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출국을 2주일 앞두고 유학을 포기한 것은 정말 미친 짓이었다. 교수가 너는 뭐 하는 놈이냐며 고함치는 것을 참아내야 했고 해외에 직접 연락을 돌려 집안 핑계를 대며 모든 계획을 취소해야 했다.
생전 말 한마디 안 섞어 보던 과 후배마저 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물을 정도였으니 내 인생에 다시없을 충동적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내가 유학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게 분명함에도 이소망만은 내게 일언반구 없었다. 잘 결정했다는 연락조차 오지 않아서 그냥 그가 나를 차단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다웠고, 우리다운 마지막이었다.
이소망이 했던 말들이 오래도록 나를 맴돌았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해서 아무리 끊어내고 정리하려고 해도 바닥에 붙은 지 오래된 껌처럼 속삭임들이 죽죽 늘어났다.
사실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사실 여하를 막론하고 평생을 내가 똑똑하다고 인지한 상태로 살아왔다. 어설프게 잘난 사람의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게다가 그걸 인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한글보다 숫자를 빨리 배웠고, 나에 대해 탐구하기보단 자소서에 구겨 넣을 수상 경력을 채우기 바빴다. 이소망의 말대로 나는 그렇게 하찮은 인간이라서 뭔가 비틀린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세게 뒤틀렸는지 알 수도 없었다.
덧없는 공허함 속에서 나는 선배가 너무 보고 싶었다. 선배를 생각하기만 하면 질식할 듯이 숨이 막혔다.
그동안 계속 빠졌던 수업들을 이제라도 다시 출석하며 만회하려고 애를 썼다. 몇몇 수업은 그게 가능했으나 몇몇은 이미 결석으로 인한 F를 면할 수 없었다.
이별도 그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것이란 걸 배워 가고 있었다.
희윤은 내게 선배를 만날 수 있는 곳을 알려 주었지만 나는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 찾아갈 수가 없었다.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인생에 망설임이라든가 고뇌의 순간이 많이 없었던 터라 이 시간이 대단한 시련처럼 느껴졌다.
시련을 견디기 위해 나는 책을 읽었다.
스스로도 헛웃음이 나올 만큼 어처구니없는 파훼법이었다. 읽을 거면 ‘프랑스 문학사’ 수업을 들을 때 읽었어야 했을 <연인>을 이제야 펼쳐 보게 되었다는 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은 다시 봐도 하품이 나올 만큼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덕분에 뒤죽박죽이던 취침 시간만은 조금 안정화될 수 있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외국어를 배우는 애처럼 소설을 읽어 나갈 때마다 내가 얼마나 이 책을 오독했었는지에 대하여 깨달았다. 교수님이 F를 안 준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그때 당시 했던 발표를 선배가 모두 들었다는 생각을 하면 딱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난한 백인 소녀는 식민지에서 동양인 남자를 만나 끌림을 느낀다. 하지만 소녀는 남자와 몸을 섞으면서도 그로부터 거리를 둔다. 둘 사이에는 지켜야 할 선이 너무도 많다. 인종, 가풍, 나이, 국경……. 그들은 그 모든 것을 허물치 못하고 이끌리듯이 만나면서도 두려움에 젖어 있다.
소녀는 남자에게 말한다. 나를 사랑하지 말라고. 사랑한다고 해도 다른 여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나를 대해 달라고. 그것은 도피이자 두려움이었다. 남자는 결국 아버지로부터 소녀와의 관계를 허락받지 못하고 소녀 또한 집안에서의 극심한 반대로 인한 모멸에 시달린다. 소녀는 그렇게 사이공을 떠나며 남자와 이별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세월을 태연히 버텨낸다. 전쟁을 거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그리고 남자는 몇 해가 가고서야 소녀에게 전화를 한다. 여전히 두려움에 잠긴 채로 그는 말한다. 영원히 소녀만을 사랑할 것이라고. 그렇게 책은 끝난다.
나는 혜주 누나가 누구의 시점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떠올렸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에게 가난하지만 고귀한 소녀였을까. 두려움뿐인 동양인 남자였을까.
일주일에 걸쳐 책의 마지막을 본 날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남자의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그 말은 꼭 이별의 말 같았고 늦게 자각된 사랑의 말로인 것만 같아서.
목표를 잃고 나는 거리를 배회했다. 유학도 가지 않았고 그렇다 해서 학교생활을 정상화시킨 것도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던 세계는 자꾸만 어그러지고 나는 무언가를 깨달을수록 미완성이 되어갔다.
“서한.”
그러다 학교 정문 앞에서 민재 형과 마주쳤다. 민재 형이 눈을 의심하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으나 확신에 젖은 목소리가 발길을 붙들었다.
“뭐야? 너 대체 왜 여기 있냐.”
“뭐가요.”
“왜 한국에 있냐고.”
나는 피로에 젖은 눈을 손가락으로 거칠게 문질렀다. 짜증스러운 움직임에도 민재 형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됐어요.”
“미친놈이네, 이거 완전.”
민재 형의 그런 말버릇에는 익숙해져 있었고 그런 거에 서운할 만한 섬세한 성격도 되지 못했다.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한 번 털자 그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왜 이렇게 막 나가냐, 한아.”
“…….”
“뭐가 문젠지 모르겠지만 요새 너, 겉에서 봐도 엉망진창이야. 자기 몫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무슨 생각으로 대체…….”
“…….”
“이런 애 아니었잖아.”
