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5 자탄 (自嘆) =========================
"... 그리하여 태자부(太子父) 귀빈 오 약영을 황귀빈으로 봉한다."
무릎을 꿇고 있던 과묵한 인상의 사내가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류 태감이 펼쳤던 성지를 말고 오 약영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황귀빈 마마. 이제 앞날에 광휘만이 남으셨습니다."
오 약영은 답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묵묵히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절도가 있는 오 약영은 황후와는 다른 의미로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다. 한 자루의 칼 같이 단호한 성품을 아는 류 태감이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오 약영이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옆에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용이 그려진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영경은 금관을 쓰고 옥대를 두르고 있었으며 그것은 황손 중에서는 유일하게 태자에게만이 허용된 옷차림이었다.
오 약영이 손을 뻗자 어린 태자가 오 약영의 허리를 끌어 안고 배에 얼굴을 묻는다. 오 약영이 태자를 다독이자 태자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아바마마."
그러나 오 약영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어제자로 즉위식을 마치고 종묘에 인사올린 오왕 이 영경이다. 이 경이 신귀비 사건 이후로 미안함을 가진 그 둘을 달래려 크게 결심한 것인데 원래 황자 중에서도 크게 영명하고 똑부러지는 이 영경과 출신이 좋은 이 영오를 저울질 하고 있다가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러니 두 부자는 좋아해야 했으나 썩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것은 이 영경이 수회지에 빠진 후 정신을 든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 영경이 신귀비가 쫒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해서 말한 것이다.
"아닙니다, 아바마마! 신귀비 마마가 아니예요!"
듣고 있던 오 약영의 표정이 싹 굳어지고 멍하게 영경을 바라보았다. 영경이 그 때 다급한 목소리로 아비의 옷자락을 잡으면서 말했다.
"호수에 비춰진 사람은 강 채요였습니다."
"뭐?"
"강 재인이 저를 밀었습니다. 빨리 가서 귀비 마마를.."
그 때 오 약영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다. 영경이 옷자락을 잡고 뭐라고 하는 것에 오 약영이 그 때 어두운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안된다."
영경이 순간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응답했다.
"예?"
오 약영이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지금 진노하셨다. 내통이 드러났으니 너를 빠트리고 안 빠트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신귀비를 증오하고 있는데 폐하의 성격상 내가 이를 알리면 네가 다칠 것이다."
"설마.."
영경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여 울먹거리면서 말을 했다.
"그러면 마마는 어떻게 합니까."
오 약영이 그늘진 얼굴을 한채 고개를 숙인다. 영경이 죄책감에 울음을 터뜨리면서 발을 굴렀으나 차마 고변을 하지 못하여 일을 숨겼다.
그리하여 유가의 신진세력과 귀족들은 장자에 출신 성분이 좋은 영오를 밀었으나 반대를 꺾은 이 경이 영경을 태자로 올렸고 오 약영은 황귀빈이 되어 신귀비 사건 이후로 내명부의 일인자가 되었다.
오 약영은 죄책감을 크게 느꼈으나 태자가 된 영경의 미래를 생각하여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는 감히 대로를 밟지 못했으나 태자부의 자격으로 측로에서 바라본 영경의 즉위식을 상기했다. 백관들이 천세 소리를 하면서 아들을 받든다. 찬란한 태양 아래에 영경은 기도 죽지 않고 당당히 걷고 있었다.
그림자 사이에서 오 약영은 영경을 바라본다.
약영의 머릿 속에서 과거가 스쳤다.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지요?"
잊을 수 없는 목소리. 말리꽃의 향이 은은하게 나던 여인. 소박하게 차려입었지만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웃던 순수한 처녀. 약영은 차마 그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인채 참담한 심정으로 말했다.
"...미안하오."
손에 쥔 검을 꽉 틀어쥔다. 약영이 울음을 터뜨리는 약혼녀의 앞에서 차마 할 말이 없어서 거칠고 쉰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하오... 난..."
결국 울면서 뛰쳐나가는 그 여인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약영이 그저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허망하게 그 자리에서 서있을 뿐이었다.
약영이 눈을 질끈 감는다.
그는 정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약영의 아비는 상환으로 번국 반란 당시에 이 경의 부관이었고 그 이전에는 이 경의 최측근이자 그가 감히 형으로 부르던 이였으며 그 이후에는 이 경의 호위대의 대장을 맡아 신임을 얻고 있는 자였다.
