 녀석의 속내를 더 낱낱이 알 수 있다는 사실에 유쾌함이 손끝을 긁었다. 시후는 눈꺼풀을 위로 올려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형…….”
낮게 부르는 예준은 아직도 무언가를 꾹꾹 눌러 참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응시하는 시후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이내 성기를 더 깊숙하게 빨아들이자 놀란 목구멍이 좁아졌다. 일부러 더 자극하는 의도는 간단했다. 참지 마.
입꼬리와 턱이 얼얼해지기 시작했으나 성기를 뱉어 낼 생각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제 얼굴을 단단히 고정한 채로 성기만 쭉쭉, 흡입할 뿐이었다. 시후는 삼백안이 된 눈으로 계속해서 지시했다.
그 순간, 목을 쓰다듬던 예준의 손이 그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별안간 잡혀 버린 흑발이 삽시간에 엉망이 되었다. 돌발 상황에 눈을 부릅뜨던 찰나, 예준이 제 다리 사이로 시후의 머리통을 내리눌렀다.
“읍!”
“윽, 후우…….”
퍼억, 퍽, 퍽!
예준은 의자에 앉은 채로 하반신을 쳐올렸다. 불룩하게 튀어나온 혈관이 점막을 긁어 댔다. 뒤로 빠졌다가 치고 들어오는 살덩이는 혀를 짓누를 때도, 혹은 목젖을 찌를 때도 있었다.
허락을 받아서인지 예준은 지난 구강성교보다 더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후가 괴로워 바르작대는 동안에도 머리통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내리누르며 성기가 깊은 데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둔탁한 마찰음에 점차 젖은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타액이 쿠퍼액과 섞여 기둥을 타고 흘러내렸기 때문이었다. 아까와 달리 이제는 제대로 삼키지도 못한 채 시후는 두 눈을 꽉 감았다. 불쑥 들어온 귀두가 이제는 입 안을 헤집었다.
“하…….”
한쪽 볼이 볼록해진 얼굴을 본 건지 예준이 탄성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귀두의 굴곡진 부분이 볼 안을 문지를 때마다 시후의 꼬리뼈가 저릿해졌다. 그는 거부할 길이 없는 쾌감에 허리를 잘게 들썩이며 혀를 내밀었다.
기둥을 핥자 예준의 허벅지가 꿈틀거렸다. 그것도 잠시, 성기의 각도를 바꿔서는 그대로 목젖 깊숙이 제 것을 쑤셔 넣었다. 시후는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딱딱하게 굳었다. 끈적한 정액이 식도에 달라붙어 삼키기도 힘들었다.
“흡, 읍!”
짤막한 소리를 터뜨리며 시후는 몸에 힘을 주었다. 날렵함을 자랑하던 코 아래로 무언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예준이 머리를 뒤로 빼내며 성기를 뱉게 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던 것도 잠시, 시후는 코트 주머니 안에 있을 손수건을 찾았다. 코에서 무언가 나왔다는 사실에 수치심이 튀어 올랐다.
‘시발, 이건 또 뭐야.’
처음 겪는 경험에 손수건으로 다급히 코 아래를 눌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준이 열에 들뜬 웃음을 그렸다.
“하하.”
시후는 웃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썼다. 그러자 예준은 허리를 수그려 부드럽게 손수건을 가로챘다. 이어 직접 손수건으로 콧날을 닦아 주며 속삭였다.
“너무 깊게 쑤셨나 봐요. 코로 정액이 다 나오고.”
“……뭐가 나와?”
“정액요. 보여 드릴까요.”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유예준은 이 모든 걸 다 봤겠지. 제 성기를 빨던 상대의 코와 입에서 정액이 흘러나오던 걸, 전부 봤겠지.
시후는 손수건을 잡아챈 뒤 아무렇게나 던졌다. 귓전에 맴도는 웃음소리에 현기증이 일었다.
“웃지 마.”
“괜찮아요, 형. 예뻐요.”
“뭐라는, 읍.”
뭐라는 거냐고 핀잔주려는 순간 그대로 입맞춤당했다. 도톰한 입술이 제 피부를 지분거리는 느낌에 시후의 등이 곧게 섰다.
서로의 페로몬이 겨루듯 팽팽해졌다가 섞이는 순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입술 사이로 혀가 밀려 들어왔다. 불처럼 뜨거운 그것은 정액 범벅일 시후의 입 안을 거침없이 휘저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시후는 소리 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예준은 그런 시후의 턱 아래와 목에도 입술을 갖다 대었다.
