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48)

00079 망중요고번혹희(忙中要顧煩或喜) =========================

 이 경이 자세히 보면 어머니를 닮지 않은 것도 아니라 그 속눈썹이 짙고 눈도 섬세하고 유려했으나 그 이상으로 친할머니인 영고태후를 닮아 눈매가 날카롭고 골격이 단단했다. 강북 귀족 사회에서 유행하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미공자는 아니었으나 충분히 이 경은 사내답게 잘 생겼으니 단 한번도 외모에 신경을 쓴 적이 없었는데 이 작교의 경우에는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경국인 소성황후를 똑 빼닮은 이 작교와 이 경이 같이 있으면 그 둘은 마치 형제 관계가 뒤바뀐듯 보였으며 심지어 이 작교는 동안이라 조카로도 볼 수 있을만큼 젊었는데 생긴것이 성품을 드러내는 듯이 이 작교는 우아했고 이 경은 투박했다. 이 경은 둘이 마주할 때마다 어렴풋이 드는 불쾌감에 이복형을 무척 싫어하여 갈궜다.

 사실 꿇릴 것이 없고 혈통이 우수한 이 경에게 유일한 오점은 이 작교였다. 이 작교는 황후 출신의 장자였고 어머니의 혈통이 우수하고 특히 성품도 모자라지 않았다. 온화한 소성황후를 닮아 이 작교도 성품이 차분하고 은은한 향기가 나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궁인들을 손수 패죽인 어머니를 둔데다가 부인하지만 어미를 쏙 빼닮은 이 경에게는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 경이 이 작교에게서 황태자위를 양위받은 과정은 그도 죄책감을 느낄만큼 잔악했다.

 모후인 인온황후는 독랄한 사람이었다. 이 작교의 동생이자 그 당시 당왕이었던 이 연교는 독살을 당했는데 물을 마시고 싶다고 애원하였으나 모든 궁인들이 그를 외면하였다. 보다못한 이 작교가 그를 안고 우물을 뒤졌으나 인온황후는 우물을 모두 폐쇄하여 이 작교의 품 안에서 그의 동생은 결국 죽고야 말았다. 이 작교는 그 날 이후 작고한 선황이었던 이 금에게 양위를 간청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 경은 어디까지나 '몸이 불편하고 유약한' 황형에게서 양보를 받은 것이기에 황실적장자는 아직도 이 작교였고 그는 귀족 사회에서 동정심을 받았으며 일찍 죽은 누이와 이모를 연민하는 전 조국왕과 현 조국왕에 의하여 보호받았다.

 그리하여 이 경이 아끼는 신하인 하 대천을 조국에 파견하였는데 성품이 바르기로 유명한 그가 갑자기 조국왕비의 내원을 밟아 태형당한 것이 정말 액면 그대로의 일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현 조국왕 보국 요리는 사촌인 이 작교를 괴롭히고 이모를 죽였던 인온황후를 증오하고 현 황제인 이 경에게 몹시 불손하였다. 시시때때로 조국왕은 상소를 보내어 당왕 이 작교를 조국에 보내어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이 경은 친왕은 도성에 머물어야한다는 말과 함께 단칼에 거절하고 이 작교를 인질로 삼았다.

 그리하여 조국왕이 불손할 때마다 고생하는 것은 이 작교였고 이 경은 하 대천이 태형 중 죽었다는 보고를 받자 마자 불같이 화내어 이 작교를 불러 갈궜다.

 그 정도는 평소보다 훨씬 심했는데 아이를 임신하고도 고생이 심한 이 경은 극심히 신경이 예민하였고 연자안 사건의 뒷처리로도 조정 신하들의 동요를 막는 것에 주력했으므로 매우 성격이 비뚤어지고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이 작교는 오자마자 황실적장자이자 이 경의 손윗서열로서 본디 큰절을 생략할 수 있는 몸이었으나 그것을 꼬투리로 잡혀서 욕을 먹었고 그가 흰색 옷에 금사를 새겨놓은 옷을 입었는데 왜 상복을 입고 금사로 용을 새겼냐는 욕을 먹으며 불길하단 소리를 들어 바로 옷을 벗었다.

 술을 먹는 중에서도 이 경이 강요를 하여 결국 토악질을 할 때까지 마시던 이 작교는 마침내 보국 요리를 들먹이면서 호통을 치는 이 경에게 무릎을 꿇고 비몽사몽한 정신을 가까스로 잡고 절절하게 말했다.

