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48)

00073 망중요고번혹희(忙中要顧煩或喜) =========================

 연자당에 고 아정이 찾아갔다. 서육궁이 동육궁보다 격이 낮으나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하였고 정갈한 분위기였는데 고 아정이 보기에는 그곳에는 음산함이 산재하고 있었다. 고 아정이 크기는 크나 별로 화려하지 않은 궁 앞에 선다.

 연자당이 궁은 아니지만 버금가는 건물인데 원래 한 충용과 영 미인이 같이 사용하였으나 연자안 사건 이후로 영 미인이 그것을 홀로 사용하였다. 영 미인은 고변으로 인해서 미인으로 다시 복위하였으나 이 경이 그를 꺼려하여 버려놓고 있는 실정이었다. 고 아정이 그 현판을 보고 속으로 나직히 생각한다.

'독한 새끼가 여기 또 하나 있지.. 잡아 죽일 벌레가.'

 그리고 고 아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영 가도를 보면서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강북 귀족답게 키가 크고 근골이 큰 사내가 서있다. 푸른 옷을 입은 영 가도는 눈매가 내려가고 눈가에 눈물점이 있어서 어딘가 슬프고 염기가 넘치는 사내였다. 또한 얼굴이 무표정하였는데 지금은 보기 드물게 못마땅한 기색을 내고 있으니 강북 최고 귀족 영씨세가 종가의 사람이자 이부상서의 아들인 영 가도에 비하여 고 아정의 신분이 불량배로 몹시 낮았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아우를 맞이한 적이 없는데."

 그런 영 미인의 불퉁한 말에 고 아정이 하하 웃으면서 말한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괜찮습니다. 저는 형님이 저를 아우로 삼아주시지 않아도 독살하지 않으려니까요!"

 그 순간 영 미인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고 아정을 눈을 부릅뜨면서 한참을 노려보던 영 미인의 이가 갈린다. 영 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

 그런 영 미인을 고 아정이 생글거리면서 바라보고 영 미인이 순간 소매를 휘두르면서 벼락같이 소리쳤다.

"다들 나가 있어라!"

 궁인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퇴청하고 영 미인이 고 아정을 죽일듯이 노려본다. 그 시선에도 능청스럽게 연자당의 내부를 구경하던 고 아정이 까먹은 것이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를 기울였다.

"아, 잠시만."

 소매에 손을 넣는 고 아정의 눈이 가늘게 휜다. 살기가 어린 웃음을 지으면서 고 아정이 벌벌 떨고 있는 영 미인의 앞에 황룡이 양각된 비녀를 내민다.

"이, 이건!"

 넋을 잃어서 멍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영 미인에게 고 아정이 웃음기 없이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로 말한다.

"영 가도. 잘 들어. 너는 꼬리가 길었고 불행하게도 그걸 나에게 들키고 말았지. 나는 너같은 독사를 잡아먹는 것이 취미인 오소리인데 내겐 불행하게도 너처럼 맛있는 먹잇감을 귀여워해주시는 분이 하나 계시네."

"관.. 관저궁!"

 영 미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벌벌 떨면서 황룡비녀를 만지던 영 미인이 눈을 질끈 감는다. 고 아정이 그 때 영미인의 목덜미를 꽉 잡아서 당긴다. 비틀거리면서 딸려나온 영 미인의 귓가에 고 아정이 속삭였다.

"너의 집안이 멸망할 길이다. 소 승상이 널 살려줄까?"

 고 아정의 표정이 살벌하다. 영 미인이 마치 목덜미가 물린 사냥감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 고 아정의 입술이 영 미인의 귓가를 스쳤다.

"시키는대로 해. 응? 넌 선택권이 없잖아?"

 영 미인의 눈이 질끈 감겼다.

*************************************

 입궁 동기라지만 첩여로 입궁한 유 도림이 단연 으뜸이었고 영 가도와 하 사제가 서로 친했으며 집안이 한미한 강 채요는 그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오히려 강 채요가 득세를 하니 영 가도는 유 도림에게는 빌붙어도 강 채요에게는 차마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강 채요가 의아한 눈으로 만화궁에서 자신을 찾는 영 가도를 보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영 가도는 겉으로만 보면 그 어느 음인 여인보다 아름다운 강 채요이나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경계심에 그를 딱딱한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앉아서 이야기하지요."