쪽, 쪽.
낯간지러운 소리에 신음하자 예준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
페로몬들로 덮인 공간 속에서 두 사람은 입술을 떼고 시선을 마주했다. 어느새 시후는 직접 코트를 벗고 있었다. 찬 기운이 남아 있던 옷자락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정액 잘 먹네.”
당황하는 반응을 기대했으나, 의외로 예준은 덤덤하게 받아쳤다.
“형도요.”
“받아치는 것도 잘하고.”
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예준의 턱을 잡아 올렸다. 그런 채로 고개를 수그려 한 행동은, 혈색 좋은 뺨을 깨무는 것이었다. 잘근잘근 무는데도 상대는 아파하는 기색조차 내지 않았다. 오히려 양손으로 그의 허리를 지분거리며 시후의 흥분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만족감에 시후는 나른한 얼굴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해, 잘 배웠어.”
칭찬에 예준은 기쁜 듯 미소를 머금었다. 상기된 뺨에는 옅은 잇자국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만든 자국과 그 아래 보조개를 손톱으로 긁어 보던 시후는 다른 손으로 제 넥타이를 잡았다. 넥타이에 꽂혀 있던 핀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예준아.”
“……네, 형.”
부름이 심상치 않은 걸 느꼈는지, 예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색 옅은 눈동자에 서린 기대감을 감상하며 시후는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피아노 좀 가르쳐 줄래?”
느릿하며 다정하고, 은근하며 의미심장한 음성이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예준이 그를 밀어 쓰러뜨렸다. 넥타이가 거칠게 풀어지는 걸 느끼며 시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기가 깃든 숨소리는 곧 신음으로 바뀌었다.
* * *
불협화음이 공간 전체를 울렸다. 건반을 있는 대로 누르고 있는 시후의 손이 경련하고 있었다. 핏줄이 툭 불거진 손등 위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단정하게 깎은 손톱은 검은 건반을 마구 긁으며 흥분한 티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 순간, 뒤에 있는 사람이 손을 내밀더니 그대로 시후의 손등을 눌렀다.
쾅!
두툼한 성기가 시후의 구멍을 벌리고 끝까지 들어왔다. 시후는 허리를 앞으로 튕기며 아까와 같은 피아노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예준은 파들파들 떨고 있는 손가락을 세우게 만들며 조용히 읊조렸다.
“손들어요.”
“자기가 누를 땐, 언제, 고.”
“손가락 세우고, 동그랗게 만들어요. 구슬을 쥐었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잘했어요” 하는 칭찬이 끝나자마자 예준은 찔러 넣은 성기를 단번에 뽑아내었다. 그러고는 다시 끝까지 쑤셔 넣고는 하반신을 뭉근하게 움직였다. 건반에 손을 댄 채로 엉덩이를 내밀고 있었던 시후는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몸 안에 들어온 타인의 자지 쪽으로 모든 신경이 쏠렸다. 길고 두꺼운 그것은 느릿하게 움직이며 이곳저곳을 찌르고 비벼 대었다. 네가 뒷구멍으로 좆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는 듯. 뇌세포가 몽땅 타 버리는 것 같은 열감에 시후는 다시 손을 밑으로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윽……. 하아.”
거칠게 숨을 뱉는 사이 뒤에 무언가가 닿았다. 예민해진 몸은 그것이 예준의 손가락임을 쉽게 알아차렸다.
손가락들은 목 뒤를 누르고 아래로 차츰차츰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등뼈를 타고 훑는 애무에 엉덩이 골이 이유 없이 저릿했다. 시후는 잇새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제 뒤를 쓰다듬는 행위는 낯설면서도 짜릿했고, 또한 흥분되었다.
느릿하게 내려가던 손가락이 갑자기 구멍 주름을 찔렀다. 시후는 생각 못 한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구멍을 조이며 예준의 좆을 더 세게 씹었다. 허벅지 사이로 무언가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것이 제 몸 안에 고여 있을 젤이나 예준의 체액일 것임을,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쿵, 쿵!
구멍 주름을 지분거리며 예준은 세게 허릿짓을 했다. 손가락과 좆에 의해 벌어진 구멍 사이로 좆이 왔다 갔다 움직일 때마다 찌걱이는 소리가 터졌다. 격렬하게 박힐 때마다 시후는 앞으로 계속 밀려 나갔다. 뒤꿈치를 세운 발이 힘겹다는 듯이 파들거렸다.
