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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148)

00013 강반독보심화(江畔獨步尋花) =========================

 백 재인이 가미인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굳은 입술을 연다. 그 목소리는 가라앉은 배와 같았고 그 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그는 동요하고 있었다.

"계자야..."

"예, 예.. 마마."

"너는.. 붉은 장미를 꺾어 오거라."

 한눈에 보아도 궁인을 따돌릴려는 행위에 가미인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린다. 계자가 그를 걱정하여 머뭇거릴 때 백 재인이 그 때 크고 무서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어서!!!"

"예, 옛!"

 불호령에 호다닥 달려나가는 계자를 가미인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로 바라본다. 가미인이입매를 비틀며 잔뜩 오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백 재인을 바라본다. 가미인이 그 때 입술을 열고 말했다.

"그래, 잘 훔쳐 보았,"

"얼자."

 가미인이 그 말에 순간 표정에 살기가 감돌고 화가 머리에 뻗쳐 이성을 잃었다. 가미인이 분노로 이성을 잃고 백 재인의 뺨을 내려친다. 성인 남성에 도타르 넓은 평원을 뛰놀던 무골 출신인지라 그 힘은 백면서생 출신인 백 재인을 저 멀리 쓰러지게 만들게 할 정도로 강하고 억셌다. 그러나 어쩐지 무언가 제대로 타격이 없이 허전한 것같은 느낌에 가미인이 분이 풀리기보다는 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면서 백 재인을 내려다 보았다.

"이 개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천첩의 자식이 감히 양인에게 손을 대다니.."

 백 재인이 음울한 얼굴로 가미인을 조롱한다. 백 재인이 쓰러지면서 목에 감긴 천을 풀고 허리춤에 쑤셔 넣었다.

"폐하의 총애가 출신 성분의 차이를 뒤집는군."

 대체 한가의 자제 주제에 도타르 총독의 자식인 본인에게 천하다고 하는가. 천첩 출생이여도 한 번도 존귀함을 의심받지 않던 가미인이 열받아서 백 재인의 멱살을 잡았다.

"너 정말 죽고 싶으냐? 너 따위 당장 냉궁으로 보내도 신경쓰지 않아. 네가 네 발로 복을 걷어 차서 넌 이제 끝이라고, 끝이라고 이 새끼야!! 더 이상 황제는 널 신경쓰지도 않는다고!!"

"하, 그럴 줄 알았지. 정사를 거기서 한 것도.. 궁인을 불러 내게 그걸 보여준 것도, 다 의도한 거지? 너 애초에 나를 깔아 뭉게고 짓밟고 싶었지?"

 그리고 이어진 말에 가미인의 얼굴에 황당함이 감돈다.

"너 폐하를 사랑하긴 하는 거냐?"

 그 말에 가미인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하!"

 그는 분기가 거의 사라지고 오직 황당함만이 남아 백 재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한다.

"세상에. 사랑이라니."

"그럴 줄 알았지. 넌 폐하를 이용한 거니까. 권세만이 네 목적이었으니까.."

 백 재인의 눈이 날카롭게 홉떠졌다. 그에 가미인이 목소리를 높여 그를 비웃었다.

"대체 이 후궁전에 아직도 사랑을 논하는 사람이 남아 있단 말인가? 그렇게 순진한 말을 도타르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넌 사랑하, 하하하! 정말 웃겨서 말도 안나오는 군. 유치해서 말하기도 민망해."

 가미인은 비웃었고 백 재인은 묵묵히 그것을 들었다. 백 재인은 거기서 굳은 표정으로 가미인의 선이 굵은 준수한 얼굴을 바라본다. 가미인이 미친듯이 웃으면서 그를 조롱했다.

"너도 못생겼다고 했잖아? 안으면 낭창하고 피부가 희고 부드러운 여성 음인을 안으면 안았지 대체 그 거칠고 커다란 몸뚱아리가 뭣이 좋다고 내가 그를 안겠느냐? 사랑? 미치겠군. 대체 그걸 어떻게 사랑한다고? 응? 그 향이야 어디 사람을 헤벌레 꼬신다고 하지만 그 부담스러운 덩치에 예쁜 맛도 없는 것... 어느 것이 마음에 든다고,"

"닥쳐!!! 그 입 찢어버리기 전에!!"

 그 순간 백 재인의 눈이 뱀처럼 사악해지고 날카로운 살기가 스친다. 가미인이 순간 마음 속에 다시 볕처럼 든 두려움에 뒷걸음질을 한다. 영선이 살기가 등등하여 빠르게 손을 뻗어 가미인의 목을 조르려는 그 순간 지독히 감정 없는 목소리가 그를 저지했다.

"그래."

