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2 망중요고번혹희(忙中要顧煩或喜) =========================
만화궁은 영선이 퇴궁한 이후로 고 재인과 강 미인의 처소가 되었다.
그곳에서 도사 청수가 여러 비술들을 실행했었는데 그 기억이 꺼려져서 이 경은 궁 앞에 호수가 있고 대리석으로 만든 작은 다리가 있으며 모든 것이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궁을 선물했다. 관저궁으로 명명받은 그 궁은 동육궁에서 가장 높은 궁이 되었으며 심지어 황귀빈의 무영궁(茂永宮)보다 격이 높았다.
영선의 작위는 똑같이 신귀비로 되어 있었는데 이 경은 그대신에 한황귀빈에게 절을 하지 않을 자격과 황룡을 패용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고 내무부에서 물품을 동등하게 내어주도록 명령하여 마음을 드러냈으니 한황귀빈또한 그에게 존중하는 태도를 드러냈으나 영선은 결코 태자부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아니하였다.
이 경이 찔리는 것이 많아 영선에게 굉장히 잘해주려고 해서 관저궁은 물수리가 노니는 몹시 화려한 궁이라 들어서는 순간 영선은 경악해서 벽에 붙은 장식들을 당장 떼서 팔아버리라고 명령했다. 눈이 피로할 정도로 번쩍하고 화려하였으나 조정에서 자신을 어떻게 논할지 예상이 되서 영선이 식겁하였다.
처음에 이 경이 모든 것을 다 숨기려했으나 만화궁의 일이 조금씩 드러났는다. 영선은 그에 이 경에게 눈을 흘기면서도 그저 힘들었구나, 라는 생각에 이해하려고 했었다. 다만 영선은 두 번 격노한적이 있었는데 첫째는 계자와 다른 궁인들이 영항에서 곡식을 빻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에 분노한 영선이 태진원으로 돌아가겠다고 뛰쳐나간 것이다.
"아이고, 영선아!"
"놓으세요!"
"내가 미안하다! 내가 미안했다!"
이 경이 사색을 해서 대리석 다리를 지나는 영선의 허리를 붙잡고 말리고 영선이 눈을 앙칼지게 뜨고 계단을 꼭 잡고 끌려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어떻게 제 상궁을 죄인들과 노비가 가는 노역장에 보냅니까?!"
영선이 날카롭게 소리질렀으니 사실 영항의 일이 백정의 가축도축같은 천민들이 하는 일이라 이 경이 찔리는 것이 많아 싹싹 빌어서 간신히 달래 그들에게 보상하였다. 그리하여 간신히 진정시킨 이 경에게 불행하게도 뒤이어서 사건이 터졌으니, 계자와 환관과 궁인들이 신분이 환원되고 오히려 금전과 특혜를 받아서 마음이 어느정도 풀린 영선이 오랜만에 영화원을 들릴 때였다.
"흑흑흑.."
영선이 발을 멈추고 계자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영화원 한켠에서 입에 무명천을 물고 웅크리고 있는 삼십대의 여인이 있었다. 영선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살피니 머리는 짙은 검은색에 눈썹이 뚜렷하고 얼굴이 희었으며 강 채요보다 키가 크고 골격이 있었으나 팔다리는 가늘고 가슴과 엉덩이의 살은 무척 흐드러졌다. 특히 그 눈에 흰자위가 희고 검은자위가 검고 뚜렷한 것은 견 진보다 더 도드라졌고 가슴이 아래로 둥글어 그 강 채요보다 훨씬 크고 풍만했다.
머리는 양 옆으로 옆머리가 자연스럽게 늘어지는데 정수리에는 비취를 올리고 간단한 금장식을 올리고 그 머리를 꼬아서 머리에 간단히 걸친 영사계를 하고 있었으니 눈이 수심이 가득하고 눈아래가 붉어서 울음이 가득한 인상이었다.
수심이 가득찬 삼십대의 미부인이니 푸른 옷을 입고 바위에 엎드려서 흐느끼는 모습에 영선이 의문하여서 계자에게 그녀를 불러오라 명했다.
계자가 달려가자 미부인이 그를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고 겁을 먹어서 바위를 붙잡고 오들거리면서 떠는 것을 가만히 보던 영선이 무어라 면박을 주려는 계자를 말리고 그녀에게 다가가서 등을 쓸어주었다.
"아가씨, 겁먹지 마요."
크고 사슴같은 눈망울을 깜빡이면서 영선을 바라본다. 영선이 다정하게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일단 일어나서 우리 앉을까요? 아가씨는 내가 오기 전에는 없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영선은 기본적으로 여인을 많이 대하던 이인지라 그 느낌이 다정다감하고 여인에게 동성같이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여인이 머뭇거리다가 영선의 손을 잡고 정자로 같이 친오누이처럼 다정하게 간다.
