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2 망중요고번혹희(忙中要顧煩或喜) =========================
희 치는 이 경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다는 말에 그저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뛰쳐나가 미친듯이 달린다. 머릿 속이 새하얘져서 태양전의 문을 부수듯이 연 희 치가 침대 위에서 헐떡이는 이 경을 보면서 경악한다.
"이 경!!!"
무엄하게 이름을 부르는 것에 이 경의 궁인들이 차마 그를 신경쓰지 않고 황급히 이 경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을 살핀다. 이 경의 몸이 떨리고 있었고 침대 밖에 늘어진 손이 보인다. 희 치가 순간 세상이 무너진듯한 충격에 심장이 멈춘다. 정신이 어지럽고 멍하여 희 치가 자신도 모르게 이 경에게 다가가 그 손을 잡고 그를 살피려고 한다.
피냄새가 진동했다. 희 치가 오랜만에 맡는 불길한 냄새에 숨을 멈춘다. 희 치가 진한 두통에 사로잡힌다. 희 치의 귓가에 음산한 웃음 소리가 들린다. 사내가 속삭이면서 희 치를 지배한다. 희 치의 시야에 피가 가득했었다. 희 치의 몸이 비틀거린다. 신음성을 내면서 희 치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다. 그가 원하지 않았던 폭력의 잔재가 어른거렸다.
'제발..'
위현, 그만. 희 치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그 말을 하고도 희 치의 심기가 어지러워서 기맥이 끊어지고 피가 들끓는다. 격정 속에서 희 치가 몸을 바로하지 못하고 피를 흘리는 이 경을 잡는다.
희 치가 아슬한 정신을 가까스로 다잡는다. 희 치가 몸을 휘는 이 경을 바라보았다. 이 경의 눈이 붉어져있고 눈물이 맺혀져 있다.
"폐하?"
입 밖으로 갈라진 목소리가 난다. 이 경이 초점이 맞지 않는 멍한 눈으로 희 치를 보고 있다. 희 치가 잡힌 자신의 옷자락을 바라본다. 귀가 멍멍하여 희 치는 과거의 악몽에 휩싸여 굳은 표정으로 그 애처로운 손길을 보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입술이 달싹였다.
"희, 희를 살려줘..."
그 순간 희 치는 '희'의 존재를 어렴풋이 깨닫고 공포에 질리고야 만다. 지독한 허망함에 휩싸여 멍하게 그를 바라본다. 이 경이 스륵 옷자락을 놓고 쓰러진다. 비명이 귓가에 맴돌고 이 경이 축 늘어져서 식은땀을 흘린다.
백짓장처럼 하얀 그 얼굴을 망연히 보던 희 치가 이윽고 날카로운 웃음을 흘렸다.
"내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다리 사이에 흐르는 피와 그 배 위에 손을 대며 헐떡이는 이 경의 간절한 눈이 교차된다. 희 치가 피묻은 손으로 얼굴을 쥐면서 고통어린 신음을 흘렸다. 고조된 마음과 뛰는 심장, 희 치가 절망 속에서 이 경의 애원을 상기하고 고통에 피묻은 손에 얼굴을 묻는다. 희 치가 미친듯이 웃으면서 중얼거린다.
"결국 나는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인가! 하하하!"
궁인들이 이리 저리 뛰다니고 희 치는 이 경의 머리를 품에 안고 절망하고 있었다. 결국 희 치는 아이를 잃었다. 이 경은 숨을 거칠게 쉬면서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울고 있었다.
기다렸지만 두려워했던 아이는 희 치의 나약함에 빛을 보지 못했다.
희 치는 이 경을 끌어 안고 몸을 떨고 있었다. 철혈의 사내이자 그 어떤 악귀나 거친 위협에도 까딱하지 않았던 북걸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 경을 꽉 끌어 안는다.
이 경의 축 늘어진 몸을 어루어 만지면서 희 치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 황상. 일어나세요. 일어나서 저를 보세요."
