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1 장상사 최심간(長相思 摧心肝) =========================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있으나. 이 경이 황제고 자신은 후궁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생각없이 이 경을 품에 안고 바르작대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경이 섬세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차마 영선은 그에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류 태감이 얼른 영선의 머리에 붉은 면사를 씌어 주었다. 영선이 헛웃으면서 류 태감이 둘러주는 붉은 겉옷을 얌전히 입는다. 영선의 붉은 신발이 붉은 비단을 밟았고 붉은 등불을 든 류 태감이 붉은 가마 앞에 서서 공손히 영선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귀비 마마. 타시지요."
영선이 말없이 그것을 본다. 작지만 분명히 화려한 저 붉은 마차는 사가에서 혼례할 때 쓰던 마차이다. 그 옆에 수행인들이 붉은 등불을 들고 있엇고 영선은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결국 면사 아래에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야 말았다.
'이 경아..'
감동인가? 결국 이 경에게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인가?
영선이 마차 위에 올라 앉고 궁인들이 구슬발을 쳤다. 곧 가마가 흔들거리고 영선은 말없이 이 경을 생각했다.
'너가 결국 나를 얽어 매는구나..'
영선이 입술을 깨문다. 눈에 핏발이 스치고 영선이 환희와 절망을 같이 느꼈다. 이 구중궁궐에 끝까지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영선이 울음을 참으면서 붉게 칠한 마차 안에서 몸을 떨었다.
'너가 어쩌자고 이러니..'
이 경에게 바란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기대를 하게 만들지. 영선이 처음 이 경을 보았을 때 무식하고 성격이 난폭하여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생각보다 순수하기에, 그 까만 눈동자가 귀여워서 영선은 그저 이 경이 생각보다 귀엽다고 생각했었을 뿐이었으나..
'나는 언제부터 이 경을 위해 진심으로 비파를 켰었지?"
영선이 가장 아름다운 장미 봉우리를 꺾어 그 잎에 시를 새기고 그것을 말려 이 경의 주머니에 넣어줘 허리띠에 매어주고, 언제부터인가 이 경이 없으면 쓸쓸하고 마음이 공허했는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에게 안기는 이 경이 보기 싫었는가. 야속하고 화가 나서 이 경에게 상처주고 미운 말을 했지.
이 경이 어떻게 내 마음을 가져갔는가.
그제서야 영선이 헛웃음을 터뜨리고 주먹을 쥐었다.
'이 경, 너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초승달이 있었고 달빛 아래에 붉은 마차 하나가 덜컹이고 있었다. 등불이 길을 밝히고 그 가마 안에서 붉은 면사를 쓴 영선이 조잡하나마 분명히 그 이 경의 마음을 확실하게 느끼고 울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이 경이 그저 사랑하는 애첩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꽃가마를 보내건, 기쁘게 하기 위해서 겉으로나마 붉은 면사를 보내주건, 영선은 확신했다. 이 경이 생각하는 것보다 영선은 더욱 더 이것이 기뻤다.
발을 내리고 영선이 조심스럽게 붉은 신발로 비단을 밞았다. 길에 길게 늘어진 붉은 비단이 보인다. 영선이 자신이 지나온 길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앞을 바라보았다. 이 경이 웃으면서 문 앞에 나와 있었다. 이 경이 금사로 한쌍의 용을 새긴 붉은 옷을 입고 영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선이 면사 속에서 탄식한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에 소원이 있으면, 소원을 빌면 하늘이 반드시 이루어준다 합니다.(人言人有願 願至天必成)"
이 경이 티 없이 맑게 웃고 있었고 영선은 간절히 염원하여 그 자리에서 붉은 면사를 꽉 쥔다. 이 경의 소매에 그려진 한쌍의 용이 얽혀 있는게 보이니, 영선이 부질없음을 알면서 마음 깊이 바란다.
願作遠方獸 (원작원방수)
원하기는, 먼 곳의 비견수 되어
"영선아."
이 경이 영선의 손을 잡고 그를 바라본다. 영선이 붉은 면사 사이로 보이는 *군(君)의 웃음에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이 경이 말없이 영선을 바라보았다. 이 경이 잠시 붉은 소매로 얼굴을 가린 영선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그의 손을 잡고 궁 안으로 든다. 이 경과 영선이 손을 잡고 동시에 문턱을 밟았다.
步步出肩行 (보보출견항)
걸음마다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으면 해요
"나는 후궁이고 당신은 *군(君)인데 당신이 어떻게 내 군(君)이 된다고 할 수 있나요."
