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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24/148)

00024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 =========================

"헉, 허억... 헉...!"

 혀를 함부로 놀린 대가는 처참했다. 평소에 화려한 보석과 비단으로 치장했던 영선은 검은 무복을 입은채 파김치가 되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이 경이 그 앞에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목검을 목에 댔다. 눈화장을 지우고 간출한 옷을 입은 영선은 화려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고 너무나도 평범해보였다. 녹초가 된 영선이 초점이 풀린 눈으로 이 경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풀린 혀를 간신히 움직이며 말했다.

"황상... 내가 잘못했다니까..."

"또, 또! 말투!"

"아아아, 진짜!!"

"말투!"

 은근히 말을 놓는 영선의 엉덩이와 옆구리를 신이 나서 때리는 이 경이다. 이 경은 황룡자수가 그려진 화려한 흰색 무복을 입고 있었고 오랜만에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선이 끙 소리를 내면서 파들파들 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난다.

 이 경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놈이 아무리 생각해도 체력이 없고 허약하여 더위를 먹는 것 같으니 짐이 친히 신비의 체력을 늘려주겠다."

"아아아아..."

 영선이 초췌한 얼굴로 넋이 나가서 울부짖는다. 사실 이 경이 영선과 거의 이년 동안 지내봐서 아는데, 영선은 호리한 몸매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힘이 셌다. 그네에서 교합했을 때도 영선은 이 경의 근육에 찬 몸을 한 팔로 지탱했었고 가끔 영선은 이 경을 안아들을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언젠가 제대로 무기 쓰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영선은 참으로 땀 흘리는 것을 싫어했다.

"이 놈, 아직 멀었다!"

 이 경이 신이 나서 검을 들려는 것을 영선이 질색팔색하면서 손을 휘저었다.

"아, 내가 정말 이런것 싫어한다니까요! 진짜 내가 말도 잘타고 검술도 진짜 천하제일인데 체력이 없어섯, 아얏! 있었으면 내가 대장군을...! 아, 진짜로! 아아! 진짜 아프다고!!"

"빈틈!"

"아이! 씨!!"

"씨?? 오호라, 이 놈이 아직 덜 맞았구나?"

 이 경이 방방 뛰면서 영선을 목검으로 때리고 영선이 여기 저기를 손으로 막으면서 울상을 지었다. 영선이 기어코 떼구르르 구르더니 저기 멀리서 경계를 서고 있던 오 상환의 어깨를 잡고 그 뒤에 숨었다.

"오 호위! 살려 주시게!"

 오 상환의 얼굴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깨를 살짝 틀어 이 경에게 영선을 내어주었고 영선이 배신당한 얼굴로 파르르 몸을 떨면서 몸을 사린다.

"어떻게 오 호위가 나에게!!"

"이 놈! 이 놈!"

 오랜만에 신이 나서 목검을 휘두르는 이 경은 보기 좋았으나 영선은 더 맞았다가는 골병이 날 것 같아서 에잇, 소리를 내면서 이 경의 허리를 잡고 밀었다. 이 경이 체중을 내던진 영선에게 밀려서 자기도 모르게 풀썩 쓰러졌다.

'?????'

 이 경이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놀란 눈을 했고 오 상환의 눈도 날카롭게 떠졌다. 오 상환이 머뭇거리는 순간에 영선이 이 경의 볼을 손으로 움켜쥐고 가쁜 숨을 내쉬는  입술에 입을 맞춘 뒤에 뗐다.

"우웁?!"

"푸하!"

 영선이 입을 닦으면서 씩 웃었다.

"오 호위. 나가 있어요."

 머뭇거리던 오 상환에게 이 경이 말했다.

"어, 나가!!"

 이 경이 눈을 깜빡이다가 영선의 눈치를 싹 보면서 그를 올려다본다. 그 은근한 기대에 찬 눈에 영선이 웃으면서 이 경의 목에 코를 댄다. 땀에 젖은 목덜미에서 사내 냄새가 나고 있다. 이 경이 몸을 버둥거리다가 어느 순간 축 늘어져서 영선을 반짝 거리는 눈으로 보았다.

"오늘 폐하 정말 멋있으신데요?"

"너 운동하기 싫어서.."

"하하하."

 영선이 웃으면서 이 경의 옷 안에 손을 쑥 넣었다. 몸에 달라붙은 천 사이로 손을 넣은다. 땀에 맨들거리는 살이 느껴지고 영선이 순간 진심으로 머리가 돌아서 환장한 눈으로 이 경을 보았다. 이 경은 눈을 팔로 가리고 있었고 그 탓에 땀에 달라 붙은 상체가 도드라지게 보여지고 있었다. 허리띠를 풀고 옷을 활짝 벗긴 영선이 이 경의 깎아 놓은 듯한 멋진 몸에 넋을 잃고 중얼거린다.

"아, 진짜, 아아.."