“잠깐…….”
“아직 다 못 가르쳤어요.”
안 되겠다 싶어 막아 보려고 했으나 예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으로 허리를 잡더니 더 깊게 쑤셔 넣을 뿐이었다.
시후는 “흡” 하고 경악 어린 소리를 내며 주먹을 쥐었다. 뭉개진 피아노 음이 귓전을 때리는가 싶더니 기다란 것이 극점을 찔렀다. 뱃속의 장기가 압박당하는 느낌에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구멍의 속살은 흥분에 차올라선 쉴 새 없이 좆을 빨아 대었다. 달라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쯔으읍’ 하고 소리를 내었다. 재밌는지 예준이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깊게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하며 같은 소리가 나오도록 만들었다.
“하!”
시후는 주먹으로 건반을 세게 때렸다. 일그러져 있던 입매는 놀랍게도, 미소 비슷한 것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제 내벽을 밀어 올릴 기세로 들어왔다가 빠지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시발, 하, 왜 좋고 난리야.”
“좋아요?”
“좋으니까 놔, 후우, 두지.”
그는 여전히 주먹을 움켜쥔 채로 고개만 돌려 예준을 올려다보았다. 푸르스름했던 흰자가 쾌락으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시후는 빈정거리듯 말했다.
“싫었으면, 네가 내 뒤 따게 뒀을까?”
멍하니 응시하던 예준은 곧 입꼬리를 올렸다. 보조개가 생기는가 싶더니 몸을 바짝 붙였다. 그의 음모가 시후의 엉덩이를 마구 비벼 대었다.
“다행이네요, 형이 날 봐주고 있어서.”
“윽, 천천히……!”
“그럼 믿고 더 개겨 볼게요.”
숨을 몰아쉰 시후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예준이 발정 난 개처럼 마구 허릿짓을 해 대었기 때문이었다. 발딱 솟은 성기가 그의 안을 퍽퍽, 찧어 댔다.
격렬한 섹스에 시후의 무릎이 꺾이기 시작했다. 체력에는 자신 있었으나 유예준한테만큼은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우성 알파의 힘과 절륜함에 시후는 주저앉게 되었다.
“아!”
성기가 뒤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소름 끼칠 정도로 좋았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피아노를 움켜잡았다. 벌름거리는 제 아랫구멍이 뭔가를 흘리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꼈다. 이번에도 꼭 오메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 부근까지 벌겋게 변한 시후가 엉망이 된 호흡을 내뱉을 때였다. 어느새 예준이 그의 뒤에 무릎을 댄 채 앉아서는, 그대로 엉덩이를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구멍이 벌어지면서 좆이 다시 끝까지 밀려 들어왔다.
손톱은 피아노를 긁고 그 아래 의자로 떨어졌다. 시후가 의자 끄트머리를 쥐자마자 예준은 거칠게 숨을 뱉으며 허리를 쳐올렸다. 핏줄이 우둘투둘 돋아 있는 기둥이 내벽을 날카롭게 긁었다. 고통에 가까운 쾌락에 속살은 그 길고 두꺼운 것을 맛있다는 듯 물어 대었다.
“아, 천천히, 하라고, 했!”
“하아, 형.”
“으윽, 끄, 흑.”
“깊게 쑤시는 거, 후, 좋아요?”
“?”
“더 조이는데.”
예준은 쉰 목소리로 읊조리곤 시후의 엉덩이를 더 세게 그러쥐었다. 흰 둔부에 손바닥 자국이 날 정도로 주무르던 것도 잠시, 좁은 내벽을 파헤치며 끝까지 박아 넣었다.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아래로 눈동자를 내렸다.
저번에도 그러했듯, 아랫배가 보란 듯이 튀어 올라 있었다. 볼록해진 배 아래에는 제 성기가 쿠퍼액을 질금질금 흘리고 있었다.
흥분한 티가 역력한 제 것을 감상하던 것도 잠깐, 시후의 몸이 거세게 흔들렸다. 뱃속을 꽉 채우고 들어온 것이 빠르게 움직이며 몸 안 여기저기를 짓눌러 댔기 때문이었다.
퍽, 퍼억! 퍼억!
