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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11/148)

00011 강반독보심화(江畔獨步尋花) =========================

"마마께서 백 재인 마마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셨습니다. 전번에는 귀목종과 인체를 언급하시어 오한이 가시지 않아 한동안 공포에 질리신 적도 있으셨고 이제는 문안 때도 백 재인을 피하십니다."

 궁인들이 울면서 읍소한다.

"저 백금으로 만든 해룡 비녀를 얼마나 소주께서 아끼셨는지 모릅니다. 가장 귀한 물건이라 아끼는 것이 아니라 그 담긴 마음 때문에 귀하다시며 애지중지 하시고 노비들에게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가미인의 태감이 말을 한다.

"아까 전에, 저를 안고 계시던 백 재인 마마를 호통하시고.. 저를 위험하다고 뺏으셨는데.. 하지만 백 재인 마마는 아바마마와 같이 담소를 나누시고 기분이 바로 좋아지셨,"

"되었다."

 이 상황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던 영오가 쭈뻣거리면서 말했다. 마지막으로 변호하려는 것을 이 경이 손을 올려 막고 어두운 눈으로 야윈 백 재인을 내려다본다. 맞는 말을 해서 체념을 한 건지 미동도 없이 가만히 편전에 엎드려 있다.

 상황 증거가 몹시 명백하고 들은 사람도 본 사람도 많았다. 틈만 나면 가미인과 부딪히고 싸워댔으니 이건 아니라고 하기도 민망할 수준이었다. 본디 이것은 내명부 일이라면 황후의 소관이지만 가미인도 이제 더이상 참기 힘들다며 살고 싶다며 이 경을 부른 것이었다. 사생결단을 내고자 하는 가미인이 머리를 풀고 그 앞에 엎드려 있다.

 늦은 오후라지만 밤도 아니라 후궁전에 갈 마음이 없던 이 경이 백 재인이라는 말에 무서운 얼굴을 한 채로 어가(御駕)를 타고 왔다. 그 표정이 너무나 살벌해서 류 태감마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이제 이 경은 기진맥진해서 백 재인을 바라본다. 야윈 모습이 안타깝기보다는 그 고집에 질려온다. 이 경이 한참 후에 힘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영선아. 너 왜 그러냐."

"......"

"이젠 너를 생각하면 사랑보다 미움이 앞서려고 한다..."

 이 경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나에게 함부로 말했어도 몇 번이고 너를 용서했었지. 너처럼 사랑한 사람이 없었고 너만큼 총애를 받은 이가 없었어. 하지만 너는 대체 변하지를 않는 구나."

 영선이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할 수록 울컥한 이 경이 결국 파국을 말을 한다.

"지친다. 이제."

 그리고 영선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이 경이 그를 노려보면서 말을 했다.

"할 말을 해봐라. 어디 한번 해봐."

"......"

"그 잘난 입은 왜 나불거리지 않느냐? 평소에는 하지 말래도 그렇게 놀리더니?!"

 결국 화가 터진 이 경이 옆에 있던 화병을 집어 던진다. 영선 앞에서 화병이 깨져 산산조각이 난다. 사방으로 튕기는 병조각이 영선의 흰 볼에 스쳤다. 이 경이 자기가 던지고도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으나 입을 꾹 다물고 영선을 노려 보았다. 영선이 손가락으로 슥 볼의 상처를 닦았다. 붉은 피가 검지에 묻어 나온다.

 영선이 힘이 빠져서 말을 한다.

"총애를 잃었으니 주석 5*구층석탑을 쌓아도 나는 주석 6*객씨의 오명을 쓸 것입니다. 제가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 경이 그에 흔들리는 눈을 한 채 영선을 바라본다. 항상 쾌활하고 당당하던 백 영선의 처연한 모습에 이 경이 분노를 잠시 죽인 탓이었다. 침묵하던 이 경이 말을 한다.

"과일도 이제 네 처지에 없을 건데 굶고 죽을 거냐."

"죽어도 밥을 먹지 않아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영선이 메마르게 웃으면서 이 경을 바라본다.

"저는 말하지 못합니다."

 이 경이 울컥하여 그를 바라본다. 주먹을 쥐고 몸을 부들거리는 이 경이 연민과 노여움이 교차하여 복잡한 심경으로 그를 본다. 백인일수라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과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들을 알고 있던가. 달콤한 말을 알고 있던가. 아니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빈 말이나 예쁘게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때 영선이 처연하게 웃으며 이 경을 본다. 이 경이 입을 굳게 다문다.

"주석 7*홀로 강을 걸으며 꽃을 찾으니 강가 온통 꽃으로 화사하니 이를 어쩝니까. 알릴곳 없으니 그저 미칠 지경이라 서둘러 남쪽 마을로 술친구 찾아가니 그마저 열흘 전 집을 나가 침상만 덩그렇습니다."

 낭랑한 목소리가 그 사이에 맴돈다. 청아한 목소리가 기억을 깨우고 있다. 이 경의 표정이 굳어진다.

"강 언덕 홀로 거닐어 꽃을 보고 즐기었으니 황씨 넷째딸 집, 가는길 꽃이 가득하여 천 송이 만 송이 가지가 휘어졌군요. 쫓고 머믈며 노는 나비 춤을 추고,"

 이 경이 그 때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름다운 꾀꼬리는 제멋대로 노래하였지..."

 예술에 있어서 무식하기까지한 이 경이 몇몇 외우고 있는 시들은 다 영선이 노래로 불러주거나 귓가에 속삭여준 시들이다. 특히 이 시를 잊을 리가 없었다. 지금처럼 영화원 장미가 아름다울 때... 이 경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구 화야."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이 경에 머리를 풀고 눈치를 보고 있던 가미인이 놀라서 말을 한다.

