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148)

00052 장상사 최심간(長相思 摧心肝) =========================

 이 경이 화를 억누르는 것은 저 앞에 있는 것이 그가 귀여워하던 공주였기 때문이다. 관평공주는 장녀에 하나밖에 없는 황녀라 이 경도 부담가지지 않고 그를 아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경은 딸에게 몹시 노한 상태였고 평소라면 관평공주를 옹호했을 영선도 그저 묵묵히 있을 다름이었다. 이 경이 영선에게 상처를 심하게 받아 그의 말이라면 따를 것을 안다. 그럼에도 영선은 그럴 염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 경에게 몹시 미안하고 그리고 이 문제가 정략혼이기에 그 필요성이 함부로 말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입궁한 이후로 친오누이처럼 지냈는데 차마 영선은 개입하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했다. 미아가 화가 나서 눈을 치켜뜨면서 소리친다. 영선이 그 이 경과 판박이인 모습에 속으로 부전녀전이라 생각하면서 말없이 이 경의 접시에 음식을 덜었다.

"여가(黎可)가 태생과 별개로 별군사마(別軍司馬)에 오른 인재인데 어찌 화자의 아들이라고만 하십니까."

 미아가 울면서 말하는 것에 이 경의 표정이 굳어진다. 영선이 눈을 조심스럽게 떠서 이 경의 눈치를 살폈다. 이 경은 영선이 앞에 있어서 애써 감정을 죽인다. 잠시 식사를 멈춘 이 경이 갈라진 목소리로 경고했다.

"짐이 평소에 너를 아껴서 특별히 용서하는 것이니 미아는 당장 돌아가거라."

"부황께서도 여가께서 마음에 드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드디어 이 미아가 울면서 자리에서 엎어졌다. 미아도 이 경을 닮아 고집이 무척 드셌는데 기가 죽지 않고 체면도 없이 바닥에 구르니 이 경의 표정이 더욱 더 굳어지고 싸늘해진다. 이 경의 핏대가 솟는다. 이 경이 젓가락을 꾹 붙잡고 말없이 정면을 응시했다. 미아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애처롭게 말한다.

"어찌 저를 한낮 재취자리로 보내려고 하십니까."

"......"

"귀비 마마. 폐하께 소청을 드려주세요. 천자의 딸이 늙은이의 계처가 된답니까."

 영선의 눈가에 곤란함이 스친다. 젓가락 끝을 입에 물고 말없이 눈을 내리깐 영선은 그 애닳는 시선을 회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경이 젓가락을 집어 던졌다. 사납게 던져진 젓가락에 자기 그릇이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한번도 이 경의 폭력적인 모습을 본적이 없는 미아가 놀래서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리며 비명지른다.

"꺄악!"

 밥상머리에서 소란을 부리는 것을 싫어하는 영선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으나 이내 한숨을 쉬고 말없이 시선을 돌린다. 이 경이 무서운 표정으로 벼락같이 노성을 토했다.

"봐주었더니 이것이 이제 건방지게 행동해?! 내 앞에서 귀비에게 비느냐?!"

 미아가 이 경이 회피하니 친하고도 이 경이 껌뻑 죽는 영선의 도움을 받고자 함을 두 사람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때가 별로 좋지 않았고 영선은 이 경의 심기를 거스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 경이 괘씸하고 또 영선이 곤혹스러워하는 것에 화가 나서 눈에 넣어도 안 아파했던 딸을 노려보면서 소리친다.

"넌 궁에서 나오지 마라! 당분간은 연금이다!"

"부황께서 어찌 저에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계속 울면서 땅에서 흐느끼는 미아를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영선이 입술을 꾹 물었다. 궁인들이 미아를 잡아서 끌고 갈 때 미아가 허우적거리면서 계속 빌었다. 울면서 미아가 계속해서 말한다.

"귀비 마마가 어떻게 이러세요. 부황을 말려주세요. 부황을 말려주세요."

"공주를 빨리 끌고 가지 않고 뭣하느냐?!"

 대노한 이 경의 재촉에 궁인들이 이 미아를 끌고 나간다. 이 경이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분노를 죽이려 했다. 이 경이 영선을 볼 낯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살짝 시선을 피했다. 이 경이 젓가락이 없어서 영선이 닭의 살을 발라내서 이 경의 입에 넣는다. 이 경이 눈치를 보다가 앙, 물고는 우물거리다가 닭을 삼켰다.

 이 경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주눅이 들어 말한다.

"원한다면 하지 않겠다."

 영선이 이 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더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걸려서 이 경이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변명하듯이 중얼거렸다.

"별부사마 유 여(柳黎)가 모후가 중용하신 환관 유 자근(柳字勤)의 양자이다. 유 자근이 모후의 신임을 바탕으로 전횡을 휘두르다가 결국 처벌당했으니 죄인의 자식이다."

