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148)

00054 장상사 최심간(長相思 摧心肝) =========================

"흣, 앗, 안, 안에다.."

 이 경이 영선의 옷자락을 꾹 잡고 몸을 바르르 떤다. 영선이 잠시 어두운 눈을 했으나 이내 다정하게 이 경의 볼을 쓸고 허리를 꾹 붙히고 정을 낸다. 이 경이 헐떡거리면서 흐릿한 시야 속에서 영선의 얼굴을 본다. 이 경이 아랫도리에 손을 더듬으면서 가져다 대곤 이내 축축한 것을 느끼고 몸에 힘을 푼다.

 이 경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린다. 영선이 이 경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토닥였다. 이 경이 잠시 생각하다가 정리를 하려는 영선의 손길을 막고 영선을 그저 끌어 안았다. 영선이 이 경의 허리를 팔로 감으면서 표정을 딱딱히 굳혔다.

 이 경과 영선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이 경도, 영선도 서로간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경계하여 할 말이 있음에도 죽이고 서로 모르는 채하고 있다. 평소처럼 싸움이 일지도 않고 서로 성격을 죽이고 상대의 비위를 맞추었으나, 둘의 관계는 마치 빙판 위를 걷는 것과 같이 아슬함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이 경은 그래서 더욱 더 아이에 관심을 쏟는 것인지도 몰랐다. 영선은 그 날 이후로 찾아온 태의에 곤혹스러워했으며 이 경이 보내준 회임에 관련된 약재들을 보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희 치가 그 얘기를 듣고 다급하게 손을 써서 영선이 피임하는 것을 숨길 수 있었으나 영선은 은근히 아이를 바라는 이 경을 보면서 몹시 괴로워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안에 사정을 하고 처리도 하지 않고 잠을 잔다. 이 경이 말은 안하지만 얼마나 절실하게 아이를 원하는지는 영선도 잘 알았다.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안다.

 어쩌면 아이가 있다면 이 엉킨 관계를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이를 좋아하는 영선을 알기에 이 경이 그의 마음을 단단히 잡아 놓을 수 있을 것을 예상하여 더욱 더 집착하는 것이리라.

 영선은 그렇기에 더욱 괴로워하고, 괴로워하면서 얼굴을 쓸어 올린다.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영선이 마음 깊이 절망한다.

'아... 안돼. 이 경아.'

 영선은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서 하루 종일 상념했다.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한다.

 가끔씩 새근하게 자는 이 경이, 자신의 배에 손을 대고 있으면 영선은 미친듯이 가슴이 아프고 슬펐다. 영선이 이 경의 아이를 피임을 하는 것을 알면 이 경이 어떻게 배신감을 느낄지 상상히 갔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닌데.. 영선은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믿기 힘들게도 단 한순간도 겁이란 것을 느낀 적이 없었던 그 백 영선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영선은 불면증에 시달려 이 경을 품에 안고서도 항상 다른 생각을 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이 경은 아이 생각을 했다. 요즘엔 눈치를 보면서 틈만 나면 그 얘기를 하니 차라리 영선은 태의에게 영선이 불임이라 얘기를 해달라 말을 했었고 이 경은 그 얘기를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 경은 영선을 한동안 찾아오지 않았다.

 영선은 미칠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 음월전을 찾았다. 영선이 그리고 문 앞에서 몸을 멈추고 눈을 새파랗게 빛낸다. 도 요소가 냉막한 표정으로 그저 서있었다. 희 치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영선이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그 대화를 잠시 엿듣는다. 그 특유의 덤덤한 목소리로 희 치가 말했다.

"그래서.. 춘부장께서 그리 대답하셨던가."

 여긴 여기대로 환장할 상황이었다.

 영선이 희게 질린 부마의 얼굴과 덜덜 떨리는 손을 본다. 희 치는 상냥하고 다정하게 말을 하고 있었으나 그 내용은 광기가 서려있었다.

"그, 그렇습니다.. 폐, 폐, 하.. 께서 몸이 무골이시라.."

 유 여는 머리가 새까맣고 숱이 많은 젊은 청년이였다. 별부사마라. 무장임을 알 수 있듯이 어깨가 넓고 몸이 탄탄하면서도 어딘가 쾌활한 인상을 주는 호감형의 얼굴이 특징이였다. 이십대 중후반의 한눈에 보아도 깔끔한 인상의 영준한 사내. 그러나 그런 유 여는 몸을 지금 덜덜 떤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고 시선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두려워하고 있다.

 유 여가 가만히 응시하는 희 치의 시선에 몸을 벌벌 떨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한다.