자리에 앉고 영선이 그녀에게 옷을 걸쳐주고 따뜻한 차를 내어서 달래고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겉으로는 웃었으나 속으로는 천불만불같은 화를 달랬다.
"저는 여선아로 형주 상인의 처입니다. 열살에 여양으로 발현하였으나 그 전에 태중혼약이 잡혀 있어서 평인 사내이자 전남편인 금 왕선과 결혼하여 두 딸과 막내 아들을 낳았습니다. 헌데 고 재인께서 저를 끌고 가서 황상을 모시라 겁박하였고 저는 거부하였으나 가족을 두고 협박하여 젖도 못뗀 아들을 두고 황성으로 돌아와 보림이 되었습니다..."
울먹이는 여선아가 영선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저는 남편과 자식이 보고 싶습니다. 귀비 마마. 저는 가족들과 함께 소박하게 사는 것이 꿈입니다. 육궁에 오기 싫었습니다. 제발 저를 내쳐주십시오. 마마."
그것을 할 말을 잃고 바라보던 영선이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세워주면서 다정히 말했다.
"걱정하지마세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관저궁으로 온 이 경은 대노한 영선에게 싹싹 빌면서 여선아를 내보내겠다는 약조를 세번이나 맹세를 해야했다.
여선아는 울면서 영선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는데 나가기 전에 머뭇거리다가 영선에게 말했다.
"마마, 마마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독대를 할 수 있는지요?"
결심한 여선아의 눈이 굳다. 영선이 흔쾌히 허락하고 나서 여선아와 독대를 했다가 그녀가 하는 말에 이내 표정을 굳히고 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말이 끝나자 영선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내 여선아에게 크게 감사인사를 하고 그녀에게 평생 살 돈을 주어 황성을 나가게 했다.
영선은 한동안 침묵하고 관저궁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이 경은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영선에게 육궁을 완전히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하면서 그를 달랬는데 그 달 보름에 전체 문안이 들 때 영선은 오래간만에 황룡 세마리가 다투어 승천하는 문양을 금사로 수놓은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금관과 면사로 덮은 화려한 옷차림을 하곤 황후 바로 오른편에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황후보다 한단 낮은 곳에서 왼쪽이 황귀빈이었고 오른쪽이 귀비였으니 영선의 위치가 약영보다 낮았으나 사실상 권한을 가진 것이 영선이었고 황후는 방관을 하여 그날은 후궁들이 모두 그 소문 속 신귀비에게만 신경을 바짝 세우면서 긴장을 했다.
영선은 그들은 한번 죽 흝어보다가 의자의 손잡이에 산호로 장식한 옥으로 만든 호갑투를 타닥이더니 짧게 말했다.
"본궁이 없는 사이에 별짓거리가 많이 있었더군."
그리고 몇몇의 표정이 굳어지거나 혹은 웃음기가 돌았다. 특히 고 재인의 눈알이 데굴 굴러갔는데 이 경은 영정이란 이름을 내린 것이 영선에게 발각당한 후 발작한 영선에 의하여 그에게 다시 싹싹 빌고 고 영정을 다시 고 아정으로 고쳐준 후였다.
"당파를 만들지 말것이며 황손의 일은 입에 담지 않는다."
영선이 말을 할 때마다 호갑투 끝을 톡톡인다. 그 긴장감에 아정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 쉬운 것을 못한다면 빈비가 될 자격이 없겠지?"
영선이 웃으면서 얘기하나 눈은 웃지 않았고 그 말에는 뼈가 담겨 있었기에 모두는 침묵하고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안이 끝나고 영선은 두 사람을 따로 남게 했는데 아정과 채요였다.
채요는 눈을 내리깔고 공손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고 아정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영선이 아정을 재치고 채요에게 말했다.
"나 없이 황상의 총애를 받았다고?"
"과분한 말씀입니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태를 바라본 영선이 잠시 채요의 붉은색 옷을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소주 비단."
"......"
"강 미인. 노고를 치하하네. 그리고 자네는 연금이야."
"예?!"
강 채요가 놀라서 영선의 얼굴을 보자 영선이 태연하게 그를 응시하며 말을 한다. 금관의 술이 짤랑거리고 비단이 사각거렸다.
"폐하의 총애를 받는 관저궁 신귀비가 나 없는 사이에 폐하의 총애를 뺏어간 년놈들을 가만 놔둘 것 같나? 본궁의 성격을 아직도 모를까?"
"하, 하오나!"
"죽이지 않은 것은 본궁이 폐하의 눈치를 보는 탓이지."
느긋하게 말한 영선이 일그러진 얼굴로 무어라 말하려는 강 채요에게 소매를 떨친다. 강 채요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을 다물고 영선이 고개를 돌리고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고 그를 느긋하게 본다. 강 채요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한 뒤에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녀를 잠시 은근한 시선으로 보던 영선이 어색하게 웃고있는 아정에게 시선을 돌리지 아니한채 말한다.
