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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17/148)

00017 강반독보심화(江畔獨步尋花) =========================

 주홍머리의 청년은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검은색 긴 비단과 금사로 새긴 국화 사이의 봉황. 단정하게 틀어 올린 주홍색 머리를 덮고 있는 흔들리는 섬세한 금사로 장식한 짙은 남색의 보석으로 장식한 관, 새끼 손톱을 덮고 있는 호갑투는 섬세한 포도덩쿨이 장식된 황금으로 만든 것이었고 귀에는 흑색 금강석으로 만든 보석 다섯개를 연골과 귀 부분에 착용하고 있었고 귀를 덮는 황금색 장식을 걸치고 있었다. 눈꼬리가 길고 얼굴이 창백하다. 창백한 낮은 어떻게 보면 기이해보였고 어떻게 보면 위압감이 넘쳤다. 확실한 것은 청년의 모습이 누구보다 고귀해보인다는 것이었다. 권세만큼 화려한 복식을 한 청년은 만화궁(萬花宮) 신비(宸妃)로 총애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백가 영선이었다.

"으하하하하!"

 사랑하는 후궁과 화해한 이 경은 그 어느 때보다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 경의 옆에는 희 치가 앉아 있었고 희 치의 바로 옆이나 살짝 아래에 영선이 앉아 있었다. 평소에는 오발선빈(烏髮蟬殯)의 머리카락을 풀어놓는 희 치였으나 공식적인 자리라 화려하지 않은 관을 쓴 상태이다. 워낙에 머리가 윤기가 나고 부드러워 단단히 묶었음에도 머리가 느슨하게 내려오고 있었고 조금은 흐트러져 있다. 그럼에도 단정하고 기품있는 얼굴과 꼿꼿한 자세에서 나오는 고아함은 여전했으며 가벼운 문사복을 입었던 평소와는 다르게 황금색 길복을 입고 있어 그 은은한 위엄이 극에 이르고 있었다. 눈은 무심했으나 크고 붓으로 섬세하게 그린듯하였고 색이 뚜렷한 검은색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으나 그 모양이 길고 아름답다.

 약간은 어두운 연회장 안에서도 매끄러운 피부는 흰 빛이 은은히 발하고 있었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을 아래로 뜬 모습이 마치 단아하고 발취마다 향기가 나는 선인과도 같은 모양새라 이 세상의 것 같지가 않다.

 경국지색이자 고즈넉한 목련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희 치와 장미같이 화려하고 가시 돋힌 듯한 매력을 지닌 영선이 같이 앉아 있으니 사실 그것은 무척 보기가 좋았고 또 황제인 이 경 또한 체면이 서는 듯하여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부인들이란 권세의 증거이기도 했으니.

 그리고 그 때문에 곤란한 사람이 있었으니 몹시 수려한 외모의 사내였다. 이 경의 외양이 그을린 피부가 눈에 띄고 선이 굵직하게 생겨 언뜻 거칠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그 사내는 언뜻보면 이 경보다 훨씬 나이가 적어 보였고 피부가 희고 보드라운 귀공자였다. 눈매가 공작처럼 수려하고 예쁘다. 단정한 외모에 콧대는 오똑하고 입술은 작고 머리는 삼단같이 검은 것을 흑단 비녀로 틀어 올리고 있으니 마치 매화와 같이 곧으면서 그 주변에 향을 뿌리는 것만 같이 단아하다. 그 인상이 선비와 같고 온화하니 이 경과는 사뭇 달랐다.

 그가 바로 당왕 이 작교로 이 경에게 붙잡혀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경은 그 날 따라 과음하여 이복형인 당왕 이 작교를 붙잡고 술을 먹이고 있었다. 이 작교가 곤란한듯 하면서도 주는 술을 곧이 곧대로 받아 먹는다.

"폐하, 이제 더는 안 들어갑니다."

 이 작교가 결국 뒷말을 흐리며 말을 한다. 소성황후의 아들이자 계모인 인온황후에게 동생이 살해당한 그는 태자자리를 사양하여 이 경에게 양보한 공(功)이 있었다. 그러니 이 작교는 이 불쌍한 형을 많이 챙겨주는 한편 어쩔 수 없이 경계를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적장남인 이 작교다.

 이 경은 피식 웃으면서 술잔을 내려 놓았다.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소."

 그 말에는 이 작교도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이 작교가 창백해진 표정으로 술을 다시 마신다. 그제서야 이 경이 눈에 힘을 풀고 다시 헬렐레 웃었다. 그 상황을 말릴 수 있는 영선은 굳이 기분 좋아하는 이 경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고 어쩐지 희 치는 묵묵부답으로 술만 마시고 있었다.

 희 치와 영선은 연회 시작 전에 대담을 나눴다.

'치아야.'

 영선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희 치는 그 말에 베인 살기를 느껴 침묵한다.

'나 약속 지켰다.'

 희 치를 올려다보는 고양이를 닮은 두 눈이 번뜩인다. 희 치는 그런 눈을 할 때의 영선이 어떠한지 안다. 희 치가 술잔을 기울인다.

'너도 지켜.'

 영선이 환한 장미처럼 웃으면서 희 치의 옆에서 술을 홀짝인다. 호갑투를 낀 손가락이 여인네처럼 여상스럽게 들려진다. 그 둘의 방관 하에 술에 떡이 되어 버린 이 작교가 결국 이 경에게 사정한다.

