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148)

00050 장상사 최심간(長相思 摧心肝) =========================

- *백인(白人) 심운화가 감히 황상께 아룁니다.

 이 경이 잠자코 편지를 내려다본다. 백수에서 말을 타고 달려온 기루의 사람이 그것을 이 경에게 바쳤다. 그리고 이 경은 한동안 그것을 펼쳐보지 않았다. 그러나 소 승상과, 류 태감 그리고 고 아정의 설득에 그는 그것을 열어보았다.

- 하늘에 맹세코 선생과 저는 이어진 사이가 아닙니다.

 죽었다는 것은 몰랐었는데 이 경은 먹먹한 심정이었다. 이 경이 가만히 편지를 바라본다. 이 경은 대체 무얼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고 있었다.

- 제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합니다. 또한 선생께서는 대쪽같아 폐하께 무례하시지만..

 이 경이 편지를 가만히 읽는다.

- 마음이 향하는 곳이 *장안임을 보았나이다.

"신귀비가.. 짐을 아프게 한다."

 이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 소 승상이 고개를 숙여 말했다.

"그러나 어찌하자고 사가에 내치십니까. 한번 집안에 들인 사람이 죽어서도 이 집안 귀신이 되어야 젯밥을 얻는 법인데 어쩌자고 사가에 내쳐시셔 이토록 수치와 모욕을 주시나이까. 비빈에게 그것보다 더 모욕적인 일은 없습니다."

"......"

 이 경은 차마 말도 못하고 울먹거렸다. 영선이 그리웠고 또 못 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영선이 완전히 이 경에게서 마음이 떠난 것이었다. 이 경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영선이 성격을 짐이 안다. 그 아이가 짐에게 등을 돌리고 이별을 고했으니 그 아이는 차라리 가문을 멸망시킨다 할지라도 짐에게 오지 않는다."

 그런 끝에 이 편지를 읽었으니 이 경은 차라리 태워버릴 것을 괜히 보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경은 영선이 자신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영선이 얼마나 까다롭고 예민했었는가. 사랑한다고 확신하지 못했던 것은 이 경이 영선이 똑똑하여 상처받지 않으려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선은 쾌활하고 정이 많았지만 이 경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이 경이 느낀 것은 영선이 생각보다 신중한 사람이란 것이었다. 그리고 영선이 얼마나 치열한 사람인 줄도 알았다. 사랑을 하면 그 영혼마저 불사를 그 정염.

 그것이 황제인 이 경도 얻을 수 없는 천금같고 만금같이 귀한 것이라 이 경도 그저 상상할 뿐이었다. 그것이 그토록 얻고 싶었는데 이미 가진 것이라고 하니 아까워서 미칠 것만 같고 이미 엎질러진 물에 귀가 멍해졌다. 성질을 좀 죽일 것을 그저 열이 받는다고 계속 일을 저질렀으니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와버렸을까. 이제 다 끝난 것을 돌이킬 수 없다.

 이 경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제 끝났다."

 이 경이 절망에 차서 편지를 던지고 울면서 말했다.

"영선이는 한번 돌린 마음을 돌리지 않을 아이다."

 소 승상이 침중하여 우는 이 경을 바라본다. 이 경이 절망하여 몸을 떤다. 이 경은 잊으려고 했던, 억눌렀던 감정이 살아나 어쩔줄 몰라했다. 감히 황제의 절망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소 승상이 그 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궁에 돌아가시고 다시 귀비를 부르신다면 신은 황실의 명예를 위하여 그것을 목숨을 걸고 막을 것입니다."

"뭐?"

 이 경이 충격을 받아서 소 승상을 바라보자 그가 그 때 바닥에 엎드렸다.

"사가로 내쫒고 돌이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소서. 마지막으로 보신 귀비 마마의 모습이 정말로 끝입니다."

 그 말에 이 경이 말을 잃고 그를 빤히 바라본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라고? 모질게 말을 하던 영선. 말의 목을 잘라 던져 새하얀 백의에 피가 묻은 그 모습. 단칼에 마음을 끊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라고?

 이별도 그렇게 충격적인 이별이 따로 어디있겠는가. 그만큼 끝이 좋지 않은 것이 어딨겠는가. 이 경이 꺼내기 힘들고 몸이 벌벌 떨려서 생각하지 못하는 기억인데 그것이 영선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이 경이 신음하면서 말한다.

"짐.. 짐이.."

"신귀비 마마를 버리실 수 있나이까? 그렇다면 모시겠습니다."

"짐.. 은..."

 영선이 속삭인다.

'이 마음은 진심입니다.'

 이 경이 결국에 인정했다.

"영선이를 버릴 수 없다."

"폐하. 신귀비 마마가 성격이 폭급하고 아량이 좁아서 그러합니다. 어찌 속좁은 후궁과 대거리를 하시렵니까."

 이 경이 허탈하게 웃었다.

"항상 짐이 영선이에게 졌었지."

"......"

 고개를 조아리는 셋 앞에서 이 경이 탄식하면서 말한다.