 그래서 강 채요와 영 가도가 단둘이 앉아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그러나 영 가도는 한참을 입을 떼지 않고 차를 쓰다듬으면서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것을 잠시 보던 강 채요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한다.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

 말을 하지 않던 영 가도가 그 때 어둑해지는 밖을 보고 조용히 말한다.

"당신이지요."

"예?"

 의문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강 채요에게 영 가도가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황자. 두 번이나 살해하려한 것."

"...!!"

 급격히 굳어지는 강 채요가 무어라 말을 하기전에 영 가도가 책상을 내리치고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쾅!!

"내가 모를 줄 압니까?! 낭중이 빚을 내서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패물을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착용하게 했다는 것이 귀족 사회에 파다한데?! 귀족들 중에서 비웃지 않는 이들이 없었지. 감히 낭중 주제에 딸을 가지고 야망을 품는 그 마음을!!"

 찻잔이 그 바람에 굴러 떨어지고 그 모욕적인 말에 강 채요의 얼굴이 새하얘진다. 영 가도가 살벌한 목소리를 크게 높힌다.

"호갑투 너지?"

"미치셨군요!"

"그리고 두번째로 태자 죽이는 건 내가 보았소."

"뭐요?!"

 이간질은 했어도 직접 실행한 것은 고 재인이니 어이가 없어서 강 채요가 멍하게 그를 보다가 이내 차갑게 웃었다.

"하, 날 떠보는 말이라면..."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가?"

 영 가도가 그 때 강 채요를 손가락질하면서 소리친다.

"연자안 때도 너가 나를 겁박하여 내가 죄없는 한 충용을 고발한 것이잖는가?!"

 그 말에 강 채요의 얼굴이 굳어진다.

"한가의 자제가 용이 되려고 황손을 죽이니 내가 이를 황제께 고발하지 않을 수가 없지. 나는 충신가문의 자제이니까."

 강 채요는 그 말을 참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시달리던 강 채요에겐 한가의 자제가 욕심을 품는다는 말은 맹독과도 같았다. 그 말은 인내심이 강한 강 채요가 참지 못하는 거의 유일한 약점이였다.

 그 순간 냉정을 되찾은 강 채요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뭘 원하는 거지? 그렇게 흥분할 필요가 없어."

 영 가도가 그 냉정함에 순간 흥분이 가라앉아 강 채요를 바라본다. 강 채요가 잠시 찻잔을 들고 그 향기를 맡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내가 황자를 죽이려한 것이나 다른 네 그 꼴깝잖은 말들을 황제가 믿어주실까?"

 강 채요가 영 가도를 얼음장같이 시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네가 얼마나 독한 벌레인줄 알지. 내게 원하는 것이 뭔지 말해. 너가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너가 죽자고 하는 것이 아닐거 아니야."

"......"

"빨리 말해. 너 따위에게 신경쓸 시간이 없으니까."

 그리고 강 채요는 영 가도의 창백한 미소를 보고 불안감을 느꼈다. 그 때 그녀의 뒤로 이 경의 흥미로움이 담긴 목소리가 들린다.

"아주 재밌는데?"

 영 가도는 바로 눈 앞에서 죽은 사람처럼 칙칙해진 얼굴을 한 강 채요를 마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웃고야 말았다. 강 채요가 넋을 잃고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경이 호갑투를 낀 영선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그 문가에서 서있었다. 이 경이 웃고 있고 영선이 강 채요를 새침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영선이 입은 옷은 오랜만에 황후에 준하는 복식으로 긴 진노란색 옷에 붉은 장미가 그려진 옷이었는데 머리마저 관을 써서 몹시 화려했다. 영선이 이 경의 탄탄한 팔뚝을 살짝 밀면서 아양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제 제 모함이 풀렸습니까?"

 이 경이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애초에 믿지도 않았다. 그건 체면 문제였으니까."

"너무하시네요."

 그 말에 이 경이 영선의 손을 잡고 토닥였다. 다정스럽게 만지는 손길에 영선의 표정이 살짝 풀린다. 이 경이 강 채요를 시퍼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입가를 올린다.

"음. 그러니까 우리 아들을 네가 두번이나 살해하려고 하고 연자안도 네가 일으켜서 다 죽이려했다고?"