"폐하. 잠시만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 작교를 바라보는 이 경은 이 작교가 다시 사정을 하고마서야 고개를 까딱거려 그를 허락했다. 영선이 그 때 고개를 절레 저으면서 말한다.

"첩신도 과음하였는데 잠시 바람 좀 쐬겠습니다."

 이 경이 뚱한 표정으로 보는 것에 희 치가 그 때 끼어든다.

"신비가 술에 취하면 어떻게 되는,"

"가라."

 그제서야 백 영선의 전설의 주둥아리와 충격과 공포의 주사를 깨달은 이 경이 황급히 그를 보낸다. 애주가인 백 영선이 술에 취할 때마다 짓거리는 행동들은 모두 전설로 남을만한 행동들이었다. 그것을 다룰 자신이 없는 이 경이 질색 팔색을 하면서 그를 내보낸다.

 영선이 해가 저물어서 등불이 호화스럽게 켜진 황궁의 밤을 바라본다. 영선은 멀리 나가지 않고 처마 아래에 서서 묵묵히 황궁을 지켜보았다. 몹시 화려하고 웅장한 이 곳 황궁이야 말로 온갖 부귀영화의 원천이며 가장 존귀한 곳이다.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영선이 속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황궁에서 호화스럽게 살 줄도 몰랐다. 평생 사치와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지금 영선의 손에 끼어진 호갑투는 순금이었고 목에는 홍마노가 통짜로 걸린 옥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영선이 상념에 빠질 무렵에 저 멀리에서 비틀거리면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영선이 그를 눈치채고 바라본다. 이 작교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고개를 휘휘 젓고 있었다.

'불쌍한 것.'

 영선이 순간 측은함에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가온 그에게 인사를 한다. 도올에서 2품 비(妃)는 군왕과 똑같은 녹봉과 대우를 받기에 친왕인 이 작교가 영선보다 높았으나 후궁은 황제와 가깝기에 사실상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니 후궁과 신하들이 만약 마주치면 신하들이 먼저 인사를 했고 후궁과 황족이 마주치면 상황을 보아서 서로 먼저 예의를 갖추어 분란을 없애는 편이었다.

 영선은 구 화에게 자존심을 세웠으나 그것은 그가 먼저 적의를 내보였기 때문이었고 딱히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 성격이다. 꽤나 그런가 보지, 라는 말을 일삼으며 설렁설렁하게 넘어가는 편인데다가 그는 이 작교를 연민하였으니, 이 경에게 경계받는 것도 모자라 받지 않는 몸에 술을 퍼마시며 이 경의 비위를 맞추는 그 모습이 불쌍할 다름이라 괴롭히기도 싫었다. 영선이 먼저 예의를 차려서 고개를 숙인다.

"괜찮으신지요?"

 당왕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흠칫하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 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 당왕이 꼬인 목소리로 말을 한다. 어물한 목소리가 술에 잠겨 있었다.

"화해를 하셔서.. 다행입니다."

 영선은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그 때 영선의 몸이 멈칫한다. 그가 갑자기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를 들은 이 작교의 몸이 잠시 굳었다.

"주석 14*멀리서 바라보니 아침 노을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같고, 가까이서 바라보니 녹빛 물결 위로 피어난 연꽃과 같네."

 이 작교가 잠시 표정을 굳혔다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신비 마마의 낭송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품위가 있군요."

 그러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어깨를 살짝 스치면서 제 옆을 지나는 이 작교를 돌아본다. 영선이 잠시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떠보았는데 안 넘어가는군.'

 백단향이 코 끝을 설쳤다.

============================ 작품 후기 ============================

주석 1. 조식의 낙신부로 수신 하백의 아내인 복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으나 민간야사에서는 조식이 문소황후의 아름다움을 은유하여 찬양한 시로 알려졌다.

주석 2. 복선을 발견해보세용 *^^* 맞추시면 내일 자정에 다음편을 올리겠나이다.

1. 여러분의 댓글로 응원하기를 응원합니다bb

2. 영선이 메인공 맞아유! 영선:황후:타후궁 비율이 65:25:10 정도가 될 예정입니다.

3. 영선이 미남 맞습니다. 다만 워낙에 미남 투성이인 후궁이라 영선이는 상대적 못생김(ㅠㅠ) 다른 사람들이 귀티나게 잘생기거나 단정하거나 뭔가 천상미남인 것에 비해서 영선이는 취향이 갈려요. 평범하게 있을 때는 피부 좋고 중상급의 잘생김이지만 뭔가 족제비나 뱀 같이 비열하고 가벼워보이는 인상이여서 어르신들이 '남자 새끼가 생긴게 저게 뭐냐!!'라고 버럭하실 스타일.. 체격도 키는 큰데 채식주의자라 호리하고 길쭉한 편.

 특히 화려하게 치장을 하면(즉 아이라인을 그리면) 귀기서리고 위압감있는 귀인, 독특하고 요사하지만 화려한 미남으로 변합니다. 꾸밀 때는 또 다른 후궁들보다 훨씬 빛나는 편. 패션 센스나 감각이 뛰어나서 상당히 자기를 잘 꾸밀 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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