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5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 =========================
조정의 대신들이 후사를 위하여 후궁 간택을 권유한 것이 아니다. 이 경의 황자는 세 명이니 많지는 않으나 후계가 불안한 정도는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첫째는 도올 역사상 제일의 총애를 받고 황룡 패용까지 허가받은 신비를 견제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자신의 딸과 혈육들을 입궁시켜 권세를 누리기함이었다.
특히 이 경이 황제가 된 후 후궁 간택을 단 두번 밖에 하지 않으므로 이번 수녀 선발은 대신들의 자제들로 구성이 된 귀족가의 양가자제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이 경이 무시 못할만큼 오래되고 명문인 귀족가들이 많았으므로 이 경은 본디 수녀 선발에 참여하지 못하였음에도 태후를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수녀 간택은 첫째로 전국에서 사람을 뽑았고, 둘째로 신료들이 가렸으며, 셋째로 선발된 인재를 태후나 궁중 웃어른들에게 보여 선발했다. 그러나 인온황후는 문종이 죽자 통곡하다 죽었으니 웃전은 부재했고 문종의 후궁이 없어서 태비(太妃)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하여 이 경은 황제가 할 일이 아니라는 반대를 뿌리치고 그 자리에 태후를 대신하여 앉는다는 명분으로 앉은 것이다. 이 경은 최대한 공신자제를 적게 뽑고 싶었고 그래서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수녀 선발을 관음하고 있었다.
가례감을 맡은 환관 청 태감이 한 명씩 이름을 호명한다.
"어사중승 오 고장의 차남, 오 관영 입(入)!"
"시중 약 도의 차남, 약 종여 입(入)!"
"소부 육 시사의 삼남, 육 결 입(入)!"
이 경이 속으로 욕을 지꺼린다.
'작정을 하고 달려들었군.'
다들 고관대작 중에서도 고관 대작들의 자제이다. 그리고 이 경은 얼굴이 하얗고 *반안송옥같은 귀공자들이 그 앞에서 절을 하자 마자 퉁명스럽게 말했다.
"불통!"
"불통!"
"불통!"
그게 정말 심해서 얌전히 지켜보던 황후가 중간에 이 경의 소매를 잡아 당길 정도였다. 그러나 이 경은 희 치를 보지 않은채 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희 치의 눈썹이 일그러지자 이 경이 마지못해서 속삭였다.
"어차피 뽑을 이는 정해졌소."
그 말에 희 치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경이 청 태감의 다음 호명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말했다.
"저 자요."
"승상 소 작영의 처조카, 유 도림 입(入)!"
얼굴이 희고 키가 큰 귀공자 하나가 자리에 든다. 옷은 옥색의 단정한 옷을 입었고 화려하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고 연약하지도 않은 인상의 사내가 정갈한 걸음거리로 문턱을 밟고 들어온다. 예법에 올바른 자세로 절을 하고 손을 공손히 모으고 몸을 숙여서 소매로 눈을 가린다.
"유 도림이 존귀하신 두 분 폐하를 뵙습니다."
이 경이 그를 보면서 무정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예법에 바르구나."
유 도림이 분에 넘치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고 이 경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했다.
"그러나 궁중의 예법은 더욱 엄격하니 명심하도록 해라."
유 도림이 그 차가운 목소리에 놀라서 살짝 겁을 먹은 표정을 했고 그를 본 이 경이 속으로 생각보다 심약하다 생각하며 혀를 차며 눈짓했다. 희 치가 그것을 보고 나직히 말했다.
"유 도림은 이리 와라."
그 말에 얼굴이 환해진 유 도림이 총총 걸음으로 희 치 앞까지 걸어간다. 희 치가 유 도림을 바라보다가 옆에 도 상궁이 공손히 든 옥으로 만든 판 위에 목걸이를 들어 유 도림에게 걸어주었다. 옥패 목걸이를 건 유 도림이 다시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처음으로 나온 간택자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리고 다음으로 들어온 사내는 별부사마 양 량의 자제로 얼굴이 훤칠하게 잘생긴 사내였다. 유 도림이 정갈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외모가 훨씬 아름다웠으므로 그는 당연히 자신이 뽑힐 줄 알고 공을 들여 절을 하면서 당당하게 말을 했다.
