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8 강반독보심화(江畔獨步尋花) =========================
"이 썩을 것들."
계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물자를 담아 놓은 수레를 노려본다. 계자가 머리의 상처가 아물어 복귀하자 마자 일어난 일이었다.
후궁전의 물자를 담당하는 최 태감이 결국 만화궁으로 가는 물자의 수를 줄였다. 이제까진는 실총(失寵)과 득총(得寵)을 오갔던 백 미인이 가미인의 등장으로 총애를 다시 얻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백 미인이 마당의 계수나무 그늘 진 곳에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자두를 까먹는다.
계자가 울상을 지으며 태평천하인 주인에게 말했다.
"이제 그 자두도 마지막이십니다."
백 미인이 하늘이 무너진 듯한 소리에 얼굴색을 바꾸곤 말한다.
"어? 뭐야? 그런게 어딨어?"
"실총한 후궁에게 갈 자두가 어딨습니까.."
그제야 충격받은 듯한 얼굴을 한 백 미인이 열이 받아서 자두 씨를 던지며 소리쳤다. 계자가 속으로 한심함을 느끼며 백 미인을 바라보았다.
"먹는 거 가지고 그러면 안되지?! 거기다가 후궁 수도 적은데 왜?"
"선황께서 후궁을 거느리지 않아 후궁을 제외하고 예산을 편성하는게 오랫동안 굳어졌나이다.. 아직까지도 후궁의 지분이 적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먹을 걸 뺏어??"
비단 줄었다고 화는 안 내도 먹을 것 뺏으니 화를 낸다. 계자가 철 없는 주인의 모습에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러게 왜 또 황제께 그 말을 하셨습니까. 황제께 좋은 말만 했으면 만화궁 화귀비 마마로 자두쯤이야 천개 만개 드실 수 있으실텐데."
그것도 이 번이 세번째였다. 이건 아예 상습범이니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용할 만큼 백 미인의 입은 참으로 가벼웠다. 계자가 입을 꾹 다문다. 초야 때 버림 받은 후궁을 모셔 평생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였으나 곧 백 미인이 냉궁에서 복귀하고 총애를 누려 계자도 출세가도를 탔다.
그게 아니더라도 백 미인은 참 좋은 주인이었다. 사람 눈이 없으면 더우면 자리에 앉아 있게 해주고 시원한 과일을 나누어준다. 글도 가르쳐주고 가끔 흥이 날 때 노래도 불러 주고 시도 읇었다. 귀비 자리를 잃고 백 미인이 괄시를 받을 지언정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계자였으나 또다시 입을 나불거려 총애의 기회를 잃은 것이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사실 계자의 목숨도 그간 몇 번이나 생과 사를 오가였으니 쫄릴만도 했다. 백 미인의 언행은 보통 사람이라면 참형을 당해도 수백번은 당하고 구족을 멸할 대죄들이었으니 계자는 주인이 담이 센 건지 아니면 철이 없는 건지 몹시도 헷갈려 했다.
'아마 철이 없는 것 같지만.'
계자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듯 백 미인이 자두를 뺏겨 눈을 부릅뜨고 발을 동동 구른다. 계자는 가미인 때문에 터진 머리가 살살 아파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툴툴거리던 백 미인이 계자의 말에 문득 입을 열어 대답한다.
"그러게 말이다."
"예?"
"그 좋은 자두도 못 먹는구나. 쯧.."
백 미인이 혀를 차고 자두를 손에서 헤집는다. 호갑투를 낀 약지와 소지 때문에 긴 검지 끝에만 황금색 물이 더럽게 물들었다. 백 미인이 아득한 시선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상념에 빠졌다.
과일을 좋아하는 백 영선 때문에 이 경 또한 과일을 많이 먹었다. 특히 여지(리치)를 좋아하는 영선이 호갑투 때문에 느릿하게 껍질을 까는 것을 참지 못하고 직접 까서 입에 먹여준다. 투박한 손에 집혀진 향긋한 하얀 과육을 영선이 입으로 문다. 밥을 잘 먹지 않고 소식하는 영선을 은근히 걱정하던 이 경이 그것을 바라보면서 은근히 좋아하는 기색을 보인다.
