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그만 모르는 소개팅 (19/22)

#3. 그만 모르는 소개팅

어두운 우드 톤의 호프집이었다. 원래라면 적당히 시끌벅적한 소리로 가득 차고, 여기저기에서 주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화덕에 구운 피자와 짭짤하고 느끼한 소시지가 안주로 팔리는 그런 대중적인 호프집.

하지만 가장 인기 있을 금요일 8시임에도 불구하고 이 호프집에는 단 두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운데에 있는 동그란 테이블, 그 왼쪽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크리스 밀러였다. 크리스가 커다란 맥주잔을 노려보다 이내 결심한 듯 잔을 들었다. 그리고 벌컥벌컥 잔을 비웠다. 단번에 잔을 비운 크리스가 결연하게 말했다.

“조슈아는, 세상에 더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탕. 말이 끝남과 동시에 크리스가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정말이지 안타까워 미치겠다는 듯 크리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파란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글썽 차올랐다. 참지 못하겠다는 듯 크리스가 줄줄 말을 늘어놓았다.

“연애 경험도 없다는데. 진짜 조슈아랑 같이 대학 다니던 사람들 다 눈이 삔 거 아닐까요? 그렇게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어디 있다고. 조슈아가 대학 다닐 때만 더 사람 많이 만나 봤으면, 아니 졸업하고 미팅이라도 몇 번 해 봤으면, 그도 아니면 제가 진작 소개라도 시켜 줬어야 했는데. 아, 크리스 밀러. 이제까지 뭐 한 거야.”

크리스가 괴로워하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원형 테이블에 엎드렸다. 힘든 와중에도 안주는 보이는지 포크로 잘 구워진 소시지를 하나 콕 찍어서 제 입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펍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 빌 스웰딘이 식은 눈빛으로 앞에 있는 맥주를 바라보았다. 모 브랜드의 판촉 상품인 듯 500ml가 넘는 잔에는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맥주 거품이 높게 올라왔다. 탄산이 뽀글뽀글 올라오고 차가운 기운이 잔을 타고 물씬 풍겨 왔지만 빌은 손 댈 생각 하나 없는 눈으로 잠시 맥주와 안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다시 크리스 밀러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치지. 그런데 왜 나를 불러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난 분명 조슈아 문제로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온 건데?

빌이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매분 매초가 금덩이만큼이나 비싼 시간이었다. 조슈아 문제라고 해서 이런 펍까지 왕림했건만, 기껏 한다는 말이 헛소리라니. 아무래도 요즘 인생이 심심한 모양이라며 빌이 중얼거렸다.

얼음물을 끼얹듯 형형하게 날이 선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크리스의 목줄을 조일 것처럼 선뜩했다.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빌의 입술이 비뚜름한 호선을 그렸을 때, 크리스는 어느새 몸을 바로 세우고 무릎 위에 주먹을 올린 상태였다. 눈치를 보듯 크리스가 빌을 쳐다보았다. 빌이 짜증 섞인 눈으로 크리스를 바라보자 크리스는 마치 자라가 된 것처럼 목을 움츠리며 겨우 대답했다.

“진짜 조슈아 문제 때문이에요. 그게… 제가 아는 한 미스터 그렌트한테 대적할 만한 분은 미스터 스웰딘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조슈아한테 소개팅이라도 주선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미스터 그렌트가 정말 무섭거든요.”

겁을 먹은 듯 느릿한 크리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빌의 진회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크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빌을 바라보았다. 계속해 보라는 듯 빌이 가볍게 손짓을 했다.

힐끔 빌의 눈치를 보던 크리스가 감탄을 삼켰다. 볼 때마다 긴장해서 제대로 볼 새가 없었는데, 사석에서 보니 분위기가 완전 달랐다. 전미가 사랑하는 얼음 왕자님의 명성은 절대로 빈말이 아니었다. 금색과 흰색, 빨간색과 검은색이 현란하게 섞인 베르사체 셔츠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기분 좋은 듯 붉은 입술이 올라간 얼굴은 현역 배우와 모델들을 상대로도 방탕하고 섹시한 이미지 순위에서 1위를 거머쥔 이유를 200%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크리스는 빌의 얼굴에 넋을 놓는 대신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미스터 그렌트가 조슈아의 연애를 달가워하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그 개자식과 관련된 엿 같은 옛날 관계라면 나도 알아.”