이 경의 가장 가까운 심복이었고 또 실권을 누리고 있는 자의 장남이다.
오 약영은 태어날 때부터 이 경에게 축하를 받았고 상환은 그를 얻고 크게 기뻐하면서 기대를 걸었다. 바쁜 상환이 짬을 내서 그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글을 가르쳤고 약영은 커가면서 아비를 따라서 이 경을 호위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자랐다.
그리고 오 약영은 그 실력과 출신으로 손쉽게 호위대에 들어갔고 아비를 닮아 고지식하지만 더욱 더 말이 없고 섬세한 성품 탓에 이 경이 가장 신임하는 호위가 되었다.
모든 것이 깨진 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이 경은 이 순행을 하다가 허름한 현에 머무르게 되었고 가장 좋은 현청에서 머물렀다고 하나 거미줄이 치고 먼지가 쌓인 허름한 숙소에 짜증을 낸 것이다. 오 약영은 처소조차 가지지 못하고 발치에서 이 경을 지켰으나 그의 짜증을 묵묵히 받아 주었다.
칠석이었고 비가 몹시 추적이던 날이었다.
장지문 밖에서 이 경의 처소를 지키던 오 약영은 문득 문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렸다.
"약영."
오 약영이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그 목소리는 잠시 침묵 끝에 들려왔다.
"잠시 들어오지 않겠느냐?"
그것은 명령이라기보단 부탁에 가까운 부드러운 말투였기에 오 약영은 당황하였으나 문을 열고 안을 들어갔다. 그리고 오 약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침상 위에 간단한 침의를 입은채 이 경이 그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고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오 약영이 코를 찌르는 달콤한 냄새에 얼굴을 창백하게 질려한다.
이 경이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했기에 약영은 그것을 거부하려고 했었고 크게 두려워했다. 국향이라 불릴만큼 진하고 사람을 홀리는 향이다. 이 경은 말없이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으나 식은땀이 흘리고 약영은 이성을 잡으려 간신히 노력을 해야했다. 약영이 검집을 든 손을 부들거리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 경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이 원한다."
심장이 떨어졌다. 이 경은 그저 강요를 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을 하였으나 그것은 주군의 말이었다. 약영은 문고리를 집으려 뻗은 손을 그에 대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매우 길고 잔악한 시간이었고 약영이 내적으로 수없이 갈등하던 순간이었다. 이 경은 그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약영이 허공에 손을 주먹쥔다. 눈을 질끈 감은 약영이 몸을 돌리고 침상으로 성큼거리며 다가와 이 경에게 입을 맞췄다. 이 경이 숨을 멈추고 눈을 휘며 침상에 누웠다. 약영이 그 위에 올라타서 이 경의 뺨을 움켜쥐었다. 입이 벌리고 혀를 헤집는다. 이 경의 입 안은 축축하고 뜨거웠다. 약영이 정성스럽게 이 경의 안을 애무했고 이 경의 입에서 신음이 작게 나왔다.
"으음.."
약영이 이 경의 눈을 본다. 감히 황제의 존안을 살피며 그 눈을 바라본다. 동그란 까만 눈이 풀려 있었고 약영을 보면서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약영은 그 기저에 깔린 장난기를 눈치채었으나 어찌할 바 없이 이 경의 앞섶을 잡아 벌렸다.
침대에 누운 이 경이 약영은 오만하게 응시한다. 웃으면서 이 경이 약영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그 손을 붙잡아 떼어 손목에 입을 맞추면서 약영은 이 경을 노려보았다.
비가 추적이는 허름한 현청의 안에서 약영은 이 경을 안았다.
그 날 이후로 인생이 바뀌었다. 약영은 이 경을 볼때마다 평소와 같이 그를 대할 수가 없었다. 달라붙는 몸과 달콤한 신음을 잊을 수가 없었고 강인한 사내가 아닌 양인을 유혹하는 향을 뿜는 음인으로 인식을 하곤 했다.
괴로워하던 약영이 결국 죄책감을 느끼고 약혼녀와 파혼했으나 그 날 밤을 잊기 위해서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거진 아무렇지도 않고 이 경을 상대할 무렵에 이 경이 조용히 그와 상환을 불렀다. 이 경이 배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네 아이다."
약영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했고 이 경이 조금 미안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상환이 크게 놀라고 넋을 잃어서 이 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경이 잠시 고민하다가 그를 달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정궁황후를 들이라고 신하들이 말이 많은데.. 어떻게 첫 아이가 약영이 네 아이가 되었구나.. 미안하지만 네가 후궁으로 들어와줘야 했다."