추억을 하나 하나 상념한다. 아름다운 말, 좋은 말을 왜 하지 못했더라?
답잖게 작고 분홍색인 입술과 혀를 떠올린다. 말 타는 것을 좋아하는 영선이기에 이 경과 영선이 같이 좋은 명마를 타고 들판을 달린다. 이 경이 씩 웃으면서 영선의 이름을 부른다. 풍류를 즐기는 영선이 이 경이 준 영화원(英花園)에 앉아서 비파를 탄다. 활쏘기와 사냥을 좋아하는 이 경도 영선의 연주는 얌전한 표정으로 들었다. 그리고 영선의 생각이 잠자리에서 눈가를 붉게 물들인 이 경에게 이르른다.
허리춤을 벗겨 내리고 그 몸을 희롱한다. 특히 희락기 때에 이 경의 몸은 근육이 풀려 푹신하여 상당히 기분 좋게 몸에 감겼다. 이 경은 영선과 잠자리 할 때마다 이성을 잃고 우는 경우가 많았다. 영선은 특히 이 경의 울음을 사랑한다. 이성을 잃고 손 발을 허우적거리고 콧등을 찡그리는 것을 상념한다. 엉엉 울면서 주먹으로 영선을 때린다. 크고 드센 주먹이기에 영선도 온 몸에 피멍이 들지만 상관치 않았다.
영선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 저절로 올라가고 의식에 흐름에 따라 말을 툭 내던졌다.
"못.. 생겼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백 미인의 말에 계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미인 마마!"
"아, 알았어.. 미안, 미안.."
목숨이 달린 일이라 살쾡이 같은 눈으로 노려본다. 현실로 돌아온 백 미인이 다급히 수습을 하지만 울화통이 터진 계자의 시선이 날카롭게 그를 쿡쿡 찌른다. 그것이 평소와 다르게 분명하게 원망을 담고 있는 지라 백 미인이 얼굴을 긁적거리며 말을 돌렸다.
"가자. 계자야."
"어디 말이옵니까?"
"내무부 최 태감 말이다."
백 미인이 뒷짐을 지면서 휘적거리면서 걸음한다.
"자두 받으러 가자~"
황망한 눈으로 계자가 주인을 보지만 이내 눈매를 부드럽게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과일 문제에 화를 내는 것도 생각해보면 이해간다. 백 미인은 향신료로 덕질하여 기름이 가미된 음식을 싫어하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했는데 황실의 음식은 전국의 진상품들로 요리하는 것이라 맛은 독특하고 좋아도 신선치 못하였다.
각지에서 배송한 음식들이리 신선할리가 없으니 그를 감추려 맛이 강한 음식들이 많았고 기름기도 많아 유독 백 미인은 밥을 먹기 힘들어 했다. 거기다가 돼지, 소와 같은 네 발 달린 짐승의 고기를 아예 먹지 않아 그가 먹을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향간에 화귀비가 정말 요부(妖婦)가 아니냔 소문이 돌만큼 이 경은 영선의 식사에 신경쓰고 많은 신경을 썼는데 그 중 하나가 남만에서 나는 여지를 진상하고 신선한 과일을 얼음에 싸서 공수하는 등의 호화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백 미인이 과일은 또 잘 먹으므로 사실 백 미인은 과일로 먹고 산다 보아도 무방했다.
'거기서 요망한 소문이 돌긴 하지만..'
백 미인이 과일만 먹는다는 과장된 말이 나돌더니 그래서 그 몸의 체취며 타액과 정에서 과일 향이 난다는 음담패설이 돌았다. 계자가 총애받는 화귀비를 소재로 한 여러 음담패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래 저으며 백 미인을 총총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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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부의 최 태감은 곤란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본다.
화려한 주홍발(朱紅髮)이란 중화 남쪽 지방에서만 드물게 보이는 것으로 그 옛날 춘추시대부터 이어진 몇몇 명문가들만이 지닌 것이다. 궁에서도 그것을 지닌 이는 드물어 후궁에서는 오직 백 미인만이 주홍발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큰둥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로 최태감을 바라보고 있는 황룡을 금사로 새긴 흑발 제비깃 비단을 입은 화려한 차림새의 사내. 신분에 맞지 않는 홍옥으로 장식한 용봉비녀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허리 춤에는 흑옥을 주렁주렁 단 노리개를 패용하고 있다.