“아셨어요?”

빌이 짓이기듯 내뱉은 말에 크리스가 놀란 표정으로 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심코 덧붙였다.

“그런데 그걸 두고 보셨어요?”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저는 지금 죽었을지도 모른다. 사나운 눈매 속 진회색 눈동자가 진심으로 자신을 죽일까 고민하는 것 같아서 크리스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빌의 눈초리가 정수리를 찔렀지만 지금 눈을 마주치는 건 정말 위험했다.

1초가 한 시간 같이 흐르던 때였다. 목 넘김 소리가 들려서 힐끗 본 빌 스웰딘이 단번에 맥주를 들이켰다. 쾅- 잔이 깨질 듯이 내려놓는 기세에 크리스는 빌에게서 아주 조금 물러났다.

혹시, 미스터 그렌트 파워가 더 센 건가. 잠시나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말끔히 지워졌다. 이 정도면 빌 스웰딘이 더 셀 수도 있겠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아군의 기량을 확인한 셈이 되었다. 물론 든든한 것과 별개로 무서운 건 똑같았지만. 빌이 으르렁거리듯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러게나 말이다.”

“아, 아무튼. 제 계획은 조슈아 소개팅 성사인데 혹시나 미스터 그렌트가 알면 다 파투날 것 같아서. 미스터 스웰딘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어떨까 해요. 미스터 스웰딘은 ‘잘나셨으니까’ 이런 도움이야 정말 별거 아니시잖아요. 하하. 조슈아와 4년이나 함께한 각별한 사이시기도 하고.”

‘각별’한 사이. 빌은 가만히 입 속으로 크리스의 말을 따라해 봤다. 어쩐지 간질간질해지는 단어에 빌의 입매가 한순간 부드럽게 풀렸다. 소개팅이라니. 보딩스쿨 때도 안 쓰던 단어가 어색했던 것도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 괜찮은 제안이었다. 에이드리언 그렌트 그 엿 같은 개자식에게 한 방 먹이고, 조슈아한테도.

순간 빌은 잘생긴 미간을 찌푸렸다. 조슈아가 연애를 한다면, 그건 하나도 이득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게는 마이너스였다. 안 그래도 오늘도 넥스트 유어에 밥 먹자고 할 겸 간 건데, 정작 바쁜 조슈아는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연애를 시작한다면 더 바빠질 게 명확해서 빌은 눈매를 가늘게 떴다. 그러다 꿀꺽 침을 삼켰다.

만약, 정말 만약. 빌이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상념에 잠겼던 목소리가 짙게 깔렸다.

“그거, 조슈아 소개팅 말이야.”

“성사될 일 없으니 그대로 엎어 버리면 되겠네.”

빌의 말을 자르고 부드럽게 끼어든 목소리에 크리스가 바짝 얼어붙었다.

“뭐냐, 너?”

빌이 입꼬리를 비틀어 시니컬하게 웃었다. 사람 간담 흔드는 저 웃음에 에이드리언 그렌트가 화사하게 웃었다.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질 것처럼 달큼한 미소였지만 녹갈색 눈동자가 꼭 미친 것처럼 번들거렸다. 수틀리면 언제든 미친놈으로 돌변할 것만 같아서 크리스의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오금이 저렸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빌 스웰딘의 안내대로 프라이빗한 바에 가지 않았을 때부터? 아니면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라며 제 단골 가게를 통째로 빌렸을 때부터? 그도 아니면 에이드리언 그렌트가 온지도 모르고 하하호호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부터? 뭐가 되었던 단단히 잘못되었다.

에이드리언 그렌트가 상냥하게 웃었다.

