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148)

00031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 =========================

 이 경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태양전으로 돌아갔고 당장에 류 태감에게 노하여서 말을 했다.

"앞으로 신귀비의 일은 내게 말을 하지 마라!"

 그 서슬퍼런 말에 류 태감이 고개를 조아렸고 궁인들의 입단속을 시켰다. 이 경은 굉장히 화가 나서 후궁에 발걸음을 아예 끊고 정무만을 보았는데 조정신료들이 이 경의 무서운 표정에 겁을 먹어 아침 조회에서는 항상 삭막함이 감돌았다. 이 경은 무척 화가 나서 대부분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냈으며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여 궁인들을 매질하였다.

 이 경은 씩씩 거리면서 신귀비를 잊으려고 노력했고 그에게 극히 분노하여서 그를 외면하려 했으나 정무를 볼 때나 잠을 잘 때나 마음 속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답답해서 울화를 토했다. 결국 태의를 불러서 진찰받으니 화병이라 하여 이 경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후궁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결국 탕약을 받아 먹으면서도 이 경은 영선을 잊지 못해 화를 냈다. 탕약을 주기적으로 마시고 화기가 어느정도 가셨을 때 이 경을 잠식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것도 그가 전에 느껴본 적이 없는 거대한 허무함과 공포였다. 이 경은 가끔씩 손을 떨면서 동육궁을 바라보곤 했고 류 태감은 그런 이 경을 걱정스레 바라보곤 했다. 이 경의 눈은 쾡했고 입술을 퍼러죽죽해서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신귀비가 완전히 몰락했다고 생각한 영 미인과 하 미인은 전번에 받은 굴욕을 갚을 겸 만화궁에 찾아가서 그를 놀리거나 모욕을 하다가 가곤했다. 계자는 그에 울컥해서 몇번이고 말을 하려곤 했지만 영선은 만화궁의 그 어느 궁인도 말을 하거나 반응하지 말라고 명령을 했기에 지켜볼 뿐이었다.

 영선이 피골이 상접한 앙상한 몸으로 침상에 앉아 있고 주홍색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늘어트리고 있다. 그가 쾡한 눈으로 영 미인과 하 미인이 제 집처럼 만화궁에 틀어 앉아서 조잘거리는 것을 바라본다.

"탁 소의 마마님의 정원에 얼마나 여름장미가 예쁜 줄 압니까? 만화궁이랑 영화원에 비할 바도 못되게 예쁜 장미가 진상되었는데 황후께서 바로 탁 소의께 줬다고 합니다."

"원래는 신귀비께서 꽃을 좋아하시니 귀비 마마에 것일텐데 세상 일이 어찌 이리 되었는지, 나 원.."

 영선에게 말을 걸 생각도 않고 모르는 척 자기들 끼리 주구장창 앉아서 왁자지껄 떠든다. 예민한 영선의 몸이 더욱 안좋아지는 것을 아는 계자가 발을 동동 굴러도 영선은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들을 놔둔다. 심지어 그들이 귀품이 많은 만화궁의 물건들을 탐내는 것을 방관한 영선이다. 거의 몇 시진을 제잘거리다가 웃으면서 돌아가는 것을 쾡한 눈으로 본다.

"마마."

 계자가 울면서 죽을 가져와서 영선의 입가에 댔다.

"뭐라도 좀 드세요. 마마. 모욕을 받은 것은 그렇다 쳐도 황제 폐하에게 미운 소리 들으셔다고 죽으실 작정이십니까?"

"......"

 영선이 아무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계자가 하염없이 울면서 바닥에 엎드렸다.

"일단 사셔야 무엇이든지 하지요. 총애를 다시 얻든 폐하께 용서를 받든 할 것이 아닙니까."

 한 보름이 지나고 이 경이 류 태감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귀비는 어쩌고 있느냐?"

 류 태감이 결국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 이 경에 속으로 혀를 찬다. 이 경의 말이 무색하게도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은 이 경이었다. 그 동안 이 경도 많이 얼굴이 상했는데 들리는 소문에는 신귀비는 더했다. 류 태감이 공손히 말을 했다.

