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5 장상사 최심간(長相思 摧心肝) =========================
이 경이 홀린듯이 정면을 바라본다. 그 순간만큼은 옆에 있던 류 태감도, 오 승환도 감탄하여 이 경처럼 넋을 잃고 그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경의 명마가 마치 주인을 따르는 것처럼 넓은 들판 위를 훌쩍 난다. 말과 하나가 된 것처럼 자유자재로 이 경의 말을 다루는 영선의 입가에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가 그려져 있다. 영선이 하얀 백의를 입고 주홍색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니 그 광경이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영선의 기마술은 전장에서 뼈가 굵은 이들도 감탄할만큼 화려하고 뛰어났다. 영선이 순식간에 이 경에 앞으로 와서 방긋 웃으면서 이 경에게 말했다.
"내가 자랑스럽죠?"
그건 정말 자신에게 확신을 가진 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 경은 그 순간만큼은 비꼴 수가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자랑스럽다."
영선은 손을 뻗었고 이 경이 그 손을 잡고 말에 올랐다. 영선이 자신의 앞에 이 경을 앉히고 고삐를 단단히 잡았다. 이 경이 영선의 가슴팍에 몸을 기대면서 중얼거렸다.
"넌 정말 재주가 많구나."
영선이 고삐를 당겼다.
"으럇!!"
이 경이 씩 웃었다. 항상 말을 타는 것은 황궁 안에서 답답했던 심정을 날려주어서 좋아한다. 영선도 말을 몹시 잘 타서, 아니 이 경이 보는 사람 중에서 가장 말을 잘 타는 사람이 바로 영선이기에 이 경과 영선은 말을 자주 탄다.
이 경이 창고에서 광란의 정사를 벌인 이후로 영선과 이 경은 밖을 잘 나가지 않았다. 분명 이 경이 그 창고에서의 정사에서 많이 느끼기는 했지만 굉장히 수치스러운 것도 사실이기에 그 마을 근처에는 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행궁에서 뒹굴거리면서 영선은 후궁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냈는데 오랜만에 주변 관리들이 명마를 바쳤다 하여 들판에 온 것이다.
이 경이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소리쳤다.
"영선아! 이 말 너 줄까?"
이 경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한 말임에도 그렇게 말한다. 영선이 말을 탈 때 그 재주가 아슬하면서도 자유분방했다. 마치 그의 성격을 보여 주는 듯이 톡톡 튀면서도 한번도 위기를 맞지 않아 이 경은 그 기마술에서 자유로움을 맞보았다. 이 경은 그래서 영선이 좋았다. 저 황궁 속에서도 자유로운 영선이 좋았다.
영선이 말을 빠르게 몰면서 대답했다.
"그냥 폐하 것 해요!"
"왜?!"
"폐하 것이 제 것이니까!"
이 경이 호쾌하고 시원하게 웃었다.
"하!!"
영선도 여우같이 웃곤 이 경의 어깨에 턱을 댄다. 이 경이 신이 나서 영선에게 이것 저것 더 재주를 부려보곤 더 빠르게 뛰라고 요구했다. 영선이 그대로 말을 따랐고 이 경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럼 네가 이름 지어줘라!"
"이름?"
"그래, 지어준다면 네가 더 문학에 조예가 깊으니까!"
영선이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 경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모과(木果)."
"모과?"
이 경이 어리둥절해서 말한다. 그 와중에서도 영선은 능숙하게 말을 다루고 있었다.
"그 모과 열매 말이냐?"
"투아이모과.."
영선의 목소리에 이 경이 시경의 구절임을 알고 탄식했다.
"너 이리 예쁜 짓을."
남녀가 사랑을 주고 받는 시이니, 영선이 모과라 이름 지은 것이 말을 사랑의 증표라 여긴다는 것이다. 이 경이 잠시 몸을 떨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내게 어떤 아름다운 패옥을 줄 것이냐."
영선이 이 경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 말로 평생 당신이 원한다면 이 들판에서 당신을 위해 말을 타리라."
이 경이 잠시 침묵했다. 영선의 고삐 잡은 손을 잡았다. 그것이 조금 위험한지라 영선의 눈에 곤란함이 스쳤지만 서서히 속도를 줄이면서 이 경에게 맞췄다.
이 경이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영선아 네가 너무 사랑스럽구나."
말을 천천히 멈춘 영선이 빙그레 웃으면서 이 경을 본다. 이 경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꺾어 영선의 입술을 찾고 영선이 사랑이 가득한 눈을 한채 이 경의 입 안에 숨결을 내뱉었다.
달콤한 내음에 이 경이 아득한 숨을 내쉬었다.
"*보답하려 들지 말고 영원히 나와 사이좋게 함께 하자."
영선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정확히 하루 후에 이 경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소리질렀다.
"천첩(賤妾)주제에 감히!!!"
영선이 이 경을 바라보면서 잔뜩 비아냥거렸다.
"애초에 폐하처럼 문란한 사람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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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거기서 있었다.
"심운화(心雲花)?"
이 경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딱 보아도 이름이 천하군."