"피가, 피가 달.. 달고.. 살이.. 살, 살이.. 찢어질 때.. 마치.. 음악과도 같은 소리가.."

 영선이 상황을 눈치채고 한숨을 쉰다. 결국 희 치가 유 여에게 자신이 고문할 때의 이야기를 들어오라고 명을 내린 모양이었다.

 영선의 짐작처럼 유 여는 존경하던 북방의 영웅에 대한 기대를 품고 가서 그 고아한 선비같고 당당한 장수같은 외양에 감탄하였으나 이어진 말에 몸을 벌벌 떨고야 말았다.

'유 자근.. 의 동생이 있었지.'

'예?'

'친조카에 양자라고 했나.'

 차를 마시고 태연하게 말한 희 치는 뒤이어서 말을 했고 유 여는 핏기가 싹 가셔서 호랑이 앞에 토끼처럼 몸을 벌벌 떨고 식은땀을 줄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유 자근이 동생의 부탁을 받았었네. 유 자근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몹시 아껴서 부탁을 들어줬었지. 내 외견을 마음에 들어해서.. 그러니까 자네의 춘부장이 나를 범하고 싶어했지.'

 희 치가 소매를 걷어 팔뚝을 보여주면서 웃었다. 칼로 난자된 상처였다.

'몸을 찢으면서.'

 그리고 희 치는 상냥하게 유 여를 달래면서 유 여에게 그 부친에게 그 고문의 서사를 들어오라는 부탁을 했다. 넋을 잃은 유 여는 집에 가서 통곡을 했고 유 여의 이야기를 들은 유 여의 아비는 몸을 벌벌 떨면서 두려움에 젖었으나 차마 그 엄정한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아들에게 그 더러운 죄를 고통스러워하면서 고했다. 그것은 고문이었다. 말을 하는 자나 듣는 자나 부끄럽고 얼굴을 들지 못해서 충격에 휩싸였다. 간신히 죄를 고백한 유 여의 아비는 자살을 시도했고 간신히 그것을 말린 유 여의 정신은 이미 피폐해진 뒤였다.

 유 여는 아버지의 그 금수같은 죄에 절망하고 또 통곡했다.

 유 여는 그리하여 차마 그 태산같이 높은 명예를 가졌고, 유 여가 항상 존애하고 선망했던 황후의 앞에서 그 아비가 저지른 죄악을 고백하고 있던 것이다. 황후는 그러나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고 유 여는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몇번이고 통곡하고 울면서 그 짐승같은 죄악에 역겨워했다.

 그리고 희 치가 그 때 갑자기 표정을 냉막하게 변하더니 싸늘하고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부마는 내 말을 무시하는군. 내가 그래도 부마의 장인인데 사돈 어른의 말을 전하는 것도 못하는 것인가?"

 희 치의 기운이 어린 사마가 견디기에는 힘들어서 유 여는 겁에 질려서 떨며 말했다. 유 여의 눈이 습하다. 영선이 그 어린애가 떠는 것이 참으로 보기 힘든 잔혹한 광경이여서 순간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희 치가 싸늘하게 말했다.

"빨리 말을 전하게. 춘부장께서 그 날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흐흑.. 폐, 폐하!!"

 결국 유 여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오체투지를 하면서 통곡한다. 유 여가 그 때 품에서 단도를 꺼내서 자신의 목을 찌르려 했고 희 치가 그 순간 발을 들어 유 여의 손목을 밟았다. 유 여가 악, 소리를 내면서 단도를 떨어트리고 흐느껴운다.

"제 아비의 죄, 죄를... 어찌.. 죄, 죄인인 제가.. 어찌 황가에..."

 흐느끼면서 말하는 유 여가 충격에 휩싸여 빠져 나오지 못한다. 희 치가 그것을 인상을 찌부리면서 바라본다. 유 여는 혼란과 비통에 쌓여서 통곡을 하여 울었다.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차라리!!!!"

"도 요소!"

 영선이 그제서야 참지 못하고 개입한다. 흥이 깨진 희 치가 눈가를 찌부리고 잠시 그것을 방관한다. 음산한 인상의 여인에게 영선이 딱딱히 굳은 표정을 한채로 말했다.

"부마를 내보내고 적당히 달래줘."

"폐하!!! 저의 목숨으로 사죄하겠나이다!!"

 피를 토해내면서 울부짖는 유 여가 궁인들에게 끌려간다. 영선이 한숨을 쉬고 희 치가 말없이 차를 마신다. 문이 닫기고 그제서야 정적이 찾았다. 희 치가 찻잔을 우아하게 내려놓았다.

"분명 내가 감정이 없다 하였지만 오해를 하는군."

