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48)

00047 장상사 최심간(長相思 摧心肝) =========================

 이 경은 순간 사내가 돌아버린 줄 알았다. 그 말의 내용이 이 경의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이었기 때문이다. 첩? 이 경은 궁인 수천명을 거느렸지 소실될 생각은 꿈에도 꾸지 않았고 그는 그럴 수 있는 몸도 아니었다. 그러하니 그 말에 화가 나기 보다는 머리가 멍해져서 사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내가 이 경의 표정이 어찌 되었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화가 좀.. 나겠지만 정말로 잘해주겠어. 아저씨가 인정할 때까지는 여기 밖으로는 못나가지만 순순히 내 첩실이 된다고 하면 나가게 해줄게."

"......"

"그런 눈으로 보지마. 첩실이라 해도 떳떳하지 못해서 육례(六禮)를 못치뤄서 그러는거지 형씨가 내 유일한 첩실이면 정실이랑 다를 바 없잖아."

 저게 뭔 개소리지. 이 경이 영선으로 인한 상처, 울분, 살의를 죽이고 사내의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사내가 쑥스러운듯 볼을 긁으면서 이 경이 누워있던 침대로 올라갔다. 이 경이 사내를 빤히 바라보자 사내가 머뭇거리다가 이 경의 탄력있는 허벅지를 더듬거리다가 꽉 주무른다. 이 경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떼."

"아저씨도 그 때 좋아했잖아.. 아 제기랄. 나도 지금 욕이 나온다. 내가 왜 이럴까."

 한탄하듯이 말한 사내에게 다시 이 경이 으릉거리듯이 말했다.

"떼라고."

 사내가 그 때 이 경의 가슴팍 사이로 거칠게 손을 꽂아 넣었다. 갑자기 흥분한 사내가 이 경의 입술을 거칠게 탐하고 이 경을 침대 위에 눕히고 그 위를 타고 올라가 이 경의 옷을 찢었다. 이 경이 이제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어 그를 죽이려 손가락을 꿈틀거렸을 때 사내가 헐떡이면서 이 경의 위에서 말한다.

"나 원망하지마. 이건 형씨가 그렇게 생겨먹은 탓이거든."

"...뭐라고?"

"아니 씨발, 나도 어이 없는데 왜 자꾸 당신 얼굴 생각나냐고. 응?"

 사내가 이 경의 얼굴을 문지르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이 경이 그제서야 그 와중에 사내의 홀린 듯 넋이 나간 얼굴에서 익숙했던 무언가를 눈치채고 멍하게 그를 보았다.

'이 새끼...'

 사내의 목소리가 낮고 짐승처럼 울리고, 영선의 목소리가 평소에는 낭랑한 미성이라 몰랐었는데..

'생긴게 영선이랑 닮았어.'

 전체적인 골격이 영선이 마르고 호리하고 사내가 몸이 탄탄한 건달패인지라 차이가 나고 얼굴 또한 사내가 더욱 더 강인하게 생겼으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정말 몹시 똑같았다. 비열하게 생긴 것이나, 건들거리고 하는 폼이나, 위험하면서도 자유로운 인상이나.. 영선을 닮았다. 그리고 사내의 버릇도 어색할 때 뺨을 긁었고 이 경의 눈가를 다정하게 쓸어주는 것이다. 영선이가 그랬던 것과 같았다.

 이 경이 그 생각에 갑자기 사내를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았다. 사내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 경을 강제로 범하려 허겁지겁 옷을 벗기고 그 드러난 살결에 충동적으로 아득한 숨을 내쉰다. 사내가 이 경의 살을 혀로 정신없이 핥는다. 이리나 승냥이처럼 이성을 잃고 제 몸을 맛보는 사내가 혐오스러우나 어쩐지 한번 영선이 같아 보이니 죽일 마음보단 영선이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물밀듯 들어왔다. 사내와 영선이 겹쳐 보여 이 경은 분노로 몸을 떨면서 그를 노려본다.

"너... 이 새끼..."