"황제황후 폐하의 존안을 뵈어 삼생의 영광입니다!"
이 경이 눈썹을 찌부리며 말했다.
"입에 기름이 발렸구나. 쯧."
그 말에 양 량의 자제가 황망한 표정을 짓는다. 그것이 심히 불쌍해보여 희 치는 눈짓을 주었고 옆에 있던 류 태감이 그를 잡고 대전에서 끌고 간다.
이 경이 뽑는 기준은 두 개였다. 신분과 성품. 이 경은 방정맞거나 비굴한 사내를 싫어했다. 영선도 겉으로는 방정맞기는 했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과묵하고 감정을 잘 숨기는 신중한 사내였으니 이 경은 눈치 없는 이는 바로 내쳤다.
다음으로 합격시킨 이는 이부상서 영 정도의 아들 영 가안으로 낙양의 뼈대 깊은 호족인 영씨세가의 종가의 사람이었다. 그는 생긴 것이 무척 독특했는데 눈물점이 아래에 있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았고 키가 크고 뼈대가 크나 몸이 말랐다. 강북의 사람이어서 그런지 서늘한 북풍을 닮은 사내였고 감정 기복이 별로 없었다. 그 다음이 육군 제독 하 경의 아들인 하 사제였는데 무골에 이목구비가 시원해 보였으나 너무 예의를 차리고 주눅든 것이 보였다.
그 둘이 이 경이 미리 생각해둔 후궁들이었다. 그 외에는 다 불통을 시켰고 그렇게 마무리하려던 찰나에 이 경이 놀라서 눈을 깜빡이면서 그를 바라본다. 낭중 강 상채의 자식 강 채요.
"넌...?"
희 치도 놀란 기색을 보이면서 바라보았다. 눈 앞에 조신하게 고개를 숙인 수녀는 분명 여인이다. 여성 양인의 수가 드물어 거의 한 주(州)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했으니 여인의 등장은 그 황제 부부를 놀라게 할만했다.
여인은 피부가 은은한 백옥같은데 살이 부드러운것이 멀리서까지 보이는 아름다운 미녀였다. 가슴이 무척 크고 허리는 무척 갸냘펐지만 골반은 도드라진다. 허벅지는 흐벅지면서도 다리는 길고 곧았다. 눈이 반쯤 뜨여 사내를 유혹하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도도하기 그지없어보였다. 콧망울이 동그랗고 코 옆에 애교점이 귀여워보이는 상이였다.
"여성 양인이라."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강 채요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 경이 머뭇거린다. 여성 양인이 귀하기에 그를 선택하고자 하는 황제로서의 수집욕과 영선에 대한 마음이 엇갈린 것이다. 그것을 눈치챈 황후가 강 채요에게 물었다.
"몇 살이냐?"
강 채요가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
"열 아홉입니다."
"나이가 많구나."
"혼처를 구하려는데 남음인들이 정실로 남양인을 찾아서 가례를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정실 자리가 좋은가?"
그 말에 강 채요가 손을 모으면서 말을 한다.
"황제의 것은 측실도 귀합니다.
희 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까닥였다. 이 경이 그를 신기해 하는 것 같아 문득 희 치는 충동적으로 이 경을 바라보며 재촉했고 이 경은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강 채요를 마지막으로 통은 없었다. 넷 뿐인 간택자에 조정에서 불만은 컸으나 더 도발하면 폭발할 것만 같은 이 경의 거센 분위기에 밀려서 앞에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거나 조정의 대표인 소 승상의 처조카가 후궁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의로 삼고 쉽게 포기를 하여 이 경에게 따랐으니, 유 도림이 제일 신분이 존귀해 유 첩여로 입궁하였고 이부상서의 아들이 그 다음인 영 미인, 제독의 아들이 하 미인, 마지막으로 강 채요가 재인으로 입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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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을 보던 영선이 하, 웃음을 터뜨린다.