“재미있는 간담회를 한다기에 한걸음에 달려왔지. 이런 자리가 있으면 미리 좀 이야기해 주지 그랬어요. 크리스.”

“아하하. 그러게요.”

부드러운 책망에 크리스는 뻣뻣하게 굳은 입매를 간신히 올렸다. 사실 간담회에 부를 만큼 막역한 사이도 아닌데, 에이드리언이 저러니 꼭 크리스 자신이 잘못한 것만 같았다.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이 숨 막히는 분위기 사이에서도 시선이 끌릴 정도로 화려한 미모였다. 단정하게 입은 아이보리색 셔츠와 검은색 슬랙스가 아슬아슬하게 선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단추 하나 풀지 않은 금욕적인 자태에도 불구하고 빌 스웰딘과 비등할 정도로 섹시한 이미지였다. 문득 지난번에 직원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미스터 그렌트는 꼭 백합 같지 않아요? 되게 청초하고 애틋해 가지고 물 잔뜩 머금은 백합.”

“아냐. 미모 봐. 화려함이 극대화야. 그 정도면 인간 장미야. 아주 흐드러졌어. 누구든 가시로 낚아채면 다 낚일걸?”

맞다. 에이드리언 그렌트는 꽃이었다. 백합도 가득하면 향에 취해 질식하고 장미도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마당에 독초도 꽃이라면 꽃인 모양이었다. 아름다울수록 독이 더 강하다고 했지. 저 해사한 웃음마저도 요사스러워서 크리스는 오소소 돋아난 소름 위로 팔을 문질렀다. 그러는 사이 빌이 날카롭게 말했다.

“뭘 다 끼려고 해. 그냥 하던 것처럼 구석에 음습하게 뭉개져서 진행되는 일이나 구경하고 손가락이나 빨지.”

“그러기에는 아쉽게도 조슈…아 이야기가 나와서.”

조슈아 이름을 부르던 에이드리언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떨렸다. 빌의 기민한 촉이 발동했다.

“어라? 조슈아한테 이름 부르는 거는 허락 맡은 거야?”

여유롭게 웃던 에이드리언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조슈아 이름에 저 철 가면이 깨지는 게 불쾌했다. 하지만 빌은 즐겁다는 듯 느긋하게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너는 그 모습이 딱이야.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아. 질질 짜고 용서 바라면서, 절대로 곁에는 오지 말고. 응?”

빌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짓궂게 웃었다.

“눈치 챙겨. 꺼지라고. 너.”

에이드리언이 진심이든 아니든 이제는 상관없었다. 그냥 싫다. 정말 싫다. 저 개자식이든 저든 여기서 오늘 한 명 죽어날 일만 남았다. 내숭은 갖다 치웠는지 에이드리언 그렌트가 사납게 웃었다.

날이 부딪히는 것 같은 기 싸움에 크리스는 어느새 저만치 물러난 상태로 숨을 죽였다. 며칠 밤을 세며 커피를 마셨을 때처럼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었다. 에이드리언 그렌트가 상냥하게 말했다.

“계속 그렇게 기어오르다 진짜 큰일 난다? 어디 하나 부러지면 닥치고 떨어질래?”

“깝죽대다가 다리 동강난다?”

“그 전에 니가 먼저 부러질 텐데?”

“뭐?”

“경험이 있어도 학습이 안 된 걸 보면 뇌가 주먹만 하다는 게 낭설은 아니었나 봐?”

“이 새끼가.”

장난을 치듯 부드러운 에이드리언의 목소리에 빌이 거칠게 반응했다. 비틀린 입매며 서로를 향한 혐오 섞인 시선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찰나였다.

“보스?”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호프집 입구로 쏠렸다.

“조슈….”

“조슈아?”

“조슈…아.”

제대로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에이드리언과 여기에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빌과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반가워하는 크리스. 조슈아와의 관계만큼이나 제각기 다른 반응이 나왔다. 호프집 안으로 들어서던 조슈아가 눈을 깜빡였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조합에 조슈아가 잠시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아팠다.

“…소개팅이요?”