"식사를 아직까지 거르시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 경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상소문이 우그러진다. 이를 빠득 갈던 이 경이 치를 떨면서 말을 한다.

"아주 독부(毒婦)구나, 독부."

 쾅!!

 탁상을 친 이 경이 언성을 높히며 말했다.

"그 놈이 내가 귀애했더니 나를 잡아 먹으려 들어. 내 이번 기회에 버릇을 단단히 고치겠다."

 류 태감이 시퍼렇게 살기를 내뱉는 이 경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신귀비께서 이제 거동을 못하셔서 누워만 계신다고 합니다."

 그 순간 이 경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이 경은 잠시 손을 떨다가 이내 미간을 찌부리면서 고개를 흔들거렸다.

"그것은 좀 혼이 나봐야 해."

 류 태감이 신귀비의 성격상 죽어도 숙이고 들어오진 않을 것 같다고 말을 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다. 이 경이 상소문에 집중하려고 다시 그것을 노려보다가 참지 못해서 울분을 터뜨리듯이 말을 했다.

"내가 그 애에게 해준 것이 얼마냐."

 류 태감이 말없이 서있었고 이 경이 혀를 차면서 다시 상소문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 경의 머리에는 상소문보다는 마지막으로 본 영선의 앙상한 손목이 맴돌고 있었다.

 보름 동안 식사를 하지 않아 결국 제대로 설 수도 없어서 침상을 전전한다. 안그래도 마른 영선의 몸에 갈비뼈가 도드라지고 뼈가 보였다. 계자가 울면서 죽을 먹으라고 통곡을 해도 영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굳게 입을 다물면서 침상에 앉아서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보름이 지나자 이 경도 마음이 복잡하여 하루에 한 번씩 영선의 생사를 물었다.

"아직도 먹지 않는다더냐?"

"신귀비 마마께서는 아직도 식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경이 발을 쾅, 굴리면서 역성을 토했다.

"고집센 것!"

 이 경이 충혈된 눈으로 처소 안을 안절부절 하면서 돌아다닌다. 화가 난 이 경이 방의 물건을 부수면 궁인들은 모두 엎드리고 잘못을 비는 수 밖에 없었고 류 태감은 차마 보다 못해서 만화궁으로 가서 신귀비를 만나서 식사를 권하려고 했다. 그러나 휘장을 여는 순간 류 태감은 할 말을 잃고 멍하게 그를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이것은.."

 침상 옆에 궁인들이 모두 울면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류 태감이 넋을 잃고 휘장 안에 눈을 감고 있는 영선을 바라본다. 젊고 화사했던 얼굴이 불길함이 감돌고 있다. 끔찍하게 변한 영선의 몰골을 본 류 태감이 두려움을 느끼고 한발자국 물러서면서 계자를 바라본다.

"어, 어찌하여.."

 계자가 몸을 조아리면서 흐느꼈다.

"주인께서, 주인께서는..."

 그 순간 류 태감은 신귀비가 절대로 숙이지 않을 것을 예상했다. 충격을 받은 류 태감이 비틀거리면서 태양전으로 간신히 돌아온다. 이 경이 넋이 나가서 폐인처럼 앉아 있는 것을 할 말을 잃고 바라본 류 태감이다. 이 경은 핏발이 선 눈으로 동육궁을 바라보고 있었고 주변에는 아마 불쌍한 궁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벼루가 깨져 있었고 궁인들이 부들거리면서 그 옆에 가만히 서있었다. 류 태감은 순간 두려움에 휩싸였다.

'마마께서 돌아가신다면?'

 이 경이 정말 이례없게 아끼던 신귀비다. 신귀비가 저렇게 끔찍하게 죽는다면, 그것도 이 경 때문에 죽는다면 이 경은 이성을 잃고 분노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차마 입에도 못 담을 정도로 끔찍할 것이며 피바람이 불지도 몰랐다. 아끼는 애첩을 잃은 이 경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을 것이다. 천자의 분노는 그 만큼 잔인하고 파장이 크다. 이 경이 미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류 태감이 아찔해서 몸을 비틀거렸다.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신귀비가 순순히 숙이고 들어오면 참 좋을 텐데 그럴리도 없고 류 태감이 몸을 부들 떨면서 머리를 굴렸다.