"맞다. 그 아이가 어려서 짐이 그에게 항상 져주었다. 어쨌거나 그 아이는 짐보다 훨씬 어렸으니까. 어쨌거나 짐이 황제이고 나이가 많으니 짐이 헤아려야지 그 아이가 짐을 헤아리겠느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머리를 조아린 소 승상에게 이 경이 결심하여 말했다.

"어가를 돌리자."

 그것에는 류 태감도 소 승상도 기겁하여 말렸다.

"안됩니다! 어가를 돌리는 것이 황실의 명예가 손상됩니다."

"사람들이 우습게 압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영선이는 편지 따위로 마음을 돌릴 애가 아니다!"

 지금 당장에 맨발로 뛰쳐 나가서 입이 닳도록 설득하고 달래도 당장에 올지 안올지 장담할 수도 없는 판국에 꼴랑 편지 한장으로 설득을 하라니. 이 경이 말도 안되는 소리에 얼굴을 구긴다. 소 승상이 생각치 못했던 것은 이 경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고 마음을 돌린 영선을 설득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이 힘든 일이라는 것이었다. 설득된 이 경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소 승상이 식겁하여 이 경을 말렸고 류 태감과 눈치를 보던 고 아정도 동참하여 이 경을 말린다. 그러나 고집이 쇠심줄 같은 이 경은 그저 반대의 반대를 거듭하여 기어코 어가를 돌릴 준비를 명했다. 그러던 이 경이 갑자기 퍼득 기발한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아니다! 어가를 돌리지 않아도 된다."

 안도했던 소 승상이 이어진 말에 식겁해서 소리쳤다.

"아, 아, 아, 아니되옵니드아아!!"

"폐에에하아아!"

 류 태감도 기겁해서 이 경을 말렸으나 이 경은 들어먹지 않았다. 단호한 눈으로 그들을 물린 이 경이

"더 말을 듣지 않겠다. 류 사자는 빨리 그것을 가져오라! 짐이 직접 그것을 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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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시대 초나라 옥장인 변화가 봉황이 기린 형산에서 기이한 옥을 하나 얻었다.

 변화는 그것을 초여왕에게 바쳤다. 초여왕은 옥공을 불러 그것을 감식했으나 옥공은 그것이 돌이라 하여 변화의 왼다리를 잘랐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다시 옥을 헌상했으나 무왕은 그것을 다시 돌이라 하여 변화의 오른다리를 잘랐다.

 무왕이 죽고 문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다시 옥을 헌상하였고 문왕은 그것을 다시 돌이라 판별하였으나 변화에게 물었다.

'네 어찌 정녕 죽음을 각오하고 영화를 탐하느냐?'

 변화는 대답했다.

'영화를 탐나는 것이 아닌 거짓말을 했다는 누명이 슬퍼서 웁니다.'

 변화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문왕은 장인에게 돌을 다듬으라 명하였고, 거기서는 천하의 둘도 없는 옥이 자리했다.

 그 완벽(完璧)한 옥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 하여 천하의 둘도 없는 보물로 여겼다. 화씨지벽에는 벌레가 앉지 않으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이능이 있었다.

 그 옥이 조나라 혜문왕의 손에 갔는데 천하의 강대국인 소양왕이 열다섯개의 성과 벽을 바꾸고자 했다. 그러나 인상여는 기지로 그를 물리쳐 결국 소양왕은 화씨지벽을 손에 넣지 못했다.

 마침내 소양왕의 후손인 진시황이 이를 재상 이사에게 명하여 '수명우천, 기수영창'의 자를 새겨 전국옥새를 만들었으니 진시황이 죽고 조고의 손에 들어갔으며 그 후에 자영의 손에 들어갔다.

 자영이 한고조 유방에게 옥새를 바쳐 전국옥새가 한나라의 국새가 되어 수백년을 함께 하다가 왕망이 그것을 강탈하려 했다.

 왕황태후가 전국옥새를 뺏으려는 조카에게 분노하여 옥새를 그들에게 집어던져 옥새의 모퉁이가 깨지고 왕망은 그것을 거두어 신나라의 국새로 삼았다.

 왕망의 신나라가 망하고 적미군이 전국옥새를 거두어 후한의 광무제가 그것을 금으로 보수하여 후한의 국새가 되었다.

 손견이 옥새를 발견하고 원술이 그것을 탐내었으며 조비가 그것을 가지려 여동생인 황후의 치맛 속에서 전국옥새를 강탈하였으며 수문제가 북주를 멸할 때 가장 먼저 전국옥새를 찾았고 수양제를 멸할 때 이 연과 이 세민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이 전국옥새였다.

 나라는 멸하나 국새는 바뀌지 않는다. 천년이 넘도록 중화의 권력을 상징하던 천자의 상징이다.

 국사에 사용되는 옥새는 종류가 여섯가지에 개수가 수백가지가 넘고 자잘한 도장이 만 개에 육박하여 상보감에서 따로 관리를 하나 오직 전국옥새만큼은 황실 족보에서 가장 큰어른이 소유하여 보관하였다.