"다른 이들은 다 그렇다쳐도 강 채요... 이 새끼는 뭐냐."
어이 없다는 목소리로 영선이 싸늘하게 말을 한다. 한눈에 봐도 빡친 웃음을 짓고 있는 영선이 손에 들린 호갑투를 빼서 보석함에 던지듯이 넣는다. 계자가 두려워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주인을 본다.
영선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곤 고개를 꺾는다.
뭐 사랑하나보다? 정을 안주겠다? 그렇게 말한 것이 아침이었는데 이렇게 배신을 때려? 뭐하는 짓이지 이게?
이 경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하는 거지? 영선은 실컷 독이 올라 실실 웃었고 손을 쓰다듬으면서 계자에게 말했다.
"소 승상 처조카니, 제독 아들이니 다른 새끼들은 조정 눈치 때문에 그렇다 쳐도 고작 낭중 딸? 그냥 여양인이여서 들인 거잖아. 아 나 진짜.."
"고정하세요.. 마마.."
영선이 순간 이 경과 마음이 맞닿았다고 믿었다가 단숨에 거리가 멀어진 것만 같은 착각에 치를 떤다. 배신감과 화로 드글한 영선이 탁자를 손으로 잡고 심호흡을 했다. 영선이 그리고 날카로운 눈을 하며 계자에게 말을 했다.
"계자야. 잘 봐라."
"예?"
"나는 구 화를 상당히 봐줬다."
"......"
그 말에 계자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얼굴이 흉하게 변해 빨래터에서 쉬지도 않고 하루 대부분을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구 화는 며칠 전에 정신병에 걸려서 냉궁에 버려졌다. 궁중죄인이라 밖에 내보내지도 못하고 유폐시켜서 죽이려는 것으로 그 말로를 안 계자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영선이 핏대 선 이마를 꾹 누르면서 말을 했다.
"이것들이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자."
항상 신입은 겁도 없이 기어오르는 법이다. 그리고 영선은 겉으로는 황후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편에다가 정적은 제거해도 그저 투덜대는 인사들은 건드리지 않기에 적들이 많은 편이었다.
영선이 유심히 입궁한 병아리들의 동태를 살폈다. 처소 별로 한 명씩 첩자를 심고 보고를 받던 영선은 입궁 첫날부터 첩자가 물어온 소식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 미인이 동육궁 소속 전각에 배정받았는데 가장 먼저 들린 것이 한비의 처소였단 것이다. 순간 영선이 고민을 했다. 한비는 황자의 아버지인데다가 서열이 높아서 자칫하다간 정치로 커질 수가 있다. 동육궁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자신을 제외하고 한비에게 굽신거리려 하는 것을 꼬투리 잡으려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었으나 영선은 나중에 가중처벌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묵혀놓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던 영선은 첫날부터 진심으로 열이 받아서 입을 다물었다.
병부 소속 아비를 둔 하 미인은 같은 병부 출신인 한비에게 붙는 행보를 보이나 다른 이들은 영선에게 잘보이려고 노력을 했다. 소 첩여는 상대적으로 신중하게 행동하나 총애받는 후궁인 영선이 하사품을 내리자 상궁인 계자에게 매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영 재인은 아예 패물을 바쳤는데 영선은 그것을 받고 말없이 보관했다.
세 후궁에게서 올라온 패물을 받은 영선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하사품을 내렸더니 답례로 보기엔 너무나도 귀중한 물건들이 올라온다. 최상등급의 물건만 쓰는 영선도 만족할만한 귀품들이니 그것은 뇌물일 것이리라. 강 채요만 아버지의 관직이 딸려 상대적으로 보잘것 없었지만 그래도 금이 몇관은 나갈만한 것들이었다.
첫 문안 날, 새로 간택된 후궁들이 음월전으로 하나둘씩 모였다. 사교성이 좋은 영선은 항상 일찍 나와서 다른 후궁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가끔은 기를 죽여 놓았는데 그 날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영선을 본지라 지금 영선이 기분이 나쁜 것을 알고 대부분은 입을 다물었으나 단 수의는 눈치가 없어서 웃으면서 말을 했다.
