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148)

00032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 =========================

 이 경은 문턱을 밟자 마자 나는 향(香)타는 냄새에 얼굴을 찌부렸다. 평소에는 향을 태우지도 않던 것이 오늘따라 불길하게 향을 태우고 있어 이 경은 얼굴을 찌부리면서 소매를 휘둘렀다.

"무슨 향이냐?! 꺼라!"

 계자가 향을 끄고 공손히 시립한다. 이 경이 어두운 얼굴로 침상에 가까이 가자 서서히 휘장 안에 영선의 모습이 보인다. 만화궁의 얼굴을 보면 금방이라도 역정이 날 것 같았는데 이 경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휘장을 젖힌 이 경이 아득한 숨을 내쉰다.

 얼굴을 *하얀 천으로 가린 영선이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드러난 앙상한 팔이며 쇄골이며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도 병자와 같았지만 지금은 그저 사람의 몰골이 아니다. 이 경이 머리가 어질거려 비틀거리면서 쓰러질 것을 간신히 침상 위에 앉는다. 안그래도 하얀 영선의 피부가 새파랗게 시체처럼 변하고 있었다. 궁인들이 곡을 할 준비를 하고 관 짜는 사람이 들락거리는 것이 시위인줄만 알았는데 그네들이 울고 있고 진지하게 막대자를 가지고 오는 것이 빈말이 아닌 줄 이제야 아는 이 경이다.

 죽음의 냄새가 훅 하고 불고 있었다. 뼈다귀 밖에 안남은 몸은 그 전과 다르게 낭창하지도 예쁘지도 않았고 시체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이 경이 격한 감정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냐."

 영선의 몸이 움찔 거린다. 이 경이 이를 악물면서 눈물을 참고 손을 뻗는다. 영선의 얼굴을 가린 흰 천을 뺏으려는 것을 영선이 힘겹게 말을 하여 막는다.

"보일 수... 없는... 몰골..입니다..."

 그 처참한 목소리에 이 경이 몸을 떨면서 말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왜 내게 얼굴을 보일 수 없어."

 영선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첩신은... 흉한 얼굴... 보일 수가..."

 이 경이 울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네 얼굴이 흉하다고 싫어할 것 같으냐?!"

 그러나 영선은 고집세게 고개를 저었다. 이 경이 영선의 얼굴을 가린 흰 천이 원망스러워 몸을 떠면서 운다. 치를 떨면서 영선을 노려보던 이 경이 결국 눈을 감고 눈물방울을 떨어트렸다. 차마 눈을 뜨고 보기가 힘들어 이 경은 애가 타는 마음에 류 태감에게서 어죽을 빼앗은 다음 말을 한다.

"죽이다. 먹어라."

 수저로 죽을 갠 이 경이 어죽을 뜨고 호호 분다. 결국 눈물을 어죽 위에 몇방울 떨어트린 이 경이 목맥힌 목소리로 말을 했다.

"짐이 떠줄테니까, 먹자."

 영선은 대답을 하지 않고 몸을 떤다. 이 경이 분해서 무어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 영선의 몸이 파르르 떨려 왔다. 영선의 입에서 다 죽어가는 병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경은 그 목소리를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간신히 집중해서 그 말을 들었다.

"황상..."

"그래, 짐이 졌다. 짐이 이곳에 왔다."

"황상의 은혜를 받아서... 시골.. 한가 자제가... 감히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이 경이 그 말에 울컥해서 영선의 깡마른 손을 잡았다.

"앞으로 더 호사를 누릴테니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첩신이... 성격이 나빠서... 폐하를... 많이 괴롭게 했습니다..."

"말을 하지 말거라. 말을 하지 말거라."

 영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했다. 이 경은 영선의 얼굴을 가린 흰 천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영선의 손을 볼에 비볐다.

"첩신이 죄송합니다..."

 그 말에 미움이고 분노고 다 풀린다. 영선은 희미하게 말을 한 뒤에 가쁜 숨을 내쉰다. 이 경이 꺽꺽 울면서 영선을 끌어 안았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이렇게 대거리를 했을까. 어린 청년의 곱고 비단결 같은 피부가 이 경처럼 거칠고 사납다. 피골이 상접하고 귀신인지 해골인지 구분할 수 없을만큼 참담한 몰골에 이 경이 울면서 말을 했다.

"짐이 잘못했다!!!"

 이 경이 거의 통곡을 하면서 침대에 얼굴을 묻고 영선의 손을 꽉 잡는다. 비참한 몰골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쾌활하고 발랄하던 백가 영선이가 어떻게 저리 참혹하게 변했는지, 이 경은 자신이 원망스럽고 제 쓸데 없는 자존심을 후회하면서 울었다.

"내가 네게 손을 올리고 바로 후회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마!!"

"......"

"후궁들도 다 내쫒으마!"

"폐하.."

 영선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 이 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몸을 우뚝 굳혔다.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마십시오..."

"......"

"첩이 기대합니다..."

