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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24/25)

외전 2.

선배는 ‘얼리버드’였다. 원래 아침잠이 많이 없는 편인지 스무 살 이후 그의 인생이 흘러가는 방향이 그것을 조장했는지는 몰라도 그가 나보다 늦게 일어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눈을 떴을 때 곁에 누워 있는 그의 등을 보는 순간 낯선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느긋하게 그의 자는 얼굴을 감상하려던 계획은 찡그려진 그의 미간을 보는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선배?”

선배는 가쁜 숨을 내뱉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손끝까지 떨림이 전해졌다.

“선배. 선배. 일어나 봐요.”

훅훅 끊어질 듯한 숨을 내뱉던 그가 번쩍 눈을 떴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그가 내 손목을 잡아당겨 나를 확 끌어안았다. 불편한 자세에 신음이 흘렀다.

“선배, 괜찮아요?”

“…….”

“가위눌렸어요?”

“……악몽을 꿨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를 잘 건네는 성격이 아닌지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고 몸을 굳혔다. 선배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선배 아버지의 수술이 세 달 앞으로 다가왔다. 선배는 아주 가끔씩 본가에 들렀다 왔다. 표정 변화 없이 무던히 행동하길래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고마워, 깨워 줘서.”

푹 잠긴 목소리가 귓가를 바람처럼 쓸고 지나갔다. 나는 소름이 돋은 그의 팔을 문질러 주었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그를 안심시켜 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거짓된 희망 고문이 아닐까 싶었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했을 때 그런 위로가 독이 될지도 모른다.

“자꾸 경우의 수나 확률 같은 걸 생각하지 말고, 그냥…….”

“…….”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가 약간 웃었다.

“머리에 과부하 온 거 티 난다, 한아.”

“…….”

“괜찮아. 네 마음 알겠으니까.”

그가 나를 엮고 있던 팔을 풀어 주었다. 몸을 일으키며 약하게 기침했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그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이런 게 담배를 피우고 싶은 감정인가.”

그가 후드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썼다. 내게도 각이 잡히게 접힌 티셔츠를 하나 던져 준 그가 고개를 까딱했다. 나는 탁자 위에서 라이터를 챙겼다.

담벼락에 기대선 그는 햇빛을 받아서인지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가 불붙인 담배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어 그의 입술이 닿았던 부분을 치아로 깨물었다. 씁쓸한 맛이 입 안을 감쌌다.

그는 내가 담배를 무는 것을 보고 두 번째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반듯한 얼굴로 아주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웠다. 누가 보면 내가 흡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을 정도로. 나는 쭈그려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그가 생각을 정리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담배 언제부터 피웠니?”

“군대 때부터요.”

“왜 피워, 이런 걸?”

“…….”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런 걸 생각한 적 없다. 생각해 보려고 한 적도.

“그냥요. 선배는요?”

“너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담배 피우니까 저를 더 이해하게 됐어요?”

선배가 입에 담배를 문 채로 가까이 다가왔다.

“아니. 나는 담배 피울 때마다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그래요?”

“한이는 아무 생각 없이 피울 것 같은데.”

“보통 그렇죠.”

“그래서 부럽고 신기하고 그렇네.”

나는 딱딱한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담배를 꽁초 통에 던져 넣고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에게서 훅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럼 피우지 마요.”

“…….”

“선배가 생각 많이 하는 거 싫어요.”

선배가 담배를 들지 않은 손으로 내 머리를 헤집으며 키득거렸다.

“간단명료하고 단순한 내 애인.”

“…….”

“네가 내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너무 복잡했을 것 같아.”

“……생각 좀 그만하라니까요.”

선배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펑 터져서 죽으면 어떡하지. 내가 하는 걱정이라곤 고작 그런 것 정도였다.

“선배.”

“응.”

“이제 담배 끊어요.”

“…….”

“나랑 헤어지고 피운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끊으라구요. 저도 노력해 볼게요.”

“그래. 언제부터 끊을까.”

“오늘부터요.”

“너무 이른 거 아니니?”

“마음먹자마자 차 갖다 팔았던 선배는 다른 사람이에요?”

“봐.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거 맞다니까.”

나는 그의 손에서 담뱃갑을 빼앗아 들었다. 그는 순순히 내게 약탈당해 주며 대신 내 머리카락을 아프지 않게 쥐었다.

“한아.”

“네.”

“근데 너는 왜 나를 선배라고 불러?”

“……좀 오글거려요?”

“아니. 간질거려.”

“…….”

“그게 또 좋고. 처음에는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건 반사처럼 그 말만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 과 후배들이 부르는 건 그렇게 안 느껴졌는데.”

“다른 호칭으로 부르면 너무 빨리 가까워져 버릴까 봐 그랬어요.”

“빨리 가까워지면 안 돼?”

“그럼 친구가 돼 버리니까.”

“그런가?”

“선배와 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고 그걸 억지로 좁히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그렇지. 우리 너무 다르긴 하지.”

“그래도 이젠 완전히…… 뭐랄까.”

“응.”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

“사랑해요, 선배.”

“…….”

“사랑하고 있고, 계속될 거예요.”

“…….”

“<연인>의 그 남자처럼,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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