기녀들이 쓸 법한 단어에 이 경이 고개를 돌리자 류 태감이 냉큼 대답한다.
"강남제일미녀에 무엇보다.."
"응?"
"양인이랍니다."
그것엔 이 경도 놀라서 류 태감을 빤히 바라보고 류 태감이 고개를 숙인다. 애초에 영선과 사이고 좋은 류 태감이지만 이것은 백수 주변에서 대대로 이름을 날렸던 호족들이 정식으로 말을 넣은지라 류 태감도 조심스럽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비파 솜씨가 천하제일이고 걸음걸이가 독특하게 어여뻐서 버들같다고 하온데.."
"비파는 영선이가 제일이다!"
단호하게 말한 이 경이지만 류 태감의 눈치에 한숨을 쉬고 말했다.
"분명 자네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호족들의 청이겠지?"
"예, 폐하. 정식으로 심운화를 초청하여 연회를 베푼답니다."
이 경이 골똘히 생각을 한다. 사실은 영선이가 있어서 반응을 격하게 하는 것이지 이 경도 강남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여인을 보고 싶기는 했다. 여양인이 극히 드물어 천하에 아홉이 넘지 않으니 강 채요가 후궁에 있기는 하지만 영선과 싸운 탓에 초야를 아직까지도 치루지 않았다. 이 경이 *자질풍염(資質豊艷)한 미녀인 강 채요를 떠올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독수공방도 불쌍한데 영선이한테 물어봐야겠다.'
호족들이라곤 하지만 이 경이 금방 물릴 수 있는 청이었다. 요즘에 영선과 그토록 사이가 좋았는데 또 가면 영선이 삐질까봐 이 경이 한참을 머뭇거린다.
류 태감이 그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렇다면 한번 얼굴만을 보는 것이 어떨련지요?"
"으응?"
이 경이 평소와 다르게 순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눈치챈 류 태감이 손을 모으며 공손하게 말을 한다.
"잔치를 취소 시키고 그저 얼굴만을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심운화는 호족들의 초청을 받았지만 기녀로서 본분을 지킨다하여 근처 고급기루의 별채를 통채로 빌려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특한 여자구나."
이 경이 중얼거리다가 문득 호기심이 치솟아서 말한다.
"그럼 얼굴만 볼까?"
"몰래 잠행을 나가시면 어찌 신귀비 마마께서 행적을 아시겠나이까."
한참을 끙끙 거리면서 고민하던 이 경이 결국 류 태감에게 말했다.
"잠행을 가자. 어디냐?"
"백운루(白雲樓)이옵고 수행인을 준비하겠사옵니다."
결국 이 경은 그 창고 사건 이후로 껄끄러워서 가지 않았던 번화가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람의 수를 줄여 류 태감과 오 상환, 그리고 호위 몇몇을 대동한 이 경이 홍등가를 지나면서 픽 웃는다.
"이런 곳도 오랜만이군."
이 경이 황태자일 적, 음인으로 발현되기 전에 오 상환과 이 경은 같이 전장에 나갔었고 또 기루에도 출입한적이 있었다. 오 상환이 그 때 기억에 미미하게 얼굴을 풀면서 중얼거렸다.
"여전하군요."
사람들이 입을 맞추고 여인들이 팔짱을 잡아 매달리면서 호객행위를 한다. 대체로 평인들이 몸을 파는 *청루가 그리했고 기예를 파는 홍루는 그저 호객 없이 음악소리만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 경이 오 상환에게 물었다.
"너도 안갔었냐?"
"예, 그 날 이후로는 소신도 처음.."
이 경의 표정이 어색해지고 오 상환이 뻣뻣하게 몸을 굳힌다. 이 경이 음인 발현하고 나서 기루에 가지 않았기에 그 날이라 하면 바로 이 경의 첫 희락기를 뜻할 것이다. 그리고 오 상환은 새파래진 얼굴로 떠듬거리면서 말했다.
"죽, 죽여..!"
"너 더 하면 정비(貞妃)로 삼는다."
오 상환은 그 말에 말을 뚝 멈추고 우물쭈물하게 이 경의 뒤를 따른다. 오 상환은 충성심이 강해서 항상 그 얘기만 나오면 민감하게 말을 한다. 사실 이 경은 별로 감흥도 없고 오히려 첫 희락기 때 나쁜 꼴을 보이지 않게 오 상환이 잘 대해주어서 고마웠는데 오 상환은 그 얘기가 나올 때마다 머리를 돌바닥에 박는다. 그런 오 상환을 후궁으로 삼는다 말을 하여 입을 닥치게 한 뒤에 이 경이 골이 아파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면서 류 태감에게 말한다.
"어딘데."
"다 오셨습니다."
그제서야 이 경이 자리에서 우뚝 서고 앞을 빤히 바라본다. 어느 곳과 다를 데가 없는 기루지만 특이한 것은 음악소리가 정갈하고 그 음률이 다른데와 다르게 천박하지 않았다. 이 경이 기이한 기풍을 느끼고 흥미로움을 느껴 말한다.
"이거 기대가 되는 구나."