 이 경이 그 때 서늘함에 몸을 떨었고 충격을 받아 영선을 바라본다. 흰 천에 가려져 영선의 얼굴은 보이지가 않는다. 이 경이 그 때 목소리를 떨면서 말했다.

"절대로 어기지 않겠노라."

"......"

"천자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후궁전에 너 하나만을 놓겠다."

 이 경이 그 때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후도.."

"황상."

 영선이 몸을 잘게 떨고 이 경이 영선의 말을 잘 들으려 몸을 웅크린다. 영선이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하지 마십시오.."

"영선아, 내가.."

"하지 마십시오.."

 이 경이 영선의 몸을 잡고 몸을 숙인다. 울면서 이 경이 말을 했다.

"그래, 알았다. 네가 원하는대로 다 하마. 내가 다 해줄테니 뭐 좀 먹자."

"다시는..."

 영선이 힘을 내서 또박거리면서 말을 한다.

"첩신을..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그래."

 이 경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다시 너를 때린다면 그 때는 내가 사내가 아니다."

 영선이 눈물을 흘리는지 몸이 다시 떨리고 이 경이 몸을 일으켜 제 가슴팍에 영선을 기대게 만들었다. 정신을 거의 차리지 못해 끌려가듯이 일어난 영선이 목을 꺾는다.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해서 종이처럼 흐느적거리는 것에 이 경이 차마 말도 못하고 몸을 떨었다. 참담함이 가득하고 몹시 후회가 된다. 말도 못할 만큼 가볍고 앙상한 그 몸에 이 경이 다시 눈시울을 붉히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다시 손에 든 어죽을 수저에 푼 뒤에 영선의 입술에 억지로 댄다. 얼굴을 가린 흰 천을 잡으려 허우적 거리는 영선의 손을 잡아 내린 뒤에 이 경이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 얼굴을 보지 않으마. 그러니 먹어주거라. 제발.. 짐의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기느니."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말에 영선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이 경이 기뻐하면서 조심스럽게 입술 사이에 죽을 흘려 넣는다.

"장강에서 잡은 잉어를 뼈채로 푹 고아서 삶은 것이다."

"......"

"네가 고기를 먹지 않아서 짐이 특별히 명한 것이니 제발 먹고 회복하거라."

 아기새처럼 얌전하게 죽을 받아 먹는 영선이 어찌 그렇게 예쁜지 이 경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속삭였다. 허리를 단단히 둘러 죽그릇을 손에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수저를 떠서 영선의 입가에 흘러 넣은다.

"네게 또 뭣을 줄까. 누대에 색비단을 늘어트리고 옥으로 바닥을 깔아주마. 호수를 파서 배를 띄우고 너를 위해 길을 내겠다."

 이 경이 영선의 입가를 닦고 조잘거렸다.

"여름 장미가 예쁘다. 너는 장미를 좋아하니 나와 장미가 예쁜 지역으로 순행을 가자꾸나."

"......"

"영선아. 네가 아픈 것이 보기 싫다."

 이 경이 그늘진 얼굴을 한채 말을 했다. 목소리가 어둡고 낮다.

"네가 짐보다 오래 살아야지... 어린 것이 어찌 독하게 죽으려고 해..."

 나이도 반절인 것이 독하게 죽겠다 하는 것에 이 경은 상당히 충격을 받고 있었다. 한번도 이 경 생전에 영선이 죽는 것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어린 것의 마음이 저리도 모지니 이 경이 대경하여 탄식한다. 그리고 그 때 영선이 기침을 작게 하더니 고통어린 신음을 흘렸다.

"...헉..."

"...영선아?"

"커흑!"

 그 순간 영선의 몸이 고꾸라지고 영선이 목을 잡고 쓰러진다. 그것을 본 이 경이 대경해서 영선의 몸을 잡고 크게 소리쳤다.

"영선아? 영선아?!! 태의?! 태의를 불러라!!"

 영선의 몸을 꽉 붙들어 맨 이 경의 머리 속이 새하얘지고 손이 덜덜 떨린다. 이 경이 두려움에 영선을 꽉 끌어안으면서 미친듯이 소리쳤다.

"귀비가 죽으면 다 죽일 것이다!! 다 죽여버려 귀비의 무덤에 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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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을 차린 이 경이 가장 먼저 의심한 것은 독이었으나 태의의 결과는 달랐다. 몸을 웅크린 태의가 어죽에 뼈 하나가 단단하지 않고 물러서 걸린 모양이라 하여 영선의 목구멍에서 큰 가시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지켜보던 이 경이 그 말에 이를 빠득 갈면서 창노하여 옆에 있던 탁자 위 화병을 던진다.

 쨍그랑!!!

"그 개잡놈들을 다 찢어 죽이라!!! 귀비가 죽었으면 어찌할뻔 했느냐?!"

 이 경이 그 순간에도 영선의 말을 존중하여 얼굴을 보지 않고 흰 천으로 가렸다.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손이 이불을 꼭 쥐고 있는 것이 가련하고 안타까웠고 혹여나 저것을 잃을까 이 경이 두렵고 분노하여 관련된 책임자 모두를 거열형에 처하라 명령하곤 영선을 보듬었다. 영선이 정신차리고 형을 중지시켰으나 이미 몇몇의 궁인들이 잔혹하게 죽은 뒤였다. 이 경은 오히려 영선이 신경쓰자 화를 내며 더더욱 그를 애지중지하게 여겼다.

