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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21/148)

00021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 =========================

 동육궁에는 연못이 하나 있다. 그곳은 수회지 만큼 큰 곳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 연못 둘레길을 따라 온갖 진귀한 꽃들을 심어 놓아 무척 그 경관이 빛나고 아름다웠다. 원래 한산한 연못이었다가 총애하는 화귀비의 이름을 딴 영화원으로 명명되었다가, 폐서인된 구 화의 이름을 딴 화화원이 되었다가 다시 영화원이 된 곳이었다.

"하하하, 거기 있느냐?"

 그리고 영화원의 주변에 시위들과 내관들이 둘러 쌓여져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가끔 웃음소리나 민망한 소리들이 담장을 벗어나오는 일은 있으나 시위들의 표정은 무덤덤했고 내관들은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영화원은 잘 통제되었고 궁중사람들은 그곳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영화원은 관심을 가져서는 안되는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폐하!"

 백 영선이 웃으면서 이 경을 부른다. 눈을 흰 천으로 가린 이 경이 영선이 들리는 목소리에 비틀거리면서 그 쪽을 향해 다가간다. 평소와 다르게 간편하고 밋밋한 흰옷을 입고 장신구도 끼지 않은 영선은 웃으면서 이 경의 손을 요리조리 잘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쪽으로 가까이 오는 이 경을 바라본 영선이 은근한 미소를 짓더니 이번에는 그 손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이 경의 손이 영선의 팔뚝을 단단하게 틀어잡고 기뻐서 소리쳤다.

"잡았다! 이 족제비 같은 놈!"

 영선이 웃으면서 이 경의 안대를 벗긴다. 이 경이 씩 웃으면서 영선의 옷깃을 손가락으로 벌렸다.

"자 잡았으니, 이제 네가 벗을 차례다."

 그러고보니 영선이 입은 옷은 사가에서 입는 옷이라기엔 너무나도 얇았다. 화원 여기 저기에 장신구며 옷들이며 널부러져 있었고 이 경 또한 용포를 던지고 속에 받쳐 입는 내복만을 입은 상태였다. 내복이라 하더라도 황제의 정복인지라 화려하고 제법 일상복 같다. 영선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상의를 벗기를 원하십니까? 하의를 벗기를 원하십니까?"

 이 경이 잠시 고민하더니 씩 웃으면서 영선의 허리띠를 잡고 고름을 잡아 당기면서 말을 했다.

"아랫도리부터 보자구나!"

"안되는데~"

 말은 안된다 하지만 표정은 느물하다. 영선이 이 경의 손을 밀치는 듯 마는 듯 손을 잡고 힘을 약하게 민다. 이 경이 그 교활한 손길을 억지로 떼면서 바지를 벗기려는 순간이었다.

"폐하! 소 승상 알현 청하옵니다!"

 이 경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진다.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오 상환의 말에 영선의 웃음이 사라진다. 순식간에 식어버린 분위기에 영선은 볼을 긁적이다가 이 경의 옷을 주섬거리며 주워 이 경에게 다가갔다.

"팔 들으세요."

"에이.. 하필이면"

 이 경은 궁시렁 대면서도 팔을 들었고 영선이 능숙하게 이 경의 옷을 입힌 다음 자신도 대충 걸쳐 입었다. 말그대로 그냥 대충 입은 것이라 고름도 엉망으로 묶여 있고 머리도 비녀도 저 멀리, 관도 저 멀리 간 상태이다. 영선이 이 경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씩 웃으며 속삭였다.

"만화궁에서 더 재밌게 놀면 되죠."

"제기랄.. 다 벗길 수 있었는데.."

"그 전에 내가 먼저 다 벗길 게 뻔하죠. 아, 빨리 가요. 날 황제 홀리는 요부로 만들 건가?"

 황제에게 무척 무례한 말이지만 이 경은 영선의 그런 언행을 자주 봐주었다. 영선은 똑똑해서 예법 상궁마저 칭찬할만큼 황궁의 어려운 의례와 예법을 잘 익혔으나 이 경과 단둘이 있을 때는 그게 거짓말처럼 느껴질만큼 무척 건들거렸다.

 이 경이 어기적 거리면서 영화원을 나서고 십 년이 넘게 호위장으로 일한 오 상환과 류 태감이 그 뒤에서 그를 따랐다. 백 영선이 흐트러진 옷차림을 하고 영화원의 문에 기대어 이 경을 본다. 오 상환이 그런 영선과 잠시 눈을 마주쳤으나 이내 황급히 시선을 떼고 이 경의 뒤를 따랐다.

 영선이 웃는 낯으로 그 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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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선이 밤에 오라고 했으니 당연히 이 경은 왔다. 그러나 영선은 당황해서 이 경의 어깨를 잡고 말을 했다.

"아니 왜 화났어요?"

 이 경이 뜬금없이 버럭 소리질렀다.

"이 개잡놈들!!!"

 화난 얼굴로 씩씩 대는 이 경은 영선과 화해한 이후로 처음보는 무서운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아니 좋게 달래서 국무 보러 가라고 했는데 왜 저렇게 들떠서 오는 것인가. 영선이 황당하기도 하고 또 이 경이 정말로 노한 듯 하여 그를 의자에 앉히고 살살 달래서 차를 주었다.

 국화가 차 안에서 피어나는 것을 보고 이 경이 또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버럭 소리질렀다.

"차는 무슨 차야!! 술 없어?"

 영선이 그 때 조용한 얼굴로 말을 했다.

"저는 폐서인되기 싫습니다."

"뭐?"