 아침에 류 태감이 다시 신귀비를 찾아가서 빌었다.

"노비를 죽여주시옵소서!!"

 머리를 찧는 류 태감을 신귀비가 간신히 눈을 굴려서 바라본다. 휘장 밖으로 빠져나온 팔은 보기 힘들 만큼 삐쩍 말라 있었다. 늙은 류 태감이 울면서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고했다.

"이렇게 죽으시면 황제 폐하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그 분의 마음을 찢어 놓으시고 정녕 만족하시렵니까? 노비들은 어떠합니까? 저희들은 모두 다 죽습니다. 어찌 이런 불충한 짓을 저지르시렵니까."

 영선이 그를 바라보면서 갈라지고 마른 입술을 달싹인다. 부드러운 분홍색 입술은 쩍쩍 갈라져서 피가 나 있었다. 듣기 힘들 정도로 메마른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한다. 힘겹게 그 말을 알아들은 류 태감의 눈이 번뜩였다.

"...지... 필묵을...가져 오...게"

"지필묵을 가져오너라!"

 당장에 궁인들이 좋은 먹과 종이를 가져오고 류 태감이 먹을 갈아 벼루에 먹물을 만든다. 영선이 계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계자가 눈물을 훔치면서 그런 영선을 부축한다. 계자의 손에 영선의 척추뼈가 앙상하게 도드라진게 느껴진다. 류 태감이 벌벌 떠는 영선의 손에 붓을 가져다가 쥐어 주었다.

 영선이 안간힘을 써서 붓을 잡고 글을 써내린다. 이마가 찌부려지고 하얗게 질린 얼굴에 땀이 송골 맺힌다. 그럼에도 손에 쥔 붓을 놓지 않고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글을 써내려간다. 영선의 서체는 섬세하여 어찌보면 여인네의 글씨처럼 가늘었고 아름다웠다. 정성들여서 글을 쓴 영선이 먹물을 말린 뒤에 비단에 감싸 류 태감에게 건낸다. 류 태감이 감격하여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그것을 받았다.

 태양전에서 이 경은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이 경은 거의 넋을 잃은 상태로 술독에 빠져 지냈는데 류 태감이 이 경의 초췌한 모습에 가슴이 아파 눈물을 삼키며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편지를 바쳤다.

"뭐냐.."

 이 경이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류 태감이 다급하게 말을 했다.

"신귀비 마마께서 바치는 편집니다."

 이 경이 순간 눈이 크게 떠진다. 술병을 내팽겨친 이 경이 류 태감의 손에 들린 편지를 뺏듯이 우악스럽게 가져가고 편지를 펼친다. 거친 손길에 편지가 찢어질 뻔 했으나 이 경이 정신없이 편지를 한자 한자 읽어갔다.

 섬세한 서체로 시가 써져 있다. 이 경이 더듬거리면서 그것을 읽었다.

"*수레를 부술 만큼 험한 태행산 길도 사람 마음과 비교하면 훨씬 평탄합니다. 배를 뒤집을 만큼 거센 무협의 물결도 사람 마음과 비교하면 훨씬 순탄합니다.

 사람 마음은 변덕스러워 좋아하다 미워하고 좋으면 감싸주고 나쁘면 긁어 부스럼냅니까?

 그대와 결혼한지 오 년도 못되었는데 견우와 직녀 헤어져 삼성과 상성이 될줄 어찌 알겠습니까.

옛적부터 늙어 시들면 버림을 받았나니 당시에 미인들은 뉘우치고 원망했고 하물며 지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얼굴 변치 않았거늘 그대 마음만 변했습니까.

그대 위해 옷에 향수를 뿌려도

그대는 난초나 사향을 향기롭다 않고

그대 위해 화려하게 치장해도

그대는 금이나 비취를 보고도 무표정합니다.