"내가 더 좋은 비녀를 줄테니. 백 재인을 용서해다오."

"예? 하오나.."

"저 아이가 다시 난장을 부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저 아이를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나 영선은 직위를 부른다. 그것에 이미 기뻐서 마음이 흔들린 가미인이다. 그가 머리를 조아리고 감읍스러운 표정을 했다.

"폐하. 저는 황상께서만 돌봐주신다면 모든 것이 다 괜찮습니다."

 이 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류 태감에게 말한다.

"가자."

"예, 폐하."

 평생 주인의 당당한 모습만을 보았지 저렇게 기가 빠지고 공허한 모습은 처음 본 계자다. 황제가 가고 가미인이 그를 노려보면서 축객령을 내리자 계자가 울면서 백 재인을 부축했다. 몸에 힘이 없는지 덜덜 떠는 백 재인이 자꾸 실족(失足)을 하는 것에 계자의 마음이 아파온다.

 그리고 계자가 백 재인을 부축하여 만화궁으로 도착하고 그 문을 닫자마자 백 재인이 침대에 앉으면서 경박하게 부채질을 하며 말한다.

"아 덥다. 계자야 부채 부쳐라!"

 계자가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백 재인을 바라보았다. 시를 읇는 주인의 모습은 유명한 문인으로서의 명성이 주사위 도박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이 그렇게 처연하고 고풍스러울 수가 없었다. 백 재인의 모습에는 하나의 품위마저 있었고 시의 일대종사라고 칭해지는 그 위대함이 묻어났으나 낮게 깔던 목소리가 어느새 앵앵 거리는 경박한 목소리가 되었다. 턱 하니 다리를 벽에 올리고 더위에 녹아나서 추한 자세를 한다.

 계자가 사기를 당한 것 같은 심정에 넋을 잃어 중얼거린다.

"백 재인 마마..."

"응? 왜?"

"대체 뭘 믿고 이러시는 거예요..?"

 계자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뒷 배가 있으세요...? 아니면 대체...? 뭐...?"

 순간 혼란이 크게 와서 말조차 못하는 계자를 바라보며 백 재인이 씩 웃음을 흘린다.

"너 내가 맹상군 이야기 끝까지 안 해주었나?"

"예?"

 백 재인이 땀을 닦은 손수건을 대야에 던지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맹상군이 잠시 조나라 평원군에게 몸을 의탁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날 조나라의 현 하나를 지나갔지 뭐야. 그런데 거기 사람들이 전국사군자라는 명성을 가진 맹상군을 보러 몰려들어왔다가 실망해서 욕을 한거지."

 뜬금없이 말을 하는 백 재인에 계자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나 백 재인이 눈빛을 번뜩이면서 말을 이었다.

"키도 작고 초라하다고 비웃는 사람들을 어떻게 했는 줄 아느냐?"

"어떻게.. 했습니까?"

"다 죽였다."

 백 재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현을 밀었다. 다 죽였다."

 계자가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백 재인을 바라본다. 백 재인이 입술 끝을 끌어 올리면서 말을 한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다. 계자야. 복수가 아니지. 그건 명예 때문이다. 명예가 훼손당했을 때 가만히 있는 것은 군자의 덕(悳)이 아니야. 공자 제자인 주석 8*자로도 명예를 위해 검을 휘둘렀지. 그건 가만히 있으면 사람이 얕잡아 보기 때문이야. 그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겁쟁이의 행위이기에 명예를 위해 칼날을 세우는 것이다. 계자야."

 계자가 잘은 모르나 어쩐지 몹시 두려워져서 몸을 떨면서 말을 했다.

"무섭습니다."

 그제서야 백 재인이 기세를 풀고 능글하게 말했다.

"그럼 부채 좀 부쳐주거라. 재밌는 얘기 해줄게."

"그런 얘기 싫습니다. 정말 재밌는 얘기를 해주실것이죠?"

"그럼, 그럼.. 그러면 무측천이 후궁전을 다스린 이야기를..."

"마마! 제가 아무리 무식해도 무측천은 압니다!"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또 하려는 백 재인에게 면박을 준 계자가 토라진 얼굴로 부채질을 한다. 백 재인이 입맛을 다시면서 말을 했다.

"계자야. 좀 더 세게. 더워 죽겠다."

============================ 작품 후기 ============================

주석 1. 동양 불교문화권에서 공덕을 쌓기 위해 탑을 쌓는 행위가 있었다. 구(九)는 많음을 뜻하는 숫자이자 길한 숫자인 삼(三)의 세배이므로 길함을 상징한다.

주석 2. 유모 객씨가 자신의 딸을 황후로 만들기 위해 황후를 저주하여 미치게 만든 사건. 즉 구층석탑을 쌓아도 주술을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오명을 쓸 처지라며 모함당한 자신의 처지를 고변하는 것.

주석 3. 두보의 강반독보심화, 여기서는 백 재인이 지은걸로(한시 어려워영ㅠㅠ) 강반독보심화= 홀로 강변을 걸으면서 꽃을 찾는다는 의미로 영선은 황제가 후궁전 미인들을 고르는 것을 질투하고 있노라 성토하는 의미와 이 시를 함께 한 추억을 상기시려는 목적으로 읇었다.

주석 4. 공자의 제자인 자로는 협객이여서 사적 보복을 많이 행했다.

1. 댓글 감사합니다. 헉헉 짱좋아.

2. 도원향가 연재는 월수금, 악마와 배추는 화목토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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