이 경은 그 말에 화를 내지 않고 말없이 영선과 함께 *동방(洞房)에 간다. 벽과 바닥이 붉게 칠해져 있고 가구가 염료로 칠해져 있다. 붉은 휘장이 침대 위에 너울대고 대추와 연밥과 땅콩이 베개 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이 경이 영선을 끌어 안고 조심스럽게 그의 발이 닿지 않게 침대 위에 올린다.
願作深山木 (원작심산목)
또한 원하기는, 깊은 산에 나무되어
이 경이 조용히 영선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황제라 네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고 내가 속이 좁게 굴어 네가 아파할 수도 있다."
이 경이 영선의 면사를 천천히 걷는다. 붉은 면사 속에서 희고 고운 얼굴이 드러나고 주홍색 머리다발이 흐드러졌다. 눈물이 고인 황갈색 눈으로 이 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선이 이 경의 손을 꽉 잡는다. 말없이 그의 손을 잡고만 있었다.
枝枝連理生 (지지련리생)
가지마다 이어져 서로 닿아 살아갈 수 있었으면
"그래도 너를 항상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이 경이 진지한 눈으로 영선을 바라보고 거친 손으로 영선의 볼을 쓰다듬는다. 영선이 아득한 숨을 내쉬며 이 경을 올려다보았다. 이 경의 손등 위에 손을 올리고 그 손바닥에 볼을 부비며 영선이 속삭였다.
"제가 폐하를 남편으로 생각하면 폐하도 저를 하나뿐인 짝으로 생각할겁니까?"
"내 마음 속에 부인은 너 하나밖에 없다."
영선이 아찔해져 호흡을 거칠게 했다.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이 경의 손을 쓰다듬고 조용히 울면서 말했다. 영선이 이를 악물면서 이 경을 노려보듯 바라본다.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모습에 이 경이 놀라기도 하고 그러나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입을 가만히 다문다.
영선이 합환주를 따랐다. 이 경이 잔을 나누고 서로 화합을 기리며 독한 술을 마신다. 옷고름을 잡아 풀고 허리띠를 푼다. 영선의 긴 손가락이 이 경의 붉은 옷을 헤친다. 이 경이 말없이 영선을 바라보고 눈을 감았다.
영선이 이 경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어깨를 눌러 침대 위로 그를 눕힌다.
옷고름을 푸는 소리가 귓가에 사각인다. 두 개의 촛불이 일렁거리고 휘장 위에 그림자가 겹쳐진다.
이 경이 달떠서 숨을 내쉬면서 눈물을 참았다. 영선이 눈가를 손가락으로 닦으면서 다정히 말했다.
"왜 괴롭게 눈물을 참으세요?"
이 경이 작게 신음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그냥 웃고만 싶어서.."
영선이 웃으면서 말했다.
"동방에 흐르는 눈물은 눈물이 아니랍니다."
이 경이 그제서야 웃으면서 눈꼬리의 눈물을 주륵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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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이 침대에서 웃으면서 영선을 바라보고 영선이 행복해서 이 경을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영선은 주홍색 머리를 길게 푸르고 하얀색 단정한 침의를 입고 말없이 이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경의 얼굴이 발게졌지만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저 사내의 눈은 그 누구보다 달았다.
영선은 항상 가볍고 쾌활했지만 가끔 보여주는 저 사랑에 빠진 두 눈에 이 경은 헤어낼 수 없이 감격했다. 이 경은 동방을 만들어준 것이 무척 잘했다고 생각하여 헤실 웃으면서 영선의 그 달콤한 시선을 감상했다.
"영선아."
영선이 아득한 숨을 내쉬며 이 경의 입술을 더듬는다. 이 경이 그 손목을 잡자 영선이 부드러운 입술로 그 이 경의 거친 입술을 성애없이 애타는 표정으로 문지른다. 감촉을 느끼려는 듯 영선의 눈이 감겼고 이 경이 그런 영선의 머리카락을 검지에 휘감으면서 다정히 말했다.
"영선아.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나는.."
영선이 부드러운 눈으로 이 경을 보았다.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 괜찮아요."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잖느냐."
"사실 상관없었습니다."
이 경이 잠시 영선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거리면서 옷을 입었다. 영선이 자리에 일어나 도와주려는 것을 이 경이 말리면서 말했다.
"오늘은 첫날밤이라 생각하고 내가 네 옷을 추스려주마."
이 경이 겉옷을 입혀주자 영선이 말없이 이 경을 바라본다. 이 경이 웃으면서 영선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 주변에 옅은 강이 있다. 그 주위를 걸을까?"
"걷다가 배가 고프면 사가에서 밥을 먹어요."
"시장 구경을 가자."
이 경과 영선이 옷을 챙겨 입고 백수(白水)를 걸었다. 호위를 최소한으로 하고 이 경은 황룡포가 아닌 사가의 옷을 걸치고 영선도 화려한 비단옷이 아닌 백의의 학창의를 입었다. 이 경이 영선의 손을 잡고 행궁에서 조금 떨어진 작고 물이 청명하고 깨끗한 강을 따라 걸었다.