 작고 억눌린 목소리로 감정을 꾹꾹 담는다. 그제서야 사내가 고개를 떼고 이 경을 올려다보았을 때 이 경은 사내를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수면향에 마비산을 강하게 섞어서 이 경이 몸이 잘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사내는 이 경을 강제로 범하려고 했으나 어쩐지 그 얼굴에 양심이 쿡쿡 찔리고 아팠다. 사내가 혀를 떼고 조심스럽게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이 경이 헐떡거리면서 그를 올려다본다.

 사내가 이 경을 빤하게 보다가 멍한 얼굴로 손을 뗐다. 이 경이 잠시 사내를 노려보다가 입을 뗐다.

"왜 더 안하느냐."

 사내가 이 경의 위에서 내려와 침대가에 걸터 앉는다. 한참을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

 이 경이 그 말에 팔로 눈을 가리면서 거친 숨을 고른다. 잠시 그렇게 있던 이 경이 축축히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내가 더럽냐."

"어?"

 사내가 놀라서 이 경을 바라보고 그제서야 소매로 눈을 가린 이 경을 보고 기함해서 말했다.

"어? 어?? 아저씨? 왜 울어?"

"너... 내가 더럽냐고!!"

"어, 어? 아, 아니? 왜?? 애인이 그래?? 그 이쁜 언니가??"

 이 경이 울컥해서 소리쳤다.

"내가 못생겼냐!!"

"아니!!!"

 사내가 놀라고 당황해서 버럭 소리지른다.

"아저씨 안 못생기고 잘생겼어!! 그리고 뭐가 더러워!! 애인끼리 하는 건데!"

"걔 내 정실이 아니라 애첩이다. 나 또 첩 있다."

 이 경의 가슴이 오르락 내린다. 서러워서 소매가 축축히 젖어드는 것을 본 사내가 멍하게 있다가 이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정말이야. 아저씨 보니까 애첩이랑 자는 게 문제되는 거야?"

"......"

"아저씨 남음인데 첩 거느릴 정도면 어지간히 능력있나 본데, 에잇! 사내가 첩들이는게 그 목적이지 엉? 그럼 모셔놔?? 그 언니가 질투해서 그런거네."

"네가 나보고 한 말이 있지 않냐..."

 사내가 창고에서의 능욕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움찔 거린다. 그러나 이 경은 그 조잡한 말에 위로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이없고 자신의 상황이 웃겨서 허탈하게 웃으며 얼굴을 쓸어 올린다. 사내가 말없이 이 경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그런 나쁜 기억 잊고.. 그냥 내 아내로 살래?"

"......"

"뭐 걍 정실 삼아줄게!"

 이 경이 기가 막혀서 말했다.

"너 날 왜 납치한 거냐."

"그, 그러게 말이다.."

 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제법 조심스럽고 정중한 손길로 이 경의 눈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었다. 이 경이 그를 조용히 응시한다. 사내가 이 경의 그 새까맣고 동그란 눈동자를 보곤 침묵하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형씨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네."

"미친놈.."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 경은 무언가 기분이 풀려서 맥빠지게 웃었다. 그 웃음에 사내가 헤벌죽 웃으면서 이 경의 손을 만지작거리고, 이 경이 그 때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정녕 네가 원한다면 첩실 삼아주마."

"음? 뭐라고?"

"원래 너 같이 천한 놈은 어울리지 않는다만 백정의 씨도 배었는데 건달 쯤이야."

"저기 뭔가 착각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첩 되는 게 아니라.. 컥!"

 사내가 갑자기 복부에 이는 충격과 흐릿한 시야에 이를 악물고 말한다.

"마, 마비산은..."

 이 경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옷을 주섬 걸치고 사내를 어깨 위에 걸치면서 중얼거렸다.

"빙신 새끼.."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어서 어깨 위에 축 늘어진 사내의 몸이 맥없이 흔들린다. 이 경이 쯧, 혀를 차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중얼거린다.