둔탁한 마찰음이 귓바퀴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시후는 상기된 귀를 한 채로 제 허리를 직접 움직였다. 좆이 안으로 들어왔을 때를 맞춰 내벽을 꽉 조여 보았다.
예준이 낮게 신음을 흘리더니 기둥뿌리까지 단번에 박아넣었다. 바닥에 대고 있던 시후의 무릎이 더 크게 바들바들 떨렸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느낄 수가 있었다니. 목구멍에서 제대로 된 신음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시후는 커다란 귀두가 제 극점을 힘 있게 눌러 대는 걸 느끼며 의자에 이마를 대었다. 좌우로 비벼 댈 때마다 머리가 마구 헝클어져 풀씨처럼 일어났다.
“윽!”
그런 시후의 귓불이 별안간 빨렸다. 예준은 몸을 바짝 붙인 채로 귀를 입술로 애무했다. 그는 혀로 잘 익은 그곳을 핥으면서 손으로는 시후의 엉덩이를 쥐어 벌렸다. 좆을 물고 있던 구멍 역시 팽팽하게 당겨져서는 물기 어린 소리를 내었다. 난잡한 소리에 시후는 더 들뜨는 자신을 느끼며 웃음을 흘렸다.
주르륵.
액체가 허벅지를 타고 내려갔다. 간지러운 감촉에 그가 다리를 오므리려는 순간, 예준이 목덜미에 입술을 대며 허릿짓을 했다. 굵은 좆이 안을 치고 빠져나갈 때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시후는 이제 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뜨거운 숨소리를 내었다.
“허억, 아, 읏, 유예, 준……. 큿!”
예준이 “네” 하고 답하며 두 손을 위로 올렸다. 둔부를 잡았던 손들은 그대로 시후의 양팔을 잡아챘다. 삽시간에 양팔이 뒤로 젖혀진 자세가 된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높게 치켜들었다. 살짝 딱딱해져 있던 유두가 의자에 쓸려 묘한 느낌을 주었다.
“읏.”
시후는 예민한 살덩이가 쓸리는 감촉에 인상을 썼다. 그러나 제 가슴에 길게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뱃속을 드나드는 좆의 속도가 점차 빨라진 탓이었다. 그는 단단하고 커다란 손에 팔들이 결박된 채로 엉덩이만 잘게 들썩였다.
“이제, 그만…….”
“갈 것 같아요?”
“윽!”
“형, 갈 것 같냐고요.”
부드러운 속삭임이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시후는 힘겹게 고개만 돌려 미간을 찡그렸다. 그걸 굳이 대답해야 아냐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 예준이 그의 양팔을 한 번에 풀어 주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시후는 균형을 잃고 말았다.
얼떨결에 의자를 꼭 껴안았을 때였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틈도 없이 등 뒤로 묵직한 체중이 다가왔다. 부릅뜬 시후의 눈동자에 느낌표가 떴다.
“헉!”
예준은 제 거대한 체구로 시후를 눌러 대었다. 그럴 때마다 앞에 있던 의자에 가슴이 자극당한 시후는 입을 크게 벌렸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터져 의자를 더럽혔다.
이런 와중에도 큰 좆은 뒤로 빠졌다가 안을 젖히며 끝까지 밀려 들어왔다. 핏줄이 사납게 돋은 기둥이 부풀어 있던 전립선을 정통으로 긁어 버렸을 때였다.
“윽, 아, 흑……!”
짤막한 소리와 함께 시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두꺼운 기둥에 의해 전립선이 뭉개지고, 결장조차 귀두가 틀어박힌 순간 더는 절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시후는 의자에 매달린 채로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발딱 솟은 그의 성기에서 좆물이 질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아래를 조이자 예준이 그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그러더니 좌우로 비트는 시후의 허리를 꽉 안으며 고개를 숙였다. 갈색 머리카락이 달아오른 살결을 간질일 때였다. ‘퍽’ 하고 처박힌 그의 좆에서도 뜨거운 무언가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 씨……. 윽!”
시후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알파의 좆은 자신이 네 뱃속에 있다는 것을 알리듯이 뜨거운 정액을 뿜어냈다. 좆물이 내벽에 달라붙는 게 느껴질 때마다 심장이 더 빠른 속도로 뛰었다. 이러다 가슴을 뚫고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쿵, 쿵.
“하아, 하…….”