영선이 이 경의 손을 붙잡자 이 경이 속으로 호갑투 속 생각보다 거친 손에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네가 비파를 쳐서 이렇게 손이 아프냐?"
영선이 잠시 고민하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폐하는 제가 비파를 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까?"
"비파를 쳐도 손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경이 짧게 말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원한다. 황제라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짐이 그것을 원한다."
영선이 씩 개구지게 웃더니 이 경에게 작은 다리를 가리킨다.
"폐하 저 끝에 서보세요."
이 경이 의아하여 영선을 보자 영선이 그에 먼저 다리를 건너 그 끝에 서고 이 경에게 말을 했다.
"저는 낙교의 북쪽에 살았는데, 당신은 낙교 남쪽에 살았었군요."
이 경이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그가 외는 시임을 깨닫고 헛웃었다. 영선이 손을 벌리면서 나직히 말을 했다. 눈이 비취처럼 빛나고 있었고 작은 다리 아래에 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영선이 소매로 얼굴을 가리면서 느릿한 목소리로 극을 하듯이 말을 했다.
"열여덟 나이에 서로 알게 되어 금년에 스물하나가 되었어요."
이 경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영선이 강 반대 편에서 그를 따라 걸으면서 이 경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이 경이 따라서 강을 천천히 걸었다. 몹시 서늘하여 기분이 좋은 날이었고 애인 또한 기분이 좋아서 낭랑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마치 담쟁이 넝굴처럼 되어 소나무에 기대어 사는 것 같았습니다."
이 경이 영선을 바라보자 영선이 반짝 빛나는 생기있는 두 눈으로 본다. 이 경이 웃으면서 소리쳤다.
"조심해라. 영선아. 헤엄도 못치잖느냐."
이 경을 바라보면서 저렇게 웃고 있으니 발 밑을 보지 않고 강가를 따라 걷는다. 햇빛이 보석처럼 흩뿌려진 강처럼 빛나는 눈을 뜨니 이 경이 그 눈을 보면서 행복해하고 영선이 씩 웃었다.
"그대.."
그리고 이 경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조심해라!"
영선이 비틀거리면서 눈을 크게 뜨고 순간 무릎에 닿는 무언가에 놀라서 그를 내려본다. 영선이 눈을 깜빡이는 어린애의 모습에 멍하게 말했다.
"너는 누구니?"
어린 아이가 중얼거리면서 영선을 올려다 보았다.
"형은 누구예요?"
영선이 머뭇거리다가 이내 씩 웃으면서 농하듯이 말했다.
"내 머리가 붉은 것을 보니 누군 것 같니?"
사실 학사모를 가져왔으나 영선은 거추장스럽다하여 벗고 있었다. 아이가 잠시 그 머리를 보다가 말했다.
"형이 도올달기예요?"
영선이 금방 웃음을 터뜨리고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이 경도 파안대소했다.
"하하하!"
아이를 좋아하는 영선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한다. 아이의 옷이 개구장이 다웠고 양갈래 머리를 옆으로 쪽지어서 묶으니 그가 동네의 더벅머리 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내가 도올달기란다."
그리고 이 경의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지고 영선의 표정이 숭간 굳었다. 아이가 갑자기 눈매를 매섭게 하더니 강가의 진흙을 주워 영선의 얼굴에 던졌다. 영선이 바로 손으로 막아 얼굴에 닿지는 않았으나 충격을 받아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아이가 험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북걸(北傑)님을 괴롭히지 마!!!! 이 요부!!"
이 경이 순간 노하여서 험악한 목소리로 강 바로 건너편에서 소리쳤다.
"오 상환!! 당장 저 개종자의 목을 베어 와라!!"
영선이 그에 황급히 손을 들었다.
============================ 작품 후기 ============================
주석 1. 백거이의 장상사. 장상사는 여러버전이 있으며 장상사 최심간은 이백의 장상사 구절을 따왔으나 이 시는 백거이의 것이다.
주석 2. 군(君)은 군주를 뜻하나 남편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주석 3. 동방은 중국 전통 풍습으로 첫날밤 침실을 뜻한다.
1. 황후의 평판이란 뭐 현덕숙량해서...
2. 이 경이....저 다짐이 언제까지 갈련지.....
3. 너무 글을 많이 써서 그런가 머리가 아프네용 도원향가 완죤 제 취향 덕질이라 기쁘게 쓰지만 제 기준으로 너무 장편이라 조금씩 힘들어지네용 8ㅂ8
추가) 몇일간 연중하겠습니다. 몸이 안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