 그리하여 이 경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전국옥새였다.

"미치겠드아아아!"

 영선이 공황상태에 빠져서 말을 미친듯이 달린다. 영선이 아무리 이 경에게 돌아서기로 마음을 먹었어도 이건 연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대사의 일로 넘어간 것이다. 그걸 알기에 류 태감이 말리지 못한 죄에 어두운 표정을 짓고 영선이 울먹거리면서 말을 몰았다.

"대체 이걸 보내면 어쩌자는 거라고..?!"

 그 상자 안에 고 운정의 목을 보내 사죄를 하였어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육친을 살해한다 협박하여도 영선은 차라리 같이 죽으면 죽었지 마음을 꺾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런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이것을 무기로 영선이 거병을 하면 사람들은 영선이 전국옥새의 주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바로 그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가 있다. 물론 아닌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바로 도올달기 요부라 불리는 영선에게 가능성이 있다하여 천하인재를 모을 수 있는 어마무시한 물건이 바로 이 전국옥새였다. 그저 그런 옥새가 아닌 천년 중화의 상징이 영선의 품에 있었으니 영선이야 말로 애간장이 꺼내져서 울분을 토했다.

"왜 말리지 못했어?!?! 왜, 왜, 왜, 왜?!?!"

 이 방면에서 할 말이 없는 류 태감이 대꾸를 못하고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폐하나 귀비 마마나 만만찮은 똥고집이십니다.'

 그리고 영선이 미친듯이 말을 몰아 이 경의 느릿한 행렬을 따라잡고 이 경의 처소로 숨을 몰아쉬면서 바로 뛰쳐나갔을 때, 영선은 분노를 못참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을ㅡ!!!"

 그리고 영선은 인기척이 없고 대꾸 또한 없는 음산한 방의 분위기에 더 말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야 말았다. 그제서야 진정한 영선이 숨을 몰아쉬고 진정한다.

 탁.

 품에서 전국옥새를 내려놓고 마음을 평탄하게 만드려 노력한다. 진한 향이 방에 가득차고 있었다. *태우는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영선이 눈살을 찌부린다.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이 향은 어쩐지 불안하여서 영선이 손가락으로 그것을 짓눌러 껐다.

'아.. 이 경.'

 순간 든 생각은 미칠틋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었다. 영선이 할 말을 잃고 휘장으로 가려진 침상을 바라본다. 그 뒤에 웅크린 사내가 있었고 영선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이토록 가깝다. 몇 발자국이 되지 않는 거리인데 영선은 차마 그 곳을 갈 염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탁자 위에 내려 놓은 옥새를 빤히 바라보는 영선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렸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고 초점이 흐릿하다. 멍하게 탁자 위에 옥새를 올려놓은 영선이 손을 들어서 그 상자를 쓰다듬었다.

 한참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영선이 말을 잃어 차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묵묵히 서있었다. 옥새에 올려놓은 손가락이 떨려온다.

 영선이 한참 후에 옥새에서 손을 뗀다. 주춤거리던 영선이 등을 돌렸다.

 발걸음을 떼려는 영선의 몸이 멈춘다. 영선의 입술이 짓눌린다.

"얼굴도...보지 않는 것이냐..."

 아주 작고 미약한, 갈라진 그 목소리가 영선의 발목에 사슬을 감듯이 붙잡았다.

 영선이 그 때 참지 못하고 침상으로 성큼거리면서 다가가고 금사를 박은 이불을 붙잡아 젖혔다. 이불을 꽉 쥐고 있던 손에 맥없이 힘이 풀린다. 영선이 그 속에서 덩치 값도 못하고 웅크린 이 경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어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겁에 질린 눈으로 영선의 눈치를 살피는 이 경이 곧 영선의 시선을 피하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저 덩치로 몸을 덜덜 떨면서 영선의 눈도 바라보지 못하고 있으니 영선이 그 처연한 모습에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영선이 한참 후에 신음하며 말했다.

"왜 이러고 살고 계십니까..."

 이 경이 고개를 돌리고 그를 외면하여 대꾸하지 않았다. 꼼지락 거리는 손을 바라본 영선이 한숨을 깊게 내쉬고 얼굴을 쓸었다. 참으로 많은 감정이 담은 긴 숨결이 흘러 나왔다.

"폐하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 작품 후기 ============================

주석 1. 민간인

주석 2. 도올의 수도

주석 3. 영선이는 태우는 향을 좋아하지 않으나 이 경이 영선이 단식투쟁을 했을 때 그는 향을 태웠다. 이유는 말을 안해도..

옥새를 맞추신 분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거시기... 거시기...ㅇㅂㅇ.....

다시 읽어보니 문맥이 아정이 거기 짜르는 걸로 보이는 군여.. 아정이 거시기는 무사해요.. 아직 으쌰으쌰 해야합니다..

배부른다는.. 그 의미가 맞습니다.

모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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