크게 숨을 몰아쉬는 사이 턱이 잡혔다. 시후는 멋대로 제 턱을 잡아 돌린 이를 바라보았다. 매사 날카롭고 이지적으로 빛나던 눈이 나른하게 풀려 있었다. 그는 사정의 여운으로 노곤해진 얼굴을 한 채로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그렇게 웃으면 안 돼요.”
“왜. 꼴려서?”
“아하하.”
예준의 얼굴에 박혀 있는 눈물점과 보조개를 번갈아 본 뒤 시후는 입술을 살짝 벌렸다.
무언의 지시에 예준은 기꺼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두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채로 질척한 키스를 나누었다. 고요하던 공간은 곧 타액 섞이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 * *
샤워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간 시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예준이 거실에서 부지런하게 왔다 갔다 움직이고 있었다. 시후는 그가 입고 있는 가운이 팔락거리는 걸 지켜보며 입술 사이를 떼었다.
“뭐 해?”
황당해하는 티를 숨기지 않는 목소리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예준의 안색이 햇살처럼 밝아졌다.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좋아 죽겠다는 모습이었다.
시후는 수건을 어깨에 둔 채로 주위를 훑었다. 널브러져 있던 옷가지는 보기 좋게 개켜져 있었으며, 재떨이를 가득 채웠던 담배꽁초나 재 같은 것 역시 사라지고 없었다. 샤워하는 동안 벌어진 상황에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건 사람 시키면 그만이야.”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정리만 간단하게 했어요.”
“어제도 말했지. 청소하라고 끌고 온 거 아니라고.”
남의 집 귀한 아들한테 청소나 시켜 버린 꼴이 되었다. 혀를 차던 시후의 눈 부근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불현듯 예준의 큰형, 유연우가 떠오른 것이다.
그 예뻐 죽는다는 막냇동생이 이쪽과 관련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관자놀이가 쑤셔 왔다. 유연우와 백도영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아직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할 때, 예준은 소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또 남의 집을 청소하려는 모습에 시후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지 말라니…….”
손목을 잡아 막으려고 하는 순간, 예준은 기다렸다는 듯 시후의 손을 움켜쥐었다. 손깍지에 멈칫하는 사이 예준은 그를 소파 위에 앉혔다. 느닷없는 상황에 눈을 깜빡이자 그의 머리 위로 웃음소리가 울렸다.
“저번에 사 둔 연고 어딨어요?”
“……연고는 왜.”
예준은 대답하는 대신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였다. 창문 안으로 밀려 들어온 햇살에 그 눈이 더 말갛게 반짝거렸다.
시후는 여름의 태양처럼 생기가 뿜어 나는 얼굴에 홀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가슴속에서부터 요동치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묘한 기분에 휩싸인 사이, 예준은 마침내 진열대에 둔 약들을 발견했다.
그중 튜브형 연고를 가져와서는 시후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뚜껑을 여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시후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준이 녀석이 무릎까지 꿇고 있는 바람에 꼭 프러포즈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고가 아닌 반지라도 내밀 것 같은 상황에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불쾌하다기보다는 당황해하는 반응이었다.
“무릎 좀 만질게요.”
아까 보니 살짝 쓸려 있었다던 속삭임이 부드러웠다. 무릎에 약을 발라 주는 손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이 들어가 있던 시후의 눈썹이 원래의 모양새를 되찾았다.
“알고 있었지?”
“뭐가요?”
예준의 음성은 여전히 다정했다.
“상원 그룹 둘째 아드님이신 거요?”
“현석이가 알려 줬나?”
“아뇨, 사실 뉴스에서 봤었어요. 현석이 형이 말 안 해도 금방 알 수 있었죠.”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너희 형과 내 동생이 사귀는 건? 그것도 알고 있었고?”
“그건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저 군대 다닐 때 들켰거든요, 둘이 연애하는 거.”
“아는데도 날 계속 만났다고?”
“형들은 형들이고, 우리는 우리니까.”
시선을 마주하는 갈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안 그래요?”
왜 진작 말 안 했냐고 물으려다 관두었다. 제 정보를 알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건 시후 자신이었다. 그런 그를 생각해서 내색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배려한 건지, 아니면 괜한 분노를 사기 싫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털웃음을 흘린 그는 예준의 턱을 잡아 올렸다. 순순히 잡혀 준 예준은 눈꼬리를 초승달처럼 휘었다.
“유예준, 맹랑하네. 감쪽같이 숨겼어.”