궁중에서 후궁을 대할 때는 매우 조심히 해야한다. 그들은 하루 아침에 존귀한 존재가 되고 또 비천해진다. 궁중에서 그들의 유흥거리는 거의 없어 하찮은 일에도 원한을 품고 보복을 했다.
그런 최 태감에게 가장 까다로운 존재가 바로 저 백 미인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출세가도를 걸었고 황제에게 막말을 했음에도 살아남은 사내.
그럼에도 그 혀 놀리는 버릇을 못 잃어 이젠 완전히 총애를 잃었다 칭해지는 후궁.
최 태감은 그리하여 승승장구하는 가미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어 만화궁으로 가는 물자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백 미인의 그 화려했던 시절을 알고 지금도 특혜를 지니고 있는 것을 알기에 저리 노려보는 것에 당당히 항의할 수 없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자두."
"예?"
"자두."
"올해 진상된 자두의 수가 적어.."
"자두."
"...후궁들에게 배분된..."
"자두."
"노비 또한 배려를 하,"
"자두."
앵무새처럼 자두를 부르짖는 백 미인의 모습이 태연하다. 최 태감은 잘 안다. 저 화려한 모습의 백 미인이 얼마나 독종이고 얼마나 끈질긴지. 팔이 부러지도록 몽둥이를 맞았음에도 내색하나 하지 않던 백 미인이다.
아마 내버려두면 날이 새도록 자두만을 외치며 최 태감의 발목을 잡아둘 것이다. 최 태감은 안절부절 하다가 결국 자두를 내주었고 백 미인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만화궁으로 돌아갔다.
"제가 그렇게 부탁해도 주지 않던데 이리 간단히.."
계자가 감탄하면서 말하고 백 미인이 부채를 부치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주석 1*나에게 모과를 던져주기에, 아름다운 패옥으로 보답했지. 보답이 아니라, 영원히 잘 지내고자.."
계자가 희죽 웃으면서 백 미인에게 말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마마의 위세가 있군요."
"흠흠흠.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주기에 아름다운 구슬로 보답했지.."
백 미인이 어린아이처럼 웃으면서 만화궁에서 자두를 까먹으며 노래를 부른다.
"나에게 오얏을 던져주기에.."
그리고 공교롭게도 홍리궁의 가미인이 더위를 먹어 자두를 찾았고 달려간 가미인의 궁녀가 최 태감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이 그 날 오후의 일이었다.
분노한 가미인이 부채를 던져 궁녀의 얼굴을 때렸다.
"백 미인은 나랑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단 말인가!"
"고정하십시오, 마마!"
"당장 만화궁으로 가서 받아와!"
백 미인이 태연스럽게 호갑투를 낀 손가락을 야살스럽게 들면서 자두를 깐다.
"싫은데?"
가미인의 궁녀가 벼루를 머리에 맞고 신음한다. 가미인이 눈을 날카롭게 뜨고 살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호라 결국 본인이 발걸음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지.."
분노한 가미인의 눈에 살기가 흐른다. 부모육친(父母肉親)을 욕하고 후궁들 사이에서 개망신을 주더니 이제는 제 궁으로 갈 자두까지 빼앗곤 말도 듣지 않는다. 형님이라 순순히 부르던 그 뺀질한 낮짝을 떠올린 가미인이 폭발하여 만화궁으로 성큼거리면서 걸어갔다.
"백 영선, 네 놈!!!"
만화궁 마당에서 자두를 까먹던 백 미인이 고개를 들었다.
머리를 깔끔한 목단 비녀로 끌어올리고 백의옷을 입었다. 물론 그 옷감이며 차림새가 상당히 고급의 관리를 받은 것 같아보이나 보석도 없고 향도 없다. 백 미인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게 처음부터 순박한 무인 행세를 하니 사치도 못하지..'