"하긴 그 맛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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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선이 기녀에게 돈을 주고 백운루의 오 승환에게 사람을 풀라 말을 하고 뒷골목의 불량배들을 찾아 다닌다. 영선이 귀공자처럼 보여도 험하게 자라 하류 계층의 일상을 잘 알았다. 불량배들을 타고 올라가 결국 사내의 은거지를 발견한 영선이 마지막 은거지를 뒤질 때는 이미 동이 튼 후였다. 영선이 그야말로 미칠 것만 같아서 숨을 몰아 쉬면서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아아.. 이 경아... 이 경아... 너 어디에 있어... 진짜!!!"

 영선이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친다. 기력이 없고 넋이 나가서 영선은 그야말로 사람의 꼴이 아니었고 눈은 충혈되고 있었다. 영선이 욕지거리를 내뱉곤 벽을 주먹으로 친다.

"씨팔!!! 진짜!!!"

 이 경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문란한 이 경이 싫다가도 이내 곧 그럴 수 밖에 없지, 그가 황제니까란 생각에 그 상처받은 두 눈이 신경쓰인다. 이 경이 울던게 자꾸 생각이나고 자꾸 후회가 되고 그가 걱정이 된다. 영선이 절망해서 얼굴을 감싸고 피가 흘리는 손을 덜덜 떨었다.

"아 너 진짜.. 어디에.. 어디있는거야.."

 고 운정 패거리들이 납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영선은 더더욱 절망했고 고 운정이 죄(罪)자를 새겼던 그 놈인 것을 깨닫자 이 경이 남음인 것을 아는 그 놈이 혹시라도 이 경에게 나쁜 방향으로 보복하는 것은 아닌지 안좋은 생각에 빠져든다. 영선이 머리가 돌아서 이를 악물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경!!!!"

"귀비 마마!!"

 그 때 계자가 울먹거리면서 시위와 궁인들, 병사들을 떼거리를 함께 하여 등장한다. 영선이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손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찾았, 찾았어?"

 계자가 엉엉 울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영선은 말을 하지 않는 계자의 모습에 미친듯한 불안감을 느끼고 그녀의 어깨를 잡고 닥달했다.

"다쳤느냐?! 이 경, 아니 폐하께서 무사해?!"

 계자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창백한 얼굴로 영선을 바라보았다. 영선이 그에 불길함을 느끼고 계자를 밀치고 행궁을 향해 달려간다.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서 행궁으로 달려갔다. 불안하여 입술이 파랗게 질리고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영선을 부르면서 계자와 수행인들이 영선을 따랐으나 워낙 다급하게 달려나간지라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영선이 헐떡거리면서 숨을 몰아쉰다. 행궁에 다다른 영선이 비틀거리면서 멈춰서고 그 앞에서 가만히 서 있는 익숙한 사내의 모습에 비명을 지르면서 뛰쳐갔다.

"이 경!!!"

 문 앞에서 그를 서성이고 있던 이 경이 고개를 들어 영선을 본다. 이 경이 복잡한 표정으로 영선을 바라본다. 이 경이 영선이 증오스럽고 화가 나서 그 얼굴을 보면 반드시 그를 죽이리라 생각했는데 영선이 삼대를 죽인다는 명에도 바로 뛰쳐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심지어 그리 충성스러웠던 오 승환도 몸을 사렸건만 그를 미친듯이 찾아다녔다는 것에 감격스럽기도 하고 하여튼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영선은 머리도 산발이 되고 마치 정신을 놓은 사람쳐럼 비틀거리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이 경이 울컥하여 고개를 돌려 그 얼굴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감히 성함을 부르다니요!!!"

 류 태감이 이 경이 영선에게 화낼까봐 두렵고 또 영선의 일이 그야말로 대역죄라 경악하여 소리쳤으나 영선이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간다. 영선이 치솟는 분노에 이 경의 어깨를 꽉 쥐고 이 경이 살을 죄는 아픔에 신음을 흘렸다.

"으윽.."

"마마!"

 오 상환이 말림에도 영선이 분노하여 소리친다.