희 치가 조용히 이 경의 귓가에 속삭인다. 자꾸 미끄러지는 손을 잡으면서 희 치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게 눈을 보아서 당신이 나의 기쁨을 가졌다고 말해줘요. 내게 자랑해줘요. 내가 그러면 기뻐해주리라. 날 구원할 나의 희를 가졌잖습니까.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라고 생색을 내주십시오."
이 경은 죽은 사람처럼 자꾸만 희 치의 품에서 빠져나갔다. 희 치가 미친사람처럼 이 경의 늘어진 손에 깍지를 끼고 억지로 입을 맞췄다. 희 치의 품에서 이 경이 쓰러져 있었다.
"이 경, 일어나."
희 치가 거친 목소리로 말한다. 결국 희 치가 한순간 그 광기어린 발작을 멈추고 가만히 그를 안고 있는다. 이 경을 끌어 안고 멍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태의가 들어와서 이 경을 살핀다. 그동안 이 경을 끌어 안고 눈을 감고 있던 희 치의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했다. 손목의 맥을 짚고 배를 어루어만지던 태의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희맥(喜脈)이 잡히지 않습니다."
희 치가 그 소리를 듣고 날카롭게 웃었다. 그에 태의가 몸을 웅크리고 두려움에 떤다. 전에 대장군으로 수많은 번국을 정복했던 사내가 날카롭고 날뛰는 살기를 흘리고 있다.
"내 아이가 죽었단 말인가?"
그 창대한 분노에 태의는 몸을 떨고 일어나지 못했다. 희 치가 이 경의 몸을 꽉 붙잡고 놓지 못했다. 희 치가 믿기지가 않아서 그를 노려보면서 칼날같은 살기를 머금고 말한다.
"내 아이가 정녕 죽었단 말인가?"
태의가 몸을 엎드리고 운다. 희 치가 그것을 멍하게 바라본다. 이윽고 비명이 울리더니 태의가 그를 무시하고 황급히 이 경에게 다가간다. 희 치가 멍하게 그것을 바라본다. 일련의 소란이 일었고 태의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피묻은 손을 덜덜 떨고 있다.
흰 보자기로 무언가를 가린 태의가 울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황녀 아기씨이십니다. 한달만, 아니 이주일만 더 있었어도 조산이지만 살릴 수 있었건만..."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꺽꺽 거리면서 몸을 웅크린다. 희 치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흰 보자기에 쌓인 그 아이를 보았다. 희 치가 손을 뻗어서 천을 젖히고 그 아이를 본다. 평온한 얼굴의 아이가 자는 듯 있었다.
희 치를 닮은 아름다운 여아였다. 희 치가 그에 시선을 떼지 않고 멍하게 바라보았다. 희고 고운 얼굴. 장미빛 부드러운 뺨과 너무나도 작은 몸이지만 흠집 하나 없이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잠시 자식을 바라보던 희 치가 짧고 소름끼치는 웃음을 한번 짓더니 이윽고 얼굴을 할퀴면서 몸을 웅크린다.
"희가 죽었어!!! 희가!!!!"
절규하는 희 치가 비통한 목소리를 토한다. 그에 그 방 안 모든 사람들이 서늘함을 느끼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음을 참았다. 태양전을 가득히 울리는 날카롭고 처절한 비명이 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간장이 끊어질듯 헐떡이던 희 치가 쓰러질 것 같은 정신을 가다듬고 품 안에 이 경의 존재에 그의 가슴을 쓸어 만지다. 희 치가 태의를 들끓는 살기를 억누르면서 노려본다.
"폐하는?"
"폐하께서는.. 무, 무사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워낙.."
"그 몸에 단 하나의 해라도 입으면 안된다!"
태의가 그 추상같은 명에 몸을 부들 떨면서 고개를 조아린다. 희 치가 그런 태의를 살벌하게 바라보더니 아이를 싼 보자기를 바라보면서 또다시 눈을 흔들다.
'아.'