상환이 그 때 정신을 차려 계단에 머리를 박고 죽여달라고 외치고 약영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이 경을 응시하였다. 이 경은 그 시선이 찔려서 고개를 돌리고 탁상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경은 무심코 말을 던졌다.
"만약 네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가 황녀면 가장 좋은 집안에 시집보내고 영특한 황자라면 태자로 삼는 것도 생각해보겠다."
그 당시에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약영은 검을 놓고 호위대에서 은퇴하였으며 후궁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절망뿐이었으니 한평생 호위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고 호위로서 살았던 약영이 비가 되어서 후궁에서 사는 삶에서 그 어떤 의미도 느끼지 못하여 좌절하였다.
그리고 그 때 이 경이 첫아이로 미아를 낳았다. 약영은 미아가 꼬물거리면서 엄지를 잡는 순간 그 아이가 자신의 삶의 의미가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태어난 영경이 그러했고 두 아이가 바로 약영의 오직 삶의 의미였다.
그리하여 약영은 후궁에서 그 둘을 직접 양육하였고 말을 가르치고 글과 무예를 직접 가르치며 예절을 가르쳤다. 미아와 영경이 유독 바르게 자란 것은 약영의 그런 훈육 덕이었으며 약영은 정말 모든 것을 바쳐서 자식을 사랑했다.
그리고 약영 앞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태자가 누워있다. 수회지에 빠지고 물을 무서워하던 영경인데 다시 물에 빠져서 혼수상태에 있으니 약영은 피가 식어서 멍하게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 고 재인이 앉아서 태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고 재인이 입을 열었다.
"수회지에 빠지고 물을 무서워하게 된 태자가 영화원을 걷던 중에 다리에서 미끄러져 물에 빠졌는데 공황에 휩싸여 허둥되다가 결국 늦게 구조되었다.."
"그게 말이 되는...?!"
"라는 것이 강 채요의 계획이고."
약영이 그 때 찬물이 끼얹어지는 오싹한 감각을 느끼고 고 재인을 노려본다. 뺨에 죄자가 새겨진 사내는 교활한 눈을 번뜩이면서 약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채요가 제게 찾아와서 태자가 저와 강 채요가 난적이라면서 황제가 되면 죽이고자 한다는 얘기를 하였다고 토로하였습죠. 강 채요가 은근히 나를 부추기는데 그 속내를 제가 모르겠습니까."
고 재인이 말을 잇는다.
"제가 답하지 않자 강 채요가 손을 썼는데 제가 지켜보다가 구했습니다."
"...강 채요..."
약영이 갈라지고 음산한 목소리로 말하고 고 재인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부께서는 제게 보답해주실 것입니까."
약영이 잠시 침묵한다. 태자의 얼굴을 쓰다듬는 약영의 눈에 강렬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고 재인이 이어지는 말에 표정을 엄히 굳혔다.
"신귀비가 아니라 강 채요였다."
"...그런...?!"
악영이 손을 거두고 조용히 말했다.
"보답하지. 그리고 강 채요의 목이 필요하다."
고 재인은 아무 말도 없이 약영을 보았으나 약영은 그 고개나 시선을 그에게로 돌리지 않고 오직 태자만을 바라본채 조용히 말을 했다.
"네가 무엇을 원하든,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나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겠지. 너도 어차피 그런 것을 원할테니까."
고 재인이 어깨를 으쓱하고 약영이 묵묵히 태자의 손을 잡는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손을 매만지던 약영의 얼굴에 순간 살기가 감돌았다.
'후궁에 감금당하고 내게 남은 것은 이제 자식들 밖에 없었다..'
미아는 이제 시집을 가고 오직 남은 것은 영경인데 두 번이나 이토록 수모를 당한다. 약영이 시퍼런 칼날을 속에 갈면서 이를 악물었다.
'강 채요 너만은 내가 쉽게 죽여주지 않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이 경이 각인은 정치적으로 이용할려고 한것 맞습니다ㅠㅠ
쓰레기설은 자까도 부인할 수가 없어용ㅠㅠ
다만 끝까지 이 경이는 영선이를 더 많이 사랑하고 더더 많이 아낄 것이며 사실 희 치와 이 경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빠르게 스킵해서 오화 안에 얘네 다시 화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