문 밖으로 나온 여인이 무릎을 꿇으려는 것을 이 경이 날카롭게 쏘아보면서 말했다.
"동네방네 소문낼 작정이냐."
류 태감이 얼른 말을 한다.
"내가 무어라 했나? 이 분은 그저 성도의 관리이시다."
그제서야 여인이 겁에 질려서 공손하게 몸을 조아렸다.
"알겠사옵니다. 천첩은 루주 운선(雲善)이라 하옵고 심운화 님께서는 별채에 계십니다."
"기녀들은 개나 소나 다 운(雲)자를 쓰는 구나."
이 경이 비웃으면서 말하고 운선은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조아렸다. 이 경이 운선이 같잖아 무심하고 깔보는 눈으로 바라보고 운선이 굽신거리면서 이 경을 안내한다. 이 경이 뒷짐을 지며 성큼 걸었다.
"그 아인 뭐가 잘 한다냐."
"비파와.."
"비파는 되었고 또 뭐를 잘하는데."
"시를 잘 지옵고 또 춤을 잘 춥니다."
"춤? 걸음걸이가 예쁘다더니.."
이 경이 침묵하다가 물었다.
"예쁘냐."
그제서야 운선이 확신이 가득찬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천상의 어느 여인도 강남제일미녀만 못하옵니다."
이 경이 그에 속으로 기대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는다. 복도가 길어서 이 경이 짜증을 내자 운선이 연신 고개를 조아려 천하지존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 노력했다. 결국 복도를 꺾자 보이는 청색 건물과 연못을 본 이 경이 자리에 우뚝 선다. 여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이곳입니다요."
그리고 이 경은 문을 열고 보보(步步)하여 별채 안으로 들어갔고, 그리고 고개를 돌려서 문득 연못 옆 정자에 앉아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이 경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었다.
키가 크고 늘씬하게 뻗은 미인이 하늘한 옷을 입고 있다. 그녀가 입는 옷은 하얀색 단정하고 구름같은 옷이었고 소매가 길고 몸을 가리고 있었다. 여인은 군살없이 늘씬하고 피부가 매우 하얗고 빛이 났다. 몸매가 마르면서도 우아하고 그러면서도 유방이 봉긋하고 아름다웠으며 피부에 은을 바른듯이 반짝였다. 얼굴은 귀족적이기 그지없는 미인이었는데 도도하면서도 차가운 인상이 강했으며 말마따나 운선이 언질한 것처럼 고귀한 천상선녀같은 인상이 컸다.
그리고 그 여인은 어느 사내의 무릎팍에 얼굴을 박고 말없이 흐느끼고 있었으며 주홍색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백의의 사내가 그를 심유히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청년이 여인을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말한다.
"심아(心兒), 울지 마라."
다정하게 눈가를 닦아주면서 청년이 조용히 말했다.
"우는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라고 네가 말했잖느냐."
무척이나 다정하고 어른스러운 목소리였다. 그것은 이 경도 드물게 들어볼 수 있는 청년의 깊이 울리는 목소리였기에 이 경은 확신했다.
류 태감과 오 상환이 놀라서 숨을 멈춘다.
이 경이 충격을 받아서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은 영선이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으로 이 경의 눈을 마주한다. 이 경과 영선이 잠시 침묵하면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먼저 이 경이 이를 까득 물고 주먹을 꽉 쥐면서 그를 불과 같이 타오르는 시선으로 노려본다. 이 경이 노하여 소리질렀다.
"네.. 놈이 감히 나를 배신해!!"
영선이 그 때 정신을 차리고 이 경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폐하."
영선이 고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운화를 보러 오신거군요."
이 경이 그 때 찔려서 눈동자를 흔들거리면서 영선을 바라본다. 영선이 이를 까득 갈았다.
============================ 작품 후기 ============================
주석 1~2. 일챕터에서 나왔던 모과. 처녀가 모과를 던지자 낭군이 패물로 답한다는 시경의 한 시로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시니
아름다운 패옥으로 보답하리다.
보답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이좋게 지내오리다.
이 곳에서 영선은 모과라 말을 지어서 이 경이 사랑의 증표로 말을 준 것이라 했고 이 경은 영선에게 그렇다면 네가 줄 패물이 무엇이냐 물었다. 영선이 영원히 이 경을 위해서 말을 탈것이라 하자 감격하여 이 경이 그것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하자고 시를 빗대어 말했다.
주석 3. 운, 화, 옥, 월 등 풍류를 나타내는 한자들이 들어가는 이름은 화류계에서 많이 쓴다. 귀족 계층에서는 쓰지 않는 이름. 귀족의 이름은 남녀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주석 4. 모란같이 풍만하고 요염한 미녀를 뜻함.
주석 5. 홍루에서는 기예를 팔고 청루에서는 몸을 판다. 즉 홍루는 예술인으로 인정받는 기녀 청루는 창기들이 거주.
1. 이 경과 영선이가 사랑날리는 것이 좋으신가요? 아니면 귀엽게 싸우고 투닥이는 게 좋으신가요? 아니면 완전 대판 싸우고 궁중암투 벌어지는 것이 좋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