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1 강반독보심화(江畔獨步尋花) =========================
강반독보심화(江畔獨步尋花)
하늘에서 청조(靑鳥)가 내려와 땅의 여인이 되니 청조녀가 알을 낳아 40 일을 햇볕에 두었다. 그 알에서 태어난 아이가 자라 나라를 세웠으니 나라의 이름을 도올이라고 하였다.
도올은 그리하여 표홀한 청조를 상징으로 여겨 파랑새를 전통적인 중화 영물인 용, 봉황, 기린 따위와 함께 황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징으로 사용했다.
하여 추국장에 드리운 저 청조가 새겨진 깃발은 황실의 가족 중 하나가 거동했다는 증거였다.
후궁 육궁(六宮)의 주인인 황후 희 치(喜梔)가 발을 드리운 채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후궁들이 의자에 앉아 추국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선황의 황후인 소성황후, 인온황후의 뒤를 이어 사내임에도 경국지색으로 불리는 사내가 거기에 느긋히 앉아 있었다. 발을 드리웠음에도 그 자태가 고고한 멋을 풍기고 있었는데 그 발 아래의 얼굴은 실로 그 전대의 황후를 뛰어 넘는 고즈넉한 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내는 푸른 눈 밭에 진 음영을 떠올리게 하는 사내였다. 곧은 몸. 흐날리는 검고 긴 머리카락. 진실로 눈 속에 고고하게 빛나는 하얀 촛불. 고요한 두 눈에 서리는 정앙(正央). 희고 부드러운 백색 비단같은 뺨과 길고 단단한 목. 미동없는 두 눈과 곧고 하나의 점으로 모아지는 붓으로 그린 한 획 두 쌍의 눈. 어둔 밤을 눈이 등불마냥 빛내고 있었고 그 속에 고아한 그 사내가 설원에 나홀로 고아하게 있는듯 하다. 차마 눈서리마저 범접하지 못한 홀황(惚恍)과도 같았다. 밤보다 짙은 흑색이 있었고 눈보다 하얀 살결이 있다. 추위보다 서린 눈. 새벽보다 고독하고 고아한 자태.
절색만 보아온 궁녀들이 찬탄하여 넋을 잃은 만큼의 얼굴이었다. 얼굴은 그 어느 여인보다 아름다웠으나 무관 출신인 황후는 수수한 흰색 문사복을 단정히 입고 있음에도 탄탄한 몸이 그 곧은 허리와 자세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키가 6척 반을 어릿하고 어깨가 넓고 탄탄하다. 한 때 도올제일인이었던 사내의 몸이었고 그렇기에 황후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남성의 강인함을 같이 지닌, 실로 신이 빚은 듯한 아름다움을 가진 이였다.
그리고 그 황후의 편전 아래에 엎드린 것은 황후와 다르게 화려한 맛이 있는 청년이였다. 6척을 조금 넘는 키를 가진 청년은 주홍색 머리카락을 비녀로 틀어 올리고 있었는데 그 외모는 준수한 편이나 황후에 비하면 평범하고 오히려 눈이 얄상하게 올라가 있어서 어딘가 비열하고 교활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치장은 누구보다 화려했는데 손톱에는 호박을 박아 투룡을 상감한 호갑투(護甲套)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검지와 중지에는 하얗게 빛을 발하는 비취로 만든 호갑투를 끼고 있었다. 오른쪽 귀는 지엄한 황실 법규를 어겨 황룡의 화려한 귀찌를 귓바퀴에 걸쳤고 침을 귀에 박아 그 끝에 흑옥과 금강석(金强石)을 장식하고 있었다.
후궁이라 할지라도 남성은 남성. 남양인들은 화장을 하지 않았으나 청년은 분과 연지는 바르지 않았지만 눈매만은 또렷하게 그려 스스로를 위엄있고 권세 있어 보이게 한다.
그 입은 옷은 또한 흑색의 소주 비단으로 그곳에도 황룡을 금사로 새겨 넣었다. 황룡이 황제의 상징이고 황자, 황녀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오만방자한 차림이 그지 없으나 그는 분명 당당하게 황룡을 패용하고 있었다. 또한 그 허리 춤에는 그 귀한 남해 산호로 깎은 붉은 피리가 달려 있었고 신발은 악어 가죽으로 덧대고 상아로 장식되어 있다.