"아니.. 그건!"

"폐하!!!!"

 영 가도가 크게 소리치곤 이 경의 앞에서 엎드려서 흐느꼈다.

"죽은 한 충용의 원혼으로 매일밤 편히 잔 적이 없습니다. 냉궁으로 보낸다는 겁박에 굴복한 첩신을 죽여주시옵소서!"

"그건 당연한 것이고."

 이 경의 말에 영 가도의 표정이 핼쓱해진다. 당황한 영 가도가 영선을 보는데 영선이 그 때 고개를 돌리고 표정을 새침하게 했다. 영 가도가 무어라고 말을 하려는데 그 때 영선이 매서운 눈으로 영 가도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너, 내 황룡비녀를 부러트린 것이 두려워 숨긴 것만으로도 죄인데 아직도 그렇게 뻔뻔한 표정을 짓느냐?!"

 그 순간 영 가도가 상황을 눈치채고 멍하게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순간 분노가 치솟아 무어라 말을 하려는 영 가도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영선이 조용히 말했다.

"가문이 얽히기 싫다면 진실만을 말하는 것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 영선이 이 경의 단단한 팔뚝을 꾹 잡아 그의 뒤에 숨었다. 이 경의 표정이 잠시 풀리더니 영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영선이 순한 표정으로 이 경을 올려다보고 이 경이 웃으면서 영선의 흰 볼을 쓰다듬는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영선의 표정이 묘해진다. 눈을 순아하게 깜빡이는 영선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이 경이 차분해진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는 강 채요를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본다. 영 가도가 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고 굳건한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강 채요가 공손히 몸을 숙이고 말했다.

"폐하. 저는 결백하옵니다."

"......"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이 경이 이어진 말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리고 연자안을 일으킨 것은 영 미인입니다. 또한 제 태자 전하를 시해하려했다는 문제에 관한 결백은 고 재인이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영선이 이 경의 팔뚝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영선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당당하게 이 경을 바라보는 강 채요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 작품 후기 ============================

도원향가는 암투물이라 정독을 권장합니다ㅠ.ㅠ 줄글 하나 하나에도 시그널이나 복선이 무척 많은 작품이니 대충 읽으면 나중에 크게 헷갈리실 수 있습니다.

내용이 길어지셔서 헷갈리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아래 정리해놓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육궁

종수궁 (위비 견진 숙소, 이 영오와 같이 사용.)

만화궁 (재인 고 아정, 미인 강 채요)

무영궁(한황귀빈 오 약영 사용. 아들 이 영경은 태자이므로 동궁을 사용.)

동육궁 쪽에 관저궁(신귀비 백 영선)

서육궁

연자당(한 충용 숙소였으나 이제는 미인 영 가도만 씀. 한 충용이 소 승상 조카인 담빈 유 도림 암살배후로 지목되어 사사당하여 연자안을 일으킨 시초.)

자철궁(탁 빈 처소, 이 영연과 같이 사용.)

#후궁 정리

한황귀빈(오 약영): 봉호 굳셀 한,  한비-> 한귀빈-> 한황귀비(태자부)

신귀비(백 영선):백 재인-> 폐비-> 백 미인-> 백 첩여 -> 백 소의-> 봉호 영화로울 화, 화비 -> 화귀비-> 백 미인-> 백 재인-> 봉호 천자를 상징하는 신, 신비-> 신귀비-> 폐비-> 신귀비

위비(견 진): 봉호 훌륭할, 모범 위, 견 첩여-> 견 완용-> 위비

탁 빈(탁 조): 탁 첩여-> 탁 소의-> 탁 빈

담빈(유 도림): 유 첩여-> 맑을 담자, 담빈

영 미인(영 가도): 영 미인-> 영 보림-> 영 미인

하 미인(하 사제): 하 미인

단 수의(단 ??): 단 수의

강 미인(강 채요): 강 재인-> 강 첩여-> 강 미인

고 재인(고 아정): 고 재인-> 고 미인-> 고 재인

<현재>

1황녀 관평공주 이 미아 16살

2황자 한왕 이 영오 14살

3황자 진왕 이 영언 11살

4황자 태자 이 영경 10살

백 영선: 입궁 나이 20살, 현재 22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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