나는 얼굴을 손으로 마구 문지르며 피식 웃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 주고 싶은데 꾸며낸 답이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민재 형은 나를 타이르듯이 목소리 톤을 조금 낮추었다.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 망쳐 버리지 말고, 망가진 부분이 있어도 그냥 다시 잘 살면 돼.”
“…….”
“망친 것도 차례대로 고치면서 꾸준히, 꿋꿋하게.”
어떻게. 다른 사람이라도 만나서?
그게 안 되니까 이따위로 살지.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한숨으로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혜주 누나는 잘만 지내던데, 너는 대체 왜 뒤늦게 이러냐.”
“……혜주 누나랑 만났어요?”
“지금도 같이 술 먹다 나오는 길인데.”
“…….”
“과 후배가 혜주 누나한테 관심 있다고 소개시켜 달라고 난리를 쳐서.”
민재 형은 그렇게 말해 놓고 내 눈치를 봤다. 나는 비척대며 물었다.
“어디 있는데요, 지금.”
“……브릿지에. 근데 왜.”
“가 보려고요.”
누나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연인>을 읽으며 생겼다.
민재 형이 기겁하는 얼굴로 나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의 말대로 나는 요새 폭탄처럼 살았고 그가 나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몇 번 팔을 낚아채던 민재 형은 나의 단호한 얼굴을 보고 마지못해 나를 놓아주었다.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빠르게 걸었다. 오랜만에 예전의 나처럼 행동하는 것 같았다. 겁도 없이. 제멋대로.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멀리서 ‘브릿지’의 간판을 보는 순간 유달리 울적해졌다. 빨간 앞치마를 하고 나를 향해 웃어 주었던 선배의 얼굴, 그 예쁘고 다부진 손끝과 스치듯이 나를 홀렸던 그의 향기, 지나쳤던 모든 것들이 세월을 역류해 내게로 달려왔다.
모르는 남자와 함께 ‘브릿지’의 문을 열고 나오는 혜주 누나가 보였다. 남자가 자연스럽게 누나의 입에 담배를 물려 주었다. 둘은 장난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불을 붙이기 직전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을 찡그리며 웃음 짓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차분해졌다.
“한아.”
저 여자가 저렇게 웃는 걸 본 적이 있었나. 있었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이 슬퍼졌다. 나는 내게 주어진 숱한 기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자발적 경주마처럼.
누나는 의외라는 듯 나를 보았다. 자신을 스쳐 지나가지 않고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나를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잠깐 들어가 있어.”
“누구예요?”
“전 남친.”
누나가 입술에서 담배를 잡아 빼며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한참을 머뭇대다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누나의 반팔 원피스가 계절의 흐름을 가늠케 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인지하지 못했던 모습들로 무장한 그는 내게 여상히 물어 왔다.
“아직 난 졸업까지 마음의 준비가 덜 됐는데, 무슨 일이야?”
누나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농담했다. 나는 이상하게 그 눈을 마주 볼 자신이 없어서 눈을 치맛단 아래로 내리깔았다.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트위드 원피스의 끝단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궁금한 게 생겨서.”
“응. 물어봐.”
“대단한 건 아냐.”
“그러니까 나도 궁금해지네.”
“나는 그냥.”
피로해서인지 입 안이 말라붙는 것 같았다.
“잘 이해가 안 돼서. 누나가 날 왜 만났는지.”
“…….”
“누나처럼 다 가진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나랑.”
“왜 너랑 연애를 했냐고?”
빤히 나를 들여다보던 그가 피식 웃었다.
“되게 기분 이상하다.”
자신의 팔을 쓸어내리는 손가락이 그 누구보다 단단해 보였다.
“나하고 만날 때 좋았냐고, 그렇게 묻는 나를 보는 네 기분이 이랬을까?”
그 말에 내가 한 질문이 꼭 수많은 구 여친들의 ‘나를 사랑하긴 했냐.’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함의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하는 건 네 말마따나 우리 스타일이 아니고, 그럼 정말로 모르겠어서 묻는 거야?”
“응, 모르겠어.”
누나는 숨을 길게 내뱉으며 웃었다.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한아.”
그 다정한 호칭은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너는 알고 있어. 네가 무책임하거나 착해서, 아니면 서툴러서 모르는 척해 왔을 뿐이야.”
누나는 나를 그렇게 함부로 정의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네가 모른다니 얘기해 줄게.”
나는 송곳을 와르르 삼킨 것 같은 기분으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가 유난히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같은 깍쟁이가 왜 굳이 굳이 연애를 했겠니?”
“…….”
“내게 부족한 게 어디 있다고. 응?”
목구멍이 따끔거리며 아팠다. 누나의 짙은 향수 냄새에 질식할 것 같았다. 나는 농축된 흰 장미 향기에 파묻힌 사람처럼 울렁증을 느꼈다.
“내가 왜, 연애를 했겠어, 너랑.”
방점을 찍듯이 단호하고 간결한 어조.
그 순간 나는 펑,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눈앞이 새하얘졌다. 누나는 멍한 나를 두고 다시 술집 안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마침내 손에 쥔 깨달음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배에서 쇼팽의 왈츠를 듣고 울음을 터트린 ‘소녀’처럼.
내 구 여친들의 모든 이해할 수 없던 행동들은 결국 내가 좋아서, 나를 사랑해서,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진심이 되어 버려서 그런 것이란 걸.
지금의 나처럼.
사랑은 모든 나의 일상 속에 관계의 형태로 숨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했다. 내게 커피를 퍼붓거나 악담을 하거나 답지 않은 구차함을 보이거나.
혹은 누군가처럼 나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한없이 이기적이고 무지해서 그들의 어떠한 부름에도 화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