"소 승상이 세력이 너무 크지요. 귀족적인 성향이 짙고 자기 집단의 이익을 지나치게 위하니 이번에 위비(偉妃, 견 진)의 사촌과 혼담이 있으니 견 가와 소 가가 결합하는 것은 꺼려지지요."

 영선이 영특하여 바로 꿰뚫어 말하는 것을 이 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역시 너는 똑똑하구나. 맞다."

 이 경이 한숨을 쉬고 영선이 주는 버섯조림을 우물거려 삼킨 뒤 말한다.

"나라고 미아를 재취로 보내고 싶겠느냐. 그러나 소 가는 몇백년 동안 위세를 자랑하던 가문. 나는 더 이상 소 재도의 가문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더군다나 급이 거의 같은 명문견가와의 결합이니 폐하께서 황친과의 혼인을 주선하지 않으면 곤란하시겠군요."

"그래. 미아는 그것을 모른다."

 이 경이 어두운 표정을 하여 말한다.

"황친을 보내야 혼사를 파토낼텐데 조카들 중에서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가 없으니 할 수가 없었다. 딱 미아가 혼인을 할 나이였으니 나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공정군주(恭正君主)께서 스물넷인데 부마께서 요절하셨잖습니까."

"그러나 소 재도가 한번 결혼을 한데다가 공주도 아닌 이 효(梨孝)에게 납득할까?"

 영선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말없이 이 경의 입가에 잉어찜의 살을 뜯어서 댄다. 이 경이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입을 대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우울함을 표면 위에 드러낸다. 이 경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려 말한다.

"늙은이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 어찌 슬프지 아니할까."

 영선의 젓가락이 멈췄다. 이 경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져있다. 그 순간 무언가 불길한 것을 깨달은 영선이 잠시 숨을 멈추고 이 경을 보았다. 그제서야 이 경이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어 영선을 마주한다. 영선이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묵묵히 탁자를 내려다본다. 영선이 한참 후에 말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폐하 설마 지금 제 일을 겹쳐 보십니까?"

"......"

"폐하와 저를 생각하십니까?"

 이 경이 말을 하지 않고 단풍이 진 나무를 묵묵히 바라본다. 잠시 시선을 피하던 이 경이 결국 눈을 감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

"성격도 더럽고 나이도 많은 짐에게 얽매여 네가 고생을 하고 있다."

"...계자야."

 영선이 눈을 꾹 감고 말했다.

"이거 치워라."

"예?"

"그리고 궁인들 물려라."

 계자가 눈치를 보다가 궁인들과 함께 아직 남은 음식들을 치운다. 그 동안 이 경은 시선을 피하고 묵묵히 정원만을 바라볼 뿐이었고 영선은 탁상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숨을 죽일 뿐이었다. 마침내 음식이 다 치워졌을 때는 싸늘한 정적만이 남아 있었다. 이 경이 한참을 침묵하다가 결국 그 매서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서 입을 열었다.

"왜, 왜 화났느냐?"

"폐하."

 영선이 아득한 한숨을 내쉰다. 이 경이 찔려서 몸을 움찔하고 영선이 그 때 눈을 느릿하게 떠서 이 경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화나지 않았습니다."

"응?"

"말로 상처주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그리고 말을 잇지 못하고 영선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기랄."

 그 순간 아랫 입술을 짓이기고 눈을 꾹 감는다. 감정이 통제가 안되어 영선의 마음이 몹시 흔들렸다. 그 순간 영선이 울컥이는 것을 삼키고 호흡을 고른다. 이 경이 무슨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영선을 멍하게 바라본다. 감정을 진정시킨 영선이 그 때 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이 경이 순순히 자신의 무릎에 앉는 영선의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영선이 이 경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잠시 숨을 죽였다. 이 경이 조심스럽게 영선을 꾹 끌어안았다. 영선이 감정을 다 진정시킨 후에 조심스럽게 이 경의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어 그를 올려다본다. 순간 황갈색 눈동자가 이 경을 담아 이 경은 뭉클한 감정에 어쩔줄 몰라했다.

 영선이 조심스럽게 이 경의 상의를 헤집어 맨가슴을 드러낸다. 이 경이 그것을 잠자코 바라보고 영선이 갈색 유두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경이 순순하게 영선의 부드럽고 세밀한 주홍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프지 않게, 적당히 영선이 만족감을 느낄 만큼 누른다. 영선이 유륜을 물고 유두를 우물거리면서 이 경의 순하게 올려다보았다. 그것이 성애가 담겨 있는 애무가 아니라 어미의 젖을 무는 아기처럼 안정감을 찾으려는 행동이라 영선의 숨결이 점차 고르게 변하고 눈매가 순하게 변했다. 이 경이 그 모습에 조심스럽게 영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진다. 화려한 주홍발은 몹시도 부드럽고 향기가 났다.