"술을 먹는다면 저도 당연히 먹을 건데, 정말 술을 들일까요?"

 그 말은 효과적인 위협이였고 이 경은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술에 취해 황궁 담을 넘어 나막배를 훔쳐 미친듯이 질주를 했던 백 영선의 과거를 떠올리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폭도 넓은 강이라 그 가운데에 표류된 영선은 술에 취해서 울면서 이 경을 불러댔고 그 보고를 받은 이 경은 환장해하면서 오밤에 병사들을 불러 영선을 구조했었다. 그 일을 상기시킨 이 경이 끙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집었다.

'수영도 못하는게 뱃놀이는 엄청 좋아해요.'

 아직도 그 야밤에 오들오들 떨면서 '폐하, 살려주세요!' 이 소리나 지껄이며 흑흑 대며 주홍색 머리통을 빼꼼 거리던 것을 생각하면 이 경의 혈압이 솟아 올랐다. 아니 경비도 삼엄한 곳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그 날 이후로 황궁이고 조정이고 발칵 뒤집어 엎어져 이 경도 수습하느라고 무척 곤란했었다.

 그런 이 경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선이 팔짱을 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영선이 이 경을 빤히 바라보다가 툭 말을 내던진다.

"소 승상? 오 승환? 아니면 황후?"

 만난 사람이 소 승상이고, 눈빛이 불손했던 것이 오 승환이고, 무슨 일만 해도 이 경을 도발하는 것이 황후이니 그 셋 중 하나일 것이리라 짐작한 영선이 말을 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 경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탁상을 쳤다.

쾅!!

"셋 다!!"

 백 영선이 그 말에 진심으로 감탄한다.

"와 진짜 열받겠다."

"너!! 그 느물거리는 말투!!"

"아, 알겠어요. 안 그럴게."

 울컥한 이 경이 손가락질 하는 것에 영선이 손을 휘둘러 말리고 이 경을 진정시켰다. 이 경도 영선이 말만 그렇게 하지 사실 이 경에게 신경을 쓰고 생각보다 조언도 진지하게 해주는 것을 알아서 꿍하게 앉아 있다가 못 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오 상환이가 나보고 걸주란다."

 영선이 끙 소리를 내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정도는 이해가 가는 선의 이야기다. 사실

 다른 것도 아니라 옷 벗기 숨바꼭질이라니, 영선이야 정치 이런 일에 신경쓰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하였으니 모르는 일이라 쳐도 고지식한 양반들 사이에서는 출신도 안 좋은 영선이 요부니 망국절색(亡國絶色) 이니 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하지.'

 오 상환이 충심에 가득차서 이 경에게 말을 하고 다혈질인 이 경은 열 받아서 한비 때문에 그러는 거냐? 외척이니 뭐니 거론하면서 난리 피웠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 경은 버럭 소리지르면서 말을 했다.

"너한테 걔가 뭐라고 했는줄 아냐?!"

"굳이 알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 알지마!!"

 당당히 말한 이 경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여우 같지만 그래도 영선은 정치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이 경과 놀거나 시비거는 후궁들을 털고 다녔다. 영선은 생각보다 자기 관리가 깔끔하고 조정과의 연계를 일절 끊었으나 그것이 배경없는 영선의 위치와 그 총애와 기묘하게 얼버무려져서 그 소문은 희대의 요부로 나있었다.

 차마 이 경이 영선에게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더러운 얘기들이 많았다. 더 답답한 것은 그게 진실과 기묘하게 섞여서 완전히 결백하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이 더러운 상황이었다.

"이잇!!"

 이 경이 고개를 홱 돌리는 것에 영선이 그를 다독였다.

"아, 전 진짜 괜찮아요. 애초에 욕 몇 번 듣는다고 탈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잘 살면 됐지..."

"우리끼리도 아니야!! 우리끼리 못해!"

 이 경이 새빨게진 얼굴을 한 채로 탁상을 쾅 내리친다.

"승상이 감히 내게 버럭버럭 따지더구나!! 후궁이 적으니 간택을 하자고!!"

"음."

 영선의 표정이 그제서야 굳어진다. 이 경이 화가 난 얼굴을 한 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개잡놈들이 신비를 책봉한다고 할 때 대드는 것을 무시했더니 아예 널 견제하려고 조정에서 난리도 아니구나! 오 상환도 내가 그렇게 믿었는데 감히 널 모함하려 들어?!"

'모함 아니잖아..'

 영선이 속으로만 꿍얼거리면서 이 경에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 작품 후기 ============================

1. q&a나 리리플은 말머리에 @ 달고 받을게요!

2. sm 죠아하는 거 어떠케 아라찌... 헐.

q: 영선이가 나이를 속였을 수도 있나요?

a: 얼굴은 갓 스무살입니다.

q: 자꾸 위 완용이라고 되어 있어요!

a: 스포당하신 독자님들께 사과드립니다... 나중에 봉호가 위라서 위완용인데 노트에 죄다 위완용이라 써놔서 저도 모르게 그만... 이거 발음이 너무 익숙해서 생각해봤더니 이완용...... 어쩐지 어디서 많이 들어받다고 생각했습니다ㅠㅠㅠ 다신 안그럴게요...흑ㅠㅠㅠ

q: 이 작교는 무슨 성질인가요?

a: 이 작교는 양인입니다! 2화와 19화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3. 이번챕터는 조금 쉬어가는 챕터일 것 같습니다. 대략 이 경과 영선이의 마치 초등학생의 사랑을 보는 것만 같은 애새끼 사랑 & 파릇파릇한 새 후궁들 조패고 다니는 고참 영선이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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