그러니까, 제게 소개팅을 시켜 주고 싶은 크리스가 빌과 이야기를 하던 찰나에 에이드리언이 훼방을 놓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조슈아는 천천히 크리스와 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이드리언을 쳐다보았다. 덤덤한 시선에 찔린 두 명이 시선을 피하는 사이 에이드리언은 그 한 줄 시선이라도 반가운 듯 조금 젖은 눈으로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조슈아는 여기 어떻게 왔어요?”

“제가 어떻게 여기 왔냐구요?”

조슈아가 방긋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불안한 예감에 크리스가 손을 내젓기도 전에 조슈아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러게요. 분명 퇴근 시간이 넘었는데 제가 왜 여기 있을까요?”

“그….”

“보스께서 말도 없이 사라지셨는데 제가 어떻게 퇴근해요. 그렇죠? 제발, 보스. 요즘 일이 줄어든 것처럼 일하시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엘과 네빌이 울면서 보스를 찾고 있거든요? 오늘부터 바로 브이로그 찍겠다고 한 거 잊지 않으셨죠? 보스가 특집 자신만만하다고 하셔서 기획팀이 스토리보드를 전체 수정했다는데 그 안에 야근도 있는 건 당연히 확인하셨죠? 한가한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시겠다니 와우. 역시 보스세요. 야식으로는 메이플 시럽에 불은 오트밀까지. 응? 아주 생각만 해도 완벽하죠?”

“…바로 갈게요. 조슈아.”

부드러운 목소리에 아주 후드려 맞았다. 2차로 엘과 네빌, 그리고 기획팀에게 잔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크리스는 억울해졌다. 분명 좋은 의도였는데. 그러는 사이 조슈아의 시선이 빌에게로 넘어갔다.

“그리고 미스터 스웰딘.”

빌이 답지 않게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빤히 쳐다보던 조슈아의 시선이 빌 앞에 있는 빈 맥주잔으로 향했다. 손도 안 댄 포크까지 본 뒤 조슈아가 물었다.

“술 드셨어요?”

“…한 잔.”

“그나마 다행이네요. 가드들 바깥에 있던데, 알아서 가시면 되겠네요.”

“와 너무하네. 미스터 밀러는 챙겨 주고. 나는.”

“안녕히 가세요.”

빌이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에이드리언은 조금 설레는 표정으로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어떤 말을 해 줄지 기대하는 듯 녹갈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래서 조슈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초, 2초, 3초. 그리고 4초가 지나가며 에이드리언 그렌트가 애써 입꼬리를 올릴 때였다.

“조심히 가세요. 미스터.”

조슈아가 예의 비즈니스 미소로 가볍게 말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이제 갈 때도 되지 않았냐는 듯 무언의 압박이 가해지고 “어, 어?” 어벙벙하게 서 있던 크리스가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조슈아가 그 뒤를 따라나섰다.

허. 빌이 탁한 숨을 내뱉었다. 조슈아를 보며 장난스럽게 웃던 눈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날. 제가 병실을 나온 이후로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생각을 하자 성질이 나서 빌이 제 뒷머리를 흩트렸다.

“…무슨 술수라도 부렸냐?”

잠긴 목소리에 에이드리언이 잠시 빌을 힐끗했다. 이상하게도 서러운 표정이라서 에이드리언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이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술수를 부릴 수 있다면, 시간을 돌리는 술수부터 부렸을 텐데.”

말끝이 흐려졌다. 날선 분위기가 사라지고 빌은 어깨를 으쓱였다. 늦었다. 어떻게도 제가 늦은 것 같아서 입이 썼다. 무엇보다 저 뱀 같은 새끼가 꼭, 꼭 무언가를 욱여넣는 듯한 표정을 지어서 빌이 잇새로 짓이기듯 내뱉었다.

“…개자식.”

“…피차 마찬가지지.”

들려온 답변이 너무 에이드리언 그렌트다워서 눈이 마주친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웃고 나서는 다시 싸늘하게 서로에게 등을 지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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