이 호사스러운 차림은 사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차림이었다. 일국의 황후도 검소하고 소박하게 입과 황제 또한 사치하지 않는 성격임을 생각하면 엎드린 청년은 황실 그 누구보다 사치하는 사람임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그 사치하는 청년은 바로 황제의 총비인 미인(美人) 백 씨였다.
미인이라면 오품에 해당하여 그 인원을 무한정 받을 수 있으니 인원이 정해진 정비가 아닌 서비에 해당하여 그 위치가 높지 않다.
그러나 청년은 위치에 걸맞지 않게 황룡을 수놓았고 보석 중에서도 귀하기 힘든 것들을 패용하였다.
청년은 편전 앞에 무릎 꿇고 있음에도 당당했는데 황후는 그것을 보면서 매미 날개 같은 눈썹을 잠시 휘었다.
그 미색에 옆에 있는 궁녀가 어지러워서 몸을 비틀거린다. 그것을 본 태감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를 노려 본다. 궁녀가 아차하여 몸가짐을 바르게 하나 곧 눈이 몽롱하여 주인을 바라본다. 그런 궁인이 한 둘이 아닐만큼 황후의 미모는 절색이었고 뛰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황후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아니 오히려 태연하기까지 했다.
황후의 표정에 귀찮음이 잠시 떠오른 것은 보는 이의 착각일까?
그러나 곧 총애받는 후궁의 방자함을 벌주기 위하여 추국을 시작한 황후의 표정이 냉랭하게 변한다.
싸늘함이 감도는 추국장 안에서 마침내 목소리가 발 뒤에서 들려왔다.
"백씨는 언제까지 그렇게 방자할 셈인가."
백 미인이 공손하게 답했다.
"방자라면 신이 무엇을 방자하게 굴었나이까. 정말로 신이 어리석어 모르는 것이니 깨우쳐 주십시오."
그제서야 황후가 골이 아픈듯 얼굴을 찌부린다.
"귀비 자리를 그 혀놀림으로 잃어 미인으로 강등되었으면 그만 알 때가 된 것 같은데 정말 모자른 이구나. 아예 답응으로 떨어져 냉궁으로 유폐 되고 싶으냐. 어찌 황제께 또 불경하게 말을 해."
그렇게 말하면 백 미인도 할 말이 없다. 능청스러운 말에 대놓고 멍청하다고 면박을 주는 것을 죄인된 몸으로 항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을 후궁 중 몇몇은 불쌍하다 속삭이고 몇몇은 꼬숩다 여긴다. 황후는 그러나 저 모양새가 백 미인이 잔뜩 삐져있는 상태에서 짓는 자세라는 것을 알기에 황당해할 뿐이었다. 뭘 잘했다고 저리 골이 나 있는지. 처소에서 방성통곡을 하던 황제를 떠올린 황후가 한숨을 쉬면서 팔걸이에 올린 손을 한 번 친다.
"실로 재앙의 주둥아리구나."
그 말에는 동감하는 이가 많았다. 황후가 단호하게 명령한다.
"매를 맞으면서 후궁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라. 그러면 깨달을 수 있겠지. 백 씨를 싸리나무 몽둥이로 스무대를 쳐라!"
후궁에게 태형이 떨어지는 일은 흔치 않으니 백 미인의 상궁이 울면서 말렸다. 그러나 백 미인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정면을 바라보니 시위들이 때리는 와중에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가 않아 독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흐른다.
황후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짱짱한 햇빛이 그의 뒤를 환하게 비춘다. 마치 설화 속의 인물인냥 빛을 등에 진 황후의 모습은 위엄이 넘치기 그지 없었다. 황후의 엄한 목소리가 추국장을 곧 울렸다.
"백 미인은 처소에서 근신하여 백 미인을 아껴주신 폐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도록 하라. 이만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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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으로 맞지 않았다곤 하나 꿇어 앉은 자리에서 몽둥이로 스무대를 맞았으니 결국 백 미인의 팔이 부러지고 온 몸에 멍이 들 수 밖에 없다. 침대에서 끙끙 앓는 그의 처소를 들른 것은 놀랍게도 그 형벌을 내린 황후였다.
휘장이 젖혀지고 침대에 누워 있던 백 미인이 뒤를 돌아 보지도 않고 툭 불손하게 말을 내던졌다.