 분노는 사라지고 사랑과 연민밖에 남지 않으니 이 경이 지극정성으로 쓰러진 영선을 보살피고 손수 미음을 떠먹여 주었다. 영선은 보기드물게 순종하여 이 경의 말을 따랐으므로 이 경이 영선에게 한없이 미안해하고 애닳게 여겼다.

 여전히 팔십근(48 KG)도 되지 않을 법한 해골바가지이나 그래도 전보다는 사람의 몰골을 되찾은 영선이 얼굴에 천을 치웠다. 이 경이 환하게 웃으면서 영선의 손을 잡았다.

"황상, 얼굴이.. 초췌하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영선이 굶는데 이 경도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거르고 술로 세월을 보내 몹시 꼴이 좋지 않다. 눈이 움푹 들어가고 볼에 우물이 생기는 것에 영선이 미간을 찌부리며 손을 뻗어 쓰다듬는다. 이 경이 손에 든 미음 그릇을 내려놓고 웃었다.

"네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이냐?"

 영선이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이제 돼지 아니십니다."

"그래, 그래."

 이 경이 이제는 농담도 하는 영선의 모습에 기뻐서 미음을 다시 떠서 입가에 댄다. 영선이 이제는 분홍기가 감도는 입술을 벌려서 앙, 하고 문다. 이 경이 제법 자상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여름 장미가 예쁘더구나. 영화원에..."

 영선의 귀가 쫑긋거린다.

"보고 싶습니다."

 영선의 말에 고민을 하던 이 경이 영선의 몸을 조심스레 안아 든다. 영선이 순순하게 이 경의 목에 손을 둘렀다. 가벼운 몸에 인상을 찌부린 이 경이 영선이 놀랠까 보보(步步)를 주의한다. 영선이 순하게 이 경의 품에 안겼고 궁인들이 영화원을 가는 길을 통제하여 오로지 영선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경이었다.

 이 경이 그네에 앉는다. 영선과 이 경이 사랑을 나눴던 그 그네였다. 이 경이 조심스럽게 영선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 영선이 이 경의 무릎에 앉아 올랐다. 이 경이 고개를 끄덕이곤 영선의 허리를 끌어 안아 배꼽에 깍지를 낀 손을 올린다.

 영선이 잠자코 영화원의 전경을 구경한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고 분홍색, 자주색, 노란색의 장미들이 화사하게 제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을 바라본다. 이 경이 그런 영선의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머리카락에 코를 댔다. 약탕 냄새가 나는 것에 이 경이 안타까워서 속삭인다.

"네가 아직도 몹시 마르구나..."

 영선이 몸을 살짝 돌리고 고개를 꺾어 이 경을 올려다본다. 창백한 얼굴에 고개를 슬쩍 꺾으니 머리카락이 흐르듯이 쏟아져 내린다. 관을 쓰지도 않고 치장을 하지도 않은 얼굴이 기이하게 아름다웠다. 이 경은 깜빡이는 주황색 숱많은 눈썹 사이 유순히 바라보는 황갈색 두 눈에 마음을 뺏겨서 입을 맞췄다. 영선이 눈을 살짝 감고 혀를 받는다.

 이러니 이 경이 영선을 놓지 못했다. 이 경이 영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서 그의 마른 몸을 쓰다듬고 탄식한다.

"너를 잃었으면 내 어찌 살까."

"폐하."

 영선이 날아가는 나비를 보면서 눈을 깜빡였다. 잠시 침묵하던 영선이 흘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언젠가 제가 폐하를 다시 노엽게 만들어도 이 말 한마디만은 기억해주십시오."

"그래, 무엇이냐?"

 영선이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상념한다. 한참을 대답하지 않던 영선이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폐하를 향한 제 마음은 진심입니다."

 영선은 한숨을 쉬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이 경의 입술을 찾았다. 이 경이 순순히 영선에게 입술을 내주고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그래, 짐이 다 안다. 짐이 명심하겠다."

============================ 작품 후기 ============================

주석 1. 한무제의 후궁이자 이연년(한무제의 동성애인, 여동생을 경국지색이라 칭하는 시를 써서 '경국'이라는 미인을 칭하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의 여동생인 이부인은 죽기 직전에 얼굴을 가려서 죽은 후에도 한무제가 자신을 총애하여 가정을 돌보길 기대했다. 한무제가 아무리 애원해도 이부인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1. 단식투쟁 사건은 솔직히 영선이에게 리스크가 너무 크고 이 경만 도발하는 안좋은 술수인데 굳이 영선이가 단식투쟁을 한 이유는 이게 술수가 아니라 진심으로 열이 뻗쳐서 감정에 따라서 저지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선이가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관을 짠거..

2. 반드시 8월 휴가를 가기 전까지 도원향가를 끝내겠습니다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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