눈치보면서 연기를 이어나가는 살얼음판같은 인생이 뭐가 좋은지. 백 미인이 속으로 그를 깔보면서 고개를 까닥거린다.
"발을 다쳐서 인사를 못합니다."
"이익!"
백 미인은 웃으면서 가미인을 보았으나 그 눈매는 고분하지 않다. 가미인도 백 미인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백 미인 또한 별로 그를 좋아하지 않다. 궁인을 때리고 자리를 뺏고 모욕을 주었다. 거기다가 자두까지 뺏고 더운 여름에 대거리까지 하려고 한다. 백 미인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가미인이 어찌 알리오. 백 미인이 준비된 투계(鬪鷄)라는 것을.
"백 미인이 아랫 사람으로서 다시 무례를 저지르니 이 형이 교육을 시켜줘야겠네."
가미인이 그 때 차갑게 웃고는 옆에 있던 태감의 허리춤에 달린 채찍을 뺏어 내리쳤다. 다분히 위협적인 것으로 무관인 가미인이 백면서생인 백 미인을 얕보고 길들이려한 것이었으나 백 미인은 애초에 팔이 부러지도록 신음하나 내뱉지 않은 독종이다. 가죽 끝으로 허벅지를 얻어 맞은 백 미인의 앞을 계자가 뛰어들어 가로 막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으악!!"
몽둥이 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것이 채찍이기에 단숨에 계자의 하얀 피부에 붉은 자국이 새겨진다. 그 순간 백 미인의 동공이 수축하고 소름끼치도록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다. 웃음이 사라진 백 미인의 인상은 몹시도 창백하고 싸늘했다. 백 미인이 그 때 찢어지는 목소리를 내었다.
"당파를 만든다지? 가미인. 요즘 들어서 난리도 아니라매. 거기다가 후궁전이 외부 세력과 결탁하고 네 아버지 도타르 총독과 연락해서 뭣하게?"
가미인이 철렁 가슴이 내려 앉아 백 미인을 바라본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백 미인은 속속들이 가미인의 행적을 알아 이죽거리고 있다. 백 미인이 웃으면서 자두 묻은 손을 털고 가까이 온다.
"봉호 받았다고 좋아한다고? 생각 좀 하고 사는 것이 어떤가? 내가 틀리고 네가 옳다고 가(可)자를 받았다지, 결국 네 봉호가 나에게 얽혀서 내가 없다면 의미도 흐지부지되는 것인데 가미인은 어찌 기뻐하지? 황상의 마음을 정말 읽은 건가? 제법 귀여운 짓거리를 해서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실망이군. 나는 책봉 소식을 듣고 아직 태양전 주인의 마음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오히려 확인 받아서 기분이 좋았지. 아직 폐하는 나를 그리워 하는 것이다. 총애하는 가미인을 품에 안고도 나를 생각하다니 아, 폐하의 마음에 내 마음이 움직이는 군.'
구 화가 버럭 소리지른다.
"닥쳐라!"
아랑곳하지 않고 백 미인이 정색을 하곤 말한다. 그 얼굴이 놀랍도록 싸늘하고 하얬다.
"아직도 폐하가 말을 타는 것을 좋아하나? 같이 말을 탄다고? 그러면 말 하나에 같이 올라간 적이 있나? 사치를 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당연하지, 거짓된 네 모습을 들키면 폐하는 널 싫어할 때니까. 너는 가짜다. 폐하가 너에게 패물을 주었나? 황룡패용을 허락했어? 아니면 너에게 네 이름을 딴 화원을 선물한 적 있어? 주석 2*화화원은 어디에 있지? 없지? 당연히 없고 말고, 너는 대용품이니까. 오직 나의 대용품. 너는 네 이름을 딴 화원에서 폐하와 사랑을 속삭인 적이 없을 것이다. "
울컥한 가미인이 백 미인의 멱살을 잡고 소리친다. 백 미인이 창백하게 웃으며 그를 본다. 가미인이 백 미인을 죽일듯이 노려보며 소리친다.
"사랑도 잃고 이제 뭣도 아닌 네 놈이 할 말이 아닐텐데 너야말로 거지 같은 집안에서 황제의 은혜로 입에 풀칠하게 된 요부면서 저 뱀 같은 입을 아직도 놀리는 구나! 정녕 이 혀를 뽑히고 싶으냐?"