"갑자기 튀어나가면!!!!"

 이 경이 시선을 외면하고 눈시울을 붉힌다. 영선이 이 경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격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이 경이 몸을 파들거리면서 그 시선을 기를 쓰며 외면하다가 욱욱 거리며 감정을 죽여 말을 한다.

"뭔 상관이냐."

"나보고 죽으라는 겁니까?"

 영선이 미칠 것만 같아서 이 경의 어깨를 꽉 잡고 그 얼굴을 강제로 돌린다. 이 경이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발악을 하다가 결국 영선의 외침에 몸부림을 멈춘다.

"내가 그렇게 미워요?"

 이 경이 그 말에 몸에 힘을 빼고 영선이 이 경의 볼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이 경이 눈물을 흘리고 있고 영선이 헉헉 거리면서 거친 숨을 흘리고 있었다. 밤나절을 이 경을 찾았던 영선이다. 영선이 너무 화가 나고 그리고 감정이 너무 격해서 그 자리에서 이 경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준다.

"내가 그렇게 싫어?"

"너, 너가 짐을 더러워한다면... 나도 널 볼, 볼 수 없다.."

 이 경이 붉어진 눈으로 영선을 노려본다.

"짐, 짐은 황제고.. 언제든지.. 후궁을 취할 수 있다."

 영선이 느릿하게 숨을 내쉰다. 이 경을 빤히 바라보는 저 묘안석같은 눈동자가 어쩐지 부담스럽고 수치스러워서 이 경이 눈을 깜빡이면서 시선을 피한다. 영선이 그런 이 경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얼굴을 가리고 몸을 숙였다. 이 경이 영선이 손에 얼굴을 묻고 말없이 서 있는 것을 바라본다. 그 절망감이 이 경에게 느껴졌다. 이 경이 그 때 영선의 왼 발을 보았다. 신발이 어디 갔는지 맨발이었고 상처가 나서 피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이 경이 그 때 울면서 말했다.

"나 보고 더럽다면서.. 왜 이렇게 찾아 다니느냐.."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영선이 지친 눈으로 이 경을 보고 이 경이 그 때 몸을 숙여서 영선의 발을 만졌다. 영선이 기겁해서 이 경의 어깨를 잡고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황, 황제는 무릎을 꿇어서는 안됩니다!"

"영선아.. 네 발이... 예쁜 발이..."

 이 경이 영선의 피가 흐르는 발 위에 손을 덮는다. 우는 이 경을 따라서 마주 주저 앉은 영선이 어쩔줄 몰라 하면서 이 경을 토닥였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네 발이.. 이게 뭐냐..."

 이 경이 영선의 발을 쓰다듬으면서 말을 하고 영선이 맥이 풀려서 이 경의 머리를 끌어 안고 토닥인다. 이 경이 영선의 품에서 몸을 떨었고 영선이 느릿하게 숨을 내쉬면서 이 경의 거친 심장소리를 느꼈다.

 이 경의 몸이 천천히 이완되고 헐떡거리던 숨소리가 진정이 된다. 영선이 차분히 그를 다독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서 익숙한 얼굴을 보고 얼굴을 살벌히 굳혔다.

"넌 뭐냐."

 영선의 말에 죄(罪)를 뺨에 새긴 사내가 뜨끔하여 고개를 팍 숙였다.

"이 새낀 뭔데?"

 영선의 험악한 목소리에 류 태감과 오 승환이 시선을 피하고 영선이 도닥이던 손길을 멈추고 이 경의 어깨를 서서히 민다. 이 경이 천천히 영선의 품에서 고개를 든다. 영선이 이 경의 어색한 얼굴을 무표정한 얼굴로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저 새낀 누군데요."

============================ 작품 후기 ============================

다음편이 말 그대로 개새끼공과 개새끼수의 합작이 아닐까.. 이 경이가 죄자 사내를 죽이지 못하고 순순히 살렸던 이유랑 처음부터 호감을 느꼈고 성교에도 그렇게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영선이랑 닮아서 맞습니다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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