"신비 마마께선 기분이 참으로 좋지 않아보이십니다."
영선은 말없이 방긋 웃었고 단 수의는 거기서 멈추지않고 실없이 웃으면서 말을 했다.
"후궁들이 새로 들어오니 기분..."
"단 형님."
영선이 눈을 내리깔고 입술에 검지를 댄다. 그 순간 단 수의가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후궁들은 그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후궁 중 가장 윗전이 심기가 불편해보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영선은 유독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그것은 대부분 만화궁이 사람을 잡을 때 하는 옷차림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들은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유 첩여가 제일 처음으로 들어왔고 영 미인이 가장 늦게 들어왔다. 그들 네 명이 일렬로 서서 황후에게 공손히 절을 한다. 희 치는 담담하게 그들이 절하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까닥였다.
"새로 온 아우들은 각자 자리에서 앉게."
그들이 자리에서 앉자 말을 이었다.
"다들 명가의 자제들이니 분란을 일으키지 않을 착실한 사람이라 알고 있겠다."
희 치의 말은 평범한 말이었으나 이들은 그 말을 꼬아서 생각했다. 그 말이 신비를 겨냥한 것이라고 짐작을 했으며 그들은 속으로 총애를 독차지한다는 그 저잣거리 소문 속 희대의 요부와 전설적인 영웅인 내명부의 주인을 저울질하면서 자리에서 서있었다.
'누가 신비지?'
영 미인이 둘러보다가 화려한 주홍발을 가진 사내가 황룡이 그려진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것에 짐작하여 고개를 숙였다. 영 미인과 눈이 마주친 영선이 살짝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부상서 아들이라고 했나?"
"예, 신비 마마."
"내가 신비인 것을 알고 있군."
당황하던 영 미인이 정신을 차리고 공손히 말을 한다.
"주홍발을 보고 알았습니다."
"좋은 가문이구나."
영선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웃었다.
"본궁의 가문은 참으로 가난했다네."
무슨 뜻인지 몰라서 영 미인이 가만히 있었고 영선은 그 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래서 보석과 비단을 좋아하는데 세간에서 내가 돈을 밝힌다고 하지."
그리고 그 순간 영선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했다.
"아우들 잠깐 일어서 보시게."
그 순간 머뭇거리던 후궁들이 이어지는 호령에 새파랗게 질려서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라!!"
놀라서 후궁들이 다 바라보고 새로 간택된 네 명의 후궁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면서 그들을 바라본다. 영선이 순간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본다. 네 후궁들이 그 싸늘한 시선에 놀라 겁을 먹어 움츠렸다.
"황궁 내에서 황궁 밖에서 무슨 소문이 들리는지는 몰라도 본궁은 황제께서 주는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본궁이 미리 경고하는 데 이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증오하는 행위다."
영선이 진심을 담아서 말을 한다.
"당파를 만들지 마라."
그 순간 아차한 이들이 무릎을 꿇었다.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증오할 줄은 몰랐던 후궁들이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중요한 것은 영선이 분노했다는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신비 마마!"
"소제가 잘못하였습니다."
영선이 그 때 침묵하면서 그들의 비는 모습을 내려보다가 입을 연다.
"이건 다른 후궁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살기가 넘실거리는 고저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름에도 등골이 서늘한 것같은 착각에 착석해있던 기존의 후궁들도 얼굴을 창백하게 질렸다.
"그리고 특히 후계자 문제."
영선이 말을 멈추고 하 미인을 바라본다. 총애는 못받지만 황자의 아비인 한비에게 먼저 갔었던 하 미인이 자신을 겨냥하는 말임을 알고 몸을 벌벌 떨었다. 영선이 열받은 얼굴로 말을 했다.
"황자 문제에 간섭하면 그 때는 구 화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오."
============================ 작품 후기 ============================
1. 내일 자정에 옵니다.
2. 다음 편에서 흑화한 영선이 이 경에게 어그로를 끌 예정..
3. ntr이 들어가니 역시 선삭에 평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