"열 대에서 왜 또 스무 대로 늘어난 겁니까?"
"너의 그 오만방자한 혀는 왜 또 진화하여 그 황제를 도발하는 언사의 가지 수가 늘어난거냐."
백 미인이 씩 웃는다. 아직 어린 청년이 몸을 비틀어 국색이라는 황후를 본다. 무인의 몸을 흰 학창의로 가린 희 치가 팔짱을 낀 채로 청년을 내려다 보고 있다. 백 미인이 실실 웃는다.
"아직 웁니까?"
"방성통곡을 한다."
그 말에 백 미인이 웃었다.
"아하하."
황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새벽에 제 처소인 태양전으로 돌아온 황제가 이성을 잃고 방성통곡을 한다는 보고를 받고 딱 알아 챘다. 황궁에서 그 성격 사나운 황제를 울릴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알려지길, 가난한 명문가의 양인 자손이라지만 미색도 평범한 백 미인이 간택된 것은 그가 시로 유명한 문인이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장군 출신이나 고아한 성품의 황후가 흥미를 느껴서 그를 뽑았다 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백 미인이 어찌 이리 총애를 받을 지는 아무도 상상도 못했다.
그 촐랑거리고 쾌활한 백 미인이 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룡패용을 허용 받는 것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인데 일 년만에 자식 하나 안겨드리지도 않고 귀비까지 올랐으니 황제가 죽고 못사는 애첩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이 주둥아리가 자유분방한 백 미인은 가끔 화를 불렀는데 귀비에서 미인으로 강등되었을 땐 잠자리 도중에 황제 면전에 대놓고 못생겼다고 웃으면서 놀렸다.
생전 처음 들어본 언사에 성교 도중에 울고 불고 난리를 친 황제는 간신히 교합을 끝내고 엉엉 울면서 태양전으로 돌아갔는데 죽이니 어쩌니 한 것을 황후가 열 대를 치고 미인으로 강등시키는 선에서 끝냈었건만, 황후가 헛웃는다. 백 미인은 반성한 바가 없었다.
어쨌거나 황제는 백 미인을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기에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후궁들이 소란을 일으키면서 그를 괄시하는 것을 황후는 지켜보았으니 속으로 그 어리석음에 혀를 찬다.
그는 엄연히 대장군 출신으로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백 미인은 관료가 된 적은 없었지만 그것을 황후가 안타까워할 정도로 교활하고 영민했다.
백 미인이 보통내기가 아닌데 처지가 조금 안 좋다고 괴롭히는 그네들이 더 불쌍하다. 황후는 그들이 어찌 나오는가 보고 싶어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황제가 갑자기 불같이 화내면서 황후를 혼냈다.
백 미인이 차가운 겨울에 석탄을 다른 후궁에게 빼앗겨 난방을 하지 못한 까닭으로 앓은 것이었다. 황제가 그것을 알고 놀라 달려 왔는데 생각보다 백 미인이 크게 아팠다.
'뭐 아픈 척 한거겠지만.'
황후가 앞에 놓인 다과를 무심한 얼굴로 깨문다. 내명부의 주인으로서 무엇하는 짓이냐, 백 미인을 투기하냐. 뭐 참신한 개소리를 하는 황제의 호통을 잠자코 받아준 황후였다.
곧 백 미인과 황제가 다시 알콩달콩하게 연애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또 벼락같게도 어젯밤에 다시 태양전으로 황제가 울면서 돌아 간 것이었다. 백 미인의 만화궁에 들뜨면서 간 것이 분명했는데 침대에 엎어져서 울고 있으니 황후가 또 머리가 아파 쓰게 웃으면서 황제를 달래러 갔다.
간신히 발작하는 황제를 달래서 얘기를 들으니, 또, 뭐?
황후가 절레 고개를 흔든다.
"퉁퉁 불은 만두 같다는 소리는 왜 하느냐."
"비슷하지 않아요?"
"그나저나 이 다과 참 맛나구나. 인삼 조림이냐?"
"꿀에다가 계피 좀 섞으면 맛있어요. 거 다 드세요. 많아요."
"돈도 많지."
"황후 폐하도 돈 많은 걸로 압니다. 황제 폐하보다 더 돈 많은 걸로 압니다."