 가미인이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몸을 떤다. 백 재인이 그 목소리가 든 쪽을 보지 않고 가 미인의 얼굴 앞에서 목을 조르려 뻗은 손을 말아 감고 꽉 쥔다.

"그렇다고."

 가미인이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서 털썩 주저 앉는다.

"네 본심이 그랬단 말이지."

"폐, 폐하.."

 흐트러진 차림새에 가미인이 덮어준 장포를 걸친 이 경이 그 곳에 있었다. 그는 인형처럼 아무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 계자가 장미를 한바구니 든채로 당황하여 서있다. 이 경이 지독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런 거지."

 이 경이 비틀린 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후궁의 입에서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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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진짜 너무 귀여워. 아아, 진짜 어떻게.. 정말 진짜...'

 이 경은 잠시 누워서 옛날의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영선은 황홀한 표정으로 이 경의 귀를 앙 깨물고 몸을 희롱하고 그 몸에 온갖 꽃물이 들게 저 정원에서 나신으로 그와 뒹굴었다. 이 경의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한다. 이 경의 귓가에 영선이 속삭인다.

'사랑스러워요, 폐하.. 그 누구보다..'

 편전에 꿇어 앉은 영선의 야윈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식사를 거르고 무엇을 제대로 챙겨먹지도 못한 영선의 옷 밖에 언뜻 보이는 몸은 뼈가 드러나게 마른 상태였다. 이 경의 가슴이 더욱 더 심하게 오르락 거린다. 이 경의 몸이 떨린다. 아직 앳된 영선이 씩 웃으면서 이 경의 몸에 제 몸을 겹친다. 이 경의 몸을 탄 영선의 몸은 새하얗고 그 살결이 몹시 부드럽다.

'못생겼어.'

 이 경이 그 말 뒤에 이어진 상황을 상기한다. 영선이 그 말을 하고 이 경의 뺨을 쓰다듬고 꿀을 발라놓은 것만 같은 달콤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이 경의 모습에 웃으면서 그 몸에 입을 맞추면서 나왔다.

'귀여워, 귀여워요.. 내 음인.. 나만 보고 싶어.

'히익, 익!! 놔!! 놔!!'

'아아. 진짜.. 정말로.. 참을 수 없게.. '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인다.

'...미치겠네...'

 정자에 대자로 뻗어 있던 이 경의 몸이 떨려왔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이 경의 눈이 뜨인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팽겨친 옷들을 주섬거리면서 주워 입었다. 그의 귓가에 달콤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린다.

'..'

 교차하여 공허한 눈을 하던 백 재인의 쓰라린 목소리가 들린다.

'홀로 강을 걸으며 꽃을 찾으니..'

 이 경이 침묵하며 장미를 찾았다. 새로 증축을 하고 공사를 했어도 길은 여전했다. 이 경이 작년에 영선과 함께 밟던 길을 홀로 걸었다. 이 경이 상념한다. 장미를 닮은 화려한 머리카락을 한 그 어린 청년이 밝게 웃으면서 장미 사이에 있었다. 어떤 것이 장미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싱글거리며 장미를 구경하던 영선이 다가와서 이 경의 허리를 끌어 안고 입을 맞춘다. 결국 대거리를 하다가 이 경은 의자에 앉고 영선이 그 곁을 서성이며 시를 읇었다.

'강가 온통 꽃으로 화사하니 이를 어쩝니까.'

 이 경이 화려한 장미를 찾았고 그리고 익숙한 여인이 그 앞에서 서 있는 것을 보고 침묵했다.

"너는.."

 익숙한 얼굴에 이 경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 경을 알아본 여인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여인의 치마에서 장미가 굴러 떨어진다. 이 경이 순간 그 여인과 같이 있을 사내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 모습에 눈썹을 꿈틀거린다. 이 경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궁중의 장미를 따는 것은 죄다! 그것은 나의 것이다."

 그 유치한 말에도 목숨이 오가는 것이 궁녀의 삶인지라 계자가 오들거리면서 몸을 떨었고 이 경이 그에 더 소리지르고 화를 풀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네 주인은 어딨느냐."

 마침내 이 경의 마음이 흘러나왔다. 계자가 오들 거리면서 말을 했다.

"백 재인 마마께서 장미를 꺾어 오시라고 했습니다. 지금 가려고 했습니다."

"혼자 두었단 말이냐?!"

 이 경은 버럭 소리지르면서 말했다.

"정말 버릇이 없구나! 감히 윗전을 혼자 두다니! 빨리 가자!"

"예?"

 같이 가겠다는 이 경의 말에 계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눈에 쌍심지를 켜는 이 경에 놀라 고개를 푹 숙인다. 이 경이 성큼거리면서 발걸음을 했다.