"폐하! 표제(表弟, 사촌동생)의 불손을 신이 잘 꾸짖겠습니다. 표제의 불손한 언행은 제 잘못입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이 작교가 다 포기해서 허탈한 얼굴을 한다. 이 경이 싸늘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잠시 예민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 경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 대천은 과거에서 2등으로 합격했지만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한 사람이여서 명망이 높고 청렴결백했다. 도가사상에 심취한 귀족들과 다르게 백성들이 자주 믿는 불교를 장려하여서 내가 종교를 손을 댈 때도 쓸려 했던 인물이다."

"......"

 이 경이 격노해서 잔을 던졌다. 이 작교의 바로 앞에 깨지는 잔에 그의 몸이 떨린다.

 쨍그랑!

"그게 무슨 의미인지 너는 모르지?! 그는 그곳에서 죽어서는 안되는 인물이었다! 귀족들이 호의적이면서 번듯한 명관(明官)이 어디 많은줄 알아?! 더군다나 도교적폐를 청산하는데 독실한 불자인 하 대천은 꼭 필요한 사람이었어!"

 이 작교의 몸이 잠시 떨린다. 침음성을 내던 이 작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폐하... 제가 조국왕에게 사죄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사죄를 하여 폐하의 마음이 풀리고... 정국에 도움이 되도록..."

"조국왕이 *입조하라고 해라!"

 그 말에 이 작교의 몸이 퍼득 떤다. 이 경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한 이 작교가 곧 죽어나갈 사람처럼 느릿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폐하."

 이복형이 초라하게 웅크리며 바닥에 엎드린 것을 잠시 바라보던 이 경이 소매를 떨치면서 짧게 말했다.

"물러가시오."

 이 작교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이 경이 잠시 날카로운 웃음을 짓고 허공을 바라본다. 텅 빈 연회장에 궁인들마저 물린 이 경이 옆에 있던 접시를 바라본다. 이 경이 연회 간간에 술을 먹지 않고 입에 담구었던 것을 뱉었는데 그것을 옆에 화원에 뿌려 비우고 한숨을 쉬었다.

"허."

 한번 이 작교에게 화풀이를 하니 기분은 좀 풀리지만 노화가 가시니 이 경은 힘이 빠지고 더욱 더 힘들었다. 이 경이 밖에 나돌아다닌지도 벌써 한달이었다. 즉 입덧은 가셨고 배는 더 불러왔으며 이 경은 그렇기에 육궁에 다니지 않길 원했다.

 영선이 필사적으로 그의 얼굴을 보겠다고 하였으나 이 경은 그를 거부하였고 심지어 희 치마저도 철저히 박대하여 그가 몇번이고 도 요소를 보내고 심지어 직접 찾아가서 얼굴을 보자고 몇번이나 말을 했으나 이 경은 그 때 진심을 다해 말을 하여 그들을 물렸다.

"내게 시간을 다오."

 그 둘은 그 말에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 경은 정말 그 둘이 보기가 싫었고 두려웠다.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달거라. 좋은 쪽으로 다잡을 테니."

 그러나 이 경은 이미 그 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였다. 겁을 먹은 이 경은 그렇게 말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말을 들은 희 치는 한참을 있다가 알겠다는 말과 함께 돌아갔고 영선은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울지말라 말을 했다.

 이 경은 그 따뜻한 말이 서럽게 싫었다.

 그래서 이 경은 거의 육궁에 가지 않고 태양전에 머물어 일에 몰두하였는데 조국왕 보국 요리와 하 대천 사건이 그를 또 열받게 만들어서 그는 굉장히 신경을 쓰며 그 사건을 심사하여 처리하였다.

 그리고 결국 사촌형인 이 작교의 말을 들었는지 보국 요리가 굴욕을 감수하고 입조한다는 말을 보내어 이 경은 드물게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경은 인편으로 보내진 조국옥새(趙國玉璽)를 보고 침묵했다.

"조국세자가 고변하여 조국왕이 하 대천에게 술수를 써서 일부러 내원으로 안내한 것을 입증하였고 동시에 증인과 증거들도 확보하였습니다. 하 대천이 폐하의 충신임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주살하려고자한 모략으로 조국 대장군 왕 가량이 역심을 가진 조국 왕가에 반기를 들어 그들을 처리하였습니다. 조국세자 보국 량천이 지금 조정을 다독이곤 옥새를 보내어 역심이 없음을 밝히니 또한 조국왕 보국 요리는 구금중이옵니다."