절망감에 탄식하는 희 치가 아찔함을 느끼고 눈을 질끈 감았다. 허망하다. 희 치는 또다시 세계가 침잠하여 장고(長苦)를 느끼고 헐떡거렸다. 숨이 막히고 몸이 떨린다.
자신을 빼닮은 희가 죽었다. 희 치가 기혈이 들끓어 결국 피를 토하고 입을 막는다. 충혈된 눈에 화기가 가라앉지 않고 몸이 뜨거워서 열이 나있었다. 희 치가 희를 생각하면서 잃어버린 그의 딸에 애통하여 몸을 가누지 못할 때였다.
"폐하?"
그제서야 달려온 영선이 그 광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주홍발이 땀에 달라 붙고 흐트러진 차림새에 침의를 벗지 못하고 있다. 희 치가 초점을 잃은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부들 떨리는 손과 희게 질려서 더 이상 하얘질 수 없는 얼굴로 그를 본다.
희 치의 입가에 선혈이 흐르고 눈이 충혈되어 있다. 그의 품에 안긴 이 경이 피에 젖어 죽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희 치가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열었다.
"영선, 영선아."
희 치가 그에게 간절히 말했다.
"희가 죽었다."
비통함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 말에 영선이 몸을 비틀거렸다.
"내 딸, 딸이 죽었다."
영선이 그제서야 말을 깨닫고 허망한 눈으로 그 둘을 교차한다. 희 치가 결국 각혈을 하여 손 안에 피를 토해내어 몸을 웅크린다. 궁인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그에게 달라붙고 희 치가 정신을 잃어서 입가에 선혈을 흘리며 쓰러진다.
영선이 자리에서 주저앉고 얼굴을 감싼다.
"왜, 왜... 왜?!"
그제서야 모든 상황을 깨달은 영선이 머리를 쥐어 뜯는다. 이 경이 두려워하고 그를 기피하던 것을 깨달은 영선이 비명을 질렀다. 이 경이 그제서야 자신을 무서워하던 것을 깨달은 영선이 괴로움에 헐떡이다가 이윽고 류 태감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율무입니다."
영선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그를 바라본다. 영선이 신음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회임을 눈치채서 녹차 또한 발효된 것만 썼네.."
류 태감이 눈을 질끈 감더니 말한다.
"관저궁에서 정기적으로 내온 녹차 정빙에 율무가 섞였습니다."
그에 영선이 멍하게 그를 바라본다. 류 태감이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말한다.
"마마의 결백은 압니다. 하지만, 하지만 상황이..."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영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차가루에 율무가 섞였나이다. 정빙에 쓰이는 차가루는 고급이라 오직 황후 폐하와 한황귀빈 마마와 그리고 신귀비 마마의 처소에만 납품됩니다."
류 태감은 차마 황후와 태자부를 건들 수가 없다. 그 말에 영선이 몸이 서늘해져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폐하는 괜찮은가."
떨리는 목소리에 류 태감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선이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류 태감이 시위에게 명령했다.
"신귀비 마마를 연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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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이 일어나자 마자 찾은 것은 아이의 일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이 경은 태명을 부르면서 희 치의 소매를 잡고 간절히 말했다.
"희? 희는 살았나?"
희 치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묵묵히 정면을 응시했다. 그 얼굴은 불안감이 넘치는 얼굴로 바라보던 이 경이 이윽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희 치의 얼굴을 손에 감싼다. 희 치가 그것에 맥없이 몸을 내주고 이 경이 희고 부드러운 희 치의 피부를 할퀴면서 절규했다.
"너가 결국 희를 죽였어?!"
희 치가 멍하게 그를 바라본다. 그의 가슴이 찢겨져 나가고 있었다. 이 경의 울음이 분노와 증오가 그를 영혼채로 갈가리 찢고 있었다. 류 태감이 그 때 몸을 조아리면서 말했다.
"녹차 정빙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뭐?"
이 경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를 멍하게 바라본다.