"그건 내 상단에서 얻은 사적인 돈이고 넌 다 폐하께 얼굴로 뜯어 먹은 것 아니냐?"
태평스럽게 담소하는 둘의 모습이 총애 받지 못하는 황후와 황제의 오만방자한 후궁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황후가 인삼 정과를 냠냠 거리면서 말했다.
"왜 또 울리고 그러냐."
"못생긴 거 사실이잖아요."
"하긴."
바로 긍정하는 황후를 백 미인이 어이 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황제가 엄연히 전 경국지색인 인온황후의 자식인데 못생길리가.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거친 인상이긴 했으나 분명 위엄이 서리긴 했다. 다만 거칠고 투박하게 생겨 음인 답지 않고 전장터를 많이 다녀 굳은살이니 거칠고 까무잡잡한 피부니 상류층의 미적 기준과 다를 뿐이었다.
백 미인이 명문가라 하지만 바닥을 구르던, 그야말로 빌어먹는 거지 바로 윗단계의 상태의 집안에서 자란 것을 감안했을 때 황제는 사내답게 잘생기게 보일법도 했는데 백 미인은 굳이 그를 못생겼다고 말했다. 백 미인은 미적 기준이 무척 높았다.
황후도 그에 진심으로 긍정한다. 백 미인은 황후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하기사 황후의 얼굴론 누군들 못생기지 아니할까. 백 미인은 농담으로 말한 걸 바로 받는 황후의 모습에 혀를 찬다.
"그래도 말조심 해라."
백 미인은 흐흐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우는 것 귀엽잖습니까."
"하긴."
냉큼 대답하는 황후가 씩 웃는다. 생전 당당하고 거친 사내인 황제가 어린아이처럼 이불 꾹 쥐고 엉엉 우는 것이 얼마나 귀여운가. 황후는 그것을 달래면서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려 노력해야 했고 백 미인은 노력하지 않고 얄밉게 웃었다.
끅끅 거리는 황제의 얼굴을 떠올린 황후가 불연듯 말한다.
"그래도 불쌍하지 않느냐. 너 없으면 황제는 갈 곳도 없다.."
속이 상해서 울면 다른 사람 같아서는 달램받고 싶은 사람을 찾아갈 것인데 황제는 황후에게도 가지 않고 다른 후궁에게도 가지 않는다. 혼자서 그 넓은 태양전 침대에 쳐박혀 울고 있는 것이 외로운 황제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서 입이 썼다.
황후가 상념했다.
황제는 번국 10개를 점령했으나 황후, 희 치는 번국 18개를 점령한 전설적인 명장이었다. 희 치를 칭송하는 시가 쓰여졌고 희 치의 명성을 찬양하는 백성들이 많았다. 희 치는 바르고 곧은 성격에 성품이 향기로웠고 도올제일의 무인이었고 장군들의 존경을 받는 병부의 수장이었다.
그런 희 치의 명성이 도올에 너무 커져 나갔고 황제가 자신을 위협하는 권력가인 희 치를 경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국혼을 할 때 극양인인 희 치를 황후로 삼고 만월전에서 육궁을 주관하게 했던 것이다.
대장군이 황후가 되는 순간이었다.
희 치는 반역할 마음이 없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견제하는 황제의 요청에 응했다. 그러나 황제는 희 치의 절색인 얼굴에도 그의 권세를 경계하여 황후를 믿거나 총애하지 않았는데 의무적으로 잠자리 하는 보름과 희락기를 제외하고 그를 볼 일이 드물었다.
다만 희 치는 위엄이 있어 후궁들은 그를 따랐고 희 치 또한 황제를 잘 살펴주는 편이었다.
황후의 말에 백 미인이 미미하게 웃는다.
"황후께서 달래줘요."
"그가 나를 사랑하면 넌 네 총애를 뺏긴다."
황후가 당당히 말했다. 내 얼굴을 보거라.
순간 할 말을 잃은 백 미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백 미인의 등 뒤로 황후의 보기 드물게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敬)은 눈치가 빨라서 가식과 진심을 구분하는 것이지... 잘 대해주게."
황제의 존함을 무엄하게 부른 황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한다. 백 미인이 그 뒤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작품 후기 ============================
비글 마이웨이공 x 환장하는 떡대수
궁중암투물 but 피폐ㄴㄴ!
자존감 극히 높은 공 x 자존감 극히 높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