"아정아."
"예, 예!"
잠시 망설이던 고 아정이 그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결연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관저궁의 노복이자 귀비 마마의 우완(右腕)인 고 아정이 여깄습니다."
영선이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보고 말한다.
"너 언제 내 심복이었고 우완이였냐?"
"좌완은 당연히 될 수가 없으니 우완이지요."
"너 제법 귀티난다?"
고 아정이 입은 검은색 비단에 은사로 새겨진 대나무가 무성하고 마찬가지로 은사로 수놓아진 백호가 울고 있다. 어디가 파락호라는 듯이 간단한 옷차림이지만 귀중품을 몸에 두르고 있었으니 고 아정이 고개를 숙이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그것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던 영선이 그를 시큰둥한 시선으로 보다가 짤막하게 말했다.
"너 이제 강 채요가 우리 같은 편으로 의심할거 알지?"
"예?"
고 아정이 놀라서 반문하다가 지금 상황이 독대를 하고 있는 상황임을 알고 아연실색해서 입을 벌렸다.
"들어보니까 궁궐 상황 재밌던데 네가 좀 얘기해봐라. 그리고..."
그 순간 영선의 눈에 살기가 감돈다.
"재미가 없으면 넌 연금이 아니라 어느날 돌연히 급사하게 될거야. 여선아가 내게 재미있는 것을 고하더군."
여선아. 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는 충격에 숨을 멈춘다. 몸을 크게 벌벌 떨면서 식은땀을 훌리던 아정을 살기가 어린 눈매로 노려본다. 영선이 노기가 등등한 목소리를 억눌러 말했다.
"너가 지금 살아있는 이유는 하나는 네가 결국 인간임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강 채요 때문이다. 한황귀빈과의 관계가 틀어질 것을 감수하고 너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네 위치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아. 잘 선택해라."
바닥에서 머리를 떨구면서 몸을 움츠리던 아정은 잠시 후에 결심한 눈을 하여 고개를 들었다. 침을 삼키던 아정이 이윽고 입을 열어서 영선에게 말을 한다.
말이 진행될수록 영선의 표정이 싸늘해진다. 손잡이를 잡고 그 말을 묵묵히 듣던 영선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머리에 꽂혀진 황룡비녀를 그에게 준 뒤에 말을 했다.
"나 없는 사이에 승냥이들이 설쳤군."
영선이 날카롭게 웃으면서 말했다.
"영 미인에게 가라. 그리고 내일 술시(19시) 정각에 영 미인이 만화궁을 찾아가도록 만들어. 무슨 말인줄 알겠지?"
아정이 비녀를 받아듣고 그 끝을 쓰다듬는다. 영선이 그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영 미인이 교활하니 잘 이해할 것이다."
아정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영선이 눈에 냉기를 스친다. 생각보다 궁 안이 개판이 되어 있는것에 영선이 분노가 올라 호갑투를 쥔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쓰다듬는다.
유 도림. 강북 명문가 청년이여서 예술에 소질도 많고 성품도 바라서 영선도 꽤나 좋아하던 인물이었다. 주제도 알고 영준하고 착하니 더 가까워지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어이없는 이유로 독살당할지는 몰랐다.
소 승상에게는 빚이 있었다. 영선이 분기를 누르고 고 아정과 영 가도, 그리고 강 채요를 생각하면서 손에 쥔 손잡이를 꾹 누른다.
'굳이 한꺼번에 처리할 필요는 없지.'
손을 올리고 호갑투 끝으로 입술을 꾹 누른다. 영선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면서 정면을 응시한다.
'하나씩 하나씩, 체하지 않게.'
영선의 눈에 푸른 귀기가 섬뜩인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이 생각하신 것이 맞습니다. 희 치와 소 재도가 짜고 태자와 약영과 관련된 일때문에 묶인 이 경을 도발하려고 한 것이 맞습니다. 강 채요가 태진원에게 이르라고 한 것이 태진원에 영선이가 있으니 이 경과 약영을 도발하려한 것이고 이 경이 약영에게 미안해서, 또 그와 태자의 체면을 생각해서 머뭇거렸고 희 치가 그를 도발했죠. 어제자로 그 머리카락은 양귀비와 양국충, 장충광의 고사입니다. 그리고 어제 전개에서 딱히 개연성이 없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약영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많이 나왔고 태자 사건과 관련되서 의심받았던 영선을 들이는 것이 국가대사랑 관련된 일이니 문제 있는 것은 아니고요. 또 다른 얘기는 스포이니 담아두겠습니다. 납득 가지 않는 부분은 챕터 끝에 가서 풀릴 수 있으니 지켜봐주세요!
덧. 이 경의 주먹이라면 꽁꽁이 아니라 꽝! 꽝!이 아닐까요?
덧덧. 제가 최양락이라 하시면 믿어주실건가요? ㅇㅂ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