백 미인이 그 때 무섭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파를 만들지 않고 패거리를 짓지 않는다. 오직 나 백 영선 이 몸 하나로 귀비에 올랐다! 황궁 음습한 뒤켠에서 편을 가르는 편협한 짓거리는 하지 않아. 앞으로도 내게 당파는 없고 나에게는 오직 은(恩)과 원(怨)이 있을 뿐."
그리고 다음의 말은 진심이 담겨있기에 더 소름끼치는 말이었다.
"받은 은은 이 육신이 찢겨도 반드시 갚고 원한은 이 영혼이 넋이 되어도 반드시 보복하지."
마치 독사 같이 요사스럽게 빛나는 두 눈이 가미인을 노려본다. 그 사악한 모습에 가미인이 멱살을 놓고 뒷걸음질을 치고 백 미인이 가미인의 어깨를 꽉 틀어 쥐었다. 코가 거의 마주 닿을 정도로 들이대고 숨결과 함께 속삭인다.
"나의 보복은 원수의 살점을 뜯어 먹고 간과 비장을 삼킨다. 주석 3*귀신의 눈깔을 빼서 떡을 만들고 주석 4*인간의 복중에서 태어난 돼지의 기사를 만들지. 가난하여 돌을 씹어 가면서 밥을 먹은 적이 있나? 물을 먹지 못하여 목이 부어 보았나? 죽은 시체의 손에 든 밥을 뺏어 먹어 봤나? 나무의 껍질을 벗겨 삶아 먹어 보았나? 아니면 흙으로 죽을 만들어 보았나? 진창의 끝에서 오직 내가 부귀의 끝에 섰을 때 그것을 만든 것은 화귀비였고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이 홀로 그 자리에 올랐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들을 보았으며 내 원수는 꼭 비참한 것들 중에서 가장 비참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가미인이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을 창백하게 질렸다. 백 미인이 웃음기 하나 없이 가미인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꼭 귀신과도 같았고 그 살기가 도타르에서 말을 타고 놀았던 무골인 가미인의 뼈를 서리게 만들고 몸을 부들부들 떨리게 만들었다.
백 미인이 잔뜩 겁을 직어 먹어서 새파랗게 입술이 질려가는 가미인을 혀를 차고 놓아준다. 궁녀가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는 가미인을 부축했다.
"그러하니 나와 원수지지 않는 것이 좋소."
가미인이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눈에 초점을 흐렸다. 무어라 말을 하는 궁녀가 울면서 가미인을 부축하여 만화궁을 떠나는 것을 백 미인이 못마땅한 눈으로 혀를 차며 본다.
"너저분한 무리들이 항상 있기 마련이지."
그런 백 미인을 계자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백 미인이 볼을 긁적거리더니 하품을 하고 만화궁의 내부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주석 1. 영선이가 부른 노래는 시경 위풍에 수록 된 시인 모과입니다. 유명한 한시인데 투아이모과보지이경거로 시작되는 그 시 맞습니다. 사랑시이지만 선물로 마음을 표현한다는 뜻으로 속물적인 상황에도 어울리는 시입니다. 황제가 총애하는 가미인을 위해 하사품을 내리고 편의를 봐주지만 총애를 잃은 자신에게는 박대하는 것에 영선이 자조하는 의미로 부른 노래.
주석 2. 영선은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원을 받았는데 가미인은 자신의 이름을 딴 화화원을 받지 않은 것을 조롱하는 것.
주석 3.유송의 폭군 유자업이 작은 할아버지 유의공을 토막살인하고 눈알을 꿀에 절여 떡을 만들어 귀신눈깔떡(귀목종)이라 부른 이야기.
주석 4. 여태후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모함한 후궁 척부인을 팔다리 자르고 눈을 뽑고 혀를 뽑고 귀를 멀게 하여 인간 돼지로 만든 것.
1.영선의 특징 하나가 나왔는데 영선이는 교활하긴 하지만 절대로 당파를 만들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패거리를 형성하지 않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