 이 경은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사실 심장이 크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영선이 장미를 꺾어오라고 했다는 것에 마음이 풀리고 있었다. 그것이 백 재인이 이 경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좌였기 때문에, 영선이 이 경처럼 이 맘쯤의 장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였기 때문에 이 경은 그에 대한 분노가 사르르 녹고 자존심마저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남은 것은 미친 듯한 그리움이다.

 그리고 계자를 따라간 이 경이 발걸음을 멈추고 창백하게 얼굴을 질렸다. 놀라서 뭐라 말을 하려고 하는 계자를 멈추고 이 경이 묵묵히 그것을 응시한다.

"너도 못생겼다고 했잖아? 안으면 낭창하고 피부가 희고 부드러운 여성 음인을 안으면 안았지 대체 그 거칠고 커다란 몸뚱아리가 뭣이 좋다고 내가 그를 안겠느냐? 사랑? 미치겠군."

 투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무인이었던 가미인이 독랄한 표정으로 영선을 몰아 세우고 있었다. 영선의 뺨이 붉어져서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다. 가미인은 이 경이 전쟁터에서나 들어볼 수 있었던 천박한 말로 영선을 모욕했다. 이 경이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진 가미인의 말에 이 경의 피가 식었다. 조롱하면서 영선을 비꼰다. 단정하고 공손했던 목소리가 광인처럼 난잡하고 천인보다 비열했다.

 이 경이 가미인의 말에 침묵하고 또 침묵한다.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 수록 이 경의 머릿 속이 싸늘해지고 마음이 얼어붙는다. 그리고 마침내 가미인이 못을 박았다.

"대체 그걸 어떻게 사랑한다고? 응? 그 향이야 어디 사람을 헤벌레 꼬신다고 하지만 그 부담스러운 덩치에 예쁜 맛도 없는 것... 어느 것이 마음에 든다고,"

"닥쳐!!! 그 입 찢어버리기 전에!!"

 영선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지르면서 그 말을 막는다. 살기를 흘리면서 가미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이 경이 막았다.

"그래."

 몸을 떨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가미인을 노려보면서 이 경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그렇다. 궁중에서 살아온 이 경이 왜 몰랐을까. 궁중에서 한 평생 살았던 이 경이 왜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까. 저 후궁의 알량한 속삭임이 다 권세를 원하는 것이고 그 구애가 제가 아닌 부귀영화를 향한 것이라는 것을. 이 경이 정신을 차리고 가미인을 바라본다. 가미인이 넋이 나가서 두려움에 떨며 그를 보고 있었다.

"네 본심이 그랬단 말이지."

"폐, 폐하.."

 뭘 바랐을까. 이 경은 그의 말을 곰씹는다.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차갑게 타오르는 불과 같이 그를 바라보고 냉정한 목소리로 분노를 표현한다.

"그래, 그런 거지."

 이 경이 비틀린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후궁의 입에서 사랑이라."

 말마따나 음인이면서도 피부도 거칠고 크기만 커다란 자신을 좋다고 안을리가. 누군가 사랑할리가 없지. 잘생기고 다른 음인처럼 부드러운 몸을 지닌 것도 아니고 나이 먹고 투박한 자신을 사랑해서 좋아할리가. 널린 게 어여쁜 궁녀, 궁인들이고 도타르 총독 아들이라면 내로라하는 낭창하고 허리가 얇고 부드러운 음인 미녀들을 수없이 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선에게 못생겼다, 못생겼다 소리를 들으니 예쁘다고 어름받는 게 좋고 사랑한다 속삭이는 것이 듣고 싶었나보다. 귀를 막고, 눈을 가렸으니 아무 것도 모를 수 밖에.

 이 경이 피가 식어서 가미인을 바라본다. 배신감이 증오가 되어 이 경을 장악한다. 이 경이 지독한 증오를 안고 나직히 말한다. 가미인의 몸이 벌벌 떨렸다.

"네가 정말 잘못한 것은.. 총애를 얻으려 함에 지나지 않고 나의 마음을 가지고 놀려 했던 것이다..."

 이 경이 감정 없는 눈으로 가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황제가 분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내가 그 두 눈만은 뽑지 않고 남겨둘 것이므로."

============================ 작품 후기 ============================

1. 그저 삘이 받아서 한편 더 써옵니다.. 코멘 죠아영ㅠㅠㅠ♡ 나를 자꾸 소환해..오늘은 연재일이 아니었는뎅ㅠㅠ 몰라몰라

2. 내일 자정 연재입니다!

3. 가미인 OUT! OUT~~

4. 황후 외모 자세히 설명하자면 키 198CM에 얼굴 위는 천하제일미인인데 얼굴 아래는 완전 나이스바디인 짐승같은 무인 ST 입니다. 무려 베이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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