"율무를.. 율무를 정기적으로 드셔서 아기씨께서 크게 놀라셨다고 합니다. 피로가 쌓여서 결국 몸의 조화가 무너졌는데 더군다나 율무는 아기씨에게 해로운 것이라 아기씨께서... 견디지 못하셨습니다."
"...희가 죽었나."
류 태감이 텅 빈 이 경의 목소리에 몸을 엎드리면서 통곡했다.
"죽여주시옵소서!"
그에 궁인들이 다시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죽여주시옵소서, 폐하!!"
이 경이 그에 멍하게 자리한다. 마치 영혼이라고 없는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있던 이 경은 녹차 정빙이란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류 태감을 바라본다. 불길함이 그를 잠식하고 이 경이 끔찍한 생각에 몸을 벌벌 떨었다.
"정빙에 율무가 섞였나?"
류 태감이 침음성을 흘리면서 말했다.
"동일 등급의 차가루는 세 곳에 납품됩니다."
그는 정말 끔찍한 소리를 했다.
"음월전, 무영궁, 관저궁입니다."
이 경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진다. 그가 이불을 꽉 잡고 몸을 떤다. 한참을,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고 정면을 응시한다. 그리고 그런 이 경의 옆에서 희 치가 눈을 감고 있었다. 이 경이 이윽고 짤막하게 말했다.
"너냐."
희 치가 들끓는 마음을 억누르고 지독히 갈라진 목소리로 답한다.
"아닙니다."
이 경이 더 끔찍하여 눈을 꾹 감고 몸을 떤다.
"그럼 영선, 영선이..."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이 경이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렸다.
"어떻게... 그 아이가...?"
희 치도 그 누구도 달래지 못하고 그저 침묵을 유지한다. 이 경의 비통함과 희 치의 슬픔이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희 치는 이미 지나친 격정에 내부가 진탕되어 겉은 멀쩡하나 언제든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으며 실제로는 이 경보다 더욱 더 안좋은 상태였으나 이 경을 달래려 애써 끊어질듯한 정신을 다잡고 있었다. 그 정도로 희 치는 충격을 받았으나 이 경은 그 이상으로 배신감과 슬픔에 휩싸여 있었다.
아이를 잃은 이 경이 주먹을 꽉 쥔다. 힘줄이 튀어나온 손등이 부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갈라지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때에 문 밖에 아주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경의 몸이 굳어졌다.
"단 수의 마마님이십니다."
"뭐?"
있는 듯 없는 듯했던 후궁의 이름이 나오자 이 경이 의문어린 눈을 한다. 그리고 궁인이 문을 열고 겁에 잔뜩 질린 소심한 인상의 청년이 머뭇거리면서 그곳에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이 경이 그를 노려보다가 소심하지만 항상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단정하게 사람을 대했던 그를 생각하고 이상함을 느껴 말한다.
"뭐냐. 무슨 일이냐."
그리고 단 수의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울면서 입을 뗀다.
"궁인이 차, 차가루에 손을 댔습니다. 귀, 귀비 마마가 아닙니다."
단 수의는 고지식하고 눈치가 없지만 그렇기에 바른말을 하는 사내였다. 이 경과 희 치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이 경의 숨이 멎는다.
단 수의가 눈을 내리깔면서 벌벌 떨다가 결심하여 입을 뗐다.
============================ 작품 후기 ============================
주석 1. 태아의 맥.
우연찮게 희 치와 영선이가 얘기하고 있을 때 이 경이 오해하고 우연찮게 지나가던 후궁 1이 음모의 장면을 발견하고 우연찮게 운정아정영정이가 영선이랑 이 경의 야외플을 목격하고 그런건 소설이라서 그렇습니다ㅎ.. 세상엔 우연이 많차나여?? ㅎㅎ? 현실이 소설보다 더할지도 모르잔아용?? 어떻게 이 경이가 천하제일미남+무력최강+영웅인 희치랑 예술인+모략만렙 영선이를 꼬신것도 머 소설이니까 넘어가주세용ㅎㅎㅎ 개연성을 따지려면 재미가 읍습니다ㅠ