 이 경이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날카로운 웃음을 지었다.

"희 치냐."

 그에 무릎을 꿇고 있었던 상장군 영 양하가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이 경은 몹시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아 그 옥새를 노려보면서 말을 하였다.

"군부에 이 정도 영향력을 가진 것은 희 치 뿐이지. 또한 손을 쓸 수 있는 사내도 희 치 뿐이고. 그래서 이것은 희 치의 선물이냐."

"폐, 폐하.."

"잘못했다고?"

 이 경은 옥새를 잡고 만지작거리더니 차갑게 웃었다.

"내 인가를 받지 않고 이딴 짓을 해?"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음월전에 쳐박혀서 병부와 연락을 하지 않았던 희 치답지 않게 파격적으로 일을 처리한 것이었다. 이 경은 화가 나기보단 그 의도를 생각하곤 크게 헷갈려했다.

 손에서 옥새를 굴리면서 잠시 상념한다. 희 치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 날 발언이 미안해서? 자신을 도와주려고? 아니면 지금 무력시위를 하는 것인가? 아직도 자신이 죽지 않았으니 홀대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고? 그래서 이 경에게 은근히 압력을 놓는 것인가?

 하지만 한가지는 안다. 희 치를 만나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 경이 옥새를 노려놓고 짤막하게 말했다.

"보국 요리를 죽여라."

 음월전에서 이 경은 냉막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희 치를 마주했다. 이 경은 자리에 앉으라는 희 치의 말에도 그를 한참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경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뜻이냐."

 희 치가 고개를 돌린채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정원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셨군요."

 음영이 진 희 치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몹시 우울하고 약해보였다. 그 본질 자체가 음울한듯이, 또한 연약한 것처럼 그 강인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이 나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상누각. 언제든지 무너질 것만 같이 위태롭다. 이 경이 말을 멈춘다. 희 치가 시선을 돌리지 않고 정원을 바라보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정의 일이 바쁘지 않으면 이제 얼굴을 볼 수 있습니까?"

 이 경이 자신이 변명에 조정의 일이 바쁘다고 쓴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아 그를 멍하게 본다. 희 치는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고 한참 후에 이 경이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넌, 넌.. 대체 왜 이러느냐."

 그제서야 희 치가 짧게 웃곤 이 경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 경은 흑벽(黑璧)의 기이하게 맑고 청담한 두 눈을 마주하고선 얼어붙고야 말았다. 희 치의 입술이 열린다. 그의 눈은 간절했으면서도 동요가 담겨 있었다. 이 경은 느낌상 희 치와 그의 관계가 무언가 달라진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나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희 치는 유리같은 두 눈으로 그것을 본다. 이 경은 숨을 멈추었고 몸을 잘게 떨다가 이내 그 시선을 참지 못해서 자리를 박차며 뛰쳐나고야 말았다. 이 경이 필사적으로 음월전에서 벗어나려 달린다. 숨을 헐떡이면서 달리던 이 경이 결국 기둥에 손을 집고 몸을 숙이고 숨을 고른다.

"헉, 허억..."

"폐하!"

 이 경이 눈을 꾹 감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류 태감이 등을 쓸 때 이 경이 자신도 모르게 아랫배를 더듬거리면서 희를 찾고 있었다. 이제 심장 소리가 콩콩 들리고 있다. 숨이 가빠오자 맥이 더 잘 들리고 있었다. 이 경이 입매를 파르르 떨었다.

'희야.'

 아빠를 오랜만에 본 희가 기쁘다는 듯이 콩닥이고 있었다. 이 경에게 희 치를, 아빠를 더 보고 싶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이 경이 잠시 생각한다. 그러다가 얼굴이 창백해진 이 경이 이윽고 고개를 흔들거리곤 짤막하게 명했다.

"태양전으로 가자."

"예?"

"...국무가 바쁘다."

 류 태감은 이 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 경의 하얗게 질린 얼굴에 고개를 숙이며 명을 받들었다. 이 경이 창백한 얼굴을 하여 허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류 태감을 따라 태양전으로 갔다.

 이 경은 한동안 태양전에서 머물며 밤낮을 정사에 몰두했다. 그가 육궁에 출입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 작품 후기 ============================

주석 1. 조회에 참석하란 이야기. 즉 조국을 벗어나 성도로 오라는 의미이다.

휴가 전에 감질나게 한편 두편 찔끔 잘라서 절단마공 연성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달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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