 이 경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침을 삼킨 이 경은 부끄러운지 몸을 살짝 떨고 있었고 몸이 살짝 달아오르고 있었다. 단단한 가슴과 탄탄한 배가 보인다. 근육이 갈라진 곳에 땀이 송골 맺혔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인 이 경의 몸은 뜨거웠고 여름인지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땀냄새가 났으나 어쩐지 영선은 오히려 더 성욕이 북돋아져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눈을 가린 이 경의 팔을 잡고 내린다.

 날카롭게 치켜 뜬 눈매 아래가 발갛게 달궈져 있었다. 숨이 색색거리고 있다. 영선이 멍하게 그를 보다가 이 경의 얼굴 주변에 손을 어쩔줄 몰라하면서 방황하다가 결국 어깨를 잡고 황홀하다는 듯이 말했다.

"검술 수업 좋아..."

 이 경이 영선의 그 넋이 나간 모습에 부끄러워서 안절부절하다가 무릎을 들어 영선의 바지춤을 건드린다. 영선이 움찔하다가 서서히 손을 들어 이 경의 바지를 잡고 내렸다. 이 경이 허리를 들어 영선이 바지를 벗기는 것을 도왔다. 영선의 시야에 탱탱한 엉덩이와 흐벅진 허벅지살이 보인 순간 이성을 잃고 영선이 이 경에게 달려들었다.

"검술 수업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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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선은 이 경의 입술을 쪽쪽 거리면서 먹고 물었고 어쩐지 이 경도 평소에 꽃냄새 나던 침대가 아닌 거칠고 더러운 바닥에서 뒹구는 것에 더 흥분했다. 여상스러운 면이 없잖았던 영선은 무복을 입으니 확실히 또래 남자들과 같았고 이 경은 그게 색다르게 좋아서 날뛰고 영선은 이 경의 땀에 젖은 몸을 보고 미쳐라 날뛰었다. 연무장에서 짐승처럼 굴러댄 영선과 이 경이 대자로 뻗었다.

 그리고 이 경이 말했다.

"좋냐?"

 기력이 빠진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에 영선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고, 최고..."

 그리고 이어진 이 경의 말에 영선이의 쫑긋한 귀가 움찔거렸다.

"그럼 매일 할까...?"

 그 순간 영선의 얼굴에 핏기가 가신다. 영선이 입가를 파르르 떨다가 손을 들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이 경은 허언을 하지 않았다. 이 경이 영선을 억지로 연무장에 질질 끌어오면서 대련에 마보를 시키지 않나 이 땡볕에 검을 백번을 휘두르라 시키지 않나.. 솔직히 더위를 잘타는 영선은 그런 것이 싫었지만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밝아진 이 경의 얼굴과 검술 수련할 때마다 땀에 달라붙은 옷 아래로 보이는 탄탄한 몸을 눈요기하는 것에 끌려서 어쩔 수 없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 연무장에 끌려 갔다. 정 싫을 때면 영선은 이 경의 몸을 더듬었고 이 경은 안된다며, 너는 더 움직여야 한다며 버럭거리면서도 결국 영선과 함께 뒹굴거렸다.

 그렇게 영선이 살신성인으로 이 경의 기분을 풀어줘서 수녀 선발이 다가올쯤에는 이 경도 기분이 어느정도 나아진 상태였다. 다만 이 경은 그래도 자신의 뜻을 꺾었던 조정과 황후를 생각하며 후궁에 대한 반발심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곧 수녀 선발이지."

 아침에 거울을 보며 치장을 하고 있던 영선에게 이 경이 다가간다. 영선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귓바퀴에 보석침을 끼고 있었다. 이 경은 치장하는 영선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영선은 준수하게 생겼지만 무언가 함부로 해도 될 것 같은 친근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영선이 화장을 하고 나니 그 인상이 싸늘하고 독해보이는 것으로 변한다. 특히 오늘 영선은 머리에 상아를 가공해서 만든 관을 적옥과 적산호로 만든 옥을 달은 금술이 주렁한 비녀로 관통시킨 관을 썼으며 관에 달린 장식들로 머리를 화려하게 덮고 있었다. 귀 양 옆에 대칭되는 황금색 용이 보보할 때마다 입가에 문 붉은색 여의주를 떤다. 옷은 하얀색 옷 위에 붉은 옷깃을 사용하였으며 황금색 원모양으로 그려진 오방신수가 넓은 소매에 있었으며 옷깃 주변으로 붉은 모란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유난히 화려한 영선의 모습에 이 경이 그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에 비춰진 영선이 살짝 웃으면서 손에 든 붓을 이 경에게 주었다. 이 경이 붉은색 주사를 묻힌 붓을 들고 영선의 턱을 잡았다. 영선이 눈을 감고 이 경이 조심스럽게 입 가의 보조개에 점을 찍는다. 투박한 손이 혹여 치장을 망칠까 아주 공을 들여서 붓끝을 누른다.

 영선이 눈을 뜨고 거울을 보며 웃었다.