인생의 가는 길이 험난하여 어려움을 거듭 말할 수 없으니

사람으로 태어나 남의 아내가 되지 말기를.

백년의 괴로움과 즐거움이 그대에게 달렸습니다.

산보다 험난하구나 물보다 험난하구나

아침에 은총 받더니 저녁에 사약받지 아니합니까?

인생의 가는 길이 험난한 것은 물길 가는데 있지 않고 산길 가는데 있지 않고 다만 사람 마음의 변덕스러움에 있습니다..."

 이 경이 편지를 감싸쥐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이 경이 소리쳤다.

"만화궁으로 가자!!"

"예, 폐하."

"어선방에서 먹을 것을 가져오너라!!"

"예, 폐하!"

 류 태감이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물러난다. 이 경이 충혈된 눈으로 성큼성큼 걸으면서 동육궁으로 간다. 이 경의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뛰고 있었다 피가 끌어오르는 것 같고 미칠 것만 같았다. 이 경의 귓가에 영선의 힘없는 목소리가 맴돈다. 이 경을 원망하는 시가 감돈다.

 이 경의 손이 떨려왔다.

"신, 신귀비가 살아있어야 한다."

 이 경이 결국 거의 뛰어서 만화궁으로 간다. 당장이라도 만화궁의 안으로 뛰쳐들어갈 것 같던 이 경이 갑자기 우두커니 멈추어 섰다. 달려가던 이 경을 황급히 따라오던 류 태감이 멈춰서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 경에게 물었다.

"들어가시지 않으십니까?"

 간신히 진정을 한 이 경의 손에 편지가 우그러진다. 만화궁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이 경이 갑자기 허탈하게 웃었다.

"또 내가 지는구나.."

 이 경의 말에 류 태감이 불안하여서 안색을 살핀다. 이 경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이 경이 만화궁을 보자 다시 신귀비를 미워하는 마음이 살아나는 것 같아서 그를 설득하려 말을 했다.

"귀비의 마음이 좁아서 그러한 것입니다. 어찌 속 좁은 *분대 하나를 광명정대하신 폐하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

 이 경의 표정이 창백해진다.

"이번에 내가 허겁지겁 그를 찾으면 얼마나 또 신귀비가 기세등등하여 날 잡아먹겠느냐."

"편지까지 쓰셨으니 신귀비가 숙이고 들어온 것 아닙니까."

"이 편지에 쓰여있는 시가 뭐냐? 나를 원망한 것 아니냐!"

 이번에는 정말 단단히 화가 난듯 이 경이 시가 적힌 편지를 던진다. 그것을 본 류 태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더 이상 말을 하면 오히려 이 경이 역정을 낼 것 같기에 살기등등한 그 앞에서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조아린다.

 그리고 그 때 이 경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저게 뭐하는 짓이냐.."

 류 태감이 만화궁의 문 사이로 보이는 것들에 동시에 얼굴을 파랗게 만든다. 이 경이 버럭 소리를 질러서 궁인을 불렀다.

"당장 뛰쳐 나와라!"

 이 경의 불호령에 흰 옷에 흰 띠를 두르고 머리를 풀어 헤친 어린 궁인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서 이 경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대체 이게 뭣하는 짓이냐?"

 이 경이 화가 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어쨋든 머릿 속이 새하얘져서 묻는다. 궁인들이 만화궁의 마당 앞에서 소복을 입고 온통 하얀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 이 경이 놀라서 손을 벌벌 떤다. 혹시라도 영선이가 죽은 것일까. 이 경은 가슴이 뻥 뚫린 것만 같은 공허함과 미칠듯한 공포심에 젖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대, 대체 무.. 슨 짓이냐고 물었다!!"

 궁인이 두려움에 가득 차서 몸을 엎드리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 경은 힘이 빠져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귀비 마마께서 곧 마마께서 죽고 난 후에는 폐하께서 노하셔서 곡도 못하게 할 것이 분명하니 미리 준비해서 곡이라도 크게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가는데 한이 없다며 폐하의 명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크게 곡을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그 약은 뭐냐."

"목청에 좋은 약재들입니다."