예준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는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며 말간 눈빛을 보냈다. 색이 옅은 눈동자에 서린 감정은 자신감이었다. 그 눈을 마주하는 순간 시후는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유예준은 이제 알고 있다. 백시후가 자신을 버릴 리가 없다는 사실을.
“형.”
무릎을 쓸던 손가락이 아래로 떨어졌다. 사뭇 진지한 음성이 심상치 않았다. 무심결에 떠오른 건 과거에 있었던 그의 고백이었다. 열에 취해 좋아한다고 연신 읊조리던 속삭임이 귓전에 울려 퍼졌다.
시후는 그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마자 예준은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레 손등을 감싸 쥐어선 손바닥에 제 얼굴을 갖다 대었다. 잡힌 곳에서부터 짜릿한 감각이 내려와 팔꿈치를 간질였다.
“저…….”
예준은 바로 말을 잇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호선을 긋고 있는 입매를 보아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마주하며 시후는 눈 부근을 살짝 찌푸렸다. 그가 두 번째 고백을 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럼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내려 보느라 속눈썹에 반쯤 가려져 있던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회사에서는 어떤 일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던 머리가, 지금은 도통 굴러가질 않았다. 머릿속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져 있을 때, 별안간 예준이 무릎을 세웠다.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크게 부릅뜬 눈동자는 제 뺨에 입 맞춘 이를 보았다. 예준은 고요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을 본 순간, 시후의 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먼저 얼굴을 뗀 사람은 예준이었다. 지난밤의 섹스에 비하면 귀엽기 그지없는 입맞춤을 마친 뒤 미소 지었다. 청량한 웃음은 풋사과처럼 싱그러웠다.
“피아노 쳐도 돼요? 들려주고 싶어요.”
예준의 입술 사이에서 나온 건 고백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시후는 딱딱하게 경직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살가운 목소리가 귓불을 톡톡, 건드렸다.
“형한테.”
깃털같이 가벼운 덧붙임을 듣고서야 시후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건네는 말투는 꽤 무뚝뚝했다.
“마음대로.”
건조하지만 전에 없는 빛깔이 서려 있는 읊조림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서린 색채를 인식한 건지, 예준은 보조개까지 보이며 좋아했다.
시후는 못 본 척 몸을 돌리곤 식탁으로 걸어갔다. 느닷없이 일어난 갈증을 축이기 위해서.
냉장고를 열어 물통을 꺼내는 동안에도 묘한 기분이 사라지질 않았다. 오히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감정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만 했다.
시후는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이것이 성욕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다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으나, 제 생각이 옳다고 고집스럽게 버텼다.
그러다 시후는 물병만 쥔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일직선이었던 입꼬리가 아래로 무너졌다.
‘미쳤군.’
스치듯 가벼운 입맞춤일 뿐이었다. 그보다 진득하고 더한 짓을 수도 없이 하지 않았나. 꼭 처음 뽀뽀받은 소년처럼 굳어 버렸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었다.
“하” 하고 낮게 헛웃음을 뱉었을 때였다. 막 인상을 찡그리던 찰나, 피아노 소리가 귓등에 내려앉았다. 미간 사이에 들어간 힘이 사라질 정도로, 보드라운 음이었다. 시후는 물을 마시려 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몸을 돌렸다.
시야에 들어온 건 예준의 뒷모습이었다. 그는 시후와 같은 흰 가운을 입은 채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물 흘러내리듯 부드럽고 유연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도 잠시, 예준은 손가락을 떼었다. 2초 정도의 침묵 속에서 그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까딱였다. 시후는 갈색 머리카락이 잘게 흔들리는 순간을 눈에 담아냈다.
잠깐 멈추었던 연주가 재개되었다. 느릿하던 시작과 달리 이번에는 경쾌하며 밝은 재즈 음이었다. 가만히 듣던 시후는 친숙한 곡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사랑의 인사>
재즈로 변주되었음에도 기존의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실려 있었다. 자유롭게 연주하던 예준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예상 못 한 상황에 시후는 그만 그와 시선을 주고받게 되었다.
여전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채로, 예준은 소리 없이 웃었다. 보조개가 보기 좋게 생겨났다. 말간 낯빛은 잠깐 진정되었던 시후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켰다.
예준은 다시 피아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연주에 집중하는 동안 시후는 물병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등 위 핏줄들이 퍼렇게 도드라진 줄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