"오해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희 치가 영선을 바라본다. 맑은 두 눈에 영선의 얼굴이 비춰진다.

"여긴 왜 왔지?"

 영선이 잠시 표정을 굳혔다. 그는 한참을 입을 열지 않다가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이 경을 사랑하지 말아줘.."

 희 치는 애원하는 영선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 경이 어젯밤 영선을 찾아와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영선은 그런 쓸쓸한 이 경의 모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오직 침묵만을 지킬 뿐이었다. 한참 후에 이 경이 말했다.

"불임이란 것을 너는 알고 있었지."

 영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 경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언제부터냐."

"처음부터.."

"......"

 이 경은 그 말을 듣고 절망한 표정을 했다. 그것이 영선의 생각보다 몹시 괴로워하는듯 보여서 영선은 그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 경에게 잘못했으니까. 이 경은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 끝에 손을 떨면서 말했다.

"짐에게.. 말을 했었어야 했다."

"죄송, 합니다.. 폐하."

"짐이.. 기대를 아예 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 말에 영선이 순간 충동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렇습니다.. 헛된 기대를 주는 것이야말로 잔인합니다."

"그것은 나를.. 의미하는 거냐."

"......"

 영선이 침묵하고 이 경도 침묵한다. 이 경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린 뭐가 잘못되었을까."

 그것은 영선의 일부터 시작된다. 영선이 속으로 자신을 조소하고 이 경이 술잔을 기울여 말없이 독주를 들이킨다. 영선이 그런 이 경의 앞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그저 앉아 있었다.

 취한 이 경이 울면서 그를 원망했다.

"아이를 가질 수 없으면 말을 했어야지.. 내가 얼마나 네 아이를 기다렸는지 아느냐. 나는, 나는.."

"폐하, 취했습니다."

"너는 독하고 정이 없다. 너는 정말.. 내가 널.. 얼마나.."

 이 경이 탁상을 내리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널 이제 어떻게 해야지 묶어놓을 수 있을까.. 영선아. 못된 생각이 든다."

"어째서 저를 묶어 놓으신다 하십니다. 옆에 제가 있습니다."

 이 경이 멍하게 영선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넌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 말에 이성이 끊어졌다. 그 말은 너무나도 영선을 괴롭게하는 말이니까. 너무나도 모르는 소리였으니까.

 그 뒤로는 영선도 단편적으로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나서 기억이 잘 나지 않으니까. 생각나는 것은 분노한 자신이 이 경의 어깨를 잡고 뭐라 소리를 치는 장면이었다. 이 경의 얼굴이 얼어붙고 놀라고 당혹스러워서 움츠러드는 것이 생각난다.

 영선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린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나는 괴롭지 않을 것 같습니까? 나 외에 사람에게서 낳은 아이를 품에 안을 때 기분이 어땠는 줄 알아?!'

'항상 괴롭고 토악질이 나왔어. 아이, 아이가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그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그렇게 남발하고 나를 배신합니까?!'

 대체 잘난 것이 뭐라고. 영선은 아직도 이 경의 크고 둥근 눈이 생각난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그 까만 눈이 생각난다. 영선은 결국 말을 했다.

'맞습니다. 관평공주 건은 제가 황후 폐하께 부탁했습니다. 저는 황후의 오랜 벗이었습니다.'

 이 경이 상처받은 눈을 한다. 이 경의 몸이 떨려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영선이 희 치에게 애걸한다.

"제발, 제발, 제발.. 건들지 말아줘.. 제발 이 경을.. 경이를... 살려줘. 제발 사랑하지마. 제발.. 제발.."

 미친듯이 애원을 하면서 그의 안녕을 빈다. 영선은 이제 새로 시작할 때임을 느꼈고 그의 손으로 엉킨 관계를 끝내야할 때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단 하나 남은 재앙을, 그의 걱정거리에 미친듯이 불안감을 느끼며 빌었다.

"내가 없을 때.. 그에게 충동을 느끼지마. 사랑하지마.. 부탁이다. 희 치. 네 벗의 마지막이자 단 하나의 부탁이다. 제발.."

 희 치가 말없이 영선을 바라본다. 영선은 흐느끼면서 머리를 움켜쥐었다.

"내가 나가더라도 이 경을 건들지 말아줘. 살려줘. 그를.. 사랑하지 말아줘."

 희 치는 끝까지 대답을 주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저는 몹시 괜찮습니다. 제가 흥미를 잃기 전에 도원향가를 마무리하고 싶을뿐 ㅇㅂㅇ.

희 치 서브공 맞습니다! 최종 보스 아닙니다!

희 치는 참사랑 위현의 유언에 복종하여 천수를 누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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