 부채를 파닥거리면서 약을 달이고 있던 궁인 하나가 말한다. 류 태감이 넋이 나가서 그들을 바라보고 이 경의 몸이 비틀거린다. 류 태감이 비명을 지르며 이 경을 부축하고 이 경이 창백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이 경이 그 소리에 넋을 나가 그를 가만히 내려보다가 귀비의 궁을 빠져나오는 사내의 모습을 발견하고 벌컥 소리질렀다. 낯선 사내는 한눈에 봐도 궁인의 모습이 아닌 사가의 평민과도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사내가 몸을 숙이면서 말을 했다. 사내의 허리춤에 막대자가 대롱 달려 있었다.

"관을 짜는 사람입니다."

"관 짜는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느냐!"

"귀비 마마의 관의 견적을 재러 왔습니다."

"무슨 미친 소리냐?!"

"귀비 마마께서 죽은 후에라도 좋은 관에 몸을 넣기라도 해야 한이 없겠다 하셔서.."

 이 경이 그 말을 듣고 생각을 멈췄다. 이젠 모든 것이 평온해지고 마음이 온화해진다. 이 경의 머릿 속이 새하얘지고 이 경이 마음 속에 평화를 되찾는다.

 기가 질려 말을 잃는다. 이 경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멍하게 만화궁을 바라보았다. 그 고집이 어느 정도여야지 화가 날텐데 이것은 도저히 이 경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 미움도 원망도 분노도 사라진다. 이 경은 결국 자포자기해서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가자."

 이 경이 힘없이 하는 말에 류 태감이 물었다.

"어디를 말씀하시는 것이 온지요?"

 이 경이 대답하지 않고 성큼거리면서 만화궁 안으로 들어갔다. 류 태감이 어선방에서 진상한 어죽을 들고 쪼르르 그를 따랐다.

============================ 작품 후기 ============================

주석 1. 백거이 태행로, 옛글닷컴 주석 펌. 백거이 시 존좋bb

주석 2. 후궁을 뜻함. 마찬가지로 백거이 시 중 육궁분대무안색(소제목)에서 나온 말.

1. 이 경이가 졌습니다ㅠㅠㅠ 이 경이도 만만찮게 고집불통이지만 영선이가 어나더레벨이여서

2. 도원향가는 제 덕질을 적합하는 조오오흔 소설이라 소장본을 내고.. 싶습니다ㅠㅠㅠ 사정이 된다면... ㅎㅎ

3. 이 경이가 만약에 단식투쟁한다면 영선이는 비녀로 목 겨누며 협박하거나 팔을 잘라서 사죄할 애입니다. 영선이는 뒤에 나오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상이 아주 보수적입니다.( 춘추전국시대 협객 특유의 인명경시 사상 비슷)

4. 사실 이 시대 사고방식으로는 영선이 엄청x100 잘못한게 맞습니다. 구족을 멸할 감이지만 역사상에 영선이보다 황제에게 불손했던 후궁이나 황후들이 꽤나 있었는데

- 황제가 궁녀의 손을 칭찬하자 손을 잘라서 쟁반에 담아 보낸 황후

- 애꾸인 황제를 볼때마다 반쪽만 화장을 하고 장애인이라 조롱하던 황후

- 여자랑 간통한 황후 & 그냥 간통한 황후 & 아예 살림을 차린 황후 & 여러 간통한 후궁

- 알코올 중독자여서 황제를 폭행하고 토악질을 한 후비

- 황제의 이름을 부르고 어린아이 대하듯이 한 황후

- 황제가 총애하는 여인의 목을 잘라 배송한 황후

- 태후에게 계모라고 모욕한 황후

- 대놓고 황제에게 제 소생이 아닌 황제의 아들을 죽이라고 협박한 후궁

- 황제가 죽기 직전에 우유를 먹고 싶다고 하니 우유는 커녕 돈을 빼돌린 황후(결국 황제는 못먹고 죽음)

 샹관핑 작가의 후비열전(도서관마다 진열된 그 양장본)을 보시면 아주 가관입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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