 영선이 느릿하게 입에서 우물거리던 유륜을 빼낸다. 타액으로 이어진 실이 끊어지고 영선이 뜨거운 숨을 한번 토해내고 작게 속삭였다.

"미아도 젖을 문적이 있습니까?"

"...없다."

"영오는요?"

"그도 없다."

"영연이도.. 영경이도 없습니까?"

"나는.. 수유를 하지 않았다."

 이 경이 자신의 가슴 주위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누르는 손길에 눈살을 살짝 찌부렸다.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닌 갑자기 퍼득이는 열락에 눈 앞이 흐려졌기 때문이었다. 아득한 숨을 내쉬고 가슴을 꾹 누른다. 영선이 엄지를 그것을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불쌍하군요."

 영선이 다시 유륜을 물어 우물거린다. 부드럽고 여린 살과 질긴 갈색 유두를 씹고 숨을 내뱉는다. 작게 신음하던 이 경이 영선의 부드러운 머리를 매만지면서 작게 말했다.

"네 아이라면.. 젖을 물려도 괜찮을 것 같구나."

 가슴과 하의에서 퍼지는 열락에 헐떡이던 이 경이 작게 웃으면서 영선의 부드러운 하얀 볼을 쓰다듬는다. 희고 흠결없는 피부를 매만지던 이 경이 문득 열락 속에서 한마디 말을 흘린다.

"그런데.. 왜 아직도 네 아이가 없을까?..."

 그 순간 평온하던 영선의 표정이 굳어진다. 영선이 눈을 꾹 감았고 이 경 또한 가슴팍에서 이어지는 홧홧한 쾌락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하고 헐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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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 치가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작게 웃었다.

"그리운 이름이군."

 그 목소리에는 한치의 원망이나 증오가 담겨있지 않다. 오히려 희 치는 손에 든 붓을 멈추고 픽 웃었다. 영선이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래. 유 자근."

 영선의 얼굴에 한순간 냉기가 감돌았다.

"너를 고문하고 누명을 씌워 네 집안을 멸한 무리의 하나."

 여동생과 약혼녀를 간살하고 부모를 쳐죽였으며 희 치의 인생을 망가트렸다. 그러나 희 치는 그 말에도 분노를 보이지 않고 말없이 다시 붓을 움직였다. 희 치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희 치의 눈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영선이 복잡한 시선으로 희 치를 바라본다. 희 치는 고요한 눈으로 장부를 응시한다. 희 치는 자신을 파멸시킨 일원들에게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일생을 망가트린 작자들을 방관했으며, 흥미를 가졌고, 비틀어진 마음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내 몸을 채찍으로 내려쳤을 때 기분이 어땠지?'

 오히려 친밀함까지 느껴지는 그런 느릿하고도 평화로운 목소리로 희 치가 그들에게 물으면 대부분은 몸을 벌벌 떨면서 두려워하고 몇몇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희 치는 결코 그들에게 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타자가 보기엔 그것은 차라리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물어보는 상대가 자신이 아닌 듯이 희 치는 유심히도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자신의 육신을 찢고 고통을 가했는지. 그의 가족을 잔인하게 죽였는지 피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

 영선이 희 치의 일그러짐을 잘 알았기에 희 치의 미소에 느릿하게 한숨을 쉬었다.

"되도록이면 공정군주를 재가시키고자 하는데 소 승상과의 일은 좀 도움받으려고."

"......"

"너도 이 일은 흥미가 있지 않나. 유 자근의 양자라지만 조카니 가까운 혈연이다."

 희 치가 잠시 고민하다가 웃으면서 붓을 놀렸다.

"그리운 이름을 들었으니 기쁘구나."

 자신을 파멸시킨 이름을 듣고 희열을 느끼는 모습에는 광기마저 서려 있었다. 영선이 순간 연민에 젖어 희 치를 바라본다. 희 치는 시선은 장부에 고정하고 있었으나 차마 웃음을 삼킬 수가 없어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래. 도와주마. 이번 일은 내가 대가없이 도와주지."

"고맙다."

 희 치가 그리움이 담긴 아련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영선이 그런 희 치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내가 어찌 친애하는 유 자근의 아들이 고난에 빠졌는데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희 치가 붓을 내려놓고 영선을 바로 보았다. 흑벽(黑璧)의 유려한 눈이 영선을 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보고 싶구나."

============================ 작품 후기 ============================

주석 1. 군주는 친왕의 딸의 작위이다. 즉 이 경의 조카

1. 이번편은 한번 날렸습니다^0^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 분량이 더 길고 감정이 잔잔해서 좋았는데 어쩌겠습니까... 크크6

2. 희 치는 최종보스가 아입니더ㅠㅠ 아군입니다. 아군.

3. 도원향가 VOL 2에 아이돌공 X 스폰서 수 외전 올릴 생각입니다. 신규 편수는 업데이트를 하지만 쌓이면 한 편으로 몰아넣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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