"잘 찍었네요."

 이 경은 처음에는 연지를 잘 찍지 못해서 보조개가 아닌 거의 광대에 연지를 그렸다. 민망해하는 이 경을 뒤로 하고 영선은 그 상태로 하루종일 빨빨 거리면서 궁을 돌아다녔는데 사람들은 당당한 영선의 태도에 그것이 새로운 화장법인줄 알았다. 오히려 광대 위에 찍은 붉은 점이 울어서 벌게질 때 나오는 염기를 드러낸다하여 수도에 유행을 탔다. 이 경이 그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마음이 부드러워져 영선의 보송한 볼을 만지작거렸다.

"영선아."

 이 경의 목소리는 드물게 우울했다. 이 경은 눈썹을 내리깔면서 나직히 말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 경의 말에 영선의 몸이 멈춘다. 거울에 비춰진 이 경의 얼굴엔 그을음이 지고 있었다. 이 경이 영선의 어깨를 잠은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말없이 거울 속 이 경의 얼굴을 바라보던 영선이 입을 떼려고 할 때였다.

"첩신.."

"되었다."

 이 경은 영선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거울에 비춰진 화려하고 빛나는 영선의 얼굴을 본다. 영선이 거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 경이 거친 손으로 영선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상관없다."

 이 경은 조용히 말을 했다.

"영선아. 네 생각보다 내가 너를 몹시 사랑하는 것 같구나."

 영선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환하게 웃거나 능글맞게 이 경에게 달라붙었을 텐데 어쩐지 영선은 말없이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 경은 그런 영선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 좋은듯이 씩 웃다가 짤막하게 말하고 만화궁을 떠났다.

"그럼 가마."

 이 경은 후궁들을 뽑으러 가는 것이다. 영선은 평소라면 배웅을 했을텐데도 호갑투를 끼다 말곤 손에 쥐고 거울을 빤히 바라본다. 한참을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던 영선이 높게 찢어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이었고 영선은 공들여 치장한 것들이 망가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손으로 거칠게 쓸어 올리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경이 나간 방향을 빤히 바라보던 영선이 눈물이 나게 웃음을 흘리면서 손으로 눈가를 훔친다. 이 경이 문득 무섭게 정색하면서 웃음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표정으로 이 경이 나간 곳을 노려본다.

"이 경.. 이 경!!! 진짜!!! 이 경!!!!!!"

 영선이 미친듯이 웃으면서 소리쳤다.

"정말 내 계획을 다 망치는구나!!"

 누가 들으면 능지처참을 당해도 모자랄 무엄한 짓을 저지른다. 영선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얼굴을 손으로 부여잡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대체 저렇게 예쁜 소리를 하면 도대체 어쩌자는 거지?'

 영선은 희 치에게 후궁전을 다스리는 것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입궁했다. 총애를 얻으라는 말에 총애를 얻었는데 이 경은 황제라면서 진심을 보이면 어떻게 하는 건가. 영선이 정말 미칠 것만 같은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뜯으면서 소리쳤다.

"아!!! 정말!!! 힘든 길인데!!!"

 정말 아침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일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던 수녀 간택이 이렇게까지 증오스러울 줄이야. 영선이 환장하며 화장대를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내가 너한테 정말 진심이 되면 난 상처를 받을거다. 내가 음모를 꾸미고 거짓을 아뢰고 진실을 막아서 네 총애를 얻었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네가 구 화를 아껴도 나는 다시 네게 돌아갔었는데..'

 진심이 되면 영선도 진심이 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 경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그에게 진정을 바치고 사랑을 애원하는 거지꼴이 될 것이다. 영선은 사랑을 하면 자신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바치는 사람이었고 후궁전에서 그렇게 황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저 자살행위인 일이다.

 그래서 그저 아리까리한 감정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이 경은 어떻게 저렇게 설레는 말을 내뱉지?

 영선이 미치겠어서 헛웃음을 터뜨리며 불같은 눈으로 이 경이 간 문턱을 노려본다.

 지금 후궁을 뽑으러 간 이 경이 싫다. 영선이 그 감정에 자조하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비녀를 던진다.

"씨발!!"

 영선이 아무 말 없이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존전(尊殿) 중 하나인 음월전의 상석에 이 경이 황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쓴채로 앉아있다. 이 경의 표정은 냉엄하고 또한 위엄있었다. 이 경의 옆에는 목련을 닮은 경국지색의 황후, 희 치가 앉아 있었고 그 또한 평소와 다르게 황룡포를 입고 황룡과 붉은 홍옥이 달린 금술로 장식된 정관을 쓰고 있었다.

 그 둘이 상석에 앉은 상태에서 이 경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한다. 손톱이 다락, 하면서 용상 손잡이에 부딪혔다.

"시작하라."

============================ 작품 후기 ============================

중국 전통 연지는 크게 찍는 것이